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질문의 책 27
자크 파월 지음, 박영록 옮김 / 오월의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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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서민의 피를 빨아 기득권층의 배를 불리는 과정이란 걸 되새기게 해주는 저작이다.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시간 날 때가 아니라 시간 내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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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 히틀러와 독일·미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질문의 책 27
자크 파월 지음, 박영록 옮김 / 오월의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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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원제가 [Big Business and Hitler]로 자본이 히틀러와 나치스 그리고 전쟁을 왜 또 어떻게 지원했는가에 대한 내용을 기술한 책이다. 저자는 역사학과 정치학 모두에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캐나다의 학자이자 교수로 2차 세계대전사에 대한 그의 책들은 북미와 유럽 여러 국가에 출간되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을 좀 더 상세히 알고 싶던 차에 본서를 접하고는 본서와 그의 전작인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를 읽어보려 했는데 본서를 읽고 전문적으로 파고들려는 것이 아니면 이 정도쯤도 괜찮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서는 서문에서 역사가 변천해오며 계급사회에 변화도 뒤따랐는데, 이 시대에는 자본가들, 기업가들과 은행가들이 과거의 왕족과 귀족과 제후와 지주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이 자본가들은 자신의 이익과 계급의 현상유지를 위해 전쟁을 불러오기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어찌 보면 세계대전들도 자본가들의 의도와 지원으로 발발하고 지속되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전제인데, 본서를 읽고 보면 그러한 주장이 일견 타당하다는 입장에 서게 된다. 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은 전쟁배상금과 대공황으로 인해 과도한 사회부담을 안게 되었으며, 당시 피어오르던 공산주의로 노동자와 사회 피지배층이 기존의 사회를 전복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지배계층의 우려가 커나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때에 국가회주의독일노동당이라는 이름의 당에서 히틀러가 나섰으며, 이 노동자를 위하고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을 대변할 것만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의 당에서는 돌격대와 같은 단체에 저소득층을 끌어모으며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독일의 자본가들은 이 시기 이전부터도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의 진면목을 알아본 양 지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히틀러의 입지가 다소 생기기 시작하고부터 히틀러는 부자들만 모인 자리에서 자신은 자본가를 우대하고 기업의 활성화를 위하며 공산주의가 이 땅에 자리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앞장설 것이라는 식으로 연설하여 자본가들의 호의를 사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끊임없이 재무장화와 공산주의 타파를 주장했고 그를 위해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며 자본가들의 사업가적 이윤추구의 욕구를 자극했다. 히틀러는 나치의 제3제국이 수립되는 시기 피의 숙청 사건으로 기록되는 독일 내 노동당과 사회당의 인사들을 모조리 살해하는 사건을 일으켰으며, 자신의 돌격대인 집단의 거의 모든 노동자들과 저소득층을 죽여없앴다고 한다. 히틀러는 자본가들에 그들의 사회가 전복될지 모른다는 불안을 우선 해소해준 것이다.

 

그 이후부터가 압권인데 독일이 재무장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지속하는 동안 자본가들의 사업은 나치스에 무기 생산과 물자 공급을 하며 역대급으로 확장되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 환경은 극단적으로 나빠져 노동 시간이 1932년 주당 41.5시간이던 것이 1938년 주당 47.9시간으로 늘었으면 전시에는 주당 66시간으로 확대되었다. (현대의 OECD 평균은 주당 40시간이 약간 넘으며 한국의 경우도 독일의 1932년 수준과 비슷한 정도다) 그 외에도 노동자들이 작업 중 병을 얻는 경우도 극단적으로 늘었으며, 보험료는 그대로인데 국가의 보험지출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여, 국민들이 지불하는 보험료가 모두 전쟁 비용으로 전용되기에 이른다. 또한 전쟁포로는 강제노동에 동원되어 거의 대다수가 과로로 사망하는 지경에 이른다. 포로만이 문제가 아니라 주당 66시간을 노동에 동원되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동결되어 물가 상승률까지 고려한다면 임금이 대폭 삭감된 것과 다름없었다. 이 과정에서 전쟁으로 천문학적 수익을 올리고 있는 기업과 금융 자본가들은 지불할 임금마저 동결되었기에 거침없는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본서는 1부가 독일 자본가들과 히틀러의 밀월을 그리고 있다면 2부가 미국 자본가들의 히틀러 지원과 그로 인한 혜택들을 다루고 있다. 미국의 자본가들도 전쟁 이전부터 대대적으로 히틀러와 나치스와 유착했다. 포드, 아이비엠, 제너럴모터스, 아이티티, 코카콜라, 스탠다드 오일 등 다수 기업이 독일에 자회사를 내고 히틀러를 지원하며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포드사의 창업자 헨리 포드 같은 경우는 반유대주의 도서 국제 유대인이라는 저작을 출간해 히틀러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는데 히틀러는 헨리 포드의 국제 유대인이라는 저작을 읽고 영감을 얻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헨리 포드는 히틀러로부터 훈장을 받기까지 했다.

 

미국의 기업들과 록펠러가(), 모건의 은행은 공공연히 독일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전쟁이 일어나며 미국 기업들의 독일 내 자회사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독일 병사들은 미국 기업의 독일 자회사들이 생산하는 무기와 물자를 보급받고 미국산인 코카콜라와 환타를 마시며 전쟁에 임하고 있었다. 이 자본가들의 영향력이 무서운 게 연합군이 독일의 퀼른의 도심을 방대하게 폭격할 때도 포드사는 자회사인 포드-베르케사를 폭격하지 말 것을 요청해 퀼른 지역이 초토화될 때도 퀼른 외곽에 위치한 포드-베르케는 멀쩡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독일이 미국에 선전 포고를 하고 미국과도 전쟁을 치렀으나 스탠다드 오일의 기름을 공급받고 출격해 미군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스탠다드 오일만 재판을 겪었을 뿐 다른 미국 기업들은 오히려 독일과 미국과 영국과 프랑스 등으로부터 손실에 대한 보상금마저 청구하여 받았다는 것이다. 전쟁 중 미국 기업의 독일 자회사들에 실제 가치는 2~3배 이상 상승했고 손실 보상금과 세금 감면 등으로 또한 높은 수익을 올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전쟁은 비단 군수산업자들의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니다. 전쟁을 치르기 전에 부자들과 초부자들을 모아놓고 미국 대통령(조지 부시)부자 여러분! 더 부자 여러분! 여러분은 저의 기반입니다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게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젤렌스키는 몇조 원대 비자금을 착복을 했고 그 외 우크라이나 장관들은 몇천억 원대 비자금을 챙긴 것이 미 언론을 통해 방송되기도 했고 말이다. 전쟁에서 죽어가는 것은 서민들이고 정치인들과 자본가들은 터질 듯이 배를 불린다. 전쟁 자체가 막대한 부의 창출을 약속하니 지배층과 자본가들이 전쟁을 반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 우크라이나에 대한 금전적 물적(무기)의 지원은 당연히 각국 국민의 세금에서 나간 것이고 그 금액은 고스란히 우크라이나 지배층의 지갑을 채웠고 군수산업계 등의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 게다가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사망이 이어지자 병력 충원을 위해 유럽 각국의 협조를 요구하며 피난 중인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징집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 시도가 이뤄졌는지는 소시민인 나로서는 그 이후 뉴스를 보지 못해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60대까지 동원되는 우크라이나 전시 동원령으로는 우크라이나 국민 중 남성들이 모조리 죽을 때까지도 징집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도 더 명백히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쟁은 서민의 피를 빨아 기득권층의 배를 불리는 과정이다. 휘말려선 안된다고 생각되지만 서민으로서는 벗어날 길도 없어 보인다. 전쟁이 확장된다고 한다면 참 암담할 뿐이다.

 

대부분의 책이 그렇지만 본서도 사회 아니 (그보다 적절할 표현은 세상일 것이다) 세상의 이면을 보다 명백히 드러내 보여주는 기능을 한다. 본서는 시간 날 때 읽어볼 책이 아니라 시간 내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많은 분이 이 시절, 시간을 내시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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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열림원 세계문학 1
헤르만 헤세 지음, 김연신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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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처음 읽었던 건 중학 2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즈음에는 무협지와 문학 소설과 시도 나름 좋아했었다. 언젠간 시를 다소 읽을 때는 아마도 그 시절의 향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학은 소시민이 향유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풍요로운 대상이기도 하고 말이다.

 

오랜만에 데미안을 다시 읽고 든 첫 감상은 내가 이 소설을 정말 읽었던 적이 있는 걸까하는 자기 의심 같은 것이었다. 소설 전반이 기억나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친구의 엄마에게 사랑을 느낀다거나 전쟁이 일어나 군에 징집되는 내용까지 청소년이 느끼기에 임팩트가 없지 않는 단락들 마저 전혀 기억에 없어서 더 그렇게 느꼈다. 내게 데미안은 그저 이번에 처음 경험한 것과 전혀 다름이 없다.

 

본서의 부록으로 작품해설이 있는데 데미안에 대해 문명 비판으로서의 기능을 논하고 있기도 했다. 천박한 물질 문명의 부상과 진정한 삶의 무산을 비판하기 위한 소설이라고 말이다. 그렇게까지 문학 비평가적으로 바라보지 않더라도 청소년부터 청년, 중년, 장년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든 의미로운 감상을 남길 소설이라는 감상이 깊다.

 

유년기의 아이가 청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역동들을 헤세 특유의 감성어린 필체로 그리고 있는 소설이 데미안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을 깨는 새의 이미지로 상징적 감상을 갖을 데미안이지만 나로서는 몇몇 상징만이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 한 명 한 명과 배경묘사 하나하나까지 무엇 하나 상징적이지 않은 것이 없게 다가왔다.

 

청소년 싱클레어의 아니마인 베아트리체와 에바 부인 그리고 그의 롤 모델인 막스 데미안만이 아니라 프란츠 크로머, 알폰스 벡, 피스토리우스, 크나우어, 그리고 싱클레어의 어머니와 아버지까지 등장인물 모두의 상징성이 다가왔고 낱낱의 장면까지 이 함의적인 소설에서 안배된 배치들이 아마도 다시 읽고 다시 읽는다면 읽을 때마다 달리 다가올 것만 같다.

 

유년기에 마주친 크로머는 그의 부정적 행위를 약점으로 잡아 싱클레어를 통제하며 그를 점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존재였지만 그가 아니고서는 싱클레어는 자신의 그림자를 경험해 볼 수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보인 것과 같은 오이디프스적이며 자기방어기제와도 같은 양상을 자신이 보이는 상황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대극 중 하나를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였기에 크로머도 트릭스터의 외양을 띤 한명의 인도자였는지 모른다고 생각된다.

 

청소년기의 알폰스 벡은 싱클레어의 이성과 영성과는 상반되는 욕동을 자각하게 해준 존재라 여겨졌다. 데미안이나 피스토리우스와는 다르지만 벡 역시 크로머보다는 온건한 모습의 인도자였다고 생각된다. 크나우어는 그 누구보다 현실에 뿌리내린 인도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싱클레어 자신이 자신에게 갖는 심경 전반이 통합된 기대와 평가를 크나우어를 통해 다시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데미안과 에바 부인이 보이는 변성의식 상태의 양상을 청년이 된 싱클레어도 보이는데 이들 간의 교감과 영성적 소통이 크게 의아스럽게 보이지도 않는 건 오랜 세월 동안 이와 같은 류의 가르침들과 가까워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싱클레어의 정신을 성장시킨 건 크로머와 벡이 한 축이고 데미안, 에바 부인, 피스토리우스가 반대편 축에 있다고 생각되었다. 크나우어와 싱클레어의 부모는 그사이 경계에 있는 인물들이고 말이다.

 

그들에게 찾아온 전쟁은 사람이 자성하고 자각하고 성장한다고 해도 결국 세상이라는 변화는 주도해서 막거나 혁신시킬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일깨웠다. 자신의 깨달음과 깨우침이 전 우주적인 가치를 갖는 것만 같겠지만, 소수가 다수의 집단무의식을 자극해 가져온 인류적 차원의 변화나 재앙은 단 한 사람 또는 몇몇의 깨달음만으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데미안을 통해 인류의 연대기나 자신의 역사를 돌아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자기 나름의 남다른 통찰을 갖는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문학 비평가들이 무슨 수식어를 가져다 붙인다고 해도 데미안은 사람에게 성장이란 무엇인가 성숙이란 어떤 가치일 수 있는가를 인물의 성장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감상이 가장 먼저 든다. 청소년기에 한 번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또 한 번쯤 다시 읽어볼 만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여기까지 성장소설이란 방향에서 다소의 얕은 감상만 남긴다. 데미안과 싱클레어 사이의 카인과 아벨에 대한 대화에서 시작되는 긴 여정에 주목한 감상을 남기자면 너무도 장황한 언변들이 이어져야 할 것 같기에 성장소설과 심리에 대한 짧은 감상만을 남긴다.



[밑줄 긋기] 

-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면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되는 양, 그래서 어떤 인간사를 훤히 꿰뚫어보고 이해하며, 신이 자기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라도 하듯 그렇게, 아무것도 은폐하지 않고 어디서나 의미있게 서술할 수 있는 것처럼 굴곤 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작가들이 그렇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어떤 작가에게 자신의 얘기가 중요한 것 이상으로 내게는 내 이야기가 중요하다. 그건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이자,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의 삶은 자기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이자, 그 길로 가고자 하는 시도이며, 어느 좁은 길에 대한 암시라고 하겠다. 일찍이 그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그렇게 되려고 애를 쓴다. 누군가는 막연하게, 누군가는 보다 확실하게,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애를 쓴다.

 

새는 힘들게 싸워 알을 깨고 나온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부숴야만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 데미안이 남긴 쪽지에

 

“... 만일 자연이 당신을 박쥐로 만들었다면 자신을 타조로 만들려고 해선 안 되겠죠. ...” - 피스토리우스

 

지금 우리가 아브락사스라는 이름을 붙여준 우리의 새로운 신앙은 아름다워요. 친구여, 그 신은 우리가 가진 최상의 것이라오. 그런데 그 신은 아직 젖먹이죠!. ...” - 피스토리우스

 

그래, 넌 내게 멋진 성자지! 네게도 죄악이 있다는 걸 난 알아! 현자처럼 행동하지만 나와 모든 사람처럼 똑같은 오물에 비밀스레 매달려 있지! 넌 돼지야. 나 같은 돼지라고, 우린 모두 돼지라고!” - 크나우어

 

나는 전에 자주 미래의 형상들과 유희했었다. 어쩌면 시인이나 예언자로서 또는 화가나 다른 어떤 것으로서 내게 배정되어 있을 역할들을 꿈꿨었다. 그런 건 모두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시를 짓거나 설교를 하려고, 그림을 그리려고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건 모두 부수적인 결과로 생겨날 뿐이었다. 각자에게 진짜 소명은 단 하나였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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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독일사
제임스 호즈 지음, 박상진 옮김 / 진성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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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에서 큰 축을 이루고 있는 독일사이지만 대개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하지 않을까 싶다. 나로서도 축구와 자동차, 나치와 홀로코스트, 난민수용과 메르켈 총리 외에는 독일에 대한 키워드 조차 떠오르는 게 없어 더 그렇게 느끼는 듯하다. 이 책은 그런 파편적이고 짧디 짧은 독일에 대한 상식을 조금이나마 확장시켜 주지 않을까 해서 기대했던 책이다.

 

책의 분량을 볼 때 그다지 짧다고 여겨지지 않는데 [세상에서 가장 짧은 독일사]라는 제목이기에 의아하기도 했다. 책을 읽고 보니 출판사에서 번역과 함께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추가한 [역사 속의 역사]라는 28개의 장이 더해져서 그렇지 본문만으로는 상당히 간소하게 정리한 책이라는 감상이 들었다. [역사 속의 역사][독일 여행자를 위한 핵심 가이드]가 추가되지 않았다면 역사서치고는 상당히 짧은 분량의 책이었을 것이다.

 

상당히 촉박하게 읽다 보니 제대로 이 역사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읽었다. 서술된 역사 내용을 요약하기보다 서술 방식에 대해 짚어야 할 것 같다. 본서는 [1부 게르마니의 탄생 기원전 58~526, 2부 게르만, 로마를 복원하다 526~983, 3부 게르만을 위한 전쟁 983~1525, 4부 두 갈래 길로 가는 독일 1525~1924, 5부 독일, 유럽의 미래 1924~현재] 구성되어 있는데 독일사를 영국인이 서술하다 보니 유럽 타국가에서 바라보는 독일에 대한 시각이 어떠한지가 정리되는 느낌도 다소 들게 했다.

 

카이사르가 야만족의 땅이라는 의미로 게르마니아로 이름 지은 이 지역에서 메로빙거와 카롤링거 왕조를 거치며 정체성을 찾게 된 과정부터 나치 독일의 출현까지 그리고 동서독의 분리와 통일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돌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문득문득 외국인이 쓴 독일사구나 느껴지기도 하는 때가 있는 게 1차 세계대전을 기술하면서도 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될 1차 세계대전 전쟁배상금 문제를 짧은 언급 하나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본서는 독일사 전반을 신속하게 약술하고 있어 역사적인 주제들에 주목하자면 국내 출판사가 추가한 [역사 속의 역사]라는 28개의 장을 통하지 않고는 그다지 재미를 찾을 수 없기도 하다. 그렇긴 하지만 유럽인이 아닌 이국의 시선에서 중요하다고 주목되는 대목이 다르고 유럽인이 애써 외면하거나 간과하는 대목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서는 전체가 빠르게 지나가는 크로키와 같이 약술로 서술되어 지나가는 느낌이고 그걸 크로키가 아니라 스케치라고 본다면 [역사 속의 역사]라는 장들이 다소나마 스케치에 암영과 빛깔을 주는 느낌의 책이기도 하다. 세계대전 대목은 특히나 [역사 속의 역사]란 장이 없다면 독일인들이 나치당에 주목하게 된 대목만이 부각된 서술로만 기억하게 되었을 듯하다.

 

전체사를 짚으면서도 일화별로 주목할 서술에 주의했다면 다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따분하게 서술되어 있는 책은 아니고 제법 쉽게 읽히는 번역이다. 번역자의 노력과 주의가 담긴 번역이 책을 살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독일사에 대해 깊이 알고 싶지는 않지만 윤곽은 잡고 싶다는 분들께서 선택할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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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짧은 독일사
제임스 호즈 지음, 박상진 옮김 / 진성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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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사에 대해 깊이 알고 싶지는 않지만 윤곽은 잡고 싶다는 분들께서 선택할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독일사를 크로키처럼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느낌인데 [역사 속의 역사]라는 장에서 암영과 빛깔이 다소 주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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