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명상 - 육체의 각성이 정신의 각성을 이끈다, 제2판
클로드 보리롱 라엘 지음 / 메신저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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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래전 읽었었는데 전혀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선택하고 읽어보게 되었다. 저자인 끌로드 보리롱 라엘은 뉴에이지운동이 활발하던 시기 외계인과의 조우를 주장하며 종교를 창시한 인물이다. 그가 창시한 라엘리안무브먼트라는 종교단체의 교리가 매혹적인 면은 없지만 대중에게 익숙해진 면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인류는 진화된 것도 신에 의해 창조된 것도 아니라 엘로힘이라는 외계인들에 의해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했다는 것이 이 종교의 핵심 도그마다. 기독교 성경의 창조주가 히브리어로 엘로힘이지 않은가? 창조주라는 경외의 대상이 되며 인류의 역사에 개입해온 존재가 바로 엘로힘이란 외계인이라는 주장이다. 신도 영혼도 없으며 개인의 개성과 자각은 세포와 유전자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인간은 생물 컴퓨터라는 것이 그들의 신조이다. 영혼이 없다는 것은 여호와의 증인과 교리가 같겠지만 신도 없다는 그들의 주장은 신비를 체험하도록 제작되어 있는 인간이라는 종에게는 쉽게 미혹되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무한을 주장한다. 무한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무한은 유한한 인간을 감싼 우주에도 인간의 내부에도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 교리에 불가피한 공허를 잠재우고 있다.

 

인간의 문화와 정신은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건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이라는 개념이나 마르틴 우르반이 말하는 ()’과 해리 팔머가 말하는 신념과 같은 개념이다. 이 시절에는 용어만 다를 뿐 익숙한 개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으로 인해 입력된 바대로 사고하고 활동하는 것을 반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자못 교리들이 체계적이고 뉴에이지운동 시기에 창건한 종교답게 영성적인 면도 있다. 생물 컴퓨터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기능과 작용을 본래적 수준으로 회복하고 프로그램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수단으로서 본서의 제목과도 같은 감각 명상을 수행해야 한다는 식으로 감각 명상의 중요성을 주지시키고 있기도 하다.

 

본서에서는 감각 명상수행의 대강을 요약하며 어떤 빛깔의 수행인지 엿볼 수 있도록 전개하고 있으며 본 수행은 CD나 카세트 테입을 청취하며 수행하라고 하고 있다. (다소 아쉽게도 별도 구매를 해야 한다) 체험담을 보면 음성 유도만으로 명상하는데도 불구하고 일상에서의 효과가 선도 수행에서 수행이 깊어지는 단계에서 마주하는 작용 중 하나인 기취(氣醉)와 유사한 상태를 체험한 대목이 엿보인다. 최면에 가까운 음성 유도 명상으로 근접했다기에는 상당한 수준의 효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서양에서 주류가 된 바디 스캔 명상이나 요가니드라 같은 경우 음성 유도가 없이는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 음성 유도의 경우 보수적인 수행가분들은 그걸 명상이라고 볼 수 있느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요가니드라를 수행해본 경험으로 볼 때 명상과 최면의 중간 정도의 의식으로 유도할 수 있었다. 자율훈련법보다 상당히 명상에 가깝고 그렇다고 삼매와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중간 상태 정도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어느 수준의 효과는 분명 있는 기법이라고 미더운 면이 있다. 요가니드라도 바디 스캔 명상도 감각 명상의 경우도 유투브에서 찾을 수 있으니 명상이 친숙하지 않은 분들은 한 번쯤 수행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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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표로 읽는 명상입문 - 스티브 잡스, 유발 하라리, 오프라 윈프리는 왜 명상을 할까? 도표로 읽는 시리즈
김말환 지음, 배종훈 그림 / 민족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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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를 선택한 까닭은 아나빠나삿띠 이후에 위빳사나로 이행하기 위한 저작들이 대개 실수행서라고 해도 실수행으로 접근하기가 수월치 않아서였다. 보다 간소하고 쉽게 위빳사나로 이행하도록 도와줄 만한 책이라고 생각되어 선택한 책이 본서다. 민족사의 이 시리즈의 불교서 가운데 내가 읽어본 책들은 모두 이해가 쉽게 불교 용어와 개념을 풀어주고 있어서 고민 없이 선택했다.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되리만치 신수심법으로 풀어지는 위빳사나를 쉽게 해설해 주고 있지만 실수행으로 접근하기 용이하게 체계를 잡아주고 있지는 않았다. 위빳사나는 남방불교 수행의 근간이니 남방불교 스님들께서는 서로 어떻게 수행의 체계를 제시하실는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칸니 명상]이라는 책도 아나빠나삿띠는 체계를 쉽게 설명하고 있지만 위빳사나로 가면서 현학적이고 도그마스러운 문장들이 난무해서 독서가 정체되다가 중단된 상태인데 1일 수행, 2일 수행 이런 순이나 1단계 수행 이거, 2단계 수행 이거라고 명쾌히 체계화된 저작은 없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로서는 목차만 보고서는 이런 책을 쉽게 찾지 못해서이다.

 

하지만 본서는 8정도를 수행의 견지에서 너무도 쉽게 설명하고 있고 신수심법의 위빳사나를 해설한 대목도 이해는 쉬웠다. 어떻게 수행하면 되는지가 아둔한 나로서는 명쾌하게 와닿지 않은 것뿐인데 그게 가장 아쉽다.

 

본서는 불교 수행을 근간으로 걷기 명상(물론 불교 수행이지만), 자애 명상(이것도 불교 수행), 차 수행, 바디 스캔 명상, 만트라 명상, 만다라 명상 등을 수행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기도 하다.

 

요즘은 명상에 관심이 깊은 분들이 대다수겠지만 불교 수행을 중심으로 수행 체계들이 궁금한 명알못 입문자분들께 유용할 책이다. 명상에 대한 정의와 명상 필수 정보부터 시작하는 본서는 마음챙김 명상같이 불교에서 시작된 수행 체계 전반에 대한 이해의 대강을 잡아줄 만한 책이다. 아나빠나삿띠는 분명히 수행 가능하고 위빳사나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만한 서술이다. 본 리뷰의 리뷰어인 저처럼 아둔한 분이 아니면 본서만으로도 위빳사나를 수행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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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 - 빈곤과 불평등의 세기를 끝내기 위한 탈성장의 정치경제학
제이슨 히켈 지음, 김승진 옮김, 홍기빈 해제 / 아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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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도 해제에서 홍기빈님이 언급하고 있지만 많은 분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책인 [팩트풀니스]에서는 빈곤 문제도 통계를 언급하며 200년 동안 나아져 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사안에 대한 전면 반박과도 같은 사실을 서술하며 본서는 시작된다.

 

본서는 통계가 기준점을 다시 잡거나 교묘하게 호도되며 빈곤 문제를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가 상승률과 달러 절하를 무시하고 빈곤의 기준을 하루 1.25 달러의 수입으로 책정한데 대하여 저자는 이 선으로는 기대 수명이 5세 미만일 때나 가능하며 하루를 겨우 연명하기도 힘든 비용이라고 지적한다. 기대 수명과 최저 생계를 보장하는 적절한 비용은 적어도 1.25 달러의 4배에 해당하는 5달러라고 한다. 1.25 달러를 빈곤 기준으로 삼을 때 세계의 빈곤 인구는 10억 명이 넘는 정도인데 이것 역시 1980년대와 지금의 차이가 없는 인구이다. 그런데도 세계은행이라던가 국제기구들은 비율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난 인구가 많은 것으로 광고한다고 한다. 게다가 중국처럼 개도국이 빈곤에서 탈출한 경우가 많은 1980년부터 1990년을 기준점으로 다시 잡거나 빈곤을 탈출한 개도국 빈곤 인구만을 기준 삼는 통계 꼼수를 부려 통계를 산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수로는 그대로이지 않은가 하는 것이 저자의 말이며 실제 빈곤 기준일 수 있는 5달러를 기준으로 다시 책정하면 세계의 빈곤 인구는 43억 명이 된다.

 

그렇다면 세계기구들은 왜 빈곤 인구를 축소하는 왜곡과 호도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문제를 세계화와 자유시장에서 답을 찾고 있다. 애초에 빈곤 인구를 평가할 때 1.25 달러는 기준선이 될 수 없었기에 빈곤 인구를 계산할 때 많은 학자들이 빈곤 인구가 10억 명보다 거대한 통계를 기준으로 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글로벌 남부 지역에 구제 비용을 대출해 주는 서구로서는 서구의 대중들에게 내세울 만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구제 비용이 글로벌 남부 지역으로 이동해야만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글로벌 북부 지역의 큰손들에게 남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의 조건은 글로벌 남부 지역에서의 규제 완화, 공기업의 민영화, 서구세력의 투자의 자유 보장,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의 값싸고 해고가 쉬운 노동자들을 보장해 주어야 했다. 이러한 조건들은 글로벌 남부 민중의 생존을 위협함으로써 서구세력의 부를 약속하는 시스템이다. 이 구제금융으로 글로벌 남부로 가는 돈의 흐름이 1000억 달러라면 그와 함께 글로벌 남부에서 글로벌 북부로 가는 보상은 4800억 달러라고 한다. 이것은 구제가 아니다. 원조나 수혜가 아닌 투자일 뿐이고 다시 보면 투자라는 명분의 탈취인 것이다. 가난한 이의 집에 들어가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으며 발가벗겨 밖으로 쫓아내는 행태가 구제금융의 본 모습이었다.

 

이런 행태의 기원을 저자는 식민화와 산업화 이전의 인클로저에서 찾고 있다. 식민지를 구축하던 과거부터 인클로저까지의 당시 상황을 저자는 신랄히 비판하기도 한다. 인클로저의 경우 방직기가 만들어져 모직물 생산이 가열차게 진행되며 공유지였던 대부분의 땅에 영주들은 양을 목축하기 위한 울타리를 치며 농사짓던 농부들을 내쫓았다. 농부들은 살길이 없어 방직 공장에 저임금을 받으며 노동자가 되거나 영주들의 농노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국왕이 이 문제를 직시하고 금지시키자 영주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무력화된 왕은 어쩔 수 없이 인클로저를 승인하게 되었다. 현재의 세계화와 자유시장 그리고 구제금융은 이러한 공유지의 탈취와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소리 높인다. 세계의 불평등과 격차는 서구 세력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작업들의 결과라는 것이 본서의 주제이다.

 

글로벌 남부가 주축이 되어 이에 대해 저항했던 역사도 있다. 중동지역에서 석유를 무기화하여 권리를 강화하는 과정과 같이 글로벌 남부에서도 자신들이 보유한 자원을 무기로 권리를 강화하려 한 것이다. 중동은 석유를 무기로 성공했으나 원자재를 무기화하려던 글로벌 남부는 쿠테타를 지원하거나 암살을 시행하는 등 모략을 꾸민 글로벌 북부에 의해 와해되고 말았다. 보다 나은 상황을 자국 국민에게 가져다주었거나 제시했던 글로벌 남부의 정치가들은 모두 죽거나 강제 해임된 것이다.

 

그리고 환경 문제를 근거로 탄소비용을 타국에 비해 더욱 부과당하는 국가들도 개발이 정체된 국가들이 다수란 것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탄소배출은 당연히 중국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미국이 중국의 5배 독일도 중국의 거의 2배라고 한다. 인도의 경우는 이산화탄소 배출에 1.4 톤의 책임이 있는데 세계평균은 4.5 톤이라고 한다. 아프리카의 1인당 배출량은 0.5 톤에 불과하다. 기후변화에 대한 비용은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더욱 지고 있는데 각각 GDP4%5%에 해당한다. 이는 물질 소비가 감소하기보다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선진국들과 개도국이나 모든 것에 대한 부족함이 일상인 저개발국가들을 볼 때 격차를 유지하고 지속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요소들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탄소제로는 격차의 유지와 지속이 가능하게 하는 원칙이 되어버리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과거 기후운동이 조명되는 시기부터 갖고 있었는데 그에 대해 더욱 편향에 가까운 인식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격차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과거 동아일보사에서 출간한 [위대한 전환]에서 인지한 것들이기도 했는데 2001년 출간한 그 책에서 다각도로 여러 저자의 시각으로 접했던 것을 20년이 넘어서 다시 돌아보는 것만 같았다. 세계는 변한 것이 없다. 변화의 가능성과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저자는 본서의 후반부에서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의 시점인 현재에, 미래를 향하고 있는 대중의 시선을 지금까지의 문제들로 돌려, 미래의 문제를 막자는 시도가 때늦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초극부층이 인클로저 시대에 영주들이라면 대중은 문제를 직시하지도 못한 왕과 다르지 않다. 인클로저 당시의 왕은 문제를 직시하고도 무력화되었지만 우리는 직시하지도 못하면서 무력하다. 시절은 확연히 뻔한 결과로 향하고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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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읽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화학 교과서 한 번 읽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교과서
사마키 다케오 지음, 곽범신 옮김 / 시그마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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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인 저자가 고딩들을 대상으로 집필한 책으로 독해가 용이하도록 쉽게 서술한 책이다. 고교 화학의 기본적 이해와 맥락잡기에 유익하다. 고교 화학 독파로는 무리할지도 모르지만 수업과 인강을 보조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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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에 사람들이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대중언론의 뉴스와 다수의 의견을 맹신하며 자기들의 상식과 다른 의견이라던가 정보에 귀를 닫고 눈을 감는 행동을 당연시 하고 있다. 그래야 이성적인 것이라 믿는 듯하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역사는 다수가 주장한다고 해서 진실이 아니었으며 언론이 이야기한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통킹만 사건도 1차 피해는 베트남의 공격이었으나 전쟁의 빌미가 된 2차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조작해낸 거짓이었다는 것이 현재의 정설이다. 그리고 이라크전의 빌미가 된 후세인이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 역시 미국의 조작이었지 않은가? 정부나 언론의 주장 역시 하나의 주장이고 억지일 때가 있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지금까지 언제나 현재 대중이 맹신하듯 정부 주장이나 언론 뉴스를 믿기만 해서는 답이 없는 세계였다. 미국에서는 20세기에 정부가 주도해 흑인들 다수에게 매독균을 주입하고 병세의 진척을 추적 관찰한 사례가 있다. 이것이 사실로 밝혀지기 전까지 대중은 이걸 음모론으로 받아들였다. 음모론으로 치부되던 것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지자 미국 정부는 미국 질병청의 고급 간부 개인의 잘못된 연구 의지에서 탓을 찾으려 했으나 조직적으로 다수의 연구원들과 다수 정부 기관들의 투입과 지원으로 시행된 이 연구가 어떻게 한 개인의 잘못된 판단에서만 기인한 것이란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음모론의 최고봉 중 하나로 알려진 MK울트라 프로젝트 역시 희대의 음모론이 사실로 밝혀진 사례이다. 도대체 정부가 주도해 마약과 최면을 통해 다수를 통제하려 한 연구가 사실인 마당에 무엇을 음모론으로 간주하고 무작정 폐기할 수 있다는 말인가?

 

상황이 이런데도 지식인 다수는 아직까지도 보편적 상식을 논하면서 음모론이라는 밈으로 소수의 주장은 악으로 치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소수의 주장이 들어볼 가치가 없는 헛소리일 뿐일까? 소수가 주장하던 것이 사실이고 오히려 정부와 언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경우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말이다.

 

트럼프 정부시기 코로나가 전파되며 정부와 언론이 음모론으로 치부하던 사실들을 돌아보자. 소수의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우한 연구소에서 전파되었을 가능성을 언급했고 빌 게이츠의 재단과 미국 정부가 코로나19를 연구하는 중국의 우한 연구소에 지원금을 보냈다는 주장을 했다. 더욱이 [플랜데믹]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저작에서는 미국의 우한 연구소 지원은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쉽게 전염되고 전파되도록 하는 기능획득 연구에 마저 지원금이 전달되었다는 주장을 했다. 모두 해당 분야 관계자와 전문가들에 대한 인터뷰라며 말이다. 미국 정부과 언론은 해당 주장들이 대중 사이에서 회자될 때 일고의 가치가 없는 가짜 뉴스라며 역정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바이든 정부에서는 트럼프 정권이 주장하는 자연 전파설이 사실이 아니고 추척 조사에 의하면 중국 우한 연구소가 발원지라는 발표를 했다. 현재는 우한 연구소 전파설이 미국 정부가 주장하는 팩트이다. 게다가 바이든 정부에서는 코로나19와 백신에 관련한 청문회를 몇 차례나 진행했는데, 기존에 음모론으로 치부되던 미국 CDC의 우한 연구소 지원금 전달이 사실이며 그것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코로나19의 기능획득 연구에도 지원해온 것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게다가 너무도 음모론적인 사실은 그간 다수 언론이 음모론자들의 주장으로 몰아가던 NIAID(CDC 산하의 미국 국립 전염병 알레르기 연구소로 팬데믹 사태를 전담하는 부서다)의 수장인 앤서니 파우치가 백신 제조사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아온 것이 사실인 것도 미국 청문회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또 화이자사의 이사를 소환한 청문회에서는 백신 보급 직전의 임시 백신 테스트들에서 코로나 백신의 치명률이 코로나 치명률의 30배를 넘어서는 3%였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화이자사가 백신을 공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같은 청문회는 유럽 의회에서도 시행되었다. 과거 백신과 관련한 몇천 쪽에 이르는 화이자사의 문서를 시한을 두고 단계적으로 공개하라는 미 법원의 판결이 있은 후 지금까지 해당 문서 공개가 지속되며 밝혀진 음모론적으로 치부될 정보들이 많아졌으나 아직도 유투브 정책 등은 백신과 코로나와 관련한 사실들을 제재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며 때늦게 국내 번역 출간된 여러 저작들은 트럼프 정권 시기 주장되던 이젠 폐기되어 마땅한 역정보들을 사실인 양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도대체 무엇만을 사실이라고 믿을 것이며 무엇을 음모론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다는 것인가? 음모론과 가짜 뉴스라는 말 자체가 그러한 프레임으로 대중이 진실과 사실에서 눈을 돌리도록 하는 밈이 아닌가 말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팩트와 페이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1915년부터 1917년 사이 중동 문제에 관해 영국이 아랍권과도 조약을 맺고 프랑스와도 조약을 체결했으며 동시에 시온주의를 내세우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위시한 유태인들에게도 약속한 삼중조약 사례에서도 영국이라는 국가가 동시다발적으로 세 개의 집단과 허위 조약을 한 사실을 누군가 그 당시에 밝혔다면 그 또한 가짜 뉴스로 몰렸을 것이다.

 

과연 우리는 가짜 뉴스라는 밈, 음모론이란 밈에 통제되며 진실과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멈춰야 하는 것인지 다시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코로나 시기의 정부와 언론의 행태만 해도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전파하는 것이 소수의 사람들인지 정부와 공식 집단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니 말이다. 진실은 다수의 말을 맹신하는 데 있지 않고 스스로 찾아야 하는 권리 같은 것인지 모른다. 대중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찾아가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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