경사진 복도에서 지루하게 차례를 기다리느라 기운이 빠진 나머지 잠시 엉덩이를 붙여볼까도 싶었지만 결국 나는 변기 위에 앉고, 볼일을 보는 과정을 생략하기로 했다. 그저 황금빛 레버를 내리며 변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황금빛 물 소용돌이를 명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장면은 내가 평생 목격한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제야 "무엇을 섭취하건 그 결과는 배설로 귀결된다"는 작가의 의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103 킬로그램의 금으로 된 변기에 앉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만인은 평등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면 그는 아마도 시원한 배설의 쾌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작가는 변기를 통해 인간의 탐욕과 과도한 부를 조롱하면서 경제적 불균형이 심한 아메리칸 드림‘을 풍자하고 싶었다고 했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도금 시대(1865~1900년)‘가 떠올랐다. 미국이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며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여간 시절 말이다. 대자본가가 등장한 이래 빈부 격차가 문제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도금 시대가 펼쳐진 뉴욕은 그 어느 때보다 불균형했고 겉과 속이 극명하게 달랐다. 그러고 보니 이 변기가 설치된 곳도 뉴욕 5번가가 아닌가? 이쯤 되니 1870년대 뉴욕 상류층을 배경으로 한 소설 『순수의시대 The Age of Innocence 를 소환하지 않을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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