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처럼 싾여있는 일더미를 조그마한 숟가락으로 퍼내는 나날이다.
집에서 뭔가 보냈다는 반찬은 퇴근하고 가면 늘 경비실이 문닫아 있어서,
어제야 겨우 4일만에 찾을 수 있었는데,
아저씨한테 싫은 소리 잔뜩 들었다.
'쓰레기 분리수거 잘해라'로 마무리 되는 얘기를 듣고
풀이 죽어서 택배상자를 낑낑 집으로 운반한다.
모처럼 9시전에 집에 들어왔는데,
경비아저씨한테 혼나다니 ㅠ.ㅠ
재활용이래봐야 병하나 종이하나 박스 세개 이런 정도인데,
그걸 봉지 하나에 하나씩 넣어서 배출해야하다니 --;;
책은 짧은 책을 읽다읽다 그마저도 귀찮아서 이제 그림책 사진책으로 넘어갔다.
늘 즐겁게 읽는 녹색평론도 구박받아 쳐박혀 있고,
(글 밖에 없다니!)
화장실에 배치되어있는 포의 두터운 전집도 집에서 화장실 갈 일이 없어 방치 중이며,
얇디얇은 시사인과 작은책 마저 싾이고 있는 실정.
그래도 그림, 사진책 읽기는 계속되고 있다.
애초에 비틀즈 시디를 하나 틀려고 했더니 이녀석도 고장인지 틀어지지를 않고 --
클래식 라디오 채널을 대충 틀어놓는다.
집을 방치하면 어째 가전제품들까지 고장이 나는지는 늘 미스테리다.
일주일째 싾여있는 설거지 거리들을 옆으로 밀어놓고,
zzz라는 이름을 가진 허브티를 만들어 들고
(내일쯤엔 설겆이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이상 컵이 없다 --;;)
늘펴져있는 밥상에 책과 차를 놓고, 늘펴져있는 이불로 몸을 둘둘 말고 독서 시작.
우키요에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내가 생각했던 화려한 우키요에, 음... 그러니까 화투 그림처럼 생긴게 우키요에의 다가 아니었다 ㅎㅎ
마치 보테로의 그림 속 등장인물들처럼 몰개성하게 생긴 그녀들의 나른한 표정에서 애수와 우울을 느낀 것은 나만은 아니리라. 혹시 다음에 일본에 간다면 꼭 우키요에를 보러가고 싶다.
로렌초의 시종님 서재에서 발견하고 구매한 일반인을 찍은 사진집이다.
뉴욕, 파리 등지의 시민들이 쇼케이스 속과 달리 일상속에서 어떻게 개성있게 자신을 표현하고 다니는지에 대한 사진집이다.
자연스럽지만 살짝 보이는 패션센스가 눈을 즐겁게 한다. 딱딱한 포멀슈트 카라에 손톱만한 장미브러찌를 한 남성, 롱 페딩을 멋지게 두른 할머니(진정 나도 그렇게 늙을 수 있기를!), 드레스에 멋지게 배치한 스니커즈들.
이 책을 보고 나니 내 옷차림이 더욱 칙칙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부작용이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작품으로 헌책방의 전설이 되었다는 사진집이 재출간되었다. 자신의 큰딸 윤미를 태어나서부터 시집가는 날까지 찍었다.
쪼글쪼글 빨간 갓태어난 윤미가 개구장이 아이에서, 새초롬한 숙녀가 되고, 한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결혼하는 모습을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한 아버지가 기록한 것이다.
나는 깊이 애정을 가진 대상을 오래도록 찍어온 작품들을 편애하는 편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그들의 애정이 좋다. 그 한컷을 찍기위해 얼마나 오래 그 대상을 응시하고 있었겠는가. 나는 그 사진뒤에 애정어린 응시의 시간 공감의 시간이 좋다. 딸의 결혼전 데이트 사진을 찍기위해 데이트까지 따라나서고, (자신을 의식하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비교적 노력은 성공한듯 보인다 ㅎ) 딸의 결혼식 날도 아내가 말리지 않았다면 직접 찍으려고 했다는 이 놀라운 집념의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사진집은 참으로 즐겁다. 혹여 내가 누군가에게 프로포즈를 한다면 이 사진집으로 하고 싶다. 우리아이들의 모습으로 당신의 유년을 보고싶다는 말과 함께 ^^;;
위의 세권모두 가능하면 주말에 포토후기를 올리고 싶지만.. 음.. 음..
요즘 이렇게 여기저기 깨지면서 엉망으로 산다.
그래도 퇴근후에 작은 몰두에 순간은 이런저런 잡념들에서 나를 빼낸다.
여행에 대한 우키요에를 집에 걸어두었던 상인들도 잠시잠깐 그것을 보며 일상의 고단함에서 벗어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