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다영이 침대에 누운 자신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을 때였다. 파란빛이 은은히 비치며 지현이 나타났다.


-뭘 하려는 거야? 


-깨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오빠.


-그런 억지 부리지 마. 깨어나는 것과 지금이 뭐가 달라? 오히려 지금의 네게 구속도 한계도 덜하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그래도 이건 실제가 아니잖아?


-왜 실제가 아니야? 네게 주어진 그대로 니가 창조하는 그대로가 현실이고 실제인 거지.


-난 진짜 부모님 곁으로 가고 싶어, 오빠. 내가 그려내는 가상의 부모님이 아니라. 그리고 난 이제 막 대학생활을 앞두고 있었어. 이렇게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현실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


-네가 의식만 바꾸면 무한한 자유가 여기 있어. 물리적 제한, 감각적 제한을 넘어선 자유가 있다고. 네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들이 널 구속하던 세계, 늙고 병들고 다치고 한계뿐이던 세계가 돌아갈 가치가 있는 세계라고 생각해?


-그래도 나의 진짜 모든 건 그 세계에 있어. 오빠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구속과 한계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의미를 안겨주던 세계가 그곳이야. 아니 이젠 여기지.


다영은 그리 말하며 자기 몸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지현은 안타까워하는 몸부림처럼 그런 다영을 향해 한 팔을 뻗었지만 끝내 그녀는 깨어났다.


-하악!


침대 위의 다영이 반쯤 상체를 일으키다 다시 누웠다. 다영 옆의 의자에 앉아있던 그녀의 엄마가 놀라 일어섰다. 다영을 보며 얼굴을 기울여 안으며 소리쳤다.


-다영아! 다영아! 엄마야, 엄마. 깨어날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구.



23


-다영아! 학교 가야지. 얼른 일어나.


-엄마는 오늘 오전엔 강의 없단 말이야. 뭐 이렇게 일찍 깨워.


-오늘 금요일이야. 왜 오전엔 강의가 없어?


-뭐 오늘 목요일 아니었어? 


-얘가 어제를 두 번 살려고 하네. 얼른 일어나 밥부터 먹어. 이러다 늦는다.


다영은 이불을 잡아당기던 엄마와 실랑이를 하다가 그제야 오늘이 금요일인 걸 깨달았다. 어제 술을 과하게 마셔서 조금 부스스한 머릿결을 하고는 깨어난 다영은 침대 위에 앉았다. 그렇게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일어나 샤워를 하러 갔다.



24


강의실에 앉아 여름과 다원과 수다를 떨고 있던 다영은 문득 창밖으로 비치는 햇살 너머 구름 한줄기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마치 이 순간 익숙하던 누군가가 나타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금인데 너 오늘 또 약속 있다고 할 거지?


-얘 도대체 뭘 몰래 하고 있길래 맨날 약속이라면서 금요일마다 사라져?


여름이 금요일마다 약속이 있다는 다영이 못마땅해서 한마디 하자 다원도 거들었다.


-아주 중요한 약속이야. 금요일은 정말 시간이 없어. 미안해.



25


비둘기 한 마리가 산수유 열매 하나를 물고는 병원 옥상으로 날아와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날아 한 병실의 창가를 지나쳐 간다. 병실에는 한 남자가 산소호흡기를 하고 누워있고 그 옆으로 다영이 앉아 있다. 


-오빠, 어제는 재원이에게 고백한다던 다원이가 계속 술만 마시는 거야. 그러더니 재원이한테 뭐라는 줄 알아? "야 너 왜 고백 안 해. 니가 이러니까 내가 고백하게 생겼잖아." 이러더라구. ㅎㅎ


다영은 언제나처럼 자기 일상을 의식 없는 지현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다영이 깨어나던 날, 다영은 의식을 차리고는 자기 옆 병실에 있다던 지현의 말이 떠올라 제일 먼저 찾아보았다. 그날 이후 매일 지현의 병실에 머물렀다. 그러다 퇴원한 이후에는 매주 금요일이면 지현을 찾아왔다. 


콤마 상태의 지현은 늘 무표정하고 말이 없었지만 가끔씩 다영이 돌아서 나가려 할 때면 바이탈 싸인이 급격하게 변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더 다영은 지현의 문병을 빼먹을 수 없었다.


-오빠, 나 자주 오빠가 보고 싶고 가끔 오빠를 생각하면 미운 마음도 들었어. "왜 내가 깨어나려 할 때 깨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말이야. 하지만 오빠 없는 현실을 살아가다 보니 그 심정을 알게 되는 것 같았어. 나도 오빠랑 너무 함께이고 싶어. 그러니까 오빠. 오빠가 내 곁으로 오면 안 될까? 나 너무 오빠가 보고 싶어.


그렇게 말하며 다영은 지현의 손을 잡았다. 다시 놓지 않고 싶다는 심정으로. 지현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무언가 포근함이 다영의 마음으로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한참을 그러다 다영은 병실을 떠났다.


창가 아래로 그녀가 다시 지현의 병실을 올려다보고 가는 것이 비친다. 창가엔 잠시 전 비둘기가 떨어뜨리고 간 산수유 열매가 놓여있었다. 


-하아아아!


지현이 큰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병실을 울렸고 그의 감은 눈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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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능력 키우기 - 하루 20분으로
LLC. LearningExpress 지음, 신원재 옮김 / 유원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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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력과 추리능력의 기본기를 가르친다고 여겨진다.


논리와 논증이란 주제의 저서는 가까이해본 적이 없다 보니 재미졌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와 대화라는 것이 논리와 논증의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보니 새로움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대화와 독해, 작문에서 유용하리라는 것은 분명할 것 같지만 본서는 말 그대로 기본을 익힌다는 취지의 저작이 아닐까 싶다.


이후 본서의 자매서 격인 [하루 20분으로 비판적 사고력 키우기]와 [어른의 문답법], [철학적 분석은 어떻게 하는가]를 순차적으로 읽고 [생각의 역사] 1,2권에 도전해 보고 싶다. 


좀 더 논증에 대해 호기심이 이어진다면 논리의 오류에 대한 책도 연이어 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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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눈을 뜨자 다영의 눈앞에 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들이 오고 가며 침대에 누운 엄마를 체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아빠가 애처롭게 침대에 누운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선 엄마가 울고 있었다. 엄마가 말이다.


말이 안 되는 현실에 다영은 놀라 침대 곁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때 자신 옆으로 눈부시게 빛이 작렬하더니 지현이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났다.


-다영아 놀라지 마.


-오빠, 이게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나 아직 우리 세계에 있는 거야?


-아니 넌 너의 세계와 실제 세계 그 사이에 있어. 이제 너만의 현실이 아니라 사실을 자각해도 되겠다는 너의 의식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거야. 


-나만의 현실? 사실? 그 둘이 다른 거라고? 내 의식이 이제 자각해도 되겠다는 사실이란 게 도대체 뭐야?


-그건.


지현이 말을 얼버무리고 있을 때 다영은 침대에 누운 엄마와 침대 옆에서 울고 있는 엄마를 번갈아 봤다. 어느 순간 침대 위의 엄마 모습이 더 젊어 보였다. 다영이 놀라 자세히 바라보자 머리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운 건 다름 아닌 다영 자신이었다.


-이게 사실이야. 네가 만든 현실이 아니라 진정한 너의 현실인 사실. 


-어떻게 이런... 이런... 저기 누워있는 게 나라면 지금의 나는 뭐야? 


당황해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다영을 보며 지현은 단호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넌 영혼이라고 할 수 있어. 콤마 상태의 니 육체를 떠나 넌 너의 세계를 창조해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던 거야. 


-난 그럼 귀신인 거야? 나 죽어?


-아니야. 콤마에 빠진 육체를 벗어나 잠시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거라고 보면 돼.


-자유롭다고? 현실이라고 믿던 모든 것들이 그저 내 상상일 뿐이었다는 건데. 그리고 나는 실제로 엄마와 아빠와는 다시 볼 수 없다는 건데. 그게 자유로운 거라고?


다영이 다소 격앙되어 말했다. 지현은 그런 다영을 바라보며 뭔가 위안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육체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의식 없이 보내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해. 그리고 콤마에서 깨어나는 경우도 더러 있어?


-더러 있다고? 더러?


다영은 지현의 말에 위안을 받기보다는 회복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희박하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콤마에 빠지거나 사망진단을 받았다가 의식을 되찾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천국을 다녀와 천국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도 있잖아. 그런 책도 있다던데?


-나도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런 책을 검색하다 몇 권 본 것 같긴 해. 그럼 우리 세계라는 곳이 천국이야? 오빤 천사고?


사실 다영은 콤마에 빠졌다가 의식을 되찾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그 사례가 많지 않을까봐 두려워 묻지를 못했다. 그저 자신이 천국을 다녀온 것인지가 궁금하다고 물으며 넘어가려 했다.


-거긴 천국이 아니야. 공유 세계지.


-공유 세계? 


-그래, 니가 만들어낸 현실처럼 콤마에 빠진 여러 사람들이 현실을 창조해 내는데 그게 공유되는 세계가 있더라구. 우린 그걸 우리 세계라고 부르기로 했어.


-그럼 오빠도 나처럼 콤마에 빠진 사람인 거야?


-음. 난 바로 니 옆 병실에 있어. 


-오빤, 언제부터 영혼인 채로 있었던 거야?


-1년이 좀 넘었어. 


-난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던 거지? 언제부터가 실제이고 언제부터가 만들어진 현실이야?


-내가 처음 네게 다가가 눈을 마주친 날 기억해?


-어! 그날 나 OT였던 날이야.


-그날이야. 그날 그곳을 지나가고 있는데 니 머리 위로 화분이 떨어지는 걸 봤어. 그런데 네 육체가 쓰러지는데도 넌 그대로 선 채 날 바라보고 있더라. 그래서 네게 다가갔던 거야?


-나 깨어날 수 있을까? 


다영은 지현의 말을 들으며 엄마 곁으로 다가가 엄마의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자신의 손이 엄마 손을 스쳐 지나가는 걸 보고 울먹이며 지현에게 물었다.


-가능성이 있을 거야. 우선 진정부터 해. 


다영이 울먹이자 침대 옆의 바이탈 싸인 모니터에 그녀의 바이털 싸인이 큰 웨이브를 이뤘다. 간호사가 마침 그것을 보고는 의사를 부르러 갔다.


-나 영혼이라더니 내 몸이 내가 울려니까 반응을 하는 것 같아.


-당연하지. 니 영혼과 니 육체는 분리되어있더라도 원래 하나인데. 


지현의 의상이 파란색으로 바뀌며 지현은 손을 다영의 어깨에 얹었다. 주변 사물이 한순간 일그러지며 아주 넓은 강가로 바뀌었다.


-날 왜 이리로 데려온 거야.


-너도 우리 세계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 병실에 계속 있으면 니 감정만 더 격해질 거야.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 모두가 거짓말이었다. 언젠가부터 지현은 다영에게 빠져들고 있었고 다영과 함께인 시절이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날들이었다. 그녀가 격앙되어 이 현실을 부정하는 것도 더군다나 그녀가 깨어나는 것도 지현에겐 원치 않는 일들이었다.


터번을 쓴 노인이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이젠 너도 사실을 알게 된 것이구나.


-영감님, 영감님은 알고 계시면서 왜 그런 AI니 양자컴퓨터니 가상현실이니 하시면서 사람을 속이신 거예요. 


-난 속인 적이 없단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이야. 이 가상 현실의 평행우주와 다차원들이 정묘하게 얽혀있는 속에서 우리 세계도 있는 것이란다. 더 나아가 천국도 지옥도 있겠지. 나는 곧 천국으로 가게 될 것이다.


-영감, 약 팔지 말라니까. 우리 앞의 현실이야 우리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영감이 말하는 내용들은 입증할 수 없는 것들이잖아. 우린 그냥 우리 세계에 있다는 이 현실만을 경험하고 있을 뿐이야. 애먼 애한테 입증되지도 않는 주장 들먹이지 말아.


다영이 마치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이라 노인에게 따지고 들자. 노인은 모든 것을 사실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노인은 분명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노인과는 생각이 다른 지현은 노인이 자기만의 관점으로 다영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 같아 노인에게 말했다.


다영은 그들의 주장 따위 보다 어떻게 실제 삶을 되찾을 수 있을지가 더 중요했다. 아니 간절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영감님 천국이 아니라 다시 저의 현실 아니 실제 세계에서의 삶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 이것이 소멸하기에 저것이 소멸하고 저것이 소멸하기에 이것이 소멸하는 것이다. 실제라는 그 삶과 지금 너의 현실인 이 삶이 어찌 다르기만 하겠니. 니가 악몽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면 받아들일만하지 안느냐? 이 삶도 현실인 것을. 



20


다영은 언제나처럼 자기 방 자기 침대 자기 이불 속에서 깨어났다. 이젠 자기 이불 같지 않은 바스락거리는 느낌도 나지 않았다. 눈을 뜨고 나오자 식탁 앞에 아빠가 앉아있고 엄마가 식탁에 찌개를 가져왔다. 밥을 먹으며 아빠가 말했다.


-우리 딸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지. 


-네.


다영이 서글픈 어조로 대답했다. 


-오늘은 당신이 학교까지 태워주면 되겠네요.


-아니에요. 혼자 갈래요.


-아니야. 아빠도 우리 딸 학교 가봐야지.


-오늘 말고 다음에요. 고딩도 아니고 아빠 차 타고 가기 그래요.


-음, 그런가? 운전면허증부터 빨리 따. 아빠가 우리 딸 차로 생각해둔 게 있거든.


다영은 아빠 말에 울컥하는 것만 같았다. 실제 아빠도 저렇게 말씀하셨으리라 생각하니 더 울컥했다.


-어떤 차요?


-안돼. 안 돼요. 신입생이 무슨 차예요. 당분간 대중교통 이용하는 거야 알았어. 다영아!


엄마가 갓 입학한 신입생이 차를 사는 건 안된다고 말하자. 다영은 모든 게 일상 같다고만 느껴졌다.


-저도 차는 아직 생각 없어요. 운전면허증 부터 따야죠?



21


다영은 학교로 향하다 병원으로 왔다. 자신이 누워 있던 병실을 찾았다. 침대는 비어있었다.


가만히 침대 옆의 바이털 싸인 모니터를 보았다. 화면은 꺼진 채였다. 다영은 살아나고 싶기도 안주하고 싶기도 한 복잡한 심정이었다.


엄마, 아빠와 식사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뭐라고 정의하지 못할 버거운 감정이 눈물이 되어 다영의 볼을 타고 흘렀다.


그때 바이털 싸인 모니터에 삐삐 삐삐 소리가 나며 모니터가 켜지며 바이털 싸인 그래프가 요동쳤다.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이 보였다. 다영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다 미간을 찌푸리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영은 침대를 향해 조용히 한걸음 한걸음 다가섰다.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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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우동이즘의 잘 팔리는 웹툰, 웹소설 이야기 만들기 - 아마추어 작가와 지망생을 위한 프로 데뷔 노하우!
우동이즘 지음 / 한빛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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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 이후부터 웹소설을 쓰고 있다. 사실 무료 연재라고는 하지만 습작에 가까운 단편 중단편 소설들이다. 장편이라는 실전에 들어가기 전에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익숙해지고 이야기를 구성하고 서술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매일은 못쓰더라도 주 4일 정도는 소설 쓰기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부터 다양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궁리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올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다 보니 장르소설을 올리는 네이버 웹 소설에서 장르에 대한 핀잔도 듣고 했다. 단편 모음집이다 보니 장르의 다양성이 특정 장르 독자들의 취향에 안 맞았던 것이다. 어쨌건 웹소설을 쓰며 그것도 단편으로 습작을 하며 느낀 것은 어떻게 쓰느냐 어떻게 구성하느냐도 있겠지만 어떻게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게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본서는 그러한 때에 출간되어 내게 "웹소설 이렇게 써야 한다." "독자는 이렇게 사로잡아야 한다." 며 일갈해준 큰 깨우침을 안겨준 책이다. 


본서는 첫째 이야기 구성하기 둘째 이야기 창작하기 셋째 이야기 구체화하기 넷째 기획서 제작하기의 과정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익혀 마침내 작가로 데뷔하기라는 대단원에 이르기 위한 여정을 전해주고 있다. 저서에서는 저자가 전하는 전문작가로서의 그리고 많은 공모전에 출품해본 경험에 근거한 로그라인, 시놉시스, 기획의도 등 기획서를 작성하는 요령이 상세히 전달하고 있다. 비단 창작만이 아니라 프로 작가 데뷔를 목표로 하라고 전하는 저작인 것이다.


저자는 장르와 타깃을 정하는 법부터 키워드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자기만의 이야기를 창작하고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방식에 대해 체계적으로 전하고 있다. 키워드 조합과 함께 [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에 근거한 12단계의 이야기 구성법까지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 크리스토퍼 보글러의 그 책은 나도 몇 해전 읽어 보았지만 실제 전문작가가 이야기를 구성하며 적용하는 실례로는 처음 보았다. 본서의 저자분이 전달하는 정보들은 가장 손쉽고 적절하게 이야기를 창작하기 위한 실용적 정보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본서는 비단 작법만을 가르친다기 보다 전문작가가 전하는 웹 플랫폼 공모전 투고 요령에서도 중요하다 하겠다. 전문작가의 경험에 근거해 확실히 프로 작가 데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용하겠구나 확신이 드는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그것도 시작부터 끝장에 이를 때까지 이해하고 습득하기 쉽도록 상세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전하고 있다. 저자가 자신의 작품들을 예시로 들어 이야기를 구성하고 창작하고 구체화하고 기획서를 제작하는 과정까지가 세심히 전달하고 있기에 작법 노하우뿐만이 아니라 공모전 투고를 하려는 프로 작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님들에게 실용적인 정보들이라고 생각된다.


책의 매 장이 전문적인 정보를 너무나도 쉬운 어조로 전달하고 있기에 소설 쓰기, 공모전에 투고하기가 이렇게 쉬운 거였어 하는 착각까지 들게 할 정도다. 작법에 관해서도 키워드 몇 가지를 조합하는 방식을 깨닫는 것만으로 이렇게 쉽게 이야기를 창조하고 구성할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미 프로 작가님들이나 웹소설 연재 노하우가 있는 작가분들이 다들 실천하고 있는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문학과는 1도 관련이 없던 생판 초보도 이야기를 창작하고 구성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주는 황금 같은 다이아몬드 같은 정보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의 로그라인이나 시놉시스, 트리트먼트를 정리해 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기획의도를 떠올려보는 것도 자기 작품의 개성과 특징을 정리하는 데 필요한 과정일 수 있다는 것도 깨우쳤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연극이나 방송을 전공하지 않은 생초보 웹소설 웹툰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만을 알짜로 담고 있는 책이라고 확신에 차서 말씀드릴 수 있을 듯하다. 웹소설 쓰기가 취미이거나 웹툰 작가를 꿈꾸고 있거나 하는 모든 문학과 방송과 연출에 대한 비전공자들에게는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귀띔해 주고 싶은 책이다.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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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다영이 용의 입 방향을 향해 눈에서 붉은 오렌지빛 광채를 뿜어내자 용이 입을 열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다영과 지현은 용의 입 밖으로 날아나왔다. 지현이 아무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용을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견주고 있을 때 다영이 한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용을 공격해봤자 소용없는 걸 알면서 뭐 하러 또 공격을 하려고 그래요?


그렇게 말하며 다영은 용의 옆구리를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그러자 용은 공중에 떠있는 다영과 지현의 주위를 크게 휘돌아 감싸는 듯 한 바퀴 돌더니 먹구름과 함께 멀리 사라져갔다. 


-살아나왔구나. 하긴 여기서 죽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


다시 날아온 터번을 쓴 노인이 말했다.


-그렇게 재빠르게 도망가실 줄은 몰랐어요.


다영은 가볍게 말했지만 조금 섭섭한 투였다.


-그럼 어쩌겠니? 이 늙은이가 용과 맞서 싸울 수도 없고.


노인은 겸연쩍었지만 자기 말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무사하게 탈출해서 다행이지, 뭐.


다들 지상에 발을 딛을 때 지현이 분위기를 바꿔보려 말했다. 다영도 노인이 도망간 건 서운했지만 그가 그러지 않았다면 지현과의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 지현도 용의 배에서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섭섭함은 작은 문제고 자신에게 작은 깨우침이 있어 다행이라 여겼다.


-저는 이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엄마가 기다릴 거예요.


-아까 내 말 잊은 거야. 모든 현실은 니가 만드는 거라니까.


지현이 그녀의 의식에 작은 일깨움은 줬지만 다영은 아직 모든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건 아니었다.


-늦었다고 생각하니 늦는 거란다. 아침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아침이야.


그렇게 말하며 노인은 한결같이 태양이 따사로운 벌판 가운데서 언제 피어났는지 모를 하얀 튤립 한 송이를 꺾어 다영에게 건넸다. 


-황량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꽃이 피었네요. 이곳이 벌판이 아니라 온통 꽃들이 만발한 꽃밭이면 더 좋았을 텐데.


다영이 그리 말하자 색색깔의 꽃들이 순식간에 온 벌판을 가득 채우며 피어났다. 짧은 찰나만에 무지개의 스펙트럼같이 다양한 빛깔로 들판을 가득 꽃들이 채우고 있었다.


-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겨야 변하는 공간을 넌 아주 쉽게 바꾸어 놓는구나.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요?


지현의 말에 다영은 자기가 그랬을 리 없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너의 마음이 이곳을 온통 꽃들로 출렁이게 만들었어.


-정말 내가 했다고요?


-너에게는 그저 자신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된단다. 그리고 그 확신이 무르익을 때에야 자신의 현실을 아니 사실이라 해야겠지.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다시 한번 지현의 말을 의심하는 다영에게 노인이 말했다. 다영인 생각했다. 


=사실이란 게 뭘까?



17


다영은 지현과 함께 자신의 세계로 돌아왔다. 다영의 집 현관까지 지현이 바래다줬다. 


-오랜만이었어.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한 건.


-저는 처음이었어요. 남자와 단둘이 그런 밀실에 갇힌 건.


지현이 말없이 다영과의 헤어짐이 아쉽다는 듯 물끄러미 쳐다봤다.


다영도 지현을 바라보다가 다영으로선 뭔가 처음인 낯선 분위기가 어색해 한 마디를 했다.


-이제 오빠라고 해도 되죠?


-어? 어! 그래도 되지. 


-지현 오빠 잘 가. 바래다줘서 고마워. 


다영은 말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문을 닫고는 그렇게 돌아선 채 미소를 지었다. 



18


그때 아빠가 거실에서 달려와 다영을 와락 껴안았다. 


-다영아! 아빠가 미안해. 아빠가 이제서야 왔구나. 정말 미안하다, 다영아.


-아빠 갑자기 어떻게 왔어. 무슨 일 있는 거야? 표정이 왜 그래?


-다영아, 미안하다. 아빠가 정말 미안하다.


다영이 아빠의 어조에서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있는 거란 걸 직감하고는 다시 한번 물었다.


-아빠 미안하다고만 하지 말고 무슨 일인지 말해 줘야지. 엄마는? 엄마는 어딨어?


그러면서 다영이 엄마를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침대에 누워 링거를 맞고 머리를 붕대로 감싼 채 누워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다른 차원에 갔다 온 사이 또 현실이 바뀐 걸까?


다영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럴수록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난 현실을 바꾸는 힘을 깨우쳤어. 이 현실은 다시 바꾸면 돼.


그렇게 마음먹고 다영은 눈을 감았다. 엄마가 나은 현실로 바꾸고자 깊은 염원을 담아 기도를 했다. 그리고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다영의 눈앞에 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들이 오고 가며 침대에 누운 엄마를 체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 아빠가 애처롭게 침대에 누운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선 엄마가 울고 있었다. 엄마가 말이다.


말이 안 되는 현실에 다영은 놀라 침대 곁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때 자신 옆으로 눈부시게 빛이 작렬하더니 지현이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났다.


-다영아 놀라지 마.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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