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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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 인스타그램 @prettybookplaces]


어떤 걸 읽다 말고 너무 흥분해서 재밌어서… 이것만 하고 싶어요!라고 외치면 언니는 “병이 깊네…”라고 절레절레. 나는 아마 외로웠을 테지만, 그리고 내 모든 증상은 병에 가까운 것이 맞지만 “이건 가장 우아한 병인 것 같아요” 깔깔.

어딘가를 더듬어서 닿고 부스러지면서 나와 맺혔을 말의 응결들. 그게 어디 있었지? 출처를 잊어버린 내가 이미 읽었을 타자의 글씨들. 어떤 말은 찢어버리고 싶었고, 어떤 말은 새겨서 문신이라도 하고 싶었었다. 먹을 줄도, 입을 줄도, 들을 줄도, 볼 줄도, 마실 줄도, 춤출 줄도 … 아마 잘 몰랐기 때문에. 읽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여전히 삶의 많은 영역에서 무능력하다. 그리하여 읽은 것을 느끼는 것으로 대체해 버리기 전에, 나를 살린 걔가 나를 질식시키기 전에.

사람을 만나야지, 사는 듯 살아야지. 이렇게 다짐해 놓고 사는 듯 산다는 게 뭘까. 하게 되는 아침.

사람이 말로 지어진 동물이라는 것이 재밌다. 언어. 그걸 하나하나 더듬어가는 글씨들을 읽다 보면 거기에 퇴적되어 있는 것들을 그토록 가볍게 흩날려버리면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게 이상하고 때로는 무서운데 너무 신중해지지는 않으려고 한다. 충분히 무거웠어. 더 명랑하게 읽고 써요. 더 가볍게.

아무렴. 나는 명심한다. 이 삶이 없었다면 읽을 수 있는 쾌락도 없었다. 이게 나한테 중요해요. 이건 나한테 정말 중요해요.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과거의 나처럼) 고담준론이라 하겠지. 맞다, 먹고 살 만하다. 먹고 살 만할 겨를이 생기자마자 이걸 (읽어서 오는 쾌락) 감각해 보고 싶었던 거 같다.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의 그게 다 가 아닌 지독하게 중요한 유희, 병, 그걸 내가 내게 주기 힘들었던 마음들까지 포함해서 이토록 치열한 한가함.이랄까.

“(13)우리는 어느 날 문자라는 괴상한 것을 갖게 됐어요. 이는 다음을 의미합니다. 언어는 그림이기도 하다. 언어는 눈에 보입니다. 사람은 이 사실에 좀 더 놀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아주 곤란하게 현실도 보이고, 현실이 아닌 허상도 보입니다. 그리고 언어도 보이죠. 이는 도대체 어떤 사태인가?”

“(37)지금까지 존재했던 모든 서적에 응답한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은혜를 갚아야 하잖아요? (웃음) 하지만 모든 것에 응답하고 은혜를 갚으려면 한 글자도 쓸 수 없게 돼요.”


책은 강연록+대담 묶음인데, 주로 일본의 저명한 작가들과 콜라보라서... 작가라는 존재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나는 재밌게 읽었다. (딱 한 부분이 거슬렸는데, 그 한 부분은 안 알랴 드림)

특히 이런 부분.

1. 최초의 문학가는? 기원전 2300년 경의 수메르 공쥬님. 이름 기억해두자. 엔 헤두안나.

2. 한 소설가가 “글이 너무 안 써져요”라고 (무려) 오에 겐자부로한테 징징 고민 상담했더니 “그럴 땐 번역을 하세요. 문체에 도움이 좀 될지도” 하면서 제안한 작품이 맬컴 라우리의 #화산아래서 (내 기억에 이거 푸코가 엄청 좋아한 책인뎈ㅋㅋㅋㅋㅋㅋ)… 그런 작품은 번역하는 데만 10년 걸린다며 투덜대는 중. 나 이 문학하는 사람들의 비실용성이 너므 한가하고 배부르고 룰루랄라 좋드아.



어떻게 하면 지혜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내 친구 지혜한테 사진 찍어서 보내줬다.

우리의 우정이 철학이라면, 나의 철학은 순항 중. 이럼시롱.

사사키는 종교철학 전공인데 주로 다루는 사람들이 퀴퀴한 곰팡이 냄새나는 고문서 뒤지는 사람들이라, 진짜 오래된 출처들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해주는 부분들이 특히 즐거웠다. (이제 이런 건 챗GPT치면 나올라나?) 연애, 그러면 연애의 발명. 소설, 그러면 소설의 발명. 청산유수 이야기 보따리 약장수.

슬렁슬렁 읽었는데, 그래서 뭔가를 발명하자! 그것이 당대 우리의 임무! 이런 웅장한 게 사사키의 주장은 아닌 거 같다. 이이 역시 적잖이 헤겔에 밝은 사람이라, (내 느낌에는 아주 음흉한 표정을 지으면서) “가위바위보 - 맨 나중에 내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그리고 이게 사사키식 #헤겔 요약이다ㅋㅋㅋ) 언제가 맨 나중이 될지 모르니 일단 내자, 이러는 거.


그리고 가장 좋았던 부분은 128페이지



- 제임스 조이스가 “평범함”을 썼을 때, 사람들이 그때야 비로소 “평범함”이 무엇인지 이해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작가의 일이라는 건 정말 근사하다는 걸 다.시.한.번. 세상에는 이미 너무 많은 말들이 넘친다고만 생각했는데. 더 보태는 게 의미가 있나? 그렇게만 여겼는데. 그 넘치는 말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 (어떤 삶을 입고 있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느낀, 자신에게 맞는 다른 말이 필요했던 어떤 누군가가 -곧 그는 작가가 된다- 어떤 사건을 낚아채, 어떤 상황을 찢어내면서, 진부한 타자의 말들로 누덕누덕 기우고 꿰매서, 결국엔 다른 이들의 말로 지어졌으나 이제는 저에게 꼭 맞는 옷)와 그리고 그것에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와, 아름다워요. 그 옷 어디서 샀어요? 안 판다구요?) 그 과정(심각한 오독까지 포함해서)을 떠올려보니.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어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을 결코 쓸모없이 만들지 않는 게 문학의 영위이구나. 내가 그걸 정말로 몰랐던 거구나.

새삼스레. 감격. 인간에게 언어가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나는 시를 읽지 않는, 근지럽고 예쁜 말에는 취미 없던 독자였지만, 읽다보니 점점 나 스스로도 놀랄만큼 변해버려서. 나는 이해하지 못했구나, 지금까지도. 말이 아름답기도 하다는 거. 인간의 작용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거. 그것 마저도 결국 언어로 지어져야 한다는 거. 그러기 위해 “(12)언어와 언어화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이분법을 버리는 게 좋다”는 거. (이 관념이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 까지도.) 어쩌면 내가 느꼈던 말의 인플레이션은, 나는 나의 말에 책임이 없고, 그리하여 나만큼이나 가벼운 다른 이들의 그 말들을 휘발시켜버리면서 쉽게 살려했기에 치른 일종의 대가성 고역이었단 걸.


나의 독서 스팟 코인 빨래방, 왜 잘 읽히는 걸까. 사사키 아타루와 이번엔 진짜 안녕~🖐️


“(152) 이 ‘압도적인 현실’앞에서 무력하지 않았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도대체 ‘힘이 있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이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미군? 요 근래 수십 년간 세계 각지에서 계속 실패하고 있는 그 군대가? 처음부터 무력했던 것입니다. 문학이나 예술만 특별히 무력했던 게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모두 다 무력했습니다. 무엇을 해도 무력하고, ‘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현실’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무력해!”라고 말하면서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요? 버리겠습니까? 모든 것을 버린 다는 게 가능할까요?

무력합니다. 하지만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무력하지만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문학이든 사상이든, “이 압도적인 현실 앞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상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못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예술이나 사상에 ‘권력’이 있다고, ‘힘이 있다’고 여긴 게 됩니다. 자기가 하고 있던 일이 특권적으로 무력하다고 말하는 것…… 이는 어딘가 잘못됐습니다. 어쩌면 권력을 갖고 싶어서, 유명해지고 싶어서, 돈을 벌고 싶어서 사상이나 문학을 했다는 얘기가 아닐까요?

(157) 그렇다면 후쿠시마 이후, 우리의 문화는 모두 핵폐기물일까요? 이에 대한 비판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아도르노 식으로 말하면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화는 핵폐기물이 됐나요? 답은 하나입니다. ‘그렇다’도 ‘그렇지 않다’도 아닙니다.

“두고 봐.” 이것이 유일한 답입니다. ”


사사키의 글에서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는 음흉한 씩씩함에 있다.

나중에 내는 사람이 이긴다. 그러니 두고 봐. 라니.

이렇게 쓰는 사람이라니. (내가 더 오래 살아서 나중에 내야지~)

"두고 봐."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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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5-02-09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인빨래방이 진정한 뽀모도로..
아 이번 페이퍼 너무 좋네요 ㅜㅜ 응답과 은혜 밑줄과 문자라는 괴상한 것!
전복적인 무능력자 쟝님

공쟝쟝 2025-02-09 22:55   좋아요 0 | URL
인용을 좀 더 해둘 것을 그랬나봐요! … 읽고 쓰는 데다 철학 좋아하는 시상 쓰잘데 없는 걸 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으로 사는 데 가끔 올라오는 가책, 자기 비난의 목소리를 무력화시키기에 참 좋은 부분이 많은 책 이었어요!! ㅋㅋㅋ

단발머리 2025-02-09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우치다, 저녁에 사사키ㅋㅋㅋㅋㅋㅋㅋ 점심은 초밥, 저녁은 우동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용해주신 문단이 참 좋네요. 저는 오히려 이런 문장....

무력합니다. 하지만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무력하지만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에서 무의미함의 쓸모 없음을 ㅋㅋㅋㅋㅋ 떠올립니다. 이 쓸모없음 속에서 찾고자 하는 그 무엇은 여전히 의미라고.... 전 생각합니다.
지금 앓고 계신 그 병은 불치병인데, 잘 낫지 않는다고 합니다. 꼭 사사키보다 나중에 내셔서 이기시기 바래요. 이기는편 우리편 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5-02-10 08:31   좋아요 2 | URL
라임 참 좋다…! 우치다 초밥 사사키 우동 ㅋㅋㅋ 자매품 하루키 돈카츠 ㅋㅋㅋ

제 서재 제목이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인데….!! 사람들은 앞 부분에 포인트를 둘테지만 ㅋㅋㅋ 저는 언제나 그걸 확인하는 의미!!!에 강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ㅋㅋㅋㅋㅋ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

하루키에 의하면 이 게임은 마치 장거리 달리기와 같아서 자신에게 잘 집중하는 페이스인지 아닌지가 중요할 뿐 이기고 지는 건 없다고 합니다 ㅋㅋㅋ 작가보다 오래사는 독자가 이기는 게임!

blueyonder 2025-02-10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글 좋아요. 좋습니다! 두고 보겠습니다!!

공쟝쟝 2025-02-10 11:54   좋아요 1 | URL
이과에게 인정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