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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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17세기에 해적왕이라 불리던 헨리 에브리라는 인물과 그의 행적을 통해 대영제국의 탄생에 대한 배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류 모두의 적'이라는 책 제목은 바로 그 헨리 에브리라는 해적왕의 또 다른 별칭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내게는 딱히 와 닿는 해적왕의 칭호는 아니다. 

해적 왕 헨리, 역사이자 전설이 되다.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쓴다면 내용과 연결하여 딱 맞춤인 글이 되겠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인류 모두의 적'이라는 제목으로 돌아가서 이것 역시 '해가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영국의 영국에 의한 영국인의 책이 아닌가, 라는 좀 삐딱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건 내가 역사를 잘 몰라서일까?


책을 읽기 전에는 헨리가 그 유명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대영제국을 이루게 한, 해적에서 영국군인으로 둔갑한 인물이고 영국함대와 해적단이 공존하며 국가적으로 불법행위를 묵인해주는 이야기의 시작인 줄 알았다. 그런데 헨리 에이브는 오히려 그런 상황의 종지부를 찍게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헨리 에브리는 처음부터 해적으로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영국 해군에 입대를 하고 함대에 오르지만 선상반란을 일으키고 배를 약탈해 해적선으로 바꾸고 인도의 무굴제국을 약탈한다. 또한 노예무역상으로 위장해 실제 기니섬 주민들을 납치 감금해 노예로 팔아넘기며 돈세탁을 하고 부를 축적했다. 

한가지 좀 의외였던 것은 - 어쩌면 그래서 3년이 넘는 시간동안 영국함대에서 해적선으로 탈바꿈한 팬시호에서의 수익배분은 직급에 따라 차등이 있기는 했지만 모든 선원에게 균등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투 중 상해를 당하면 그 정도에 따른 보상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현대의 상해보험제도를 떠올리게 되는 것 역시 놀라운 일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해볼 때 헨리 에이브는 저자의 표현대로 '전설적인 인물이고 영웅이자 살인자이기도 하고 폭도이며 국가의 적이기도 하고 해적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유령이 되었다'는 말은 다 맞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령,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게 남는데 해적들이 재판을 받고 처형을 당할 때 헨리 에이브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당시 선상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고, 뱃사람이 된다는 것이 왠만한 각오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 소설 모비딕을 통해서도 얼핏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이야기는 그보다도 이백여년이나 전의 이야기 아닌가. 그 시기에 해적선을 이끌고 해적왕이라는 칭호까지 받은 헨리 에이브는 어쩌면 해적의 입장에서는 진정한 지도자이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동료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행적은 인도 무굴제국의 보물선을 약탈함으로써 국가와 해적의 밀접한 연계를 끊는 계기가 되었고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었고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역사의 흐름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사의 한 장면,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이 해적왕 헨리 에브리에 의해 탄생했다고 하는데 책을 다 읽고도 그 행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여전히 나는 왜 그가 '인류 모두의 적'이라고 불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재판을 받은 해적 중 나이가 어린 윌리엄 비숍의 최후 진술이 가장 안쓰러웠다고 하는데, 겨우 열여덟살에 강제로 끌려갔으며 재판을 받을 때도 겨우 스물한 살에 불과하다며 감형을 호소했지만 그 역시 교수형을 받았다. 노예상인과 무역선이 타지역에서 당연히 침략과 약탈을 자행하던 시기에 그들은 '해적'이라는 것으로 재판을 받고 처형당했던 것이다. 

이 한권의 책으로 많은 것을 알수는 없지만 역사를 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니 나름 유의미한 독서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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