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여러 음모론이 있어 왔다. 그런 음모론들 중 일부는 상당히 설득력 있었다. 무엇보다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에 존재해오다가 부시 대통령 시절 공개적으로 미국 정부에서 천명해오던 신세계질서의 확립이라는 주제가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와 동일시되며 불려온 NWO가 대표적으로 강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로스차일드 가문과 모건 가문, 로케펠러(록펠러) 가문 등등 일부 가문들이 전 세계 부의 정점에 있는 것이 지금으로선 상식적으로까지 알려진 상황이다. 세계 경제를 좌우할 규모의 자산이 정점의 몇몇 가문으로 쏠리고 있는 이 상황이 정상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 가문은 세계 최대 부호를 선정하는 리서치에도 제외되고 있다. 모두가 부의 정점이 그들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두가 그들이 제외되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Thrive] 라던가 [시대정신] 같은 과거 붐이었던 영상물들에서도 그렇지만 그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다수의 저작물들에서도 세계적인 자산의 흐름이 어떻게 정점으로 향하고 있는지 어떤 구조인지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기는 하다. 그것이 설득력 있으면서도 믿기 어려운 것은 설마 저런 음모론적인 세계상이 진짜겠어하는 의구심이 일기 때문이다. 빈틈없는 전개지만 빈틈을 찾으려면 많다는 말들도 많고 말이다. 하지만 과연 사실에는 반박의 요소가 없던가? 진짜 사실이라는 것들에도 반박의 요소는 있기 마련이다. 만약 당신 친어머니가 당신을 낳았다고 말한다고 해도 그를 반박하려면 반박할 수 있는 것이 논리라는 말이다. DNA검사가 친자관계가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그 시험 과정 자체를 부정하며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것이 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반박하려고만 하지 않고 사실 판단을 보류한다면 실제로 전 세계의 부의 흐름이 정점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상당히 설득력 있다. 그렇다면 이런 부의 정점에 있는 이들이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음모론들 중 이들이 자신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 오로지 다수라는 것뿐인 전 세계 대중을 통제하려고 계획하고 실행하려 한다는 예측은 무리이기만 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제까지 블로그에 포스팅해온 백신 음모론이 나름 예견 가능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대중은 다수인 것만이 자신들의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고 또 향후 양자컴퓨터가 기술적 혁신 한두 가지만 거치면 업그레이드되어 실현되고 그에 언제든 자신을 개선하고 재설계할 수 있는 AI가 탑재되는 미래 상황을 앞두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어떨까? 이제 노동력으로도 대중이 필요 없고 대중이 사무직이든 자신들 스스로를 건사할 조직원으로도 필요치 않는 세계를 앞두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인류를 이들이 부양해야 할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겠는가? 나로서는 그들이 대대적인 인구 조절을 계획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일 뿐이라 판단한다.


빌 게이츠가 인구감소를 위해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고 이야기한 것을 그저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가 하고 판단한다고 해서 이 음모론적인 상황에서는 커다란 오류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현재 오미크론이 등장하고 오히려 백신 접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음모론적인 판단하에서라면 결론은 한 가지다. 인구감소 말이다. 물론 모든 나라의 수반이 인구 감소에 적극 찬동한다거나 그를 함께 기획하고 실현하고 있는 집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들은 단지 시대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정책을 펼치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구 감소 계획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백신 접종을 666이라는 짐승의 인을 성경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언급한 것이 현재 실현되고 있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을 했다. 그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전 포스팅을 검색해 보시고(백신음모론이라고만 검색해도 나올 것이다) 지금부터는 그 이후를 이야기하려 한다. 이젠 백신을 스프레이로 흡입하게 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접종하게 해 대중이 접종에 대한 반감을 거두고 손쉽게 백신에 접근하게 하겠지만 백신의 성분은 같을 것이다. 접종자의 다수는 상관없겠지만 지금처럼 n차 접종이 일반화된다고 한다면 결국 일부 사람들은 부작용을 겪게 될 것이고 그 부작용은 건강에 대한 손상에서만 그치지 않을 것이다. 현재 다수가 약간의 부작용 외에는 괜찮더라 믿고 있겠지만 백신음모론이 사실일 거라 가정한다면 전 세계 인구의 10~15% 가 향후 몇 년 동안 순차적으로 감소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와 백신으로 인하여 말이다. 


전 세계 인구 85~90%는 괜찮을 거라는 말이지만 그것은 인구조절의 첫 단계이기 때문이지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몇 년 후 이들은 다시 대감염병을 퍼트리고 다시 백신 접종을 시작해 다시 인구를 감소시킬 것이다. 긴 세월을 두고 이런 식으로 몇 차례의 대감염병과 백신 접종의 과정을 거치며 이들이 최종적으로 남기려는 전 세계 인구는 5억 명일 것으로 추정한다. 왜 하필 5억 명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조지아 가이드 스톤이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전 세계 인구는 5억 명으로 유지하라는 조지아 가이드 스톤을 그냥 부자가 돈이 남아돌아서 그 거대한 돌에 새겨서 이제까지 남아 대중들이 관광하도록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만든 개인은 누구라고 추정 가능하지만 그에게 조지아 가이드 스톤을 만들라고 지시한 배후는 분명히 NWO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고 한다면 이미 오랜 세월 전 계획한 인구 조절을 그들이 현시점부터 실현해 옮기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해서 그리 착오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과연 대중은 끝까지 이런 인구조절 계획에 당하고만 있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중은 스스로 백신 접종에 반대하고 인구조절 대상이 되는데 저항할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이미 그런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조금씩 일어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쯤에서 그럼 대중이 인구조절 대상이 되는 것에 저항할 때 NWO는 어떻게 대응할 것이야 하는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내가 추정하는 바로는 NWO는 이에 대해 대대적인 학살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미국에서 백신 강제 접종과 예기치 않은 인구감소로 인해 대중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대대적으로 집단 봉기를 일으킬 때 미국 정부는 이를 전국 규모로 무력진압 할 것이다. 이미 그러기 위해 미국 경찰은 대량살상무기들과 장갑차마저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 군대는 이미 이에 대한 모의 훈련까지 마친 상태다.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겠지만 미국 경찰이 21세기 들어 시민 보호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전국적인 규모로 대량 살상용 군사무기와 과도한 장갑차 마저 보유하고 있는 것은 이미 상식이 된 사안이다. 이건 하다못해 나무위키 검색만으로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보호해야 할 대상인 미국시민을 미국군대와 경찰이 대학살하고 무력진압한다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미국의 좀비대응매뉴얼인 코드명 [CONOPLAN 8888] 을 근거로 들고 싶다. 과연 미국 정부가 좀비바이러스가 확산되어 미국이 무슨 괴기영화처럼 변하리라 믿고 그런 훈련을 코드명까지 부여해가며 실현하고 있는 것일까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 음모론을 믿는 사람보다 더 비이성적인 사람이 아닐까 싶다. 


미국 정부와 미 군부가 좀비바이러스로 가정한 것은 미국 시민들의 대대적인 봉기다. 미국 전역에서 일어날 대대적인 무력 시위를 대비한 훈련을 기획하며 그것을 대중에게 있는 그대로 공표할 수 없으니 좀비대응훈련이라고 했다는 것이 가장 이성적인 판단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외국에 노출될 즈음이면 미국 전역에서 EMP 공격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야만 대중의 결속을 방해하고 미국을 제외한 외국 어느 나라에도 미국의 민낯이 공개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 이후엔 미국에서는 정부와 군부만이 인터넷에 준하는 정보망을 운영하게 될 것이다. 그때 즘이면 전 세계에 인구도 그다지 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계획은 전 세계 인구가 현재의 50% 이하로 조절되었을 때 일어나리라 짐작한다. 물론 그전에도 백신 강제 접종에 반대하고 미국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다수 미국 시민들의 대대적인 무력시위는 다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을 것이지만 초거대 학살은 아마도 전 세계 인구가 유의미하게 감소되었을 때 일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은 음모론이다. 그리고 어디 하나 믿어지지 않을 음모론이기에 사람들은 호응하지 않을 것이고 믿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러다 그런 현실을 제법 중장기의 미래에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음모론이다. 하지만 어쨌든 살아남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백신은 멀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연계에서 거대 감염병은 살상 시기를 지나면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취약한 상태로 전파된다. 물론 그런 취약한 상태에서도 세계적 규모에서 해마다 수천 명 정도의 사망자는 지속되고 말이다. 하지만 독감으로 죽은 사람 등 다른 질병으로 죽는 사람들도 각기 질병마다 그 정도는 될 것이다. 이미 코로나19는 약화되기 시작했다. 오미크론이 우세 변이 전파종이 된다면 백신 접종 없이도 쉽게 지나치며 코로나19에 대한 항체를 지니게 될 것이다. 백신 접종을 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건강하게 살아남으시길 바란다. 물론 접종을 한다 해도 85~90%의 인구는 이번 주기에서 살아남겠지만 굳이 백신 n차 접종을 끝까지하다가 사망하는 10~15%에 속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백신음모론, #대학살음모론, #인구조절, #인구감소, #CONOPLAN8888, #미경찰무장강화, #666, #짐승의인, #종말론, #Doom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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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크릿이나 마음의 힘을 논하는 저작들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심리학 이론서들이 양육환경이나 애착관계에서도 아이 역시 상호작용을 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것은 너무 지나친 일반화이며 무성의한 통론이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부분에서 개인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끌어들이는 것이라는 관점은 세상을 너무 편협하게 보는 시각이 아닌가 한다. 


그 주장대로라면 유아성폭행을 당하는 아기, 맞아죽은 아이 역시 그런 상황을 끌어당기고 불러들였다는 논리 밖에는 되지 않는다. 과연 그러한가? 솔직히 성인 부터도 경찰을 부른 상황에서도 침입자로부터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고 자기 집에서 쉬고 있다가 침입자에게 성폭행 당하는 치매 노인도 있다. 모두 한국 최신 뉴스에서 든 사례이다. 이런 상황을 다 본인이 끌어당기고 불러들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부모가 보낸 유치원에서 폭행 당하는 아이들이 무슨 폭행 당할 상황을 불러왔다는 말인가? 


현재의 상황만 보더라도 코로나19를 누가 불러들였으며 백신 접종으로 사망할 상황을 누가 끌어당겼다는 말인가? 이 두 가지의 경우는 이제 와서는 자신의 선택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게 되었다지만 전파 초기 상황을 보자면 대중이 코로나 19를 끌어당겼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국가가 각국 정부가 주도하고 적극 권장하고 있는 백신 접종의 경우도 접종 후 사망의 경우 그 죽음을 본인이 끌어당겼다는 주장은 공감이 불가능한 주장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가 당한 사고나 재난에 마저 자신에게 통제권이 있었다고 믿어야.. 그런 합리화가 되어야 안심하는 경향성이 있는 것 같은데 모든 상황에 대해서 인간이 그런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사례 외에 넓은 시야로 볼 때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의 침공으로 성노예가 된 여성들이나 그 상황을 막으려고 저항하다 죽는 가족들이나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집단 학살을 당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누구 하나 그런 상황을 끌어당기고 끌어들인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역사 앞에 놓인 저항할 수 없는 경우뿐만이 아니라 양육 과정에 노출되는 아이들 누구나가 자신이 처하는 현실을 선택할 권한이 주어진 적이 없다. 양육 과정에서 애착관계가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애착관계가 평생의 호불호와 세계관, 자기인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절대적인 운명의 힘 앞에 놓이는 경우를 생의 초기에 겪을 수밖에는 없다는 말이다. 생의 초기뿐만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의 경우나 압도적 무력(권력) 차이 같은 것 앞에서는 언제든 절대적인 피권한자의 입장에 놓이게 된다. 


"아니다. 우리는 상호작용하는 것이 맞다. 아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호교류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생각해 보라. 아이가 상호교류하며 자기만의 관점과 성향의 특질을 지니게 된다고 해도 다른 자극원(환경)이 주어졌다면 그 아이는 다른 반응을 하며 자라났을 것이며 결국 다른 인격체로 성장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인격체로 자라날 수 있었을 기회비용이랄까 여러 가능성 중 지금의 이 인격을 지닌 인간으로 자라날 환경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져서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데도 이것이 운명이 아니라고만 갑갑하게 주장할 수 있는 걸까?


주어진 모든 영향력을 자각하고 그것을 깨려고 노력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이 3가지의 경우를 하나씩 마주하는 경우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는 것이겠으나 그러기 전에는 운명이란 수레바퀴 앞을 가로막고 선 사마귀 같은 처지가 인간의 생에서 한 대목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일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모든 것은 다 자신이 통제하는 것이라는 관점에만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절대적인 운명의 흐름 앞에 놓여 어떠한 권한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오히려 역설적으로 의지적이던 인물이 완전히 와해되어버리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운명의 힘을 인정해야 운명을 감내하고 운명을 이겨내려 힘을 낼 수가 있다.


자기통제력을 과신하는 사람보다 어쩌면 운명을 믿는 사람들이 피할 수 없는 상황 하에서 좀 더 유연히 대처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을 폭넓게 관찰해 봐야 인정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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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아이는 외로운 어른이 된다 -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관계를 치유하는 시간
황즈잉 지음, 진실희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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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면 아이를 치유하고 내 아이는 외로운 어른으로 만들지 않고자 한다면 필독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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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아이는 외로운 어른이 된다 -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 관계를 치유하는 시간
황즈잉 지음, 진실희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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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온 패턴을 알아차리면 그때부터 변화가 일어난다"


'대인 과정이론에서 개인의 특질이나 개성, 인격은 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발달한다고 보며, 대처 전략을 조정하면 운명을 바꾸고 대인 관계의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변화의 열쇠는 굳어진 대처 전략을 알아차리는 것... 늘 같은 유형의 인간관계에서 좌절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알아차림의 시작이다.'


"... 우리는 가정 안에서 자기 역할을 설정하고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특정 생존 전략을 끊임없이 반복 사용한다."


"어른이 된 당신은 자신의 대인 관계 패턴을 인지할 수 있고 타인이 자신을 그 패턴대로 대하도록 내버려 뒀다는 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이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우리는 상대방에게 불평하는 동시에 관여하고 있으며 자신을 그렇게 대하도록 단련시키고 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는 이유는 지나치게 경험에 의존해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상상 속의 전략을 반복해서 되풀이하다 보니 원치 않는 역할을 또다시 맡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내게 상처를 줄 수 있느냐?"라고 원망할 때는 반드시 스스로 그 상처에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직면해야 한다."


"자신의 대인 관계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알아차리고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인생에서 반복되는 드라마와 패턴을 발견한 사람들은 자기 몫을 기꺼이 책임지려고 한다. 


"변화는 자신에게 몰두할 때 조용히 일어난다.


여기까지가 추천의 글과 서문에서 인용한 본서의 특징과 주제이다. 흔히 말하는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방식을 다룬 많은 저작들이 그렇듯 본서도 문제의 인식을 치유의 시작으로 본다. 내면아이의 상처를 트라우마라는 관점에서 다룬 많은 저작들이 있는데 본서는 대인 과정이론이라는 심리학 이론을 다룬 저작으로서는 처음 대하는 책이었다. 


본서가 현재의 문제는 어린시절에 있다고 해석하도록 인도하는 제목을 갖은 것은 보호자의 양육 방식과 부모와 본인 사이의 애착 관계 유형이 인간의 정서적 관계적 특질을 이루는 압도적인 힘을 인식하기에 그런 것이리라 판단된다.


보호자의 양육 방식을 통해 아이는 세계관이 형성된다. 세계를 대하는 방식뿐만이 아니라 자존감이랄까 자기인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저자가 말하듯 어린시절에는 어른들이 자신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생존의 길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를 살만한 안전한 곳으로 인식할지 투쟁하고 쟁취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할지 불안하고 위험하니 회피해야 하는 대상으로 인식할지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게 만드는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는지는 모두 영유아 시절의 경험과 해석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영유아 시기의 아이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각기 다 다르다고 할지라도 자극원이 전혀 달랐다면 그 아이는 전혀 다른 반응양식을 가지고 자라났을 것이다. 그렇게 자극원이 달랐다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되었을 것이다.  


저자와 관련 분야 심리학자들뿐만이 아니라 대체의 거의 모든 심리학자들은 인간관계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니 아이들의 경험도 결국에는 아이들의 영향력이 작용하는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결국에는 씨크릿이나 마음의 힘을 논하는 저작들에서처럼 끌어당김의 법칙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다. 본서에서도 자신이 끌어들인다는 표현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절반의 진실이고 다른 절반에 있어서는 유사 진실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아 성폭행을 당하는 아기가 그런 현실을 끌어당기고 그런 가해자를 끌어당겼다는 것인가? 아동이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다 맞아 죽었다면 맞아 죽을 짓을 했으니 그렇게 됐다는 말인가? 성인의 현실이라고 해도 급진 이슬람 폭력단체가 습격하고 공략한 지역에서 성노예가 되어버린 여자들이나 내 딸은 안된다며 맞서다 죽어간 가족들이 그런 상황을 끌어당기고 그런 가해자들을 끌어들였다는 말인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집단 학살을 당하거나 참수 당하는 사람이 정말 그런 현실을 끌어당기고 그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 생각하는가 말이다. 먼 이슬람 지역까지 논하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자기 집에 쉬다가 침입자에게 강강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사람들 그 어느 누구도 그런 현실을 끌어당기지도 그런 사람들을 끌어들이지도 않았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통제권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내가 잘 대처했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권한이 자기에게 있었다고 합리화할 수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듯하다. 자신에게 전혀 아무런 통제권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 극도의 거부감을 느끼고 저항하는 것이 인간의 특성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었던 상황도 존재한다.


아이의 숨소리만 들려도 시끄럽다면서 위협하고 언제 폭행할지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단둘이 한 공간에 있는 아이가 무슨 맞을 짓을 할 수 있을까? 아이도 이쁜 짓을 한다며 다 제 할 탓이라는 부모들도 있다지만 어느 아이든 자폐스펙트럼만 아니라면 부모의 환심을 살 행동을 하기 마련이다. 미운 짓을 하는 아이 역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부모의 무관심을 받느니 꾸지람이라도 들으며 관심을 받아보려는 심리가 있다는 말이다. 저자 역시도 나쁜 아이가 무시당하는 아이보다 낫다고 진단하고 있다. 나쁜 아이라는 것도 아이의 생존 전략의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맞다가 죽을 지경이 되는 아이들은 그런 생존 전략을 선택할리 없다. 관심과 무관심의 문제를 떠나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 폭력 속에서 폭력을 불러오는 전략을 선택할 아이는 없다는 말이다. 모든 것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다. 지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아이에게 정신적 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선택하는 인간을 아이가 맞을 짓을 했을 거라며 이해하겠다는 인간들은 단 한 번도 생존의 위협을 경험해본 적 없는 이들일 것이다. 


본서에서는 많은 주제와 관점들을 이론적 바탕 위에서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론들을 전하는 종결 대목에 원가족 경험이 중요한 이유는 그를 통해 갖게 되는 습관이 어떤 특질을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특질은 또 다른 상호관계 속에서 때론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특질, 관계에서의 특징을 인식하고 새로운 특질을 형성하면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진단을 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양육자들의 양육 방식과 그들과 자신 사이의 애착 관계에서 갖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자라 문제가 되면 스스로 풀어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쉽게 들리지만 사실문제 해결의 실마리 정도가 아닌가 한다. 이 내면 아이의 문제가 실마리만 있으면 쉽게 풀리는 문제였다면 사회가 안고 있는 그 수많은 난제들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저자는 유교 가르침인 군군 신신 부부 자자 君君 臣臣 父父 子子를 논하며 이러한 위계질서 속에서 자녀는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며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다고 말하고 있다. 동양에서는 누구에게나 청소년 시절부터 상식인 그대로 결국에는 부모가 부모 다울 때라야 자식이 자식 다운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정서적으로 결핍된 부모에게서 오히려 안정적인 든든한 자녀로 자라나는 역기능이 일어나는 경우도 물론 없지는 않으나 부모가 정서적인 안정성을 갖고 관계적으로 원활할 때 자녀에게서 그 순기능을 바랄 수 있는 것이다.


본서는 자신의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데도 물론 유용하겠지만 자신의 문제를 세습하고 싶지 않은 부모들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저작이 아닌가 싶다. 중반부터 자잘한 오탈자가 지속적으로 출현해 거슬릴 때가 있지만 그건 중쇄를 하며 교정하리라 본다. 저작 자체만의 가치를 논하자면 소장하고 거듭 보는 것이 상당히 유익하리라 생각되는 책이다.


본서에 등장하는 31가지 사례 속에서 자신의 유형을 거듭 찾게 되는 사람이라면 다시 한번 밑줄을 그으며 읽어도 좋을 것이다. 자신의 내면 아이를 치유하고 자신의 자녀에게 부정적 특질을 안겨주지 않기 위해 몇 번이고 읽어봐도 좋을 책이라고 권하고 싶다.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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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
앤 헬렌 피터슨 지음, 박다솜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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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제기만 있지 해결안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무엇보다 양자컴퓨터와 AI가 결합해 스스로 하드웨어를 개선하고 재설계하고 AI가 스스로를 업그레이드 하여 이전 어느 시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기술 혁신이 초단위로 일어나는 초대량 실업시대에 m세대는 다음세대에게 같은 질문을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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