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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읽을 수 없는가 - 인문학자들의 문장을 돌아보다 ㅣ 메멘토 문고·나의 독법 1
지비원 지음 / 메멘토 / 2021년 6월
평점 :
이 책 읽다가 조금(진짜 조금) 울었다. 책 앞에서 종종 엄두가 안나는 내 마음을 이해 받은 것 같아서.
그게 어느 일방의 잘못이 아닌 아주 근본적인 역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어 고마웠다.
희진샘은 *앎을 비워내는 것이 공부*라고 말했는 데…
나는 내가 안다고 스스로 착각하지 않으면, 공부를 이어갈 동력이 생겨나지 않았었다.
이건 내 처지에 과계몽이다.라는 말들이 내 안에서 계속 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아야 해!! 알아야지 나를 지킬 수 있어!!! 그러면서 읽고 썼다. 알라딘에 독후감을 열심히 올렸다. 좀 순진한 마음 고생인데 그러다가도 쪽팔렸다. 모르는 걸 들키는 건 좀 쪽팔리니까. 누가 너 잘못 이해하고 있어… 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싶다가도… 막상 그렇게 말해주면 억울할 것 같았다. 나에겐 오독할 권리가 있다구!! 이 만큼 읽어온 것도 잘한 거야!!! 사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구!!!!
게다가 내게 안다는 것은 상처 받는 일이기도 해서…
내가 더 안다는 것으로 상처 주고 싶은 대상이 분명히 있는 나는…
지난 달 쯤엔가 동네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다.
누나가 나한테 페미니즘 책을 추천 받아 읽기 시작하고 4년 만에 처음으로 이제 좀 알 것 같다고 말했다고.
그리고 또 2년이 지났는데… 지금은 확실히 나보다 많이 아는 것 같다고.
아니, 나는 이제 더 몰라지는 단계인데?
난 계속해서 커지기만 하는 가진 지적/언어적 열망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친구는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책 앞에서 계속 무너지는 경험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초조하다는 말을 하는 데… 나한테 조심하라고 말하면 나는 좀 억울한 데? 그래도 누나는 이제 언어를 가졌잖아요. 그날은 좀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그 해명되지 않는 상처를 안고 뭔지 몰라서 버둥대면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나의 괴로움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고, 그게 미러링이든 페미니즘이든 이제는 어떤 ‘언어’가 있고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좀 사는 방법(주경야독)을 알 것 같아졌을 뿐인데… 그걸 너에게 권력이 생긴 것이라고 친구가 돌려 말해준 것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이제서야 자기 검열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데 다른 자기 검열을 또 하라는 소리? 아니아니요. 누나처럼 공부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
그러고 나니 <페미니즘의 도전>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다른 문장들이 기억났다.
“(10) 지금은 세상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 자체가 변혁이라는 사실, 담론의 힘을 모르는 이가 없다.”
“(11) 페미니즘을 인식하고 공부하는 것 자체가 사회운동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 시대의 빈부양극화는 지성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모든 양극화 현실 자체가 비가시화 되어 우리는 이 사실을 알기조차 어렵다.”
나 이제 지성인이야? 영어 한마디 못해도? ㅋㅋㅋㅋ 네.
그렇구나. 나에게 어떤 해석 할 수 있는 시선과 언어가 생겼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구나.
그런것들을 곰곰 생각했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잠자냥님한테 이런 댓글을 달았지.
“저는 pc를 자기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있느냐 없느냐로봐요. (그 정도의 인식에 가 닿기 위한 노력을 부정하진 않고요) 그리고 언제나 자기의 언어를 가진 사람들은 그걸 자신을 지키는 무기로도 사용하지만 때로는 공격의 무기로 사용할 수도 있죠. 저의 경우 제 지적/언어적 열망은 어떤 권력에의 욕망과 다름 아니라는 걸 스스로는 인식하고 있고, 그걸 갖추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끔 화가 나기도 하지만... 이제 권력을 누군가를 죽이고 살리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정희진의 (이것도 정희진이 푸코 해석한 글 어딘가에서 읽었던 것 같은 데) 문장에 동의해요. 즉 저는 저를 설명할 수 있는 쾌감을 제공하는 어떤 언어/권력을 갖고 있구나 하고 스스로 인식하고 점점 더 인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튼 자기의 말에 책임감을 느끼고 그걸 감당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예요. 언어가 없는 사람들은 언어를 만들어야겠지만요.” https://blog.aladin.co.kr/socker/13990081
그걸 적고 나서 내가 나를 더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렇구나.
나의 언어를 갖춘 이후에는…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거구나.
다른 언어들과 만나서… 계속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거구나.
언어를 갖추고 난 후에는 그런 어려움이 생겨나는 것이구나.
내게 어떤 언어가 생겼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걸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소통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들을 지나는 와중에 만나게 된 책이었다. 모르고 덤벼들었던 책들이 무서워지는 경험을 하면서 답답해 하다가… 동시에 나 역시 나를 위해서 만 쓰고 있다고 생각했던 글(독후감)들이 누군가를 향해서 쓰고 있는 글들로 그 성격이 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그런 자각. 여전히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쓰겠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왜 읽을 수 없는가,
왜 읽을 수 없는가,
왜 쓸 수 없는가,
왜 쓸 수 없는가,
나에겐 이런 질문처럼 느껴졌다.
왜 소통할 수 없는가.
그건 또 나에게 이런 문장으로 돌아온다.
나는 소통하고 싶었구나.
.
.
왜?
?
독서란, 그것에 대해 고담준론을 늘어 놓는 지식인들의 자력갱생한 경험과는 달리,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매우 특별하고 특수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체험이다. - P11
쉽고 얄팍해 보이는 프로그램이나 책이 인기를 얻는 현상은 사람들의 지식욕을 이해하지 못하면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일반인들의 지식욕이 누군가 아무렇지 않게 구사하는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문장에는 접근할 길을 찾지 못하는 것뿐이다. … 독자들이 이러한 글을 쉽게 읽을 만한 환경에 놓여 있거나 있었을까? - P20
그러나 동시에 대학 ‘안’에 있는 이들은 대학 ‘밖’에 있는 이들이 무엇을 읽고 어떻게 쓰는지 ‘저어엉말’모른다는 고백이기도하다. 그러니 일반인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글을 쓰고 싶어도 어떤 식으로 자신이 지닌 전문지식을 전달해야할지 쉽게 감을 잡을 수가 없을 것이다. …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은 분명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이들이 위에서 본 ‘어려운 문장’에 다가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3
만약 인문학 연구자들이 이런 ‘언어 내 번역’을 ‘언어 간 번역’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기고 좀 더 의식적으로 한다면 어떨까? 그런 의식은 어떻게 갖게 할 수 있을까?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의 언어만큼 ‘언어 내 번역’을 완고하게 거부하는 언어도 드문 것 같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그 완고함의 근원에는 결국 ‘그 언어가 유래한 뿌리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P98
그런데 일본에서 들어온 말 가운데 가장 강고하며 고치자는 어떤 사회적인 움직임도 거의 보이지 않는 말들이 바로 인문사회계 학술 용어 같다. ... 사고, 사상, 관념, 인식, 비평, 토론, 문예, 논리, 공화, 문학, 주의, 과학, 명제, 의미, 진보 대체로 추상적인 개념어이며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아도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말들도 많다. 고치려해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다.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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