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 신화·거짓말·유토피아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지음, 김현정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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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로 시작한 독서였다고 할까? 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무턱대고 고른 책이었다. 그래서 첫 단원을 시작하면서도 이제까지 이야기와 뇌의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 인간이 진화적으로 이야기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내용 등에 솔깃하며 읽었다.

 

하지만 본서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인간이 만든 세계의 모든 것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야기로 해서 희망을 갖고 이야기로 인해 일어서지만 바로 그 이야기가 인간 세계를 불안과 위협으로 몰아넣으며 결국 세상을 바꿀 것도 이야기의 재구성을 통해서 일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520여 쪽이 넘는 분량에 무수한 텍스트와 미디어가 회자되는 이 책을 이야기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하는 장으로 삼으려 한 것은 나의 착각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호소력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며 사람을 몰입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과 원리가 궁금했을 뿐인데 본서는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건드리는 한편의 칼럼집이다.

 

나처럼 책 소개글도 읽지 않고 독서하는 분은 없겠기에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가볍게 시작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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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8-21 0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지런히 읽고 있습니다~

이하라 2024-08-21 10:14   좋아요 0 | URL
열정어린 독서를 응원드립니다~~
 
이기적 유전자 - 4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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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본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물 진화는 이기적이라는 다윈의 정의를 따라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과 주제를 정했다고 한다. 다만 그의 설명을 들으며 수긍하려고 해도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의문이 거듭 솟아났다.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 이기적 선택을 하며 유전자 분열과 생식을 통한 유전자의 계승을 위해 이기적 선택은 이어지며 세포 내에서의 협력도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판단에 의해서이며 부모, 형제, 자녀를 위한 희생도 유전자 계승을 위한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도킨스의 해석은 일견 일리 있어 보이기도 했으나 완전히 납득이나 수긍이 가는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유전자의 이기적 선택이 절대적이었다면 지구 내 모든 생명체가 바닷가재처럼 반영구적으로 탈피만 하며 다시 태어난 것처럼 영생할 수 있는 존재로 진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보다 나은 진화를 위해 자기 존재만을 지속하는 게 아니라 세대를 거치며 진화하는 편이 나았으리라고 누가 답변한다 해도 그렇다면 왜 자기 존재 내에서는 영생하면서 유전자를 변이시켜가며 진화 가능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는냐는 의문이 생긴다. 이기적이고자만 한다면 영생과 유전자 변이가 자유로운 한 생에서의 무한 진화가 가능한 생명체로의 진화가 가장 타당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인다.

 

이기적이라기 보다는 유전자도 세포도 생명체도 집단을 형성하며 협력이 자신에게도 유리하단 걸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기성 이상의 원칙을 수립하고 지켜나가고 있다는 해석이 더 타당하지 않은가 싶다. 우리 인체 내의 장기와 같은 기관들 그리고 간세포, 심장세포, 골세포, 생식세포 같은 세포 단위도 자기 존속만 절대시하며 무한 증식하지 않는다. 물론 그러는 편이 자기 존속에 유리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자기 색깔 곧 자기 경계를 지키며 보다 큰 자신에게 공헌하는 것이 유리를 떠나 공의(공공이 따를 만한 정의)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명체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기희생을 하기도 한다. 늑대도 마멋도 작은 새들도, 개미나 벌도 그렇다. 물론 이 집단들에서는 도킨스의 말대로 유전자의 전승에 있어 이기적이라는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기르는 가축인 개의 경우에서 보듯 자기 유전자와 상관이 없는 주인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개들도 있으며 인간의 경우에는 가족이나 민족만이 아닌 국가, 이데올로기 같은 신념, 더 나아가 전혀 다른 민족의 개인을 위해 인류애적 차원이나 생명 존중 사상을 따르며 희생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생물학적인 이기성을 찾아볼 수 없다. 세포 역시도 수정되지 않은 난자와 정자가 유전자 계승을 위해 자기희생을 따른다는 논리도 가능하겠으나 이건 해석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보다 더 큰 순리와 거대한 원리에 순응하는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논리에 따라 사회화를 한다거나 공공의 합의를 도출할 때 대중을 설득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의 논리에 따라 자기에게도 이로우니 사회에 순응하라거나 대세를 따르라고 강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인간에게 더 큰 의미를 가져올 수 있는 해석이라면 유전자도 세포도 생명체도 결국에는 순리에 따라 자기의 색깔을 지키며 타자와 교류하고 때론 타자의 배려와 때론 타자에 대한 배려로 공존공영한다는 관점이 더 나은 것이지 않은가 싶다. 무한 이기주의는 암세포가 보여주는 전형성이다. 생명체를 유지 시켜주는 유전자와 세포는 이기성만이 아니라 더 커다란 자신을 위해 자기 경계를 지키며 그 경계 속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는 존재인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君君 臣臣 父父 子子의 논리가 유전자와 세포계에서 마저 진리라는 말이다. 각자가 자기 경계에서 자기 색깔을 지키면서 대를 위해 헌신하며 지속되는 것이 인간이 만든 사회만이 아니라 유전자이고 세포이고 생명체이고 자연계이고 세계이고 우주, 모든 차원의 대의라는 말이다. 이기성만을 근간이라고 여기는 서양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문화가 자기 나름으로 대중 포용적 타협의 가능성을 이론으로 풀어낸 것이 [이기적 유전자]일 수도 있겠으나 우주는 그보다 더 큰 순리가 근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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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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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거꾸로 읽는 지구의 역사


왜 주제가 멸종인 걸까?


저자는 멸종이라는 주제로 한국적인 그리고 저자만의 스타일로 빅히스토리를 그리고 있다. 왜 멸종이란 주제여야 했을까 싶기도 했는데 [잔혹한 진화론]에서 저자 사라시나 이사오 님이 죽음이라는 주제로 진화론의 이야기를 펼치며 누구에게나 명백한 현실일 주제로 진화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듯 본서의 저자 이정모 님도 멸종이라는 강렬한 주제로 빅히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대중에게 빅히스토리의 의의의 하나를 선명히 전할 수 있다고 믿어서인 듯했다. 저자가 전하는 멸종의 의의는 한 종의 멸종이 다른 종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의 순환으로서 바라보며 지구 내 생명체의 역사 전체로 크고 넓게 시야를 확장하게 한다.


기발하고 재치 있는 해설


저자는 가상의 미래 2150년 인류 멸망 이후에서 시작해 2050년 화성에 테라포밍을 시도하는 있을 법한 가정으로 환경에 적응을 너머 변화시키며 개척하려는 과정에서부터 서술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부터 환경의 변화가 생물종에 미치는 지대한 영향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2024년 현재 부빙이 사라져가는 이야기로 생물종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나가는 어려움을 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작은 인공지능 그리고 화성 탐사로봇 그리고 범고래와 펭귄의 목소리를 빌리고 있다. 점차 시대를 거슬러 오르며 네안데르탈인, 공룡을 거쳐 끝내는 바다와 달의 대화에 이른다. 이들이 각자가 그 시대의 주역으로 환경의 변화와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 도태되어 결국 멸종에 이르렀음을 서술하고 새로운 종들의 탄생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 탄생의 비밀까지 재치 있고 기발한 서술로 전하고 있다.

저자는 시대를 역순으로 거슬러 오르며 각 진화의 정점에서 하나의 생물종이 멸종해 가는 이야기로 빅히스토리를 쌓아나간 것이다.


다만 과하다고 여겨진 것은...


저자는 여러 박물관장을 거치고 과학기술 훈장 진보장을 받은 인물로서 대중에게 과학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해온 인물이다. 빅히스토리를 그리며 환경변화가 생물종의 멸종을 불러온 과정과 환경에 적응하는 것의 어려움을 직시하신 분이다 보니 현재의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부차적인 효과도 저술에서 노리신 것 같다. 다만 과하다고 여겨진 것은 전 세계 몇천 명에 이르는 과학자들은 지금도 종말론적 환경주의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고 그들의 저작을 읽어보면 현재의 기후위기가 근거가 조작되고 의도적으로 선동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갖게 된다. 그런데도 그러한 과정에서 현재의 환경문제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관점만으로 저술의 배경을 삼은 것은 과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히스토리 속에서 환경이란 생물종에게 지대한 영향을 행사해왔기에 환경을 우려하는 시선이 그릇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빅히스토리를 국내 저술로 만나본다는 의의


본서의 소개에서 이정모 관장님을 한국의 빌 브라이슨이라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런 소개가 전혀 과찬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의 필력이라는 것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소설보다 재미있고 다큐보다 감동적이다!”라는 책 소개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 정도 필력은 타고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까지 하다. 물론 유익하지만 지루할 수도 있을 자연사를 어떻게 독자들에게 깊은 감상으로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저자의 고심도 깊게 느껴지는 책이다. 빅히스토리를 한국인 저자의 책으로 만나볼 기회 그리고 자연사를 지루하지 않게 기발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들어볼 기회를 많은 분들께서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찬란한멸종 #이정모 #다산북스 #도서협찬 #빅히스토리 #자연사 #진화 #멸종



다산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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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4-08-20 1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 책 읽고 싶네요! 소개 감사해요~

이하라 2024-08-20 11:17   좋아요 0 | URL
끌리만 한 책이에요^^ 즐거운 독서 되세요~
 
무, 최고의 상태 - 인생의 통증에 항복하는 삶의 기술
스즈키 유 지음, 부윤아 옮김 / 해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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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무는 무아를 이야기한다. 일본의 사이언스 라이터라는 저자는 16세부터 무려 5000편의 논문을 독파하며 그 지식을 바탕으로 과학을 일상에서 유용하게 적용할 방법들을 강연하고 저술하고 있다고 한다. 본서에서도 여러 연구가 저자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한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저자는 자기라는 것은 규정지을 수 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고정된 나는 없으며 그럼에도 자기를 규정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그것이 원시 시대부터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불안정하고 역동하는 원시 세계에서는 불필요한 정보는 삭제하고 생존에 유효한 데이터만을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대상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필요에 의해서 나라는 대상에 대해서도 고정하고 규정하는 단순화가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투쟁-도피 반응이 유효했던 원시사회에서는 유효한 방식이었으나 현재는 이런 지나친 단순화가 자신을 더 알 수 없는 존재로 만들고 불안으로 내몰게 된다는 게 저자 주장의 요지 같았다.

 

본서에서는 나라는 상이 만드는 혼란과 투쟁-도피 반응으로부터 야기되는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는 다양한 심리기법과 수행방식들이 제시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나라는 상을 타파하기 위한 철학적 논서가 아니라, 무아의 일상에서의 유용성을 주장하고 무아로 돌아가는 실천법이 담긴 실천서에 가깝다. 물론 지적인 대상으로 독서하기에도 적합한 책이긴 하다. 하지만 일상과 업무에서 불안과 두려움과 혼란과 부조리를 크게 느끼는 분들이라면 본서의 실천법들을 통해 삶의 어지러움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지도 않을까 하는 감상이 크게 이는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무아를 연구하고 천착해온 역사는 오래다. 하지만 지금처럼 절대적으로 대중에게 무아가 적용되기 적절할 시대는 그리 길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본서와 또 같은 주장을 담은 여러 저작들과 같은 이 시대의 이점을 잘 활용하셔서 나라는 상이 주는 부담과 불안과 혼란에서 벗어나실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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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요가
이태영 지음 / 여래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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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달리니 요가의 모태인 탄트라를 나는 그저 수행체계와 수행 전승의 하나로만 바라봤는데 tantra의 의미는 날실과 경전을 말한다고 한다. 씨실을 의미하며 경전을 이르는 다른 말인 sutra와 대칭을 이루는 표현이었다. 씨실이 베틀에서 세로줄을 이루며 한 가닥씩 열을 이루고 날실이 그를 한 올씩 가로지르면서 가로로 나아가며 면을 만들 듯이 수트라와 탄트라의 역할도 그와 같은 것이구나 생각되기도 했다. 탄트라는 수행체계이기도 하니 수트라와 탄트라가 하나의 구조를 이루어야 하는 거구나. 지식과 지혜 그리고 실천과 수행을 수트라와 탄트라가 상징하는 것이구나 하는 감상도 갖게 되었다.

 

또 탄트라에 대한 추가 설명으로 비밀스런 요가적 행법, 신들에 대한 찬가, 의례, 제사 의식 등의 종교 행위와 연금술을 비롯한 화학, 의학, 천문학 등의 자연 과학, 그리고 요술, 주술, 복점 등의 신비 사상까지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이기까지 하고 있다.

 

탄트라에 대해 수행으로만 접해 봐서 개념이 주먹구구로 잡혀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대강을 알게 되었다.

 

본서는 쿤달리니 요가에 대해 한의학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쿤달리니 증후군이라는 부작용(중국 기공식 표현으로는 편차’)에 대해 그간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마음장상이라는 불용성 위축도 극단적인 수준의 생식기 축소로 이루어질지 몰랐었는데, 리 샤넬라 님의 [신비의 쿤달리니]를 읽은 후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나고 이런 내용까지는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오늘 읽은 [, 최고의 상태]에서도 명상 수행을 주기적으로 수행한 집단에서 이타적 감정과 행위가 감소하고 자아의식이 극대화되었다는 연구에 관한 내용을 듣고 충격이었다. 수행이 긍정적 영향을 더 준다는 믿음이 깨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같은 책의 다른 장에서는 관찰 수행과 연기성에 집중한 수행을 한 집단은 이타적 행동과 정서가 500% 향상되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상반되는 두 연구 결과로 보자면 명상과 수행도 어떤 형식이냐에 따라서 또 얼마나 수행력이 깊으며 전문가 집단인가에 따라서 영향력이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다.

 

본서의 다른 장들은 쿤달리니 요가 행법들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꾼달리니 딴뜨라]와 그 전작을 수행해본 적이 없었다면 실수행으로 어떻게 이을 수 있을지 수행 횟수와 시간의 분배에 감이 잡히지 않았을 것이다. 본서는 수행 방법들만을 소개하고 실수행은 스승의 전문적인 가르침을 따르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저자가 스승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목들도 이어지니 당연한 감상이 아닌가 싶다. [꾼달리니 딴뜨라]라는 책에서의 꾼달리니 운행은 도가적 표현으로 역주천이다. 상식적으로 익숙한 수행체계로 수행하고 싶다면 [꾼달리니 딴뜨라] 수행 중이나 이후에 본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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