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대답은 도망칠 여지를 주지 않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와 평생토록 맺어진다면, 그건 둘의 일생을 함께 거는 것이며, 그 결합을 갈라놓거나 훼방하는 일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거예요. 부부가 된다는 건 공동의 기획인 만큼, 두 사람은 그 기획을 끝없이 확인하고 적용하고, 또 변하는 상황에 맞추어 방향을 재조정해야 할 거예요. 우리가 함께할 것들이 우리를 만들어갈 거라고요." 당신의 입에서 나왔지만, 이건 거의 사르트르의 말 아니겠습니까.-24쪽
우리에게 영원히 이상적인 기본 유형으로 남을 어떤 목소리, 향기, 피부색, 존재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내 안에 들어와 울리던 느낌을 처음으로 그리고 근원적으로 발견한 경험 말입니다. 사랑의 열정이란 바로 그런 것이지요. 타인의 공감에 이르게 되는 한 방식입니다. 영혼과 육체를 통해 이 공감에 이르는 길은 육체와 함께하기도 하고 영혼만으로도 가능한 것입니다. -34쪽
"어서 와서 자요." 새벽 세 시가 되면 당신은 이렇게 말했지요. "곧 온다고 하지 말고, 그냥 와요 지금!" 당신의 음성에 나무라는 기색은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필요한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놔두면서도 그렇게 오라고 부르는 것이 나는 좋았습니다.-36쪽
그때 난 당신은 내게 아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요. 지금도다 더 대접받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42쪽
당신은 내 삶에 온 정성을 쏟으면서도 당신만의 모임이 있었고 또 당신만의 삶이 있었습니다.-49쪽
카프카가 [일기]에 쓴 다음과 같은 말이 당시의 내 마음 상태를 요약해주는군요.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지는 않는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는 않았던 겁니다.-69쪽
그렇게 되면 인간을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게 됩니다.-76쪽
내가 보기에, 기술의학이란 훗날 푸코가 '생체권력'이라 부르게 된 것, 즉 각자가 자신과 갖는 내밀한 관계조차도 기술적 장치들이 장악하는 권력중에서도 유독 공격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82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