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기억한다 - 트라우마가 남긴 흔적들
베셀 반 데어 콜크 지음, 제효영 옮김, 김현수 감수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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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다른 트라우마 저작들을 몇권 읽었었다. 그래서 내가 보다 깊이 느낀 이 책과 다른 트라우마 저작들의 극명한 차별성이라면 이 책은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의 정서에도 물론 주목하지만 그보다는 검증 가능하고 확실한 트라우마 치료법들을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고통이 있다지만 전쟁에 참여해 외상 후 스트레스라는 트라우마를 지니게 된 사람들과 생에 있어 고통을 상쇄할만치의 기쁨과 즐거움이 아직 익숙치도 않을 시절 (뇌의 시스템 전체에 손상을 가져오는, 학대와 방치를 3세까지 경험했거나 더나아가 6세까지 학대와 방치에 노출된) 아동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을 보며 왜 이런 고통이 난무해야하는지 착잡하기 이를데 없었다. 


학대나 방치 받은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뇌손상은 치료법을 경험하기 전까지는 영구적이며 불가역적인 손상인 것이다. 


본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즉 트라우마 환자들의 뇌를 통해 어떠한 손상이 일어나며 그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뇌와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지 보여준다. 이에 대해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 뉴로피드백 치료, 내적가족치료, 공동체가 함께하는 연극치료와 음악치료, 맛사지, 요가, 태극권, 무에타이, 무술, 춤 등의 치료가 얼마나 극적인 효과를 불러오는지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은 전쟁 후 나타난 외상 후 스트레스 환자들로 부터 시작된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재해를 당한 사람들과 일상 속에서 학대와 방치를 당하는 영유아들로 확대되며 연구되어온 역사 그 자체와도 같은 책이다. 트라우마라는 것에 대한 그간의 연구와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라 할 수 있다. 


트라우마에 빠진 아이들이나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하다가 그들이 치유되는 과정에 환호하게 되는 그런 책도 읽어볼만은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처럼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들에 대해 이해하게 해 주고 그 치유 가능성과 치유 과정이 어떠리라고 짐작케 해 주는 책은 더욱 가치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가까운 누군가가 트라우마에 빠져 있다거나 본인이나 가족이 트라우마를 치료받기 위해 준비 중이라면 더더욱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아는 사람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극명히 나뉜다. 정신적 외상이 된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런 일을 이해하지 못하므로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그 대상에 배우자나 자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트라우마 희생자들에게 예전에 겪은 일을 말로 표현하도록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신체가 자동으로 과도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언제든 공격이나 폭력을 당할 태세를 갖추며 이에 따라 나타나는 신체와 호르몬 반응을, 당시 이야기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바꿀 수 없다.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하려면, 위험 요소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신체가 깨닫고 주어진 현실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느끼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결코 나아질 수 없다.
-엘빈 셈라드 교수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는 사람은, 생각이 아주 고귀하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업적이 아무리 많다하더라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존재로 남는다.

자기 몸의 상태를 본능적인 욕구 측면까지 모조리 인정할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다...

단순히 도망갈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동물이나 사람이 자유를 찾아가지는 않는다.
...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 역시 기회가 주어져도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인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실질적인 위험이 사라지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계속 다량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낮게 확인됐다... 코르티솔이 몸에 ‘이제는 안전하니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맡아 신체의 스트레스 반응을 종결시킨다... 즉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경우 위험 요소가 다 사라진 후에도 체내 스트레스 호르몬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면서 불안과 공황 상태가 나타나며, 장기적으로는 건강이 사정없이 파괴된다.

반복되는 상황은 오히려 더 많은 고통과 자신에 대한 증오로 이어질뿐이다. 실제로 치료 과정에서 트라우마 경험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 일에 관한 생각에 사로 잡히고 집착이 더 강해질 수 있다.

과거 사건의 재현과 재생은 어떤 면에서 트라우마 자체보다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 트라우마 사건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어떤 식으로든 종결되었다. 그러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에게는 그 사건이 깨어 있을 때나 잠을 잘 때나 어느 때고 재현된다. 언제 다시 떠오를지,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알 수도 없다.

트라우마 구성 요소들이 반복해서 되살아나면, 그로 인해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이 그 기억을 마음에 훨씬 더 선명하고 깊게 새긴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희생자들에게 그 일을 억지로 이야기하게 하면 혈압이 상승하는 사람도 있고 편두통이 시작되는 사람도 있다. 또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져 어떠한 변화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연구를 해 보면, 공통적으로 심장이 달음박질 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온몸을 휘젓고 다니는 상태가 예외없이 포착된다.
이와 같은 반응은 앞뒤 없이 불쑥 나타나고 대부분 통제가 불가능하다. 제어가 불가능한 강렬한 충동과 감정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

중요한 사실은 뇌의 인지 시스템이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신체 반응에 과거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점이다.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느끼고, 정확히 밝히고, 확인하는 것이 회복의 첫단계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과거 일을 떠올리게 만드는 자극을 접하면, 우반구는 그 트라우마 상황이 지금 일어난 것처럼 반응한다. 그러나 좌뇌가 적절히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라 당사자는 자신의 과거를 다시 경험하고 있으며 과거 일이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격분하거나 겁에 질려 펄펄 뛰고 수치스러워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린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정상 수준으로 돌아오기까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소한 자극에도 단숨에 불균형적인 수준으로 증가한다. 순식간에 증가한 스트레스 호르몬은 서서히 영향력을 발휘해 기억력과 집중력에 문제가 생기고 쉽게 짜증 나게 만들며 수면 장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몸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어디냐에 따라 장기적으로 수많은 건강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면 특정 상황이 위험한지 안전한지 잘못 해석하는 비율이 높아진다.

트라우마란 ‘영원히 지속되는‘ 상태가 최고조에 이르는 경험이다.

따라서 시상이 망가지면 트라우마가 처음부터 시작, 중간, 끝이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기억되지 않고 당시의 이미지, 소리와 공포, 무기력감 등 어떤 강렬한 감정 상태에서 느낀 신체 감각이 뿔뿔이 흩어진 감각의 흔적으로 기억된다.

머릿속이 멍해지는 증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성이다...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면 극적인 변화를 겪고 감짝 놀라 자기 파괴적인 행동까지 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감을 잃어버리는 이 같은 변화는 훨씬 더 큰 손상을 가져올 수 있다.

트라우마 스트레스 치료에서는 환자가 과거에 대해 느끼는 감각을 없애버리는 데 중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감각을 없애면 반응성을 줄일 수 있겠지만,가만히 길을 걷거나 요리를 하고 아이들과 같이 노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삶은 그냥 스쳐 자나가 버린다.

정신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가지만 꼽는다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한 유대 관계는 의미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만드는 필수 요소다.... 단지 다른 사람이 존재하기만 하는 상황은 사회적 지지와 다르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들 중 많은 수가 만성적으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

트라우마는 싸움 또는 도주 반응으로 표출될 뿐만 아니라 신체 기능이 중단되고 현실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태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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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한길컬처북스 2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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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통합의 대상이지 추방의 대상이 아니다 새삼 확인하고 싶어 십 몇 년만에 다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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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 길러진 아이 - 사랑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망을 보여 준 아이들
브루스 D. 페리 & 마이아 샬라비츠 지음, 황정하 옮김 / 민음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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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슬프다. 아주 아주 다행스럽다. 

아이들의 고통이 아주 아주 슬프지만 그것이 치유되는 과정은 정말이지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아이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과정과 그 증상 그리고 치료 과정이 담겨있다. 



유년기 뇌가 성장하는 3년 사이 학대와 방임에 놓이게 되면 아이들의 뇌는 발달하지 못하고 장애를 지니게 된다고 한다. 지속적인 스트레스 중 주기적이고 예측 가능한 패턴화된 스트레스에는 내성이 생길 수도 있다지만 예측 불가능한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아이의 뇌와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한다. 지속적인 고통에는 모두가 둔감해지리라 짐작하겠지만 예측 불가능하게 지속적인 고통은 감작 작용이라하여 오히려 더욱더 민감해지고 나날이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성적 육체적 정신적 학대만이 아니라 보살핌이 없이 방치되는 상황만으로도 발달되어야 할 뇌와 기능에 지연과 손상을 가져온다고 한다. 이에 대한 치유 과정은 유년기에 경험했어야 할 엄마의 손길을 대신하는 맛사지와 엄마의 얼름과 심장박동을 연상케 하는 리듬, 춤 등의 놀이를 들고 있다. 



물론 해리와 과각성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저자가 적용하는 발달과정에 따른 순차적 치료법이 신비하게도 아이들을 치유케 하는 과정이 슬프면서도 다행스러웠다. 



저자는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환경과 제도와 사회에 대해 지적하면서 아이들을 치유하는 과정은 적절한 환경과 발달 과정에 맞는 패턴화된 자극이라고 말하고 있다. 10장에서는 또래 집단에 의해 치유되어가는 아이의 예를 들며 사회와 집단의 지원이 아이들의 치유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고 있다. 



이 책은 유년기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주면서 그 원인과 증상과 치료 과정을 아울러서 주목하게 해 준다. 환아들과 환경적 문제가 가정에만 있지 않고 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을 보면서 너무도 마음이 아팠고 그러면서도 살인과 사이비종교의 사례나 악마주의 마법종파의 사례가 나올 때는 너무도 흥미진진해 독서에 몰입하고 있는 자체가 미안해 지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 책은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게도 만들고 치유되는 아이들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도 될 것이다. 



바람직한 육아가 궁금한 이들, 상처 받은 아이들의 치유에 관심있는 이들, 자기 자신의 오래묵은 트라우마로 상처난 채 버티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유익한 저작이리라 생각한다. 그저 독서에 몰입해 보고 싶은 누구에게라도 권하고픈 소름 돋도록 흡인력 있는 저작이기도 하다. 



의도와 목적이 무엇이더라도 꼭 한번쯤 많은 이들이 읽어 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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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7 0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하라 2018-10-27 09:40   좋아요 1 | URL
네. 아이를 무책임하게 방임하는 경우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며 아이를 방임하는 부모들도 치료가 절실한 환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픔은 유전되고 전해지는 것 같았어요.

북프리쿠키 2018-10-27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든 어른들이 넘치는 무서운 사회에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습니다.
이하라님의 글 공감합니다.

이하라 2018-10-27 13:55   좋아요 1 | URL
병든 어른들이 넘치는 무서운 사회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제도적으로 아이들과 성인들의 치유를 돕는 지원이 적절히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라샤 2018-11-05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동학대는 너무 가슴 아픈 일이지요... 한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이하라 2018-11-05 18:41   좋아요 0 | URL
네, 아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아로새기는 일이지요. 읽어볼만한 책이에요.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자비중심치료 인지행동치료 스펙트럼 시리즈
폴 길버트 지음, 조현주.박성현 옮김 / 학지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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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행동치료 시리즈 중 하나이다. 자비에 대한 심리학적 풀이 보다는 자비를 중심으로 치료하는 내용이다. 자비에 대한 심리학이나 선수행적 내용을 기대한다면 조금 부족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 또는 내가 벗어나겠다는 관점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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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상상과 치유의 글쓰기
한성우 지음 / 오늘의문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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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료 기법 몇몇을 적용하긴 탁월하나 글쓰기실력향상이란 전제로 읽기에는 부적합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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