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웅불
다카하시 히로키 지음, 손정임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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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배웅불이 무엇인지 설명을 하지 않는다. 제목에 어떤 의미부여가 되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 한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난 후 굳이 배웅불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게 된다. 아니, 이야기의 마무리즈음에 일본의 오봉 축제때 저승으로 돌아가는 조상의 영혼을 배웅하는 의미로 피우는 불을 배웅불이라고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아니, 일본에서는 다들 아는 의미이며 이건 역자의 설명이다. 그저 스치듯, 이 이야기의 화자가 지나가며, 약간 치매증상이 보이는 이웃 할머니가 저녁이 아닌 환한 대낮에 배웅불을 놓았다는 장면이 나올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에 지푸라기 인형이 활활 타오르는 유등놀이의 풍습이 더이상 축제의 한 놀이처럼 보이지 않고 세 사람 중 첫번째 사람을 먼저 태워 죽이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아유무의 시선뿐만 아니라 온전히 아유무에게 동화되어 그 불길이 실제처럼 느껴져버린다.

 

종합상사에 다니는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인해 가족이 모두 이사를 함께 다녀 아유무 역시 그에 따른 전학을 자주 가게 된다. 흔히 그렇게 전학을 자주 다니면 친구를 사귀는 것도 쉽지 않고 전학생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가 있어 왕따가 될 수도 있는데 아유무는 큰 탈없이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 새로 전학한 중학교는 1년이 지나면 폐교하게 될 자그마한 학교로 학급에 남학생이 6명뿐이다. 그중에 리더격인 아키라와 온갖 내기에서 불운의 아이콘이 되어 괴롭힘을 당하는 미노루의 관계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처음엔 객관적인 느낌으로 친구들과의 일상이 묘사되다가 조금씩 친구들의 행동이 지나치게 폭력적이 되어가면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미노루에 대한 동정은 사라지고 어느새 부디 나만은 아니길 바라는 조바심 어린 마음이 생겨난다. 그러면서 아키라의 부정직한 손놀림에 더 기대게 되기 시작한다.

 

배웅불의 이야기는 짧지만 그 문장 하나하나를 읽고나면 그 세밀한 묘사에 감탄을 하게 된다. 시골 농촌 마을의 평화로운 풍경속에 오래도록 지속되어온 풍습이, 오랜 세월 사용되어온 농기구가 어떻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되는지 직접 책을 읽어본다면 새삼 감탄하게 될 것이다. 이건 표현에 대한 감탄뿐만 아니라 그 묘사 속에 담겨있는 세상의 부조리한 악, 그것이 내게 해를 가하지만 않는다면 모른척할 수도 있으며 또한 그것이 악이라고 인지하지도 못하는 세상에 대한 담담한 묘사는 가히 충격적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소설이 아닌 현실세계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

 

여러 관점에서 여러 이야기를 할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모든 것이 다 뒤섞여버리고 있다. 오로지 아유무의 시선으로 따라가다가 문득 아유무 역시 지극히 타인화된 사적인 시선일뿐이라는 걸 느꼈을 때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재조립되며 다시 읽히게 된다. 짧지만 길게 읽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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