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어쩌다 보니 벨 훅스의 책들을 읽고 있다(그녀의 책이 추천하는 다른 책들 까지도). 이제 와 곰곰 떠올려보니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면서 이별을 다짐했었다. 사랑을 말하기 전에 무엇이 사랑인가를 묻자는 질문이, 사랑을 해치는 것은 성차별주의와 이성애중심주의 가부장제라고 말하는 것이, 사랑을 폐기하고 없애라는 말처럼 세상에 들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란.
그리고. 그러나.
난. 나는.
발작처럼 일어나던 불안을 조금은 맨 정신으로도 다스릴 수 있어졌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벨 훅스를 읽으면서는 지난 나의 삶에 사랑이 없었음을 허심하게 인정하고 있는 스스로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을 다시 정의하는 그의 선명한 문단들이 더는 나를 해치지 않았다. 담담하다. 없었네. 없었구나. 그건 아니었네. 사랑이 아닌 애정이었으며 카덱시스였구나. 좀 슬프긴 한데, 또 뭐 대단히 슬프지는 않다. 인생 사랑이 좀 없을 수도 있지 뭘. 책이 참 좋다. 정의로움이 없는 곳에서 사랑은 싹틀 수 없다는 말, 사랑은 감정이 아닌 행동이다라는 말, 내 삶에 사랑은 없었지만 나는 삶에서 사랑을 추구했음을 알려주는 것도 같다.
“(36) 애정affection이 곧 사랑은 아니다. 애정이란 사랑을 이루는 한 요소일 뿐이다.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애정 외에도 상대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 상대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태도, 상대에 대한 신뢰와 헌신, 솔직하고 개방된 커뮤니케이션 등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중략) 그럼에도 대분은 사랑에 관해 잘못된 정의를 배우면서 자란다. 즉 사랑이란 하나의 특별한 감정이라고 믿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깊이 빠지면 그 사람에게 몰두하게 된다. 모든 감정과 정서를 상대에게 쏟아붓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자신의 모든 감정을 투자하는 현상을 카섹시스cathexis라고 부른다. 스캇 펙은 자신의 책에서 많은 사람들이 카섹시스를 사랑으로 잘못 알고 있다고 지적한다.”
벨 훅스가 책에서 말하는 사랑의 정의를 받아들일 때, 스스로가 마주해야 하는 심연은 우리 사회 대부분에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며, 보다 더 구체적으로는 내 삶에 사랑이 없었다는 확 깨는 진실이지만 (하지만 나는 이미 죽은 책 속의 사람들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습니다ㅋㅋㅋ) 다행인 건 사랑없이도 살 수 있다는 거다. 사는 게 중요한 거지 사랑이 중요한가. 그래도 살아남았으면 또 추구해보고 그런거지 뭐. 살아있으니까 직면하고 연습해서 사랑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 또 나는 글로 사랑을 배웁니다. 개념 정의부터 다시 해야 함.
어쨌든 요 책을 다 읽고 나면 사랑에 대한 더 명료한 언어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46) 어떤 개념을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결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
사랑에 대한 책들을 나도 모르게 사모아서 읽어대는 것을 보면. 나는 나의 고독을 원하는 것만큼이나, 보다 친밀하고 단단하게 애정을 나누는 관계 역시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친구도, 우정도, 도반도 너무 좋지만. 조금 더 단단히 현실에 닻을 내린 신뢰와 존중, 영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를 원해. 그래야 내 삶이 조금 더 완전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사랑을 믿고 싶고 하고 싶다. 그런 갈망이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본다.
무물론 지금의 자발적 은둔자 히키코모리 아싸 상태로는 행동은커녕 혐오의 감정 조차 싹틀 수 없단 것도 잘 알쥐...만... 새로운 관계를 찾아 나서는 게 좀 귀찮은 건 사실이다. ㅋㅋㅋㅋㅋ
일단은 일 열심히 하고 좀 더 생각해 보는 것으로. 🤔
분명한 건 지금의 나 역시 우정과 애정이 주는 기분 좋은 느낌으로 충만하다는 것.
그렇지만 조금 더 원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했다는 것.
사랑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과정은 난망할테지만.
언젠가는 사랑받지 못해 생긴 고통의 언어가 아닌, 사랑이라는 더 깊은 진실을 이해한 후의 몸에서 나오는 정말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의 나나 잘 사랑하자. 파이팅!
2023-02-18
어떤 개념을 분명하게 정의하는 것은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은 결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 - P46
현실적으로 그가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는 정서적 여유를 찾는 심리적 작업은 수년이 걸리는 것이었고, 그는 그 작업을 원치 않았다. 다른 남자들처럼 그는 전통적으로 구분된 남녀의 성역할 경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페미니즘과 뉴에이지의 영향을 반영해 가사와 양육을 조금 분담했을 뿐이다. 나는 내가 그보다 정신적으로 우월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정서적으로 결핍되어 있었으나 치료와 다른 것을 포함해 사랑에 관해 더 많이 노력했다. <사랑은 사치일까>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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