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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을 향해 헤엄치기
엘리 라킨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소설의 도입부를 보면,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소설이었다. 단지, 최근에 어머니의 건강상태에 대해 의사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 후 조금씩 상실에 대한 준비를 해야하겠는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겠는 상태였는데 마침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사려 깊고 따뜻한 이야기"라는 문구에 그저 혹시나 싶어 펼쳐든 소설책일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이 느낌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이야기의 큰 줄기만을 떼어놓고 이야기하면 바람을 핀 남편과 이혼을 하며 모든 권리를 다 포기하고 반려견 바크의 양육권만을 갖고 고향의 할머니 집으로 간 케이티가 자신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것이 줄거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던가.
케이티는 어린 시절 아빠와 수영하는 것을 즐겼었는데 함께 수영을 하다 아빠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후 물을 끔찍히도 두려워하게 된다. 그런데 이혼 후 찾아 온 할머니는 젊은 시절 친구들과 함께 했던 인어공연을 추억하며 옛친구들을 찾고 그 공연을 재연하고 싶어한다. 그를 위해 케이티와 그녀의 친구 모는 공연을 위한 준비를 같이 하는데...
이 모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툭 튀어나오는 에피소드들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너무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케이티의 첫사랑이었던 루카를 만나게 되고 그의 친구에게 사진기를 빌리러 가는 길에 생리중인 케이가 화장실을 찾고, 루카의 친구 대니의 집 화장실에 휴지통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탐폰을 비닐봉투에 넣어 가방에 두는데 그걸 또 바크가 물어뜯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 모가 대학시절 남자친구집 변기에 탐폰을 버렸다가 하수구가 막혀 수리업자까지 불렀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리고 "만약 남자들이 생리를 하면, 배수구로 탐폰을 처리할 수 있게 될걸"하고 말한다. 이 웃긴 에피소드는 이렇게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이 에피소드의 시작은 케이가 루카와 자동차를 타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고 루카가 할머니들의 인어공연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이유, "사람들은 나이 든 여성은 눈여겨보지 않아. 하지만 나는 아직 총천연색으로 빛나는 여성을 보여주고 싶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라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니 저자 엘리 라킨은 '여성성의 신화'뿐 아니라 1960년대 여성운동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의 곳곳에 밑줄을 그어놓고 싶은 의미심장한 문장이 가득했구나, 싶어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버림받은 유기견 바크를 데려온 것에서부터 멕시코 불법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시민권을 가졌지만 친엄마가 아닌 양엄마에게서 자라야했던 루카,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커밍아웃을 하며 오랜 친구를 잃을까 걱정하지만 그 모든 것을 이해하는 할머니와 친구들, 남녀의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 있을 뿐임을 직업을 통해 알려주고 있는 것 등 이 소설의 모든 등장인물들과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새롭고 놀라움으로 가득하다.
금세 읽을 수 있는 소설 한 편을 조금 천천히 긴 시간동안 읽은 이유는 그 문장들에 담겨있는 의미를 조금 더 새겨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이 좀 뒤죽박죽일 때 다시 꺼내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로서 사는 것의 의미를 바꾸는 것" - "나는 인간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다!"를 외쳐보고 싶을 때도 이 책을 펼쳐들고 싶겠지만 사실은 케이의 할머니의 말을 듣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모두 너를 구할 거란다. 그걸 잊지 마라"
"응? 뭐가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거요." 내가 말했다.
이제 하늘은 거의 주황색으로 물들었다. 버니의 장미는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덜 사랑하는 게 해결책은 아니란다." 빗시가 말했다.
"우리들은 대부분을 잃게 될 거야. 결국에는 너나 나나 그건 어쩔 수가 없어. 그런 법이니까. 하지만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낫지 않겠니?"
빗시의 솔직함이 가슴속에 밀려드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진정시켰다.
"사랑은 항상 용감한 행동이란다, 얘야." (5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