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헤비 한 프로젝트가 찾아왔다. 작년에 어찌어찌 겨우 끝냈는 데,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받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돈을 좀 더 받게 되었다. 무슨 말이냐면....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내 주제에 당분간 일을 거절할 권리는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아프단 핑계 대고 석 달은 여유롭게 최소한으로만 일했기 때문에 이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돈을 열심히 벌어야 됨. 문제는 노는 것에 몸이 적응해서 도저히 일 모드로 동기화가 안 된다는 것이지만ㅋㅋㅋㅋ)
프리랜서 1년 하고 반년. 나는 나를 믿지 않는다. 마감은 믿는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 나를 위해 준비된 일들이 나 자신을 떠민다고 하더라도, 더는 몸을 상해가며 일할 수는 없다. (즉, 운동할 시간을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
오늘 아침에 구체적으로 시간을 체크해 봤더니, 주 6일씩 쉬지 않고 쭉쭉 내가 해낼 수 있는 만큼씩 하면 딱 한 달 걸리겠더라. 여기서 중간에 아프지 않아야 하고(나의 몸아- 잘할 수 있지?) 그러고싶지 않지만 정리해야 할 것은 중간에 킬링타임으로 시간을 보내던 북플!! 북플에서 놀고 떠드는 시간을 유지하면 ㅜ..ㅜ 책을 못 읽게 되는 걸 떠나서 일도 다 못 마치게 될 것이 자명하다.
나는, 나라는 자원은, 한정적이다. 나는 그걸 잘 안다.
이 책은 사실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의 연장선에서 읽게 된 책이다. 김택규 번역가가 기억에 남았던 것은 ‘나는 기계다 나는 기계다’라고 되뇌는 부분. 물론 언어와 언어를 바꿔내는 숭고한 작업에 비하면 내가 하는 일의 피로도는... (생각하는 중. 내가 하는 일도 어렵다. 투자대비 효율이 나오지도 않을 때가 더 많음.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기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나는 비정상이고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 더 잘 안다. 밤늦게 스터디가 끝나는 매주 수요일을 제외하고는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고 새벽 3~4시에 하루를 시작하는 내 일과가 이른바 정상인의 눈에는 예사롭지 않게 비칠 것이다. 내 사전에는 늦잠도 없고 낮잠도 없으며 늘 이른 잠을 자니 자연히 저녁 약속이나 음주가무도 없다. 나는 스스로 기계가 된 번역 노동자로서 이미 종잇장조차 끼워넣기 힘든 일상을 살면서도 여전히 어떻게 일을 위해 짬을 더 낼까 궁리하는 시간의 스크루지다. 단, 스크루지는 부자이면서도 돈에 대한 욕심을 거두지 못했지만 나는 부자이기는커녕 생활비에 쫓기느라 시간에 대한 욕심을 거두지 못한다.” - 김택규, 번역가 K씨의 하루 <매우 혼자인 사람들의 일하기>
어쨌든 번역가와 불행 배틀을 할 수는 없고, 중요한 건. 내 일이 쓸모없는(일지도?) 일이거나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책으로 자신의 일을 써내는 사람들* 수준으로까지 난 일에서 별 의미나 재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소통을 하고) *혼자 할 수 있다*는 것 만큼은 정말 좋다.
그리고 그건(일에서 돈이 아닌 의미와 재미와 보람을 찾는 건) 욕심이지, 뭐. 현시점을 지나는 나는 그렇다. 그러므로 삶에서 일이 전부가 되지 않게 나를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일을 뺀 나머지에서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좀 더 중요하다. 그렇다고 의미에 몰두하느라 일을 안 하는 건 더 문제다(난 그런 사람들이 싫다). 뭐든 균형이 중요하다.
매일 걸으면서 생각한다. 내 인생은 나 역시 처음 사는 것이라고. 알 수 없음. 모르는 건 당연해. 그리고 모두가 자신들의 인생을 처음 사는 거라고. 그들도 알 수 없음. 모르는 건 당연해. 우린 모두 처음이구나. 그 지점에서는 평등해. 어떤 최소한의 기준마저 다 사라져 버린 세계는 점점 더 나빠질 것이고, 그것들이 나빠지건 말건 나 자신은 더 나빠질 수 없다. 나빠지고 싶지 않아. 나를 잘 관리해야 한다. 나의 중심은 견고해야 한다. 나에겐 신앙도 없고, 헌신할 대의도 없으며, 나 자신을 잃어도 되는 좋은 근거가 될 타인들(부양가족?)도 없으니까. 중심을 잘 다지지 않으면 나는 또 나를 처리해버리고 싶어질거야. 그럴 순 없지 않나? 내가 뭐라고. 처리할지 말지를 생각하는 동안 나 자신이 비대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건 정말 별로다.
일. 일을 삶에서 떼어놓을 수가 없는 거라면. 내가 좋아하고 나 스스로가 의미부여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일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겐 어떤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런 소박한 기쁨을 누리는 나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모두 성장하고 싶어 하고 발전하고 싶어 하지. 나는 아니다. 나는 지금이 최대의 성장이고 발전의 결과다.
어쨌든 지금의 내 모습이 부족해 보이는 건가? 내가 폐기하고 있는 나의 가능성(선택지)들이 추구할만한 것들인가? 라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나에게 묻는다.
지금 너는 어때?
- 난... 5년 전에 꿈꾸던 나야, 지금의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나야.
물론 현재의 이 삶도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나는 나를 다루는 능력이 그때보다는 조금 향상되긴 한 것 같다. 물론 어떤 욕구(선택)들은 이제 아예 포기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그래도 아쉽지 않다. 지금의 나는 5년 전의 내가 간절히 되고 싶었던 나니까. 일하는 시간 외에는 오로지 내가 동력이 되어서 나를 위해서 게으르게 사는 삶.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은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시간이 생긴다는 것은. 슬프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나를 잃어버리는 시간이 있기에 나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어쨌든. 숨을 참는 기분으로. 일에게 love dive할 생각이다.
오늘의 나는 이 문장을 꺼내서 삼킨다.
- 나는 기계다, 나는 기계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내 손가락은 내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내 손가락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나는 내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 몸을 그렇게 훈련시켜 왔으므로.
그래도 역시 글 쓰는 게 좋다. 너무 행복해.
(라고 쓰는 동안 거래처에서 카톡이 온다. 흑. 여러분 북플 죽돌이는 당분간 돈벌러가요~ 안녕~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