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하고 달라진 것은 오직 하나 경조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솔직히 정신없을 정도다. 주말이면 두꺼운 책을 붙잡고 읽어보려고 발버둥쳐야하는데 이번 주말은 날도 좋고 나들이도 많아서 추리소설 세권을 먹었다.
어떻게 나이들고 싶은가? 나는 고운초이야기의 할머니 탐정처럼 늙고 싶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오래된 잡화점을 나이 쉰이 넘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커피콩과 다기를 파는 가게로 일신할 만큼 추진력이 있으며, 새로운 집들이 생겨서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이 끈적한 이웃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와 좋다고 말하는 쿨한 할머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일흔이 넘은 나이에 매일 동네를 돌며 쓰레기를 주울만큼 건강하고, 주변의 어려움을 모른척 하지 못하는 따듯한 마음의 소유자이고,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는 여전히 곱게 차려입고 싶고, 몸이 불편해진 친구를 살뜰이 챙기며 수다떠는 천상 여자다.
커피콩을 팔며 무료로 커피를 시음할 수 있게 해주는 옛주택에서 나무를 가져와 지은 낡은 가게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언젠가 비가 많이 오던 날 유후인에서 들렀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찻집이 떠오른다. 나도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일하고 있으며, 멋진 속옷을 챙겨입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고운초 동네에 일어난 사건을 커피집 할머니가 풀어가는 형식의 마음이 살짝 덥혀지는 소품이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형사인 아가씨를 모시는 집사가 아가씨에게 말만 듣고는 추리를 통해 살인사건을 단숨에 해결해 버리는 이야기이다. 술과 담배에 관련된 두 사건을 나는 맞추었는데 왜 술과 담배인가 하며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됐다 =.=
전통추리극 형식에 집사의 시니컬한 말투, 부잣집 도련님 경감의 자기자랑, 아가씨의 이 둘에 대한 짜증이 유머요소다.
편애하는 작가 사폰의 작품이다. (그렇지만 주말에 사포라고 잘못말해서 놀림받았다 --;;) 음침한 분위기가 작품 전반을 뒤덮고 있다. 그의 글답게 오래되고 편안한 분위기의 가족이 운영하는 서점, 잊혀진 책들의 보관소, 오래된 타자기와 멋진 서재가 있는 사연이 있는 오래된 저택 등 독서가라면 매혹될 장소들이 속속 등장한다.
첫번째 권에는 글쓰는 자의 고통이 절절히 느껴진다. 악의와 선의, 욕망과 좌절이 뒤엉킨 채 주인공의 머리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조금씩 드리워간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바뀌는 새벽 내 어두운 마음속과 딱 어울린다..
여하간 월요일은 밝았고, 처음 구워본 바게뜨를 씹으며 마음을 꼭 쪼매고 이제는 일하러 갈 시간이다. 멋진 할머니가 될 고민보다 멋지게 오늘 하루도 버티는게 더 시급한 문제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