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 검은 그림자의 진실
나혁진 지음 / 몽실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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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마주한다는 것은 아무리 고통스럽다하더라도 거짓보다는 낫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세상에 넘쳐나는 악함이 상상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과연 진실이 정답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최근에 알려진 박사방, 엔번방 같은 이야기들은 너무 끔찍했다. 언젠가 움베르토 에코가 자료 수집을 위해 포르노 사이트를 찾으려고 했더니 평소 스팸처럼 밀려들던 그런 영상들은 자취를 감추고 정작 포르노 사이트에는 접속도 하지 못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이 단순히 그 말 그대로가 아니라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힘들다는 뜻이아닐까 싶어진다. 엔번방에 접근하는 것이 범죄행위인 것이니.

 

상처,는 평범한 여대생이 실종된 사건에서 시작된다. 이진호는 범인 검거를 위해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아내가 딸과 둘이 놀이공원을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딸이 죽음에 이르자 형사직을 그만뒀다. 그후 알콜중독에 빠져 살고 있던 그에게 선배 형사인 백과장이 대학생 딸이 가출하고 실종되었는데 찾아 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우연히 포르노 동영상에 딸인 은애의 모습이 찍혀있다는 것을 안 백과장은 공개적인 수사를 꺼려하며 개인적으로 이진호에게 딸의 수배를 의뢰한 것이다. 그렇게 이진호는 은애의 행방을 찾아 대학교의 친구들을 찾아가고 동영상에 찍힌 화면을 분석하여 찾아낸 장소에서 잠복을 하고 있었는데...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라고 할만한 것은 없겠지만 이야기는 반전이라는 느낌보다는 비현실적인 하드보일드같은 느낌이 들어 책의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기분이 가라앉을수밖에 없었다. 사실 작가의 말대로 2년전에 이 소설을 대했다면 훨씬 더 강한 느낌이 들었을지 모르겠다. 최근에 낱낱이 밝혀진 엔번방의 이야기는 그 실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성착취와 성폭력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끔찍함이 떠오르니...

 

"이미 나는 그전의 수사에서 기본적인 것을 소홀히 했었던전과가 있었다. 포르노 동영상이라는 눈에 보이는 자극적인 증거에만 몰두해 정작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지인을 곁에 두었는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눈을 돌리고 있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동안의 선입견은 모두 버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한때 세상에 존재했던 은애라는 여자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도록하자."(159)

 

사실 상처,라는 제목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이 문장을 읽으며 왜 상처인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제나 성과 관련된 범죄에서 가해자가 처벌을 받아야하는데 사회에서는 오히려 피해자가 매장당하고 2차 피해까지 받게 되는 것이 현실임을 생각한다면 한때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과정을 없애버리거나 그 과정을 단죄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젊었을 때는 누구나 잘못을 해. 그 잘못을 통해서 성장하는 거고.....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고 잘 살았겠지"(290)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지만 그걸 다 풀어놓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많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어설프게 할수도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몸에, 누군가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라는 문장을 다시 되내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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