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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메리카나 1~2 - 전2권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설 중의 하나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일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피츠제럴드 생전에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에 인기 있는 있는 작가였던 피츠제럴드의 작품이 왜 그렇게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았을까? 개인적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바로 1920년대 미국 사회의 계층 문화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현실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때로는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다치에의 [아메리카나]를 읽으며 문뜩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의 작품은 과연 나이지리아에서 인기가 있을까? 이렇게 사실적으로 나이지리아 사회를, 그리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욕망을 그려내고 있는데도 과연 나이지리아에서 읽힐까?'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이 소설은 아디치에의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읽은 후 읽기 시작했다. 아다치에는 나이지리아의 현대 여성작가이다. 많은 사람이 그녀를 페미니즘 작가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녀의 소설에는 단순히 여성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는 나이지리아나 아프리카 사람, 더 나아가 흑인들의 전체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한 여성이 나이지리아에서 모두들 동경하는 미국의 유학 생활을 시작한다. 그녀는 마치 화려한 도시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자신을 잃어가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견하며 점점 자신을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찾아가는 부분도 언급하지만, 주된 내용은 아프리카인으로서, 더 나아가 나이지리아 인으로서 자신을 찾아가는 부분이 더 주를 이룬다.
소설의 초반부는 나이지리아에서 미국으로 유학 와서 타인이 보기에 비교적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페멜루라는 여성의 시각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프린스턴에서 시간강사이지만 교수직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온 아프리카 여성들은 그녀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그녀는 나이지리아를 그리워하고, 나이지리아에서 사랑했던 첫사랑인 오빈제라는 남성을 못 잊어 한다.
"그녀의 영혼 속에는 납덩이가 있었다. 벌써 꽤 오래전부터 그녀는 아침마다 피로, 암울, 이성의 무너짐을 느끼는 병을 앓아 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찾아온 형태 없는 갈망, 모양 없는 욕망, 자신이 살 수도 있었을 또 다른 삶에 대한 찰나적 몽상이 몇 달에 걸쳐 서로 뒤섞이면서 사무치는 향수가 되었다. 그녀는 나이지리아 웹 사이트, 페이스부의 나이지리아인들, 나이지리아인들의 블로그를 미친 듯이 찾아 헤맸다. 그런데 클릭할 때마다 나오는 것은 또 한 명의 젊은이가 미국이나 영국에서 학위를 따 가지고 최근 금의환향하여 투자 회사, 음반 제작사, 패션 브랜드, 잡지사 혹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를 시작하려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남녀들의 사진을 본 그녀는 마치 그들이 자신의 손을 비틀어 열고 그 안에 있던 것을 뺏어 가기라도 한 것처럼 무딘 상실감을 느꼈다. 그들은 그녀의 인생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지리아는 그녀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이 되었다." (1권, P 17)
나이지리아에서 살고 있는 오빈제의 시각에서 묘사되는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영국 유학 후 나이지리아의 거물의 부정한 일을 봐 주며 나름 성공을 거머쥐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마치 신기루처럼 여긴다.
"레키 고속 도로에 들어서자 빗줄기가 약해지면서 차들이 빠르게 움직였고 잠시 후 게이브리얼은 오빈제네 집의 높고 검은 대문 앞에서 경적을 눌렀다. - 중략 - 모든 방이 시원할 테고, 에어컨 통풍구는 조용히 흔들리고 있을 것이며, 부엌은 카레와 타님의 향긋한 냄새로 가득할 것이고, 아래층에는 CNN이 틀어져 있는 반면, 위층 텔레비전에는 카툰 네트워크가 틀어져 있을 것이며, 이 모든 것에는 어느 구우의 침해도 받지 않은 풍요의 분위기가 스며 있을 것이었다. 그가 차에서 내렸다. 걸음걸이는 뻣뻣하고, 다리는 천근만근이었다. 그는 몇 달 전부터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 - 가족, 집, 자동차, 은행 계좌 - 때문에 붕 뜬 듯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고 때때로 모든 것을 핀으로 찔러 바람을 빼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그는 더 이상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한 번도 확신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자기 인생을 정말로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좋아해야 마땅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를." (1권, P 43)
그리고 소설은 나이지리아에서의 이페멜루의 성장기를 다룬다. 반복되는 쿠데타에 혼란스러운 나이지리아의 상황,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상류층의 사람들은 모두들 미국에서의 삶을 꿈꾼다. 그녀는 아버지의 퇴직 이후 겨우 학교를 다니는 상황이었지만, 이런 상류층과 어울리게 되고, 누구보다도 미국의 삶을 꿈꾸는 오빈제를 만나다. 그녀는 오빈제를 만나 사랑하고 함께 미국에서의 삶을 꿈꾸지만, 고모의 권유를 오빈제보다 먼저 미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시작한다.
막상 미국에 도착하자, 미국은 그녀가 꿈꾸는 곳이 아니었다. 나이지리아에서 장군으로 불리는 남성의 애인이자, 잘 나가는 의사였던 고모는 3-4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겨우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페멜루 역시 등록금을 내재 못해서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다. 그러다가 겨우 백인 남자 친구를 만나서 그 밑바닥에서 탈출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미국인들이 아프리카너나 흑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신을 비롯한 아프리카너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을 블로그에 올리며 나름 미국의 차별 문화를 비판하지만, 어느새 자신 역시 그런 문화 속에 빠져 버려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다시금 나이지리아로, 오빈제에게로 돌아가는 꿈꾼다.
아디치에의 소설은 우리에게는 낯선 나이지리아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기에 나이지리아의 낯선 환경과 문화 종교, 종족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낯선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진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이 낯섬 속에서 점점 우리와 닮아있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철저한 가부장적인 문화, 남녀 차별의 문화, 계속되는 쿠데타와 부패, 그 부패 속에서 성공하는 사람들과 몰락하는 사람들, 현실도피를 위해 미국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 그리고 막상 미국에 도착하자 자신들이 꿈꾸었던 미국이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하는 사람들, 나이지리아에 돌아온 유학생들이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성공하는 모습들. 이 모든 것들이 한국 사회와 너무나 닮아있다. 거친 나이지리아의 환경과 검은 피부색에 대한 묘사 속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들을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낯설고도 묘한 동질감과 이질감이 소설을 읽는 내내 기분을 묘하게 한다. 마치 한 번도 맛보지 못한 낯선 음식을 먹으면서 이물감을 느끼는 것 같다. 이 음식을 맛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거북하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 소설은 이렇게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거나 인종적인 이야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의 주된 뼈대는 이페멜루와 오빈제의 사랑 이야기다. 각자가 서로의 삶에서 허상을 쫓아가다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주된 흐름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러기에 문화나 인종 문제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흥미 있게 소설을 읽어갈 수 있다. 이것이 이 소설을 더 멋지게 장식해 주는 장식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