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aker 관여자
이문기 지음 / 좋은땅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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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너무도 정서적으로 메말라가고 무언가 이상과 희망에 대해 공허해져 가는 나 자신을 위해 선물하고 싶어 선택한 책이다. 본서의 소개에 시련, 신비 체험, 새로운 국면이란 키워드들이 기적이란 한마디로 귀결되기에 기적처럼 나 자신에게 새로운 바람을 주리라 믿어졌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은 자동차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생환하고도 질병을 앓게 되며 생의 의미와 기적에 대한 그리고 신앙에 대한 갈구를 가지게 된 주인공이 신앙 생활을 하며 신비 체험을 통해 일상의 변화를 가져가는 서사를 담고 있다. 신앙인들에게는 그럴듯한 귀감이 되리라 믿어지는 소설이다. 하지만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에겐 뇌질환을 앓게 된 주인공의 정신 이상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내용이다.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씨가 저술한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초월의식]이란 제목으로 재출간된지 오래인데 그 저작에 의하면 영적 위기라고 저자가 바꿔 부르는 정신이상 상태도 영적 각성이랄까 정신적 성숙을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아초월심리학의 거의 개척자로 인식되는 분의 말이기에 미덥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정신적 성숙이나 영적 각성을 위해 미쳐야 한다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심령적 위기라는 심리적 위기, 정신적 붕괴를 거치며 성숙해 가지 않더라도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고 믿어지고 그 편이 더 권할 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인간은 사랑받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 속에서도 완만하지만 충분히 성숙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완만한 성장이 더 장려할 만한 성장의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로서는 많은 굴곡을 거치고 살았고 완전히 정서적 나락을 경험하며 지금까지 오면서 어느 정도의 정신적 성숙과 성장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생존 자체도 기적에 속한다고 자각하고 있다. 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심을 잃으며 동시에 하느님이 존재하심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를 더이상 신앙하지 않는다. 너무도 가혹하고 냉혹하고 매정하고 잔인한 분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을 더이상 믿지 않는다. 구약의 하느님상이 내가 경험한 그의 실상이기에 나는 더이상 그를 신앙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읽고자 했던 것은 그런 까닭이기에 내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하느님의 존재하심을 느낀 방향과는 다른 기적을 가상의 이야기 속에서라도 경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내게는 가혹하고 냉혹하고 매정하고 잔인한 분이었지만 세상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다는 걸 이야기 속에서라도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 소설은 신앙인이 아닌 사람까지 감동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압도했다. 전형적인 신앙 고백 같은 서술이지만 이런 고백은 신앙심을 불러오거나 하느님의 계심을 간접 경험하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리뷰다 보니 긍정적인 이야기만 담아야 하리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나로서는 어떤 감정적 동요도 느끼지 못했다. 신앙인들이 자기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보시는 책이라 생각된다. 허탈과 회한이 밀려올 때 신앙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신앙인 분들이 가까이하실 책이다. 본서의 리뷰는 크리스천이 서술한 리뷰를 보시기를 권해드린다. 아마도 신앙 고백이 넘치는 리뷰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인디캣 책곳간을 통해 좋은땅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쓴 리뷰입니다


#partaker #관여자 #이문기 #좋은땅 #가상신앙고백 #신비체험 #인디캣 #인디캣책곳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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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30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하라 2024-12-30 15:09   좋아요 1 | URL
관심 분야가 같은 분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인 것 같습니다.
올해에도 세계적으로도 국지적으로도 어둠이 드리운 것 같이 많은 일들이 끊임이 없었네요.
뭔가 깜깜하지만 복선 같기도 한데 국면 전환이 되는 복선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어둡더라도 생명이 희생되는 일들도 더는 없었으면 싶구요.
제 글들을 좋게 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 드려요.
오는 새해도 건강과 평화가 함께 하는 복된 새해 되세요.^^

 
세상 읽기 시크릿, 법칙 101 - 패턴 뒤에 숨어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들!’
이영직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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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성모의 손에 잡히는 독서를 통해 출판사 스마트비즈니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부제가 [패턴 뒤에 숨어 세상을 움직이는 법칙들!’]이다. 저자는 세상을 움직이는 숨은 법칙을 이해하고 실천하며 생산적으로 살아가자는 취지에서 본서를 집필한 것으로 생각된다. 101개의 개념으로 나누어 법칙들이 나열되지만 [당신의 성공을 위한 실천적 교양!’][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생산적 교양!’]으로 각 10개씩 분류해서 순환하기 때문이다. 실천과 생산을 강조하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 저자의 집필 의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어느 분야든 깊이 공부하면 법칙,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 필연적인 불변의 관계가 보인다고 한다는 말로 서두를 꺼낸다. 그리고 필연적인 불변의 관계, 법칙의 관점에서 우리 삶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자. ‘세상의 법칙을 읽을 수 있다면, 훨씬 더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라고 정리해준다. 이 책의 저술 목적이 사물과 현상의 이면을 이해하고 그를 실천함으로써 훨씬 더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가라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모든 법칙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아무리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라도 불과 몇 가지 이내의 법칙을 신조로 삼았을 뿐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본서의 독서는 많은 법칙들을 모두 외워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가운데 자신에게 크게 감흥을 주고 영향을 미칠 법칙 몇 가지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리라.

 

저자는 사회, 경제, 과학, 수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핵심이 되는 법칙들을 정리했다고 한다. 그에 기존의 해석이나 저자의 해설이 더해진 책이다. 서술이 이해하기 쉬워 가독성도 뛰어난 책이다. 다만 이 책은 페이스트리와 디저트를 즐기듯 가볍게 음미할 필요가 있다. 본식이라 여기며 한 번에 완독하려 한다면 101가지로 소개된 그보다 더 많은 개념들이 내면에 남을 내용까지 휘발될 수 있다.

 

대칭 구조와 프랙탈, 자기조직화 이론 같은 과학 법칙부터 마태효과나 다윗의 법칙 같은 종교에서 유래한 이론에서 트리즈 같은 발명 법칙도 또 그 외 심리학 이론은 아주 많이 나열되고 있으며 시나리오 기법이나 델파이 기법 같은 미래 예측과 대응법도 기록되어 있다. 엘리어트 파동 이론이나 1만 시간의 법칙 같은 경제 경영 법칙도 등장하고 깨진 유리창 법칙과 같은 사회 이론이 등장하기도 하며 3대 작도 불능 문제라는 수학 문제로 끝나고 있다.

 

이 책은 101이라는 숫자가 제시되듯 101가지 법칙이 나열되어있지만 수록된 연계 개념과 법칙은 그 숫자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저자의 쉬운 해설이 영화와 일상 그리고 달 탐사까지 예시로 들어 인상적이다.

 

저자의 말처럼 이 모든 법칙을 다 외워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고 여가시간에 에피타이저나 디저트 삼아 커피나 차를 즐기며 조금씩 읽고 인상적인 법칙이 무엇인지 느껴보고 그 법칙을 일상에서 실천하거나 나와 타인, 관계와 사회를 이해하는데 적용하며 독서의 의의를 찾는 것이 나을 듯하다. 나와 타인과 세계를 이해하고 싶은 건 누구나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세상의 이면에서 사회와 사람을 움직이는 법칙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런 법칙들이 무언지 관심을 가지고 돌아볼 필요도 있으리라 생각되고 말이다. 실천은 각자의 몫이겠지만 이해한 것을 실천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천은 따라오는 것이니 먼저 이해하고자 한다면 놓치지 말고 읽어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세상읽기시크릿법칙101 #이영직 #스마트비즈니스 #교양 #실천적교양 #생산적교양 #서평단 #도서협찬 @chae_seongmo @smartbusiness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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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 -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2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2
백낙청 외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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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둠이 가장 깊을 때가 아침이 오기 직전이고 궁핍이 극에 달한 극단적 위험의 시대가 바로 구원이 자라는 시대인 것이다.”

 

지금의 이 시대를 가장 잘 묘사한 듯한 위의 문장은 본서의 대담에 참여한 고명섭 님이 자신의 저작 [하이데거 극장]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위의 문장은 그의 저작에서 이 시대가 개벽의 시대임을 강조하기 위해 서술된 것이다.

 

본서는 한국의 종교와 사상의 특색인 개벽 사상이 무엇인지를 알리는 대담집으로 여섯 분의 철학자와 종교학자, 종교인 그리고 저술가들의 대담을 수록한 책이다. [이것이 개벽이다] 시리즈 같은 베스트셀러 종교서가 있기는 하지만 종교 생활과 거리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개벽은 아직까지도 생소한 사상이다. 그러면서도 대중이 오랜 세월 개벽이라는 말과 개념에 익숙해져 온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하지만 개벽이란 게 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이 종말, 변혁 등의 익숙하면서도 거리감 드는 표현을 할 뿐 그게 무언지 아득하기만 한 것도 현실이다.

 

본서는 우리에게 익숙하고 현시대에 절실하게 여겨지는 사상인 그 개벽에 대한 철학을 소개하는 대중서이다.

 

저자분들의 대화로 종교 창시자, 사상혁명가들의 남다름이 subversiveness, 전복성이라는 걸 알았으나 저자분들의 이야기처럼 개벽은 혁신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각됐다. 기독교의 종말론이나 유대교, 이슬람교의 그것에서도 개벽의 여지는 보여졌기 때문이다. 본서에서 개벽은 물질적 개벽과 정신적 개벽이라고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물질적 개벽은 [이것이 개벽이다] 시리즈에서 보듯 지구의 상태 변화를 이야기한다. 지축이동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 계절의 분류가 바뀌고 지구의 주파수가 변동되어 사람들의 의식 수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런 물적 변화와 함께 사람들의 영적 변화도 가져오기에 정신적 개벽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한국의 특정 종교에서만 주장되는 것은 아니다. 로마 신화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도 그리고 인도의 신화에서도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몇 개로 분류되는 시대를 거쳤는데 각 시대마다와 환경적 차이와 인류의 영적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시절 변화 가운데 이 시대의 우리가 맞이하리라 기대하는 변화를 한국에서는 개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뉴에이지 시절 채널링을 통해 외계인의 메시지를 전한다며 출간된 책들마다 지축 이동과 함께 지구 주파수 변화로 야기되는 영적 진화를 언급했다. 기독교에서도 예수 재림 이전에 처처에 전쟁과 기근과 죽음이 가득해지고 지진 등 환경적 재앙도 거듭된다고 말하지만 예수 재림과 함께 선한 사람들의 세상인 천년왕국이 펼쳐진다고 예언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 개벽 사상에는 어떠한 전복성도 없고 따져보면 이전부터 전승하던 이야기들을 총합한 메시지일 뿐이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한국의 개벽 사상이 다른 나라의 비슷한 이야기들과 다른 것은 개벽이 배경이 아니라 전경이도록 포커싱을 한 것이 독자적인 특징이라고 생각된다. 기독교에서는 세상의 변화는 예수 재림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한국의 개벽 사상은 누구 하나의 위대함을 주목하기 위해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벽 자체가 주연이라는 말이다. 한 명의 신적 존재를 위한 배경으로 개벽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중을 위해 개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들은 기독교가 신앙인들의 삶의 변혁(transformation)을 위해 탈바꿈(metamorphosis)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과 예수에서 인간 사이에 벽을 설정한 기독교적 우주관에 탈바꿈이 있어야 한다고 받아들여지는 대목이었다.

 

이 시절에 한국 개벽 사상을 다른 종교와 사상들과 함께 돌아보아야 할 이유는 (과거의 배타주의, 포용주의, 다원주의로만 다른 종교를 바라보던 시각에서) 폴 니터의 대체모형, 충족모형, 상호모형, 수용모형으로 너의 종교만으로 안되니 나의 종교를, 너의 종교의 부족한 부분을 나의 종교로, 너와 나의 종교의 가르침이 비슷하니, 더불어 함께 이해하고 받아들이자는 이 시대의 종교관의 변화에 있다고 한다. 이를 사유하는 과정이 중요함은 하이데거의 철학에서도 찾고 있는데 하이데거는 뎅켄denken 사유함과 당켄danken 감사함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았는데 그로하여 무사유야 말로 배은망덕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시절에 절실함은 우리에게 개벽의 실상이 무언지 사유하도록 만들고 있고 이 사유를 거부함은 감사를 상실함으로써 신과의 단절 즉 영적 상실을 불러온다고 받아들여진다.

 

개벽 사상은 이 혼란과 충돌의 시대에 우리가 시절의 과제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고 그 뜻을 함께 숙고함으로써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의미를 가져다줄 수도 있을 가르침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본서는 이 시절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저작이 아닌가 한다.


#세계적K사상을위하여 #백낙청 #오강남 #백민정 #전도연 #이보현 #고명섭 #창비 #한국사상 #K사상 #개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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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제한선 - 1% 슈퍼 리치는 왜 우리 사회와 중산층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가
잉그리드 로베인스 지음, 김승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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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이 분야에 대해 읽은 모든 책들(제이슨 히켈의 [격차],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의 [승자독식 사회], 앤드류 세이지의 [불로소득 시대 부자들의 정체],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테크노퓨달리즘], 대니얼 마코비스의 [엘리트 세습], 스티븐 맥나미와 로버트 밀러 주니어의 [능력주의는 허구다], 로리 파슨스의 [재앙의 지리학], 자크 파월의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클라우스 슈밥의 [자본주의 대예측][위대한 리셋], 박선미와 김희순의 [빈곤의 연대기], 노암 촘스키의 [불평등의 이유],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에드워드 로이스의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등등)의 내용이 총망라되어 결론지어지는 책이었다.

 

세계의 격차, 불평등은 능력주의에 의한 것이 아니며 부가 정점으로 축적되며 하위로 가는 길이 차단되는 것은 상속과 증여 등의 역할이 더 크다는 것에서 시작해 정점으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초극부층은 세계의 운영 원칙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제어하고 있으며 그들의 부가 더욱 정점으로 쌓이도록 원칙과 제도를 제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이 능력주의 사회라는 식으로 합리화하며 수긍하고 있는데 이미 그런 관점에 대한 수용의 한계는 붕괴되고 있고 이런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려면 대다수가 부를 제한하는 정치적 합의를 도출해 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책의 분량이 그리 과도하지 않다 보니 초극부층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제도와 원칙을 제어하는 사례들에 대한 제시가 충분하다고 생각되지 않았고 부자들에게도 불리하기만 하지는 않다고 설득하는 장에서는 사실 이런 주장이 부자들이 설득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생각이 더 들었다.

 

사회 대다수가 부의 제한선에 주목하며 공론화하자면 현재의 부가 정점으로 쌓이는 구조와 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주요 쟁점으로 삼고 극부층이 자신들의 부를 악용해 사회 제도와 원칙을 자신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제어하는 데 대하여 다채로운 사례를 제시하는 텍스트가 따로 더해지고 그런 연구가 지속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능력주의 사회라면서도 진짜 초거대 부는 상속과 증여로 세습되는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 것은 피케티였으나 그 이후에도 대중은 문제의식을 크게 갖지 않는 것 같다.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사회에 대한 익숙함과 결별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지근한 물에서 이젠 열탕이 되어버렸지만 아직도 개구리와 가재는 냄비 밖으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회가 불공정했고 어떠한 방식의 부조리가 이 불평등들 유지해 왔는지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익고 쫄여지고 불탈 때까지 어떤 개구리와 가재도 냄비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평등이 목조르는 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체감하지 않는다면 남의 얘기에는 무감각한 다수의 대중은 그냥 자신이 익어가는 상황을 남의 일인양 감당하고 말 것이다. 부의 제한선이라는 기준을 제시했으니 그 기준에 모두가 수긍할 수 있기 위해 소수가 주도해온 불공정이 무엇이었고 그런 부조리를 어떤 방식으로 실행해 왔는지 상세히 제시하는 연구가 발표되어야 할 것이다.

 



+++ 밑줄 긋기 (주목할 대목이 많았지만 가장 제시할 필요가 있는 대목만 기록한다)

 

일례로 2020년에서 2022년 사이에 전 세계 상위 1%는 나머지 99%가 얻은 소득과 부의 두 배 이상을 얻었다. - P44

 

많은 경제학자가 빈곤선을 2011년 미국에서의 구매력을 기준으로 하루 7.40~15달러 선으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버트 앨런은 현재 빈곤선인 하루 1.90달러로는 19세기 미국 노예만도 못한 생활 수준밖에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더 현실적으로 10달러를 빈곤선으로 삼으면 어떻게 될까? 세계 인구의 10%가 아니라 무려 3분의 2가 여전히 극빈곤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지만, 2011년에 미국에서 10달러로 구매할 수 있었던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P67

 

오늘날 미국에서 인종 간 부의 불평등은 백인 노예 소유주들이 흑인을 체계적으로 착취했던 역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노예제가 폐지되기 직전이던 1860년에 미국에는 남성, 여성, 아동을 포함해 노예가 400만 명이었다. 이들이 노동에 대해 받지 못한 상실 임금의 현재 가치는 203,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의 조상이 노예를 소유한 적이 있고 그 노예들이 받지 못한 돈의 일부라도 상속을 받은 모든 미국 가구와 기업은, 만약 노예들이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적은 부를 가지고 있었으리라는 말이다. ...... 현재 흑인은 미국 인구의 13.6%를 차지하는데도 미국 전체 부 중에서 가지고 있는 몫은 4.5%밖에는 안 된다.- P101

 

1978년부터 2021년 사이에 미국의 CEO 보수는 1,460%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전형적인 노동자의 임금은 18% 증가했다. CEO는 전형적인 노동자보다 (추산 방법에 따라) 많게는 399배나 더 번다. - P212

 

실제로 상위 20%가 전체 부의 84.4%를 가지고 있었는데 응답자들은 상위 20%가 전체 부의 50%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이상적으로는 상위 20%가 전체 부의 31%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실제 분포에서 하위 20%는 부를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전체 부의 0.1%를 가지고 있었다.) 응답자들은 이들이 전체 부의 3%를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이상적으로는 이들이 11%를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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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기원 - 아기를 통해 보는 인간 본성의 진실
폴 블룸 지음, 최재천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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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부제를 번역해 책 제목으로 삼았더라. 하지만 원제는 [Just Babies]. 초반에 등장하는 아기를 대상으로 한 도덕성 실험의 결과를 주요 주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선악의 기원만이 아니라 도덕성의 구축 과정을 심리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의 관점을 통해 통섭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한 번 읽어서 깊이를 다 이해하진 못해서 다음의 재독도 작정하고 있고 현재로선 얇은 이해를 리뷰로 담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저자는 결론 대목에서 도덕성은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과 사회적 요구가 더해져 구축되어가는 것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도록 서술했던데 초반의 (3개월령 이후의 아기를 주 대상으로 연구했다고 하지만 3개월령의 아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도 언급되고 있다) 아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들에서 아기가 태생적으로 이타적 선택을 하는 캐릭터에 더 끌리는 경향성이 있음을 서술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이 태생적으로 공정한 재분배와 같은 문제에서 불공정에 심한 적대감을 보이는 경향성도 있다는 걸 3세부터의 어린이들 사례를 들며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어린이의 경우 자기가 공정한 분배를 받지 못하는데 더 주목할만한 반응을 보이며 다른 이의 경우에는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어떤 어린이는 다른 어린이가 공정한 분배를 받지 못하는데 더 남다르게 반응하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나로서는 도덕성의 개인차가 유소년기부터 두드러질 수 있다고 해석되기도 했다.

 

저자는 도덕성이나 사회적 가치체계들이 선험적이고 태생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의 차이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 사례로 하나를 들자면 근친혼과 이방인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들기도 또 근친혼을 꺼리는 이유에 대한 각 문화마다 해석의 차이를 들기도 한다. 근친혼을 꺼리는 이유를 어느 오지의 사람들은 남매 사이에 결혼하면 가족이 확장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동생이랑 결혼해서 가족이 확대되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와 사냥을 하고 누가 나의 정원 손질을 돕는다는 말이냐고 대부분이 되묻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방인의 경우 보자마자 살해하는 것이 어느 오지에서는 당연한 관습이라는 것이다.

 

또 저자는 도덕성, 윤리관이 이성과 합치된 결론이라고 많이들 해석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결론짓기도 한다. 1770년대 제퍼슨은 강간과 동성애에 대한 처벌로 남자는 거세 여자는 코의 연골을 뚫는 형을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주에서 거부당했는데 그건 형벌이 가혹해서가 아니라 너무 관대하다고 생각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많은 주에서는 강간과 동성애에 대한 처벌로 사형을 집행했다.

 

이 시대에 서양이나 동양의 계몽 지역에서는 대개 근친혼이나 근친 간 성교를 꺼리는 이유를 기형아 출산의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이유로 드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런 사례를 들어 윤리관과 이성의 합치가 맞는지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제시와 클락이라는 남매가 대학생활 중 방학을 맞이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어느 산의 오두막에 단 둘이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고 하자. 이 둘은 문득 서로 성관계를 하면 좋겠다는데 합의하고 둘 다 피임을 한 상태에서 관계를 가졌다. 그 후 오늘 일은 둘만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고 다시 하지는 말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날 이후 남매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이 사례에서 이 둘의 성관계는 하면 안 되었다는 것에 대해 합리적으로 논증하라고 한다면 아무도 제대로 된 논증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 둘은 어느 한쪽의 강요나 강간에 의한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고 피임을 했으니 기형아 출산을 걱정할 이유도 없고 둘만의 비밀이기 때문에 가족에게 비난받거나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이유도 없다. 그리고 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기에 남매 간의 관계가 깨진 것도 아니다. 대개의 사회에서 이 둘의 그날 일에 대해 불편하고 꺼림직하게 여겨진다는 것 외에는 논리나 이성을 들어 비난할 여지가 그다지 없는 것이다. 저자가 이 예를 든 것은 도덕성이나 윤리관이 사회적 요구나 혐오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고 이성과 합치되어서 윤리관을 갖게 되는 것만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동성애에 대한 관점이 1770년대 제퍼슨의 사례에서와 같이 예전 동성애에 대한 대응과 현재의 동성애에 대한 대응은 다르기도 하다. 동성애가 옳으니 그르니를 떠나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연구한 실험의 경우 방귀 냄새나 소변 냄새 같은 악취를 맡게 하고 나서 동성애에 대한 판단을 하게 할 경우 동성애 혐오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는 혐오를 일으키는 신체 반응을 경험하고 나서 논란의 사례를 접하는 경우 극단적인 혐오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판단이나 태생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신체 반응의 연장선상에서 혐오를 드러낸다는 게 저자가 말하는 이 시대까지 연구의 결과인 것이다.

 

이 책에서 주목되던 대목은 이외에도 많았다. 이를테면 선한 행동에 대한 선호보다 나쁜 행동에 대한 처벌에 아기도 성인도 더욱 호응한다는 것과 인종 편향이나 언어 편향이 자기가 속한 집단에 의해 달라진다는 것 그리고 교육과 접촉에 의해 그에서 벗어나기도 한다는 것, (이성으로는 존경한다고 해도) 선택의 순간 사회에 이로운 대상보다 자기 혈족의 생존을 선택하는 경향성이 인간에게는 있다는 것 등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이타심을 비롯한 도덕성을 사회화를 경험하며 각 문화에서의 상식에 프로그래밍된다는 것은 상식적이면서도 주목되는 바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이 태생적인 것도 아니고 합리적 추론에 의한 것도 아니며 그저 프로그래밍된 것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종교와 교육만이 아니라 영화와 연극, 공연, 광고, 드라마 등 대중예술과 미디어로 인한 프로그래밍이 상당하다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

 

본서는 선악의 기원에서 시작해 도덕성, 윤리관의 구축 과정과 기능을 폭넓은 영역을 통해 주목하도록 하는 저작이다. 전문적 연구의 결론을 담고 있지만 대중서답게 제법 재미지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그른지를 서로에게 자신에게 더욱 되묻게 되는 이 시절에 한번은 주목해 봐야 하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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