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향하여
존 버거 지음, 이윤기 옮김 / 해냄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좋기는, 더위먹은 사람 입에 한 줌의 눈
좋기는, 바다로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에게 부는 봄바람
더 좋기는, 연인들 침대를 덮고 있는 홑이불 한 장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늙는 것, 일을 잃는 것, 죽음에 다가서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것을 피할 방법은 없다.

스물넷 젊은 그녀는 열렬히 사랑하고 있고, 남보다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  

누구나 하는 젊은 날의 아주 작은 실수 - 그러니까 사람에게 쉽게 매혹된...는 그녀를 절망으로 몰아가고 젊은 그녀의 육신 곳곳을 병들게 했다. 

이 소설의 말미에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쌓인 너무나 아름다운 결혼식 장면은 

그 결혼식 이후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깊은 고통의 시간들 만큼이나 환상적이다.   

이 잔인성이 저지르지 못할 일은 없다. 그리스도에게 육신이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그의 육신 역시 뭇 인간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배신당하고, 매도단하고, 버림을 받았지만 그는 사랑을 받기도 했다. 그의 육신, 창백하고, 가녀리고, 마침내 죽음을 당한 육신은 그의 사랑을 증거한다. - 134쪽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살아남는 일이야. 죽을 때까지 살아남는 일이야. 아멘 - 179쪽

커다란 고통의 와중에 찬란한 찬라의 인생의 아름다운 정점을 그려내는 것  

고통은 너무 길고 행복은 너무 짧더라도 눈부시게 아름답기에 삶은 견뎌볼만한 것이다. 

딸에게 왜 하필이면 이걸 주시려는 것이지요? 이중주가 끝났을 때, 시계 수리공 안경을 쓴, 나이 많은 쪽이 물었다. 
개똥지빠귀가 매일 아침 내 집 앞 나무에서 노래했어요. 두분께서 만드신 이 피리가, 뭐라고 할까요, 내 딸의 뇌리에 남아 있는 개똥지빠귀에게 말을 걸 수 있었으면 해요.
위안이 되겠지요. 우리도 그래서 이런 것을 만드는 것이고요...... - 65쪽

늙은 작가 존 버거는 이 소설이 낙담해 있는 이들에게 개똥지빠귀 피리가 되기를 원한게 아닌가 싶다. 한국판 저작권료를 전액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 기부한 이 섬세한 소설이 생각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사랑이라는 것도 있다. 너의 경우 사랑은 텅스텐만큼이나 무겁구나. 너는 이 프랑스 여자에게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한다. 그러면 선별하거라. 너는 이 여자를 사랑한다. 여자는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 모두가 죽어가고 있다. 여자는 곧 죽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둘러라. (중략)
옛사람들은 금속은 모두 지하에서, 수은이 유황과 짝을 지으면서 생긴 것이라고 믿었다. 지노, 너도 짝을 짓거라. 그 여자와 결혼하거라. 너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지 바이러스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고철은 쓰레기가 아니다. 지노야, 그 여자와 결혼하거라. -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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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rnleft 2011-05-10 0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품절이라 안타깝군요...

무해한모리군 2011-05-11 08:26   좋아요 0 | URL
네 그리 많이 팔리지 못했나봐요.
1쇄만 찍었더라구요.
저는 운좋게 어디 서점 구석에 박혀있던 것을 발견해서 읽었답니다 ^^

turnleft 2011-05-11 09:59   좋아요 0 | URL
예.. 결국 저도 그냥 영문판으로 주문했어요 ^^;;

무해한모리군 2011-05-12 10:15   좋아요 0 | URL
저도 영문판으로 사서 읽고 싶어요.

dreamout 2011-05-10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을 미혼 여성인 친구에게 선물한 적이 있는데, 제목을 보고 나더러 결혼 언능 하라는 얘기야. 라고 약간 화를 내더군요. ㅋ 그후에 읽어나 봤나 모르겠네요.. 아휴.

무해한모리군 2011-05-11 08: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글이 너무 아름다워서 조만간 원서로 읽어봐야겠어요..

머큐리 2011-05-1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님 페이퍼를 보다... 이 책을 너무 사람해서 여러 사람에게 사서 보내주던 누군가가 생각납니다. ㅎㅎ

무해한모리군 2011-05-11 08:28   좋아요 0 | URL
틀림없이 좋은 분이셨을거 같아요.
표현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외워버리고 싶었어요.
물론.... 가능하진 않지요 ㅎㅎㅎ

마녀고양이 2011-05-10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는다는 것보다,
늙고 지치고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못 놓는 욕심 가득한 추악함을 가질까봐
요즘 더 두려워지고 있어요.
신화에 있잖아요, 영원을 요구했으나 젊음을 함께 요구하지 않은 이야기.

무해한모리군 2011-05-11 08:32   좋아요 0 | URL
저는 늙는다는 것도 너무 두려운거 같아요.
책도 잘 읽을 수 없고, 기억은 물론이고 모든 것이 흐려지고,
남을 이해할 능력도 떨어져서 심술궂은 할머니가 되면 어쩔까 싶고...
아 건강히 늙으려면 이러면 안되는데..
오늘도 과식 ㅠ.ㅠ

sslmo 2011-05-10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존 버거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이윤기 때문에 이책을 읽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암튼 참 좋았어요~

님의 이 리뷰도 참 좋구요~^^

무해한모리군 2011-05-11 08:34   좋아요 0 | URL
존 버거가 너무 좋아요. 작년에 두작품을 읽었고 올해는 이 책이 읽고 싶어서 마구 뒤져서 찾아냈어요 ㅎㅎㅎ

저 제일 위에 붙인 시만 해도 정말 멋진 번역이지 않나요?

좋은 책에서 몇 구절을 빼냈더니 제 글도 그냥 읽을만해졌나봐요.

감은빛 2011-05-11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사랑시'라니, 엄청 끌리는데요.
그런데 제목만 봐서는 절대 관심가지지 못할 책이었을 거예요.
그나저나 품절이라니.
언젠가는 만나지겠지 하고 넘어가야겠네요.

무해한모리군 2011-05-12 08:23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아니었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거예요 ^^
인연이 닿으시면 읽어보셔도 마음에 드실거예요~
좋은 아침이예요 감은빛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