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3년의 진실 - 록다운에서 백신까지 코로나19 팩트체크
조지프 머콜라.로니 커민스 지음, 이원기 옮김 / 에디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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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저자 중 주저자인 조지프 머콜라 씨는 본서를 통해 진실을 알리면서 동시에 자신의 사이트를 통해 코로나 방역과 백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왔던 인물이다. 임상의로서 충분히 의학적이면서 임상적인 결과들을 통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도 하다.

 

본서에 대해 안아키류의 책이라던가 반정부주의적이다 반지성주의적 저작이다는 등의 언급도 있기는 한데 본서 저자의 주장과 mRNA 요법의 창시자인 로버트 말론 박사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자 면역학자인 뤽 몽타니에 박사 등의 경고는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이를테면 코로나19와 그 백신이 최첨단 과학기술이 집약된 우주비행선이라면 로버트 말론 박사는 그 설계자이자 그것을 완성한 첨단과학 엔지니어이고 고인이 되신 뤽 몽타니에 박사는 그걸 기술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첨단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대중이 전문가라고 믿고 있는 방역관계자들은 그저 동네 카센터 정비사로 보면 될 것이다. 기존에 설계자이자 첨단과학 엔지니어인 로버트 말론 박사와 첨단 과학자랄 수 있는 뤽 몽타니에 박사가 그 우주선에 AB의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과부하가 걸리며 폭발할 수 있다는 경고하는 데도 불구하고, 동네 카센터 정비사들이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며 동네 카센터 정비사 말대로 하고 있었던 게 방역과 백신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대응이었다. 그리고 생명을 잃거나 부작용을 앓는 피해자가 대대적으로 양산되어왔다.

 

본서의 주내용은 첫째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에 대한 진실이고 둘째가 백신에 대한 문제제기 셋째가 방역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이어져온 배경과 그와 함께 종국에는 디지털화폐와 대중의 생체정보 데이터화가 대중통제의 기반이 되어갈 것임을 전체주의화 되어온 세계의 양상을 돌아보며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번외로 정부가 효과가 미미한 백신과 치료제를 강권하면서 명백히 저렴하고 효과적인 기존 치료제에 대한 대중의 접근을 막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본서는 미국에서 2021년 출간되고 한국에서는 20226월 출간된 책으로 본서가 출간된 당시에는 음모론으로 취급받고 매도당해 오고 검열로 삭제되어 오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중국 우한 연구실 확산설을 강력히 주장하는데, 이건 올해부터 미중갈등이 심화되며 미국의 중국에 대한 대응이 강경해지며 정치적인 의도에서인지 중국 우한 연구실 확산설이 기정사실화되어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견해는 일견 타당해 보인다. 자연 발생설을 지지하지 않는 증거들이 넘쳐나기때문이다. 우한의 수산 시장과 박쥐 서식 동굴은 1000 km 이상 떨어져 있는데다가 당시는 박쥐들이 겨울잠을 자는 시기였다. 그리고 우한 수산시장에서는 박쥐를 요리해서 판매하거나 섭취한 정황이 없었다고 한다. 또 중국에서 최초 보도 되었다가 이후 중국의 정부 검열로 삭제되었으나 바이러스 확진 최초 환자가 우한 연구소 실험 연구원이라는 중국 매체 기사가 있었다고 한다.) [플랜데믹]이란 저작에서도 강력히 주장되어온 우한연구실에서의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능획득 연구에 대한 주장도 담고 있다. 본서에서는 로버트F. 케네디 주니어 미의원의 인터뷰와 미국 질병청 산하 앤서니 파우치의 NIAID가 우한 실험실 과학자들에게 370만 달러를 제공한 문건을 확보했다는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의 보도를 인용하고 있기도 하다. [플랜데믹]에서는 우한실험실에 빌 게이츠의 지원금이 전달되었음을 주장하는 인터뷰를 싣고 있기도 하다.

 

저자의 첫 번째 주장과 문제제기들은 사실로 판명되었고 두 번째 백신에 대한 문제제기까지도 최근 사실로 판명되었다. 미국 법원의 화이자사 백신 자료에 대해 공개하라는 판결 이후 최근까지 점진적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는 화이자 백신의 시험 결과 공개와 백신 치명율이 3% 이상이라는 보고는, 코로나19 치명율이 고작 0.1%인 것을 감안할 때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1000명 중에 1명을 죽이지 않기 위해 100명 중에 3명이 죽는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이 납득이 갈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의회에서도 화이자사 관계자가 참석해 백신이 치료효과가 있다는 증거가 없었다는 증언으로 유럽 의회측은 화이자사에 책임을 묻겠다는 발언을 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지도 않았으며 관련 영상도 유투브 검열로 차단당하는 지경이다. 본서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유럽과 남아메리카, 태평양 남부, 한국까지 작년인 2022년 중순 기준으로도 전 세계 5개국에서 백신 속 나노물질 검출을 의학자들이 보고한 상태지만 이 역시 세계적인 검열로 이슈화되지 않고 있다.

 

저자의 말마따나 기업과 각국 정부가 서로 연계한 정책으로 바이러스와 백신에 대한 정보에 대중이 접근하는 것을 차단해 왔고 이 과정에서 초극부층의 자산이 코로나19 확산 동안 1조 달러 이상 증가했다. 대중이 죽어가고 부작용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와중에, 소상공인들은 방역정책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초극부층의 부는 증가한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서민에게서 초극부층으로 부가 이전되어 간 것이다. 이 과정을 인위적인 것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을 테지만 거대 제약사의 신약 개발과 판매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면 보다 효과적이고 저렴한 치료제의 유통이 금지되고 약효가 미미하거나 거의 없고 게다가 증상을 중증으로 발전시키는 신약을 더 유통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임상의들이 주장하고 또 대거 논문으로 증거되기도 하는 의약품이 되려 배제되고 임상의들이 위험하다고 하는 신약을 대대적으로 보급한 정책에 의문이 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각국의 방역정책이 최종적으로 WHO에 방역을 전담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다시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에 WHO에 방역 권한을 위임하도록 정책 방향이 결정되는 과정을 지켜보아온 대중으로서는 저자가 말하는 전체주의화 되어가는 세계상을 함께 목도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싶다.

 

본서의 저자가 이미 예견한 것처럼 CBDC와 개인의 결제 시스템과 개인 (생체와 정보) 데이터가 연계된다면 이후 대중통제가 용이한 전체주의화는 당연한 결론일 것이다. 방역이라는 것이 기술력에 더해져 보다 더 쉽고 강력하게 대중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이번 팬데믹을 거치기 전에는 대부분 누구도 예측 못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레이트 리셋이 향하는 결론이 대중이 노예나 가축이 되는 세계일 거란 걸 짐작 못 했거나 팬데믹 이후에도 설마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본서부터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알아도 당하고 몰라도 당하겠지만 누구 손에 어떻게 당하는지는 알고 당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당할 때 당하더라도 최대한 저항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내용은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정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본서에 대한 다소 간략한 리뷰였고 코로나19 팬데믹과 백신접종 동안의 문제들에 대한 보다 더 상세한 경과를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아래와 같이 포스팅들을 제시한다. 맨 아래는 이전에 쓴 [플랜데믹]에 대한 리뷰인데 본서의 리뷰와는 다르게 세세히 당시 경과와 정보들을 언급했다. 유익한 시간 되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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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라탄이즐라탄탄 2023-07-22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체주의라는 단어를 보면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일반 대중들의 행동하나하나가 통제되는 사회라는게 참 무섭다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장 근래에는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할 당시 백신패스 등을 통해 일반 대중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통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물론 명목상으로는 바이러스 확산 방지였지만..)리뷰해주신 책이 제가 과거에 느꼈던 느낌과 관련된 어떤 시각을 제시해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하라 2023-07-22 22:38   좋아요 1 | URL
현재의 세계상이 1984 보다 더 치밀하고 견고하지 않나 싶습니다. 자발적인 대중통제 요구를 유도하고 있고 어떤 소설 속 배경보다 디지털 화폐와 결제시스템, 개인 데이터의 통합을 통한 통제는 유효할 것 같습니다. 팬데믹과 전쟁, 그리고 미국에서 시작된 사회적 기준과 모럴의 카오스로 야기되는 대혼돈 시대에 대중의 기대하는 문제 해결자 마저 준비해 두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가짜 문제해결자는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대중의 반발을 한시적으로 저지할 임시방편만 제시할테지만요. 본서가 즐라탄님께서 원하는 책이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메시지 구약 역사서 영한대역 - 일상의 언어로 쓰여진 성경 옆의 성경 The Message 시리즈
유진 피터슨 지음, 김순현 외 옮김, 김회권 감수 / 복있는사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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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모세오경에서 간략히 언급했던 왜 조선 시대에는 천주교를 넓게는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는가를 다시 한번 짚고 이어서 조금 이야기하려 한다. 하긴 더 이야기한다고는 해도 모세오경에서 언급한 이야기의 연장선상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말이다.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인의와 도덕을 중시했으며 그건 인간의 이해와 지성이 수용하는 방향에 따라서였다. 무속 신앙적인 맹신을 조선 시대 선조들께서는 즐기시지 않았다. 그런 방향에서 보면 왜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사람들(신앙인들)을 죽이면서까지 기독교를 멀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삼강오륜이나 인의와 도덕, 덕의 다스림과, 신구약에 기록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의 역사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세오경과 역사서만을 보더라도 하나님을 군주로 보던 창조자이니 아버지로 정의하던 하나님과 아담과 하와 이 셋 사이에는 임금과 신하의 벼리도 아버지와 자식의 벼리도 지아비와 지어미의 벼리도 없다. 하나의 금기만을 주고는 그것을 깨었다고 신하이자 자식을 저주하고 버렸으며, 아담과 하와 또한 자식이자 신하라고 보아도 그들에게도 신의와 도덕율이 없었다. 아담과 하와 사이에도 남편과 아내가 지켜야 할 기준이 없었다. 그들이 낳은 자식들도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였다. 아브라함의 둘째이자 유대인들의 선조인 이삭은 자신의 아비를 속여서 상속받았으며 룻의 딸들은 소돔과 고모라 이후 자신의 친부를 돌아가며 강간해서 대를 이었다. 심지어는 시아버지를 속여 잠자리를 가져 대를 잇는 이야기도 실려 있는 것이 구약이다. 그들의 신은 아비에게 그 가장 사랑하는 자식을 죽이기를 요구하는 신이기도 했다. 물론 심장을 찌르기 직전에 중단시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룻의 경우도 그렇고 그 이후에도 그렇지만 신 혹은 신의 사자라고 판단하거나 죄 없는 객이라고 판단하는 경우 일부 사람들이 그 신 또는 사자, 죄 없는 객을 동성 강간하려 하면 자신의 남자 경험 없는 딸을 내어줄 테니 이들에게 무례하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딜을 하기도 하는 작자들이다.

 

무엇보다 거룩한 진멸은 어쩔 것인가? 타국을 공격할 때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은 현재의 급진 이슬람 무장단체와 다름없이 성 노예로 삼을 성 경험 없는 어린 여성 몇몇만 살려두고 애, 어른, 남녀를 구분 안 하고 모조리 죽였다. 사람만이 아니라 가축까지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죽였다. ‘호생지덕도 인간으로서의 인지상정도 더더욱 이라는 것도 찾아볼 수 없는 종자들이었다. 타국은 적이라고 규정되면 모조리 죽여 없애며 자신들의 혈통만을 확장한 것이다. 물론 이들의 지상의 규범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기는 하다. 무조건 확산하고 보는 게 이들이 신으로부터 받은 지령이니 말이다. 하지만 규범도 원칙도 십계명이라는 단조로운 몇 가지만으로 번식하고 영토만 확장해 간다는 건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과 [우리 문명의 마지막 시간들]에서 톰하트 만이 이미 정의했듯 암과 바이러스와 다를 바 없다. 구약만 보자면 이 종교는 인간이 따라서는 안되는 암이고 바이러스인 것이다.

 

구약에서는 어떠한 지성이나 합의에 의해 도출된 도리가 아닌 신탁을 통한 역사가 이어진다, 그들의 신은 생육하고 번성하면 한마디로 번식하고 확산만 하면 거룩한 진멸이라는 이름의 살육을 장려하고, 성 노예를 권장하며, 딸들이 지아비를 며느리가 시아비를 강간하거나 속이고 자고는 애를 낳아야 하고, 늙은 아비를 속여 재산을 탐해도 되고, 신의 명령이면 인지상정도 무시하고 자식도 죽이려 해야 사랑을 주는 신이다.

 

이는 신약에서 이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그들의 계명이 허울뿐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가 등장해 하나님이란 존재를 한껏 포장한다고 해도 하나님이란 존재가 사랑이었던 적은 없었다는 말이다. 그들 유대인의 하나님일 수는 있겠지만 우주 만물을 창조한 신이라면서 구약에서 보여주던 그런 잔혹함과 악랄함을 인간에게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선택했기 때문이라 할 테지만, 인간을 게임 속 캐릭터나 전투용 게임의 소형 로봇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면 거룩한 진멸이라는 지시는 가당치도 않다.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인간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라면 인간을 소모품으로 여길 뿐이라면 인간은 왜 그에게 굴종해야 하는가?

 

사실 깊이 들여다보면 성경을 읽고도 하나님을 신앙하는 자는 불균등한 무력차, 압도적인 힘이 하나님에게 있다고 여기기에, 굴종하면서라도 살아남고 그가 주는 단맛을 빨아 보고 싶은 게 다일 것이다. 무의식 깊이에서 이런 신에게 정서적으로 감동해서 섬기는 자가 어디있겠나? 압도적인 무력차가 아니라면 스스로가 전지와 전능과 편재와 불멸할 수 있다면 누가 그따위 신에게 굴종하겠는가? 그리고 전지할 수 없고 전능할 수 없고 편재할 수 없고 불멸할 수 없다고 해서 그런 신이라는 존재에게 굴종해야 할 이유도 없을 거다.

 

예수는 자신들의 신이 사랑이라며 빛의 자녀가 되라고 했지만, 그 사랑과 빛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건 결국 순교라는 이름의 자발적인 죽음과 종교전쟁과 마녀사냥의 시대를 거쳐 홀로코스트에 이르렀다. 홀로코스트가 왜 기독교의 탓이냐 하겠지만 당시 유럽 인구는 절대다수가 종교인이었고 그 종교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종교였다. 크리스천이 유대교인들을 박멸하던 게 홀로코스트이기도 한 것이다. 알곡과 나락을 구분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유전적 우성인자와 유전적 열성인자를 가르는 우생학과 다름없고 더 거슬러 자신들만이 선택받았다는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 발전을 거친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근래에는 예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저작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도 예수라는 사람은 행동과 말이 달랐고 그의 말에서도 일관성이 없었던 자이다. 유교에서는 공자의 오도일이관지라는 말을 깊이 여기며 가르침이 하나로 통하는 것 즉 일관되는 맥락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예수의 행적이 표리부동한 인간의 분열적인 정신과 사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사랑을 이야기하며 겉옷을 벗어달라면 속옷까지 벗어 주고 잠시 같이 가자면 한참을 같이 가라던 이가 자기 어머니를 곁에 두고도 누가 내 어머니이고 누가 내 형제들이란 말이냐라는 선긋기를 시작할 때, 유학자들에게는 예수가 인간 말종으로 보였을 것이다. 어느 선비가 자신의 어머니를 부정하는 자를 성현으로 여기겠는가?

 

그리고 예수는 사랑을 말하다가 돌연 나는 너희에게 칼을 주러 왔다 불을 던지러 왔다며 아비와 아들이 서로 대적하고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대적하게 하려 왔다는 말을 한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예수를 따르던 이들은 그가 사회를 변혁시키려 하는구나’ ‘이 초능력자는 메시아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특히나 유다가 그리 믿었기에 내가 떡을 찍어주는 자가 그이니 니가 할 일을 속히 행하라는 말에 바로 일어나서 로마군에게 예수가 어디있는지 고발한 것으로 보인다. 유다 복음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아마도 유다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예수 사후에도 오랜 후 종교회의를 통해 삼위일체설만을 정설로 받들기 전까지 예수를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는 종단들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예수를 신앙하는 대다수의 종단들은 대부분 예수를 메시아라고는 믿었다고 한다. 예수는 무력하게 죄수가 되어 형벌을 감당하다 죽었는데도 메시아로 추대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생존해 있던 시기에 그에 대한 그의 추종자들의 시각은 어떠했겠는가? 이미 홀린 사람들에게는 분명 그가 사회를 변혁시키러 온 자로 보였을 것이고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유다 역시 예수가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과정으로 유다 자신이 어떠한 역할을 해주면 죄수로 끌려가기 전에 폭동을 일으키던가, 예수의 초능력으로 폭동의 효시를 일으키리라 믿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유다 복음에서 말하듯 예수가 부추긴다고 해서 배신자가 되어 자살할 이유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예수는 어떠한 혁명의 시도도 하지 않았고 그저 십자가에 매달리자 마자 다 이루었다를 외치고는 십자가에 오래 매달려 있게 되니 엘리엘리 라마사박다니라며 신이여 신이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를 외친 후 비탄에 빠지다 죽었을 뿐이다.

 

그는 사랑을 외치면서 (당시 십일조 하려면 당연히 환전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환전상에게 테러를 했으며 불을 던지러 왔다. 칼을 주러 왔다면서 마치 사회 변혁을 이루려는 것처럼 바람을 잡아놓고는 무력하게 죽었다. 도무지 일관성이 없고 표리부동하지 않은가?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신구약을 두루 읽어 봤다면, 주님이라며 신에게 가축을 죽여 제를 올리고 그 주님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살육하고 가족 간에 죽이고 강간하며 그저 암이나 바이러스처럼 확산만 하면 된다는 종교 그리고 어느 시점 포장을 하고 사랑을 외치지만 알고 보면 순교라는 이름의 자발적인 죽음을 장려하고 서양사까지 보면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 등으로 피비린내 진동을 하게 하는 이 종교를 도대체 어떻게 정상적인 종교라고 판단했겠는가? 천주교 박해는 비단 조선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든 정당성이 너무나도 깊고 크게 있는 행동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시대에도 사이비 종파만이 아닌, 이단으로 분류되지 않는 천주교와 기독교 대부분의 종파들의 해악은 그들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종교 자체가 이 세계에 뿌려진 악성 바이러스인지도 모르겠다. 이 바이러스를 치료할 치료제 같은 존재가 등장한다면 그가 바로 메시아이고 마이트레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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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캐릭터 심리 사전 - 창작자를 위한 캐릭터 설정 가이드 문제적 심리 사전
한민.박성미.유지현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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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기를 일상에서 늘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간헐적으로나마 창작활동을 이어오며 다소간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다만 창작이나 작문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바는 없다 보니 늘 부족함을 자각하게 된다. 그래서 더더욱 집필 관련 책들을 관심 있게 읽고는 하는데 본서는 그런 창작과 작문을 위한 정보이기도 하고 늘 흥미를 느끼는 인간 심리에 대한 정보까지 두루 담고 있다 보니 끌릴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사람이 문제만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문제를 자각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존재이기도 할 텐데 그런 이유로는 본서는 인간 심리의 문제를 다룬 책으로만 보자면 사안의 일부분만 다룬 책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사람의 심리적 문제들을 돌아보고 소설 속 인물 설정에 이런 문제들이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를 가늠해 보는 활동은 창작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과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역량을 다할 것만 같다. 창작만을 위해 읽는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에 몇 조각을 이해하게 되는 것 같고, 살아오며 마주친 가깝고 먼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는 것만 같은 건 본서를 읽으며 갖게 되는 부수적인 이로움이 아닐까 한다.

 

나를 타인을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목적에서의 데이터 수용도 유익을 주지 않나 싶다. 두서없이 모으는 다량의 데이터 수집도 결국에는 그 자료들 안과 밖에서 맥락을 갖게 하고 끝내 한치 두치 만큼의 배움을 가져다준다. 어떤 의도의 독서든 영상이나 예술 감상이든 점점 더 배움을 가져다주고 일깨움을 가져다준다. 본서를 읽으며 성장할 수 있다. 그만큼의 성장 후에 좀 더 깊이 들어서면 더 큰 일깨움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창작활동에서의 이로움 만해도 본서는 마지막까지 이 이상심리에 대한 지식들을 창작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을지 일깨워 준다. 실용적인 면과 성찰이란 면 어느 면에서도 부족하지 않은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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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과 힘의 용사들 - 자연계 4대 힘을 쥐락펴락한 과학자들의 짜릿한 우주 정복기
곽재식 지음 / 다른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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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0 월요일에 배송받고 20230713 목요일 아침 다 읽었다. 책이 워낙에 스토리텔링이 장난 아니고 저자분의 광범위한 지식 덕분에 한국의 역사적 인물들과 역사의 일부도 기억에 남는다. 다만 책 제목은 [곽재식과 힘의 용사들]보다는 [힘의 여전사들]이나 [힘의 여신들]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책의 목차와 줄기를 이해하고 선택하는 분들이 대다수일 거라 우려를 크게 하지는 않지만 무턱대고 제목만 보고 책을 선택하는 분들께서는 다소 차별적인 에피소드들에 놀라실 수도 있다. 저자는 [들어가며]에서 잘 알려지지 않는 과학자와 과학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서술했다고 하는데 남성은 한 명도 없이 여성만으로 구성된 에피소드들이다. 힘의 용사들 8명은 몽땅 여성들만 서술되어 있다. 여성만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또한 독자가 되기 전에 선택권이라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알려주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여성만 언급하고도 그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 또한 차별적인 처사가 아닌가 싶다. 남성만 언급되어있는 경우가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다.

 

우선 본서에 관심이 간 건 4대 힘에 대한 뚜렷한 정의가 머릿속에서 희미했기 때문이다. 4대 힘에 관한 이야기만으로 구성되어있는 저작이기에 4대 힘에 관한 명확한 이미지가 뇌리에 남을 것 같았다. 기대만큼이나 4대 힘에 대해 간략하지만 뚜렷한 의미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하기도 하듯 4대 힘은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으로 나누지만 근래에는 전자기력과 약력을 하나의 힘으로 보아 3대 힘으로 분류하기도 하며, 대통일 이론에 대한 과학자들의 열의로 모든 힘을 하나의 힘이 다르게 보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본서의 구성과 서술은 4대 힘에 대한 명료한 설명보다는 그와 관련지으며 여성 과학자들의 일화랄까 약력을 서술해 주는 에세이랄 수 있다. 캐서린 존슨이나 헤디 라마 같은 영화와 다큐에서 소개되는 여류 과학자나 발명가 그리고 우젠슝 같은 저명한 여성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봤지만 다른 과학자들과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 보는 이야기들이었다. 과학사에서 여성이라고 차별받거나 배제되어온 역사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성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과 유익을 알지 못하던 동서양 넓게 상식처럼 이어져 온 관행과 역사가 있었기에 이런 차별적인 결과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 불구하고 뛰어난 여성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당시 시대 상황으로서는 남다를 환경적 이점을 통해 교육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자신의 역량을 역사에 남기기에 이른 것 같다. 우젠슝 외에도 리제 마이트너 같은 과학자는 현대 과학사에 한 획을 남기는 과학자가 아니었나 싶다.

 

본서는 4대 힘 각각을 실마리로 각 여성 과학자들의 에피소드를 풀어내고 있는데 그와 함께 관련 문학과 영화, 당시 각국의 세태와 풍속, 한국의 역사까지 두루 돌아보는 인문학적 에세이다. 서술이 너무도 매끄럽고 에피소드와 인문학적 문장이 너무 절묘하게 이어져서 재미와 흥미가 지속되는 책이기도 하다. 요즘같이 여성의 영역을 여성들 스스로의 힘으로 되찾아 가는 시대에 딸을 가진 학부모들은 꼭 한 번쯤 아이에게 소개해줄 책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초인공지능으로 발전하기 직전이고 로봇기술이 스마트더스트까지 만드는 시대이다. 나노기술, 유전자 기술 등도 특이점이 있다면 그걸 넘어선 시대일 것이다. 그렇기에 순수 인간지능만으로 또 순수 인간의 연구만으로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이루는 시대는 이제 곧 끝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과학을 기억하기 위해서도 본서와 같은 저작들이 두루 출간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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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공격에서 나를 보호하라 - 당신의 오라 강화 매뉴얼
조곡쉬 지음, 서강익 옮김 / 물병자리 / 2015년 12월
평점 :
품절


[사이킥 셀프 디펜스]라는 제목으로는 200511월 출간된 책이고 [마음 공격에서 나를 보호하라]는 제목으로는 201512월 재출간한 책이다. 내용 자체가 상당히 오컬트와 수행을 애호하는 사람들을 매혹할만 한 내용이다.

 

저자이신 마스터 조곡쉬는 중국계 필리핀인으로 화학 엔지니어이면서 사업가인 사람이라고 한다. 동서양 힐링의 방법과 원리를 연구하고 있다는 데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저작 등 다양한 힐링과 명상 책을 집필하였으며 그의 프라닉 힐링 센터와 협회가 전 세계 45개국에 설립되어 있다고 한다.

 

국내에도 [프라닉 힐링], [빛깔 프라닉 힐링]2002년과 2003년 출간되었고, [프라닉 정신요법]2005년 출간되었다. 본서 [사이킥 셀프 디펜스]까지 출간될 때마다 읽고 실행해 보았는데 꾸준함이 없어서인지 눈에 드러나는 효과를 실감하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어느 사이엔가 그저 일독한 책들로 남아 버렸다.

 

다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동명의 다이온 포춘의 저작을 읽고 좀 더 종교성을 띠지 않으면서 명상 수행자가 의지할 수 있는 치유체계는 무엇일지 관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마스터 조곡쉬의 치유 방식도 다소 간의 종교성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다이온 포춘의 저작처럼 전적으로 신에게 의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호감이 갔다.

 

다이온 포춘의 방식은 신에게 의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너무 단조롭고 치유기법으로 제시되는 방식이 너무 폭이 좁았다. 마스터 조곡쉬의 기법들이 비교적 호기심과 의욕을 일게 하는 맛이 있다. 실제 운용하기도 쉬우면서 효과적일 거라는 믿음을 준다

 

사이킥 자기방어 체계에 다시 관심이 간 것은 수행을 이어오던 시기와는 다르게 하반신이 마비된 올 320일 이후 어느 시점부터 내적 안정성이 깨어지고 있는 것을 깊이 느꼈기 때문이다. 하반신 마비 이후 회복 후에도 평소와 같은 수행의 일정함 속으로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적 안정이 점점 더 깨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뜸하던 수행에 박차를 가하기는 했지만 무언가 다른 접근도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동명의 다이온 포춘의 저작을 읽고 이 책으로 다시 들어섰는데 너무 오랜만의 재회라 처음 펼치는 책 같은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가르침대로 실행해 보았다. 어느 정도의 완화는 느꼈지만 기대만큼 강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가르침이 등장할 때마다 바로 실천해서 그런듯하다. 마지막 장을 읽으며 제시된 기법들을 완성 시키는 테크닉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완독을 했으니 이제 총체적인 방식으로 다시 실천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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