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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하고 2달 반이 지나간다. 책을 내고 나면 대부분 저자들도 그렇겠지만 리뷰 한 줄이 간절해진다.

그건 책을 내느라 기가 다 빠져나간 내 몸에 한 줄기 수액을 넣어주는 것 같달까.

그러나 독자 입장으로 와 보면 그 한 두 줄 쓰기가 그렇게 번거롭고 귀찮을 수가 없다. 내 책 리뷰를 기다리는 만큼 나는 얼마나 다른 책의 리뷰를 성실히 써왔나 돌아본다.  나도 읽었으나 리뷰나 감상 한 줄 남기지 않고 지나간 수많은 책을 떠올린다. 나에게 책을 보내줬으나 받고 씹은 경우들도 떠올린다. 시간이 없어서, 너무 할말이 많아서, 잘 쓰고 싶어서, 쓰려니 할 말이 없어서, 끝까지 다 읽지 못해서, 또는 나만 알고 싶어서...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지 않았다.

책 값 16000원은 한끼 점심 값이지만 책이란 것에 지갑 열기란 굉장히 무겁다는 걸 너무 잘 안다. 맛없는 밥은 용서해도 실망스러운 책은 용서받지 못하니까. 밥 한끼 가격인 책 선택을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우린 유명인들이 추천한 책을, 베스트셀러를 고르는 것일테다. 게다가 책 리뷰란 자신의 입장을 일기보다 더 드러내는 글이다. 어떻게 읽었느냐가 그 사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그래서 수많은 책 속에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간을, 내 돈 주고 사서, 그것도 300페이지가 넘으며, 마감까지 있던 리뷰를, 어려운 시간 내어 작성하는, 이런 모험을 감행해준 독자들의 안목과 용기에 감사하다.

러브레터 받은 듯 읽고 또 읽곤 한다. 독자에겐 스쳐지나가는 책 한권이지만 저자에겐 당시 쓸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긴게 책이다. 이 간극 속에서 괴로워하면서도 쓰는 관종들이 저자다. 글이 안 써질 땐 내 책에 남겨진 리뷰를 읽는다. 이미 낸 책에 있는 리뷰를 읽으며 앞으로의 글도 이렇게 써야겠다고 결심한다.



+
검증된 책만, 이미 추천받은 책만, 거장들의 책만, 고전 책만 읽지 않고, 책을 발견하고, 재발견하는 '읽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다시 알라딘 서재를 열었다. 내가 백자평을 눈이 빠지게 기다려온 만큼, 다른 책의 백자평을 성실히 써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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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9-16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나도 알라딘서재의 글을 열심히 읽고 잇는 편입니다.
 















모든 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지인들은 갑작스럽게 변한 나를 보며 얼마 전까지도 음악이야기를 전혀 꺼내지 않던 인간이 어쩌다 이 지경으로 음악에 미쳤는지 묻곤 했다.

그때부터였다. 정당성을 만들기로 했다. 나라 건국이나 정권교체에만 정당성이 필요한 게 아니다. 40대 중년의 여자가 일상을 내팽개치고 무언가 빠지는 데에도 필요하다. "지금 내 모습은 갑자기 엉뚱하게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저는 말이죠… 원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감수성의 원천을 찾아, 내가 얼마나 음악을 사랑해왔는지 과거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왜 성인이 되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면, 어렸을 적 얼마나 음악에 관심이 있었는지를 일단 추적하면서 말하잖아요. 저도 그러려고 했죠. 그런데....그러나!  내가 찾아낸 건 얼마나 음악을 사랑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그건, 그건, 전혀 다른 기억들이었습니다. 


새로운 기억이 줄줄이 딸려 올라왔다. 첫 번째로 떠오른 기억이 취미였다면, 두 번째로 발견한 기억은 일종의 공감각이었다. 공간의 온도, 햇살과 가로등의 노란빛. 목덜미를 스치던 바람의 결, 아늑하거나 축축한 냄새, 서늘함과 뜨거움, 숨결과 체온, 웅성거리거나 날카롭던 소리 그리고 외로움까지. 



저는 기억력이 형편 없는데,완전히 잊고 있던 시간들이 음악을 계기로 떠오르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나를 형성한 기원이 아니라 잠시, 나에게 머물렀다가 사라져버리곤 하던 어떤 열정을 기억해 냅니다.그건  박혜윤 작가님이 써준 추천사처럼 '혼란, 실수, 고난'에 관한 이야기이자 실패와 이별의 기억이기도 합니다. 


"내가 가진 열정만큼 인정받거나 성과를 이루거나 무언가가 되는 건 보통의 능력으로는 매우 드물다. .....집중과 몰입과 쏠림으로 일상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감정 조절 실패로 끝까지 질질 매달리다가 내가 질리거나 몰입한 대상의 변심 또는 변화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들 또는 그들은 난데없이 삶으로 쳐들어와 나를 온통 채웠지만 썰물처럼 급작스럽게 빠져나간다. 그럼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애도를 호되게 치러야 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쓸모 없게 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걸까.  

의미를 다시 만드는 것도 아니고, 교훈을 찾아내는 것도 아니며,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고통 서사도 아니고, 그때가 좋았지라고, 회상하는 것도 아닌 이야기.


그 이야기를 써보았습니다. 


"어떤 대상에 온몸이 사로잡혀 현실과 나를 분리해버리는 마법 같은 이 기분이 익숙하다. 왜 이리도 기시감이 드는 것인지. 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지." 











많이 읽어주세요. :) 






"어디에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랐다. 우리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서걱거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어색함은 언젠가는 희미 해지는 감정이고, 다시 만나면 쑥스럽게 웃으면서 어색했던 감 정도 과거로 슬그머니 보내고 모른 척하면 그만인데…. 그러나 나에게 윤은 지금 옆에 없더라도 한 번도 쉼이 없었던 관계였다. 그래서 어색함도 계속 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왕따 같은 건 당하지 않았고 늘상 붙어 다니는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지만, 윤을 내내 생각했다. 그 아이가 그리워서라기보다 마침표를 찍지 못해서였다. 우리의 이야기가 이대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나는 왕따)

"열일곱 살의 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것이 특별함이라면, 비밀은 확실히 그걸 보장했다. 비밀을 가진 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누가 그랬던가. 부모에게 복수하는 가장 좋은 방법 은 부모가 모르는 비밀을 만드는 거라고. 부모에게 또는 학교에 복수하고 싶어서는 아니었지만 비밀은 누군가 나를 혼내도, 누군가 무시하거나 알아봐주지 않아도, ‘그래도 나에겐 무언가가 있어’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줬다. 비밀 속에서 부쩍 성숙한 인간이 된 듯했고,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행동엔 제법 의연한 태도가 배어 나왔다. 이런 내 모습이 좋았다. " (너의 목소리가 들려)

"전쟁을 겪으며 화끈하게 몰락한 한 집안의 이야기는 매혹적이었다. 역사의 결과 값으로써 주어진 가난은 한 편의 잘 짜여진 서사처럼 꼭 들어맞았다. 그 불행은 너무도 정당하기에 개인적인 과오까지도 다 용서하고, 현재의 불행까지도 이해해줄 것처럼 보였다. ‘그때 사과 궤짝만 들지 않았더라면.’ 모든 지난한 세월을 한마디로 정리해주고 설명해주는 말.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우리 집안사람들은 그 말을 즐겨 썼다. 마치 그때가 이 집안의 새로운 시작이라도 되는 듯이." (애자로부터)

"밤 열두 시가 넘은 시각. 회사 근처 작은 공원에서 영과 조금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도 ‘페이크 트래블러’일까. 삶의 대부분이 되어버렸지만 온전히 나를 내던질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는 직장에서, 마음의 틈을 나누는 아주 작은 공간과 시간이 있다면 자신을 경멸하지 않을 수 있다. 훼손되어 가는 마음 한 구석에 손을 가만히 대며 나를 지킬 수 있다. 나는 맥주를 마셨고 그는 천천히 담배를 폈다." (오늘의 BGM)

"그동안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당연히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영화학과에 가지 못한 건 좋아하는 걸 이루지 못한 실패라고 여겼다. 그런데 내가 몰랐던 건 좋아하는 일은 그것 자체로 형체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저 마음으로만 있다. 감정에 머물던 좋아하는 일이라는 건, 그걸 직접 해봤을 때, 즉 몸으로 부딪힐 때에만 실체가 드러난다."(Wise up)

"그토록 미워하던 누군가가, 그리고 최선을 다해 외면하거나 피하던 관계가, 멀어져버린 무언가가 자신을 알게 해준다. 부딪히지 않았으면 결코 모른다. 타인은 나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구원이 된다. 문제를 해결하거나 도와줘서가 아니라 내 모습을 직시하게 해주어서"(Wise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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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명의 학인들과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부 3주차에 접어들었다. 가장 어렵다는 1장, 상품을 지나, 어렵다는 소리 아무도 안 했는데 무지 어려웠던 3장의 유통을 막 마쳤다.

서문을 읽는 주에 학인들끼리 자료를 왕창 공유하고 당시의 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을 러프하게 나누고, 책 본론으로 들어가며 개념 하나 하나, 토론을 통해 독해하고 있다.

<자본론>은 소문만 무성히 들었지 어떻게 쓰여져 있는지조차 짐작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을 때의 당혹스러움과 충격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과 비슷하다.

<제2의 성>에 대해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한 줄 밖에 모르다가 무려 1천페이지에 걸쳐 빽빽하게 쓰여지고 차곡차곡 전개되는 철학적 개념들에 멘붕을 겪고 '실존,' 기투' '초월' 같은 기초 개념부터 더듬더듬 익혀갔던 것처럼, '노동자 해방'을 말한다는 <자본론>도 노동자 해방은 언제 나오는지 모르겠고 '가치', '상품' 같은 이미 아는 거 같기도 한데 알고보니 하나도 몰랐던 개념부터 알아가야했다. 마르크스는 또 과하게 친절해서 자신이 쓰는 개념 풀이를 어마어마하게 장황하고 은유적으로 설명해준다.

마르크스의 서술 방식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처음부터 큰 그림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기 혼자 산 꼭대기에서 전체를 다 조망한 다음에 (뭘 조망했는지는 끝까지 가지 따라오지 않으면 절대 안 알려주는 스타일. 따라와야만 빛나는 학문의 정상에 올라올 수 있다고만 함), 시선을 어느 작은 마을의 시장 갑판대에 있는 상품 하나로 클로즈업해서, 거기에서부터 이야기한다.

왜 이런 사소한 것부터 알아야하지? 라고 대충 넘어갔다가는 그 뒤를 읽을 수가 없다. 기초 개념을 점층적으로 쌓아가는 구조라서 개념 하나에서 놓치면 줄줄이 이해가 안 되는 구조다.

그리고 자본론을 읽는데엔 이과형 두뇌가 필요한데 마르크스가 정립한 개념/공식을 전제로 고정시키고 그 논의를 바짝 따라가야한다. 이 말이 뭐냐면 어떤 개념이 가지는 뜻과 그 개념이 해당되는 범위를 넘어서는 상상이나 숨은 의미를 찾아보려하거나 하면 그때부터 꼬여버린다.

1은 그냥 1이다. 1+1=2이다. 그런데 자꾸 1 뒤에 뭐가 더 있지 않을까라고 상상을 하면 안된다. 의미를 확장하기 좋아하며 1+1=3이 나오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고 묻는.. 나 같은 문과형 두뇌는 그래서 이 책이 너무나 어렵다.

마르크스가 정의하거나 설정해둔 개념이나 공식에 왜를 묻지 말고 그냥 암기하자. 이건 레고 조각이다. 조각으로 어떤 다른 걸 쌓을 수 있지만 조각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조각은 조각일 뿐이다. 이걸 기억하고 개념을 알고 가자.


헷갈리는 개념들

사용가치 : 그 물건 자체가 인간에게 가진 유용성. (믈, 햇빛, 흙 이런 건 사용가치가 무지 높다.) 그러나 상품으로서 사용가치는 그것의 유용함 자체만으로 되진 않고 상품으로 교환될 수 있는 실물 형태를 지녀야 함! 상품의 사용가치는 경제적 사용가치다.

가치 : 그 물건을 생산해내는데 필요한 표준화된 노동시간에 의해 추상화된 무엇. (눈에 보이지 않음!) 삼다수는 사용가치는 높지만 가치는 낮음. 사용가치는 가치는 아니다! 가치는 오로지 노동시간임.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 즉 소중하고 의미있는 무엇이라는 뜻을 버려야 함!!! 여기서 가치엔 인격이 없음!. 경제적 의미임)

가치엔 사용가치는 포함되지 않음!

어떤 상품이 가치가 높아졌다고 말할 때 거기에 사용가치는 없다고 마르크스가 썼었다. 그때 토론에서 아니다, 그래도 사용가치가 있긴 한데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그렇게 쓴게 아닐까? 라고 살짝 이야기가 나왔는데. 없는게 맞다. 어떻게 한 상품의 사용가치(그 물건 자체의 쓰임새와 형태) 가치가 안 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하는게 우리의 편견.

이게 자본주의적 머리가 필요한데, 17평에 30년되고 결로현상이 생기고 녹물 나오며 보일러도 냉골인데 3억에서 15억된 아파트는, 15억의 가치를 가지지만, 3억에서 15억으로 오르는데는 어떤 사용가치(주거로서 아파트가 가지는 유용함)도 반영되지 않음. 이게 자본주의.

교환가치 :

상품 A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오로지 다른 상품B와의 관계 속에서만 교환가치를 통해 드러내니까 "교환가치는 가치의 표현"이라고 함.

즉 하나의 상품엔 사용가치, 가치, 교환가치가 모두 들어있음.

여기까지 정리하자면, 어떤 물건이 상품이 되어 교환이 되려면, 그건 스스로 자기 값을 매길 수 없고 반.드. 시. 다른 상품을 통해서만 '가치 형태'가 드러날 수 있음. 면포 20미터의 가치는 면포 20미터다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임. 아, 면포 20미터는 20달러라고 하면 안되냐? 라고 하는 건 지금 우리의 시점이고, 20달러라는 '화폐'를 통해서만 가치형태가 드러난다는 것이고, 화폐가 만들어지기 전엔 20달러의 자리에 먼저 커피 200그램, 저고리 2벌 등으로 면포 20미터의 가치 형태를 드러냄.

상대적 가치 형태

하나의 상품 A가 다른 상품 B과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어떤 가치를 가진 모양(-형태)으로 드러날 때 "상대적 가치 형태" 라고 함.

가치는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으므로 어떤 상품의 '형태'를 빌어서만 나타남.

등가 형태

동시에 상품 A도 다른 상품들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재주기 때문에 등가형태를 가지게 되는 것.

'등가'라는 말이 되게 헷갈리는데 '같은 값'이라고 하는데 앞에선 '상대적'이라고 하니까...왜 이게 같이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사실은 '같은 거라고 치자'인 것. 그래서 모든 상품은 상대적 가치형태(다른 상품을 통해서만 내 가치가 증명되는 것)와 등가형태(자신이 또한 다른 상품의 가치를 이런 값이다 라고 보여주는 것)가 될 가능성이 있음.

예를 들어 면포 20미터는 저고리 2벌을 통해서만 '상대적 가치형태'를 가지지만, 동시에 밀 20키로랑 거래할 땐 밀 20키로에 대한 '등가 형태'를 가지기도 함.

그리고 이게 점점 발전하면서 나중에 오직 하나의 상품만 "등가형태"의 지위를 얻으면서 "일반적 등가물"이 되는 거죠. 이게 화폐!!

현상 형태 / 형태

형태는 꼭 손에 만져지는 것은 아니고, 관념도 형태화된 거라고 이 책에선 쓰고 있음. 수치화/개념화/물질화를 다 '형태'라고 하는 듯.

'현상형태'는 말이 어렵지만 '나타내는(현상) 형태'.

화폐는 가치가 아니라 가치의 현상 형태다 = 가치를 나타내는 형태다. 이 말임.


다음과 같은 일정으로 <자본론> 1권을 읽는다.



분량에 따라 매주 1-3명이 3,40페이지씩 나눠서 김수행 교수님의 <자본론>을 요약하고,


서브 텍스트로 고병권 선생님의 <자본 강의>를 읽고 요약한다.

요약을 하지 않을 땐 해당 분량에서 자세히 알고 싶은 문단이나 개념을 해석하고, 발제문(+질문)을 작성한다.


토론을 마치면 후기 담당자가 그 주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정리해서 올린다.














참고 도서 & 강의

참고 도서인 고병권 선생님의 <자본 강의>는 매우 친절한 텍스트다. 핵심 문장은 꼼꼼하게 강독해주고, 단어 하나에 담긴 의미를 깊이 있게 풀어준다. 단.....진도에 쫓겨 읽다보니... 아, 지나치게 부연설명이 많은 거 아닌가 싶을 때도 가끔 있긴 하다.





























번역자인 (고)김수행 교수님이 살아계실 때 했던 자본론 직강 전편이 유튜브에 올라와있다. (아..감사합니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말했다꼬!!"



구수한 사투리에 빛나는 지성!







그 밖의 참고 텍스트 (읽을 시간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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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2-13 12: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실님의 닉네임이 바뀌었다!!

시에나 2023-02-15 00:31   좋아요 2 | URL
에헤헤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자본론 진도 따라가느라 서재에 소홀하지만 눈팅은 열심히 하고 있어요. ㅎㅎㅎㅎ
 
조성진 - 헨델 프로젝트 - The Handel Project: Handel-Suites & Brahms-Variations 조성진 - 헨델 프로젝트 1
헨델 (George Friderich Handel) 작곡, 조성진 (Seong-Jin Ch / 유니버설(Universal)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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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하고 말랑말랑하지만 고급스러운 헨델.
아아 그리고 브람스. 점점 쌓아가서 푸가에서 터지는 종소리.
늘 앨범은 실연보다 뭔가 아쉬웠는데 이 앨범은 작년에 들은 실연의 감동을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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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0여년 전, 한창 <논어> 공부에 빠져있을 때였다. (동양고전 덕후가 될 뻔하다가 말았던 흑역사가 있다) 지금 읽다보니 요즘 생각하는 거랑 다르지 않아서 (아니, 10년 전이 더 나은 거 같기도...?) 옮겨와 본다. 




++++ 



논어, 배우지 않아도 배운 사람  




자하가 말하였다. “어진 이를 어질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하는 마음과 바꿔 하며, 부모를 섬기되 능히 그 힘을 다하며, 임금을 섬기되, 능히 그 몸을 바치며, 벗을 사귀되, 말에 성실함이 있으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子夏曰: “賢賢易色; 事父母, 能竭其力; 事君, 能致其身; 與朋友交, 言而有信. 雖曰未學, 吾必謂之學矣.” (자하왈 현현역색 사부모 능갈기력 사군 능치기신 여붕우교 신이유신 수왈미학 오필위지학의)

(학이 7)


논어 강의를 들으며 처음으로 논어는 ‘먼저 알고 행하는’ 선지후행(先知後行)이 아니라 ‘먼저 행하고 아는’ ‘선행후지(先行後知)’를 말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논어라면 무엇보다 ‘배움’을 강조한 텍스트라고 알고 있었는데, 오히려 실천하는 ‘행’(行)을 앞에 둔다니 의아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반가웠다. 꼭 책을 많이 읽는다고, 이론이 탄탄하다고, 아는 것이 많다고, 실행이 잘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공자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걸까.

어쩌면 논어의 '배움'은 우리가 아는 '배움'과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위의 문장에서 자하는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배운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라고 단언한다. 배움을 강조하는 논어에서 배우지 않아도 배웠다고 말하는 문장이 있다니, 여기서 우린 다시 '배움'이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배움’은 과연 ‘무언가 아는 것'일까? 그렇다면 ‘무엇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일까. 또 배웠다면 ‘무엇을’ 배운 것일까. 雖曰未學(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말하더라도), 吾必謂之學矣.(나는 반드시 그를 배운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에는 똑같이 ‘배울 학(學)’이 들어간다. 앞,뒤의 배울 학(學)이 뜻하는 바는 조금 달라 보인다.


일반적 논어에서 ‘학(學)’이란 문헌을 읽거나 스승의 말을 통해 전승된 문화를 듣는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배우지 않아도 이미 배운 사람’이라고 할 때 ‘학(學)’은 단지 문헌을 배우거나 학문을 연마하는 의미만 있지 않다. 배운다는 것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이 이미 포함되어 있다. ‘인을 사랑하고 부모와 임금을 잘 섬기고 친구간에 신의를 지키고 말을 성실하게 하는’, 이 모든 것은 공자를 비롯한 유가(儒家)가 당시에 생각한 사람다움이다. 그들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어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인격을 수양할 것인지, 군자답게 산다는 건 무엇인지를 ‘배우고자’ 했다, 그러한 수행, 실천을 위해 ‘배움’이 필요했다. 옛 문헌의 글귀를 달달 외워야만 군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까막눈인 사람이라도, 촌부라 할지라도, 어쩌면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도 누구보다 사람답게, 군자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보면 배움은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중 하나에만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

젊은이들은 집에 들어가면 효도하고 밖에 나가면 어른을 공경하며 말을 삼가되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며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해야 한다. 이것을 행하고 여력이 있으면 문헌(학문)을 배운다.

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悌)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자왈 제자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이친인 행유여력 즉이학문 (학이 6)


위의 문구에서는 ‘학(學)’을 문헌을 배우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학문을 배우는 것은 맨 나중에 있다. 효도를 하고 공경을 하고 말에 성실함을 다하고 사람을 사랑하고도, ‘여력이 있을 때’ 학문을 하라고 한다. 하지만 보통은 반대이다. 학문을 하느라 바빠, 할 수 없다. 학문 앞에서 자질구레한 일상적 실천들은 번번히 무시 당한다. 그리고 핑계를 댄다. 아직 ‘부족해서 그렇구나’ 라고 말이다. 무언가를 못하는 이유가, 책을 덜 읽어서, 앎이 적어서라고 생각하고 책 속으로 끝 없이 파고든다. ‘책 안에 답 있다! ’하지만 제대로 알아야만, 행할 수 있는 걸까? 아는 것, ‘지(知)’가 쌓이면, 의식적 깨달음이 오고, 그렇게 행(行)은 절로 되는 걸까? 아니, 아는 것과 행하는 것에 과연 단계와 순서가 있을까?


예전에 스쿠버다이빙을 배울 때였다. 당연히 스쿠버다이빙은 ‘글’로 배울 수 없다. 수심에 따라 달라지는 수압의 차이, 그에 따라 폐에 채워지는 공기의 양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신체의 변화, 부력의 원리를 실습 전에 이론으로 숙지한다. 자격증을 받기 위해선 필기 시험도 봐야 한다. 하지만 수심 1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모든 것은 백지가 된다. 무중력의 세계, 산소가 전혀 없는 수중의 세계는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른다. 허벅지부터 발끝의 핀(오리발)까지 수평이 되도록 물을 차는 법, 수중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가만히 떠 있는 ‘중성부력’, 귀가 아프기 전, 코를 흥 풀어 ‘압력평형’을 제 때에 맞추는 것은 무수한 연습, ‘행(行)’을 통해서만 익힐 수 있다. 그런 연습 끝에 어떤 것도 ‘의식적’으로 하지 않게 될 때, 비로소 물 속에서 자유로워진다. 그 때야 수중 생물들도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이론들이 내 몸에 붙은 채로 인지된다. ‘이렇게 하면 더 편안해지는 구나, 이럴 땐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구나’ 란 걸 알게 된다. 이 때야 두렵기만 하던 바다도 비로소 아름답게 보인다.


리처드 세넷의 <장인 –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이란 책에서도 이러한 ‘지(知)’와 ‘행’의 문제가 나온다. 우린 보통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순차적으로 여기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실기의 작업, 육체 노동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게 별로 없다거나 ‘지(知)’에 의한 의식이 약하다거나, 정신이 멍하다고 생각한다. 머리와 손, 사고와 행동, 기획과 실행은 분리되어 여겨졌고, 관념적인 사고와 정신적인 탐구는 구체적인 경험보다 상위에 놓였다. 리처드 세넷은 이러한 통념을 방대한 예시를 들며 하나씩 깨어간다.

도구를 손에 익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 실기를 하는 사람들, 장인들은 “손과 머리를 써서 마주한 물건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게 생업이어서 생각과 행동의 분리를 겪지 않는다. 행동이든, 생각이든 간에 그 일으킴 자체가 좀 더 온전한 상태”이다. 사물을 다루는 우리의 의식은 사물 자체와 별개로 움직이지 않는다. 도공이 흙을 빚을 때, 그의 생각은 흙을 따라간다. 머리가 손에 흙을 만지도록 지시하는 ‘의식적 분리’는 겪지 않는다. 손끝으로 만져지는 감각과 그것을 의식하는 사고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하나하나 생각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별 생각 없이 행한다. 하지만 결코 ‘멍한 상태’는 아니다. 손으로 놀려가는 경험은 '암묵적 지식'으로 쌓인다.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 내재적으로 축적되는 것이다. 기능이 높은 단계로 숙달되면서 ‘명시적 의식’이 작용한다. 암묵적 지식을 비판하고 교정하는 ‘자기 의식’ 이다. 암묵적 지식과 명시적 의식이 끝없이 교류한다. 그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비단 어떤 기술이나 도구를 몸에 익혀가는 과정에만 적용되는 것일까? ‘학문’을 배우지 않았지만, 학문을 배운 사람 못지 않게 군자답게 사는 사람이라면, 일상적인 실천 하나하나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지(知)’가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동시에 수시로 자신을 돌아볼 것이다. 이런 과정이 ‘선행후지(先行後知)’가 아닐까.

우린 앎과 삶의 간극 속에 괴로워한다. 아는 만큼 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간극은 애초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배우고 있다면, ‘아는 만큼만 살고’ ‘사는 만큼만 알고’ 있을 것이다. ‘배움’이란 건 ‘하면서 동시에 아는’ 과정, ‘행과 앎’이 착 달라붙어 있는 과정을 무수하게 반복하며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늘 익혀가는 과정(습(習)이자 행(行))이 포함되어 있다. ‘배운 것’이 몸에 붙게 될 때, 섞이게 될 때, 무언가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배우지 않아도 배운 사람”, 이 문장은 ‘배움’이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좀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 스스로를 수양하기 위해 배운다면, 그것은 ‘학문(文)’에 가두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무엇을 만들어야겠다, 어떤 도구를 익혀야겠다’는 것만큼이나 ‘실기(實技)’이다. 실지로 행하는 삶의 기술, 몸에 붙이는 기술이다. ‘관념’이 아니다.

 ‘배움’을 지식의 습득, 의식적 깨달음, 정신의 영역에 가둔 채, 배움 뒤로 숨고, 배움 이후로 미루지 않을 수 있을까? 배움을 내 몸이 생생하게 부딪히는 삶 속에서 일으키는 무수한 실천과 자기 돌아봄으로 과감히 가져올 수 있을까?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배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논어의 문장을 통해 ‘배움’을 다시 질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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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리처드 세넷의 <장인>은 나의 인생 책 중 하나이다. 페미니즘 책에 꽂히기 전, 육아를 하기 전에 나는 장인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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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2-06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페미니즘 장인이 되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
실기...아는 만큼.. 산다...... 페미니즘이 문제삼는 이성/감성 이분법의 해체와도 따로 떨어지지 않은 이야기고요, 그러고 보니 동양 고전은 그런 맛이 있습니다. 사실 서양 것들이 이 훌륭한 혼융의 세계를 모르고 시상을 망치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이죠 ㅋㅋ 모 그렇다고 음양오행의 동양이냐? 것도 아니고 ㅋㅋㅋㅋㅋㅋ 당분간은 페미니즘!! >_<

시에나 2022-12-08 15:37   좋아요 1 | URL
댓글을 이제 봤어요. 북플 어플은 안깔고 웹으로만 보다보니. ㅎㅎ
저도 아주 얄팍하게 안 바로는 동양 것들엔선 이미 이분법이 없었던 거 같아요!

이거저거 파는 듯하다가 끝까지 가지를 못하고 중도 그만두는 것이 저의 P성향 탓인듯 합니다.. 페미니즘은 좀 끝까지 해봐야할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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