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으로 딱히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을 때, 뇌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바로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집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뇌가 이 기본 상태가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뇌의 각 영역 들이 활성화된다. 


아동기에 만성 트라우마에 시달린 희생자들 중에는 자기 인식 능력이 심각하게 사라져 거울을 보고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기 인식을 담당하는 영역이 자기 경험과 관련된 영역과 함께 기능을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느끼려면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고,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해야 한다. 자기 감지 시스템이 망가졌다면 다시 활성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 


... 기본적인 느낌을 인지하는 뇌 영역들이 모두 신체의 기본 생명 유지 기능인 호흡, 식욕, 배설, 수면과 기상 주기를 제어하는 영역과 가까이 위치한다... 


내수용감각 수준이 높을 수록 삶을 통제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아야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뇌의 감시탑인 내측 전전두엽 피질이 우리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그러한 반응도 불가능하다. 내측 전전두엽 피질을 강화하는 마음챙김 방식이 트라우마 치료에 초석이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내면에서 어딘가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에 고질적으로 시달린다. 그리고 과거의 일이 생생하게 살아나서 내면의 안락함을 갉아먹는다. 이들의 신체에는 폭탄처럼 쏟아지는 강력한 경고 신호가 쉼없이 주어지고, 이 사태를 통제하기 위해 직감을 무시하고 몸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식하지 않고 둔감해지는 능력이 크게 발달한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숨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공황 증상은 공황 발작이 일어났을 대 발생하는 신체 감각을 두려워하게 되면서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몸의 메시지를 무시하거나 왜곡하면 그 대가로 정말 위험한 것, 실제로 해가 되는 것을 감지할 수 없게 된다. 안전한 것,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함께 치러야 하는 대가다. 자기 조절을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약이나 알코올, 끊임없는 재확인, 다른 사람의 소망에 충동적으로 응하는 행동 등 외부적인 조절에 의존해야 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어린이와 성인 모두에게서 신체상 뚜렷한 원인이 없는 신체 증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만성 요통과 목의 통증, 섬유 근육통, 편두통, 소화 불량, 대장 경련, 과민성 대장 증후군, 만성 피로, 다양한 천식 증상 등이 그러한 증상에 포함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성인들은 자신의 느낌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신체의 감각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챌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지도는 정서적 뇌 안에 저장되어 있고, 이 지도를 바꾼다는 것은 중추신경계의 일부를 재평성한다는 의미다


...아기가 양육자와 정서적으로 조화를 이루 때 신체적인 조화도 이루어진다.... 


유아기에 안전한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커서도 기분과 정서적 반응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심장 박동, 심박 변이도, 스트레스 호르몬 반응, 면역 인자 감소 등 생리학적인 스트레스 징후도 나타난다. 


... 생후 첫 2년 동안 엄마가 아이에게 무관심하고 아이와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면 그 아이가 성인기 초반에 해리성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생애 초기에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안전을 느끼지 못하면 자신의 내적 상태를 감지하는 능력이 손상되고, 과도한 의존성이나 자해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 무엇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면, 스스로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할 수도 없다. 또는 '뭐라도' 느끼려는 극단적인 노력이 면도칼로 자기 몸을 베거나 낯선 사람과 주먹다짐을 하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 


생애 초기 양육의 질적 특성이 다른 트라우마와 상관없이 아이의 정신적 건강 문제를 예방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린시절 학대를 당하거나 방치된 사람, 또는 성적인 것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내면의 지도에 그와 전혀 다른 메시지가 기록된 상태로 살아간다. 경멸과 수치심이 자기 자신에 대한 대표적인 느낌이 되고, '그는 (혹은 그녀는) 내 운명이야'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대우를 받아도 저항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양육자와의 상호 관계는 무엇이 안전하고 무엇이 위험한지 알려주고,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사람과 우리를 실망시킬 사람을 알아보게 하며, 필요한 것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이러한 정보는 뇌 회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에 저장되어 있고 자기 자신과 주변 세상을 생각하는 방식의 틀을 형성한다. 이 내적 지도는 시간이 흘러도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도가 경험을 통해서도 바뀔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지한 사랑의 관계, 특히 뇌가 또 한 번 급격한 변화를 겪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경험한 깊은 사랑의 관계는 사람을 바꿔 놓을 수 있다


양육자의 학대나 방치가 원인인 아동기의 트라우마 후유증에서는 감정 조절, 충동 조절, 주의력과 인지 능력, 해리, 대인 관계, 자기 자신과 대인 관계에 대한 사유의 틀(스키마)에 만성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일관성 있게 양육된 아이들은 자기 조절력이 뛰어난 아이로 자라고, 일정치 않은 양육 방식에 따라 자란 아이들은 만성적 생리학적으로 흥분성이 높은 아이로 자랐다. 예측하기 힘든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관심을 얻기 위해 큰 법석을 만드는 경우가 많고 작은 어려움만 접해도 심하게 좌절했다. 흥분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만성적인 불안에도 시달렸다. 놀이를 하고 탐험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재확인했고, 커서도 만성적으로 긴장하고 모험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다.


성폭력이 장기적으로 친구 관계와 연인 관계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주는지......

학대 당한 소녀들은 사춘기 이전에 동성이든 이성이든 친한 친구를 사귀는 경우가 드물고, 청소년이 되면 남자아이들과 관계를 형성하지만 그 관계는 대체로 혼란스럽고, 그로 인해 큰 충격을 입는 경우가 빈번하다. 


성적 학대를 받은 소녀들은...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므로 동성이든 이성이든 친구가 없다. 자기자신을 증오하고, 생물학적인 변화도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쉽게 과잉 반응을 보이거나 완전히 멍해지는 상태가 되고 만다. 


사춘기 초반이 되자, (성적) 학대받은 아이들은 성욕을 증대시키는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안드로스테네디온의 수치가 대조군에 비해 3~5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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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와 자기실현 분석심리학의 탐구 3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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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년만에 다시 읽어 봤지만 너무나 깊고 깊어 헤메이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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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와 아니무스 분석심리학의 탐구 2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십여년만에 다시 읽었다. 아니무스는 복수複數일 수 있다는 내용이나 꿈은 감추지 않는다 가르친다는 내용까지도 모두 처음 읽는듯 했다. 내가 어떤 아니마, 아니무스를 가지고 있는지를 알 뿐 아니라 그것이 언제 어디서 자아를 사로잡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란 끝맺음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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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18-11-21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너무나도 보편적이고 일반적인데 말이죠.. 그걸 인정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마 누구에게나 있는 페르소나와 같지 않나 싶습니다...

이하라 2018-11-21 10:25   좋아요 0 | URL
네, 분석심리학의 개념들도 많이 보편화 된 것 같습니다. 페르소나나 아니무스 아니마도 이젠 상식이 된 개념들이죠. 그럼에도 자기실현을 현실에서 이뤄가는 일은 어렵기만하니 답답하기도 하네요.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극명히 나뉜다. 정신적 외상이 된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일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 대상에 배우자나 자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트라우마 희생자들에게 예전에 겪은 일을 말로 표현하도록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신체가 자동으로 과도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언제든 공격이나 폭력을 당할 태세를 갖추며 이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와 호르몬 반응을, 당시 이야기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려면, 위험 요소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신체가 깨닫고 주어진 현실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결코 나아질 수 없다. 

-엘빈 셈라드 교수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사람은, 생각이 아주 고귀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업적이 아무리 많다하더라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존재로 남는다


자기 몸의 상태를 본능적인 욕구 측면까지 모조리 인정할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 


단순히 도망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동물이나 사람이 자유를 찾아가지는 않는다.

...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 역시 기회가 주어져도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실질적인 위험이 사라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 다량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게 확인됐다... 코르티솔이 몸에 '이제는 안전하니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맡아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을 종결시킨다...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경우 위험 요소가 다 사라진 후에도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면서 불안과 공황 상태가 나타나며, 장기적으로는 건강이 사정없이 파괴된다. 


반복되는 상황은 오히려 더 많은 고통과 자신에 대한 증오로 이어질뿐이다. 실제로 치료 과정에서 트라우마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일에 관한 생각에 사로 잡히고 집착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과거 사건의 재현과 재생은 어떤 면에서 트라우마 자체보다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트라우마 사건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어떤 식으로든 종결되었다. 그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에게는 그 사건이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어느 때고 재현된다. 언제 다시 떠오를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알 수도 없다. 


트라우마 구성 요소들이 반복해서 되살아나면, 그로 인해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이 그 기억을 마음에 훨씬 더 선명하고 깊게 새긴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희생자들에게 그 일을 억지로 이야기하게 하면 혈압이 상승하는 사람도 있고 편두통이 시작되는 사람도 있다. 또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져 어떠한 변화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연구를 해 보면, 공통적으로 심장이 달음박질 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상태가 예외없이 포착된다.

이와 같은 반응은 앞뒤 없이 불쑥 나타나고 대부분 통제가 불가능하다. 제어가 불가능한 강렬한 충동과 감정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


중요한 사실은 뇌의 인지 시스템이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신체 반응에 과거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점이다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느끼고, 정확히 밝히고, 확인하는 것이 회복의 첫단계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과거 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자극을 접하면, 우반구는 그 트라우마 상황이 지금 일어난 것처럼 반응한다. 그러나 좌뇌가 적절히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라 당사자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경험하고 있으며 과거 일이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격분하거나 겁에 질려 펄펄 뛰고 수치스러워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기까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소한 자극에도 단숨에 불균형적인 수준으로 증가한다. 순식간에 증가한 스트레스 호르몬은 서서히 영향력을 발휘해 기억력과 집중력에 문제가 생기고 쉽게 짜증 나게 만들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몸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어디냐에 따라 장기적으로 수많은 건강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면 특정 상황이 위험한지 안전한지 잘못 해석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트라우마란 '영원히 지속되는' 상태가 최고조에 이르는 경험이다. 


따라서 시상이 망가지면 트라우마가 처음부터 시작, 중간, 끝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기억되지 않고 당시의 이미지, 소리와 공포, 무기력감 등 어떤 강렬한 감정 상태에서 느낀 신체 감각이 뿔뿔이 흩어진 감각의 흔적으로 기억된다


머릿속이 멍해지는 증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성이다...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면 극적인 변화를 겪고 감짝 놀라 자기 파괴적인 행동까지 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감을 잃어버리는 이 같은 변화는 훨씬 더 큰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트라우마 스트레스 치료에서는 환자가 과거에 대해 느끼는 감각을 없애버리는 데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감각을 없애면 반응성을 줄일 수 있겠지만,가만히 길을 걷거나 요리를 하고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그냥 스쳐 자나가 버린다


정신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가지만 꼽는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한 유대 관계는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만드는 필수 요소다.... 단지 다른 사람이 존재하기만 하는 상황은 사회적 지지와 다르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만성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싸움 또는 도주 반응으로 표출될 뿐만 아니라 신체 기능이 중단되고 현실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태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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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11-19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라우마는 정신적인 만성 질병이네요. 언제 아플지도 모를뿐더러 아픔의 고통이 사라진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이하라 2018-11-19 17:54   좋아요 0 | URL
치료법에 따라 벗어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몸은 기억한다라는 책이 그 치유방법들이 발전해온 역사를 전해주는 내용이거든요.
 
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다른 트라우마 저작들을 몇권 읽었었다. 그래서 내가 보다 깊이 느낀 이 책과 다른 트라우마 저작들의 극명한 차별성이라면 이 책은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의 정서에도 물론 주목하지만 그보다는 검증 가능하고 확실한 트라우마 치료법들을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통이 있다지만 전쟁에 참여해 외상 후 스트레스라는 트라우마를 지니게 된 사람들과 생에 있어 고통을 상쇄할만치의 기쁨과 즐거움이 아직 익숙치도 않을 시절 (뇌의 시스템 전체에 손상을 가져오는, 학대와 방치를 3세까지 경험했거나 더나아가 6세까지 학대와 방치에 노출된) 아동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을 보며 왜 이런 고통이 난무해야하는지 착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학대나 방치 받은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뇌손상은 치료법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영구적이며 불가역적인 손상인 것이다. 


본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즉 트라우마 환자들의 뇌를 통해 어떠한 손상이 일어나며 그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뇌와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보여준다. 이에 대해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 뉴로피드백 치료, 내적가족치료, 공동체가 함께하는 연극치료와 음악치료, 맛사지, 요가, 태극권, 무에타이, 무술, 춤 등의 치료가 얼마나 극적인 효과를 불러오는지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전쟁 후 나타난 외상 후 스트레스 환자들로 부터 시작된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재해를 당한 사람들과 일상 속에서 학대와 방치를 당하는 영유아들로 확대되며 연구되어온 역사 그 자체와도 같은 책이다. 트라우마라는 것에 대한 그간의 연구와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라 할 수 있다. 


트라우마에 빠진 아이들이나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다가 그들이 치유되는 과정에 환호하게 되는 그런 책도 읽어볼만은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처럼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게 해 주고 그 치유 가능성과 치유 과정이 어떠리라고 짐작케 해 주는 책은 더욱 가치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가까운 누군가가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거나 본인이나 가족이 트라우마를 치료받기 위해 준비 중이라면 더더욱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극명히 나뉜다. 정신적 외상이 된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일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 대상에 배우자나 자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트라우마 희생자들에게 예전에 겪은 일을 말로 표현하도록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신체가 자동으로 과도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언제든 공격이나 폭력을 당할 태세를 갖추며 이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와 호르몬 반응을, 당시 이야기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려면, 위험 요소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신체가 깨닫고 주어진 현실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결코 나아질 수 없다.
-엘빈 셈라드 교수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사람은, 생각이 아주 고귀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업적이 아무리 많다하더라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존재로 남는다.

자기 몸의 상태를 본능적인 욕구 측면까지 모조리 인정할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

단순히 도망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동물이나 사람이 자유를 찾아가지는 않는다.
...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 역시 기회가 주어져도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실질적인 위험이 사라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 다량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게 확인됐다... 코르티솔이 몸에 ‘이제는 안전하니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맡아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을 종결시킨다...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경우 위험 요소가 다 사라진 후에도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면서 불안과 공황 상태가 나타나며, 장기적으로는 건강이 사정없이 파괴된다.

반복되는 상황은 오히려 더 많은 고통과 자신에 대한 증오로 이어질뿐이다. 실제로 치료 과정에서 트라우마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일에 관한 생각에 사로 잡히고 집착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과거 사건의 재현과 재생은 어떤 면에서 트라우마 자체보다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트라우마 사건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어떤 식으로든 종결되었다. 그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에게는 그 사건이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어느 때고 재현된다. 언제 다시 떠오를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알 수도 없다.

트라우마 구성 요소들이 반복해서 되살아나면, 그로 인해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이 그 기억을 마음에 훨씬 더 선명하고 깊게 새긴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희생자들에게 그 일을 억지로 이야기하게 하면 혈압이 상승하는 사람도 있고 편두통이 시작되는 사람도 있다. 또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져 어떠한 변화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연구를 해 보면, 공통적으로 심장이 달음박질 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상태가 예외없이 포착된다.
이와 같은 반응은 앞뒤 없이 불쑥 나타나고 대부분 통제가 불가능하다. 제어가 불가능한 강렬한 충동과 감정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

중요한 사실은 뇌의 인지 시스템이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신체 반응에 과거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점이다.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느끼고, 정확히 밝히고, 확인하는 것이 회복의 첫단계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과거 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자극을 접하면, 우반구는 그 트라우마 상황이 지금 일어난 것처럼 반응한다. 그러나 좌뇌가 적절히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라 당사자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경험하고 있으며 과거 일이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격분하거나 겁에 질려 펄펄 뛰고 수치스러워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기까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소한 자극에도 단숨에 불균형적인 수준으로 증가한다. 순식간에 증가한 스트레스 호르몬은 서서히 영향력을 발휘해 기억력과 집중력에 문제가 생기고 쉽게 짜증 나게 만들며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몸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어디냐에 따라 장기적으로 수많은 건강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면 특정 상황이 위험한지 안전한지 잘못 해석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트라우마란 ‘영원히 지속되는‘ 상태가 최고조에 이르는 경험이다.

따라서 시상이 망가지면 트라우마가 처음부터 시작, 중간, 끝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기억되지 않고 당시의 이미지, 소리와 공포, 무기력감 등 어떤 강렬한 감정 상태에서 느낀 신체 감각이 뿔뿔이 흩어진 감각의 흔적으로 기억된다.

머릿속이 멍해지는 증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성이다...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면 극적인 변화를 겪고 감짝 놀라 자기 파괴적인 행동까지 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감을 잃어버리는 이 같은 변화는 훨씬 더 큰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트라우마 스트레스 치료에서는 환자가 과거에 대해 느끼는 감각을 없애버리는 데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감각을 없애면 반응성을 줄일 수 있겠지만,가만히 길을 걷거나 요리를 하고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그냥 스쳐 자나가 버린다.

정신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가지만 꼽는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한 유대 관계는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만드는 필수 요소다.... 단지 다른 사람이 존재하기만 하는 상황은 사회적 지지와 다르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만성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싸움 또는 도주 반응으로 표출될 뿐만 아니라 신체 기능이 중단되고 현실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태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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