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절판


"신이란 거 무섭지 않냐?"
"어째서?"
불쑥 중얼거리는 마사유키에게 묻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자기 때문에 죽었는데, 줄곧 모른 척하고 있잖아"
리세는 당황했다.
"난 모르겠어. 순교니 하는 거. 어째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자를 위해 죽을 수 있을까. 죽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죽이기까지하고 말이야. 세계 곳곳에서 저자를 위해 날마다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잖아"
교회 앞 돌층계를 오르면서 하는 이야기치고는조금 불온하지만, 리세는 마사유키의 솔직한 말이 재미있었다.
"글쎄. 더 많이 사랑하는 죄가 아닐까? 돌아봐주지 않으면 않을수록 마음은 더 불타오르고, 상대를 향한 마음이 커지잖아"
"역 앞에 옛날 순교자의 비가 있는 거 아니?"
"응. 26성인이던가.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난 그런거 볼때마다 그런 사람들 찬양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해"
"어째서? 별로 찬양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만 지나치게 미화되긴 했잖아. 안 돼, 그런 걸 미화하면 순교를 아름답다거나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게 된단 말이야. 난 어떤 비열한 방법을 쓰더라도 살아남는 쪽이 옳다고 생각해"
"그런 것을 못하는 사람이, 순교를 선택한 게 아닐까"
-45-46쪽

이 사람은 외로운 것이다. 모두가 감싸주길 바라는 것이다. 주목 받고 싶은 것이다.
그 바탕에는 할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것이 언니에 대한 질투며 할머니에 대한 증오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대책이 없는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정도가 모두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데 그치면 그나마 괜찮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를 넘어서면 어떻게 바뀔지 그녀는 그 위험을 모르고 있다. 더욱이 그녀가, 모두가 건드리지 않길 바라는 정보를 손에 넣고, 그것으로 자신의 외로움을 희석하고, 자신에게 주목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184쪽

이렇게 자각하지 못하는 악은 무엇인가. 그녀의 바탕에는 내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깊고 넓은 악의 늪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늪은 나 같은 사람도 삼켜버리는 게 아닐까.
-300-30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