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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ㅣ 수상한 서재 4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1년 6월
평점 :
어느 날 당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다면 당신에게 그 삶은 축복이겠는가?
만약 그 죽음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면 당신은 그 삶을 마냥 기뻐할 수 있을까?
죽음 앞에서 살아있음은 더 찬란히 빛나게 마련이지만, 산산이 조각나버린 영혼을 간신히 부여잡고 살아남은 이에게 삶은 고통과 슬픔, 절망과 분노의 아우성일 것이다.
특히 범죄의 희생양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에겐 더더욱.
여기 그런 사람이 있다.
영문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눈앞에서 충에 맞아 죽는 걸 지켜봐야 했다.
엄마뿐 아니라 마을의 여러 집에서 줄초상이 났다.
누군가 잘못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그날, 그곳에,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유 없는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
무엇도 잘못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수없이 죽어갔다.
우리 역사의 뼈아픈 슬픔의 시간 속에 여섯 살 염지아가 있었다.
그날, 엄마는 죽었고, 지아는 살아남았다.
엄마의 죽음을 밟고서.
그러나 아무도 지아가 살아있음을 기뻐해 주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죽어간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아내를 잃은 아빠는 비통함을 견뎌내지 못했다.
말하지 않은 책망이 살갗으로 스며들었고, 어린아이가 견디기엔 너무 힘든 자책과 고통이 지아를 조각내고 있었다.
삶이 폐부를 뚫고 들어와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을 때 지아는 영혼의 스위치를 꺼버렸다.
암흑.
어둠 속으로 숨어버렸다.
지아의 스위치가 내려가면, 혜수의 스위치가 올라갔다.
지아는 모르는 또 다른 자아가 지아의 몸을 차지하고, 지아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렀다.
삶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마다 혜수가 찾아왔다.
그리고 지아의 몸을 멋대로 휘두르며 지아의 삶을 망가트리기 시작했다.
지아는 혜수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했다.
혜수는 영리하고 파괴적이었다.
혜수가 저질러 놓은 일들을 수습하는 것은 항상 지아였다.
지아는 혜수가 너무 싫었다.
그렇지만 매번 혜수에게로 도망 치곤했다.
지아가 숨을 곳이라고는 결국 혜수의 뒤뿐이었으므로.
그런 시간들이 이어져 어른이 되었고, 대충 기워 입은 옷처럼 옹색하고 쓸쓸한 시간들이 흘러갔다.
지아의 삶과 혜수의 삶은 엎치락뒤치락하며 교차했고, 삶이 너무 무겁고 힘들었던 지아는 어느 날 영영 혜수의 뒤편으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망각의 시간.
지아는 모르는 혜수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영영 꺼져버린 줄 알았던 지아의 스위치가 19년 만에 다시 켜지며 책은 시작한다.
밤이었고, 추운 겨울이었고, 산속이었다.
그리고 땅에 반쯤 묻힌 시체와 삽을 든 채 지아의 삶은 다시 강제로 점등되었다.
혜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시체는 누구이며, 범인은... 나인가?
나는 시체를 묻고 있었던 걸까, 파고 있었던 걸까?
이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다시 점등된 지아의 삶은 온통 물음표뿐이다.
그녀의 기억은 20대에 멈춰있었고, 40대인 몸은 남처럼 낯설기만 했다.
혜수가 살았던 19년의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혜수는 왜 지아의 스위치를 올리고 도망쳐 버린 걸까.
이제 지아는 자신이 모르는 19년의 삶을 파헤쳐야만 한다.
살인자로 꼼짝없이 잡히기 전에.
하승민 작가는 처음이다.
다른 작품을 읽은 적 없어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이 글에서는 날 것의 냄새가 났다.
오래전에 읽었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가 떠올랐다.
향수를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충격.
책에서 코를 찌르는 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탄생을 어떻게 저렇게 서술할 수 있을까.
그 생경한 공포와 충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
조금도 꾸미지 않은 삶 그대로의 비릿함.
날 것의 밭은 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살아있는 것이 살아남으려고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치고 있었다.
도처에 깔린 덫은 날카롭기만 하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은 짙고 견고했다.
남은 건 본능뿐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삶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했다.
독자의 본능에도 반짝 불이 켜졌다.
글의 초반에 예고도 없이 등장한 광주 민주화 운동 때의 배경에 잠깐 의아했었다.
한 사람의 자아가 분열되어 둘이 될 수밖에 없는 사건은 생각보다 더 다양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이 역사의 시간이 맞물리는 걸까.
무엇을 위해 그날의 죽음이 재조명되었을까. 그것도 스릴러에서.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런 마음'이 들라고 하필 그날이었던 건가 싶었다.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 자책과 원망, 구하지 못한 목숨에 대한 부채감.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그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런 마음들에 스스로를 찌르며 살았으리라.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내 이웃이 죽고, 친구가 죽는 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간들이 그들의 가슴에 남겨둔 깊은 상흔과 치유되지 못하는 슬픔.
슬픔은 익숙해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
무사한 삶 속에서도 온전히 기쁨만을 만끽하긴 힘들었을 마음의 상처들이 엄청난 무게로 내게 쏟아져내렸다.
그동안 나는 사건에만 집중했고, 처참하고 참혹한 시간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을 가졌을 뿐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내게는 교과서로 배우고 미디어로 접하는 '역사'였을 뿐이었으니까.
그 역사가 여전히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일어나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또 한 번의 인지와 경의로움. 애달프고 감사한 일이다.
시간은 지나도 그날은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들이 여전히 지나가지 않은 오늘일 텐데, 겪지 않은 우리는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오월에만 떠올리는 감사함, 오월에만 떠올리는 애도, 오월에만 재조명되는 이야기.
함부로 다뤄져서는 안되는 역사이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무겁기만 해야 할까.
최근에 '오월의 청춘'이라는 드라마에서도 그 시대의 장소와 사건이 배경이었다.
청춘들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충분히 그 슬픔을 담아낼 수 있으며, 이런 스릴러의 배경으로도 얼마든지 그 아픔은 차용될 수 있다.
너무 무거워서 입 밖에 꺼낼 수조차 없는 역사는 그대로 잊히고 색이 바랜다.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쓰고, 더 많이 읽어야겠다.
겪지 않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진심을 담아 기억하는 일일 테니까.
이 책의 화자는 광주 사태의 고통을 껴안고 삶을 살아왔다.
한 사람을 관통한 역사의 날카로운 칼날이 그 삶을 어떤 식으로 헤집어 놓았는지 선연하게 보여준다.
비단 그때의 비극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각자의 비극을 하나씩 껴안고 살아간다.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을 마주쳤을 때 우리도 가끔 삶의 스위치를 내리고 싶어진다.
그것을 견디는 방법은 모두 다르겠지만,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모두 한결같으리라.
그래서 한 자아에서 다른 자아로 도망 쳐버린 지아를 나약하다고 탓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그저 아직까진 도망치지 않은 사람들일 뿐일지도 모르니까.
'몹시 슬프고 가난한 얼굴'로 끝이 난 책이 그래서 더 아프다.
많은 날 중에 단 하루가 잘못된 것뿐이었다. 그 하루가 인생을 뒤집어놓았다. 누군가의 결정이 너무 많은 사람의 일생을 헤집었다.
P.609
누가 우리를 악인으로 만들었을까.
누가 우리를 피해자로 만들고 가해자로 만들었을까.
평범한 우리가 어째서 누군가를 죽고 죽이는 사람이 되어야만 했을까.
악은 처음부터 악이었을까, 그도 가끔은 선의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책 속의 어떤 죽음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의 손에 피를 묻혀도 된다고 알려줬을까.
스릴러적인 재미와 묵직한 고뇌를 함께 건네줬던 책, 「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 」
그녀에게 남은 건, 지아의 얼굴일까, 혜수의 얼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