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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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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홍콩에서는 성난 군중들이 홍콩 행정부와 중국 정부에 대해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100만 명이 모여서 대규모 시위를 하다가, 이제는 200만 명으로 그 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홍콩 인구가 600만 명이라고 하니 엄청난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를 하는 것이다. 무엇이 그토록 저들을 그토록 분노하고, 그토록 절박하게 했을까? 겉으로는 범죄자 인도 조약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점점 자신의 자유와 삶을 압박해 오는 중국 정부의 손길에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점점 평범한 삶에서 밀려 나가 절벽으로 밀려나고 있는 자신들의 삶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거리로 나섰을 것이다.

 

조남주의 신작 [사하맨션]을 읽으며 계속해서 닥지닥지 붙은 홍콩의 건물들 사이로 몰려드는 군중들이 연상되는 이유는 왜였을까?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가진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정하지 않은 어느 나라의 도시에 대기업이 들어온다. 처음에는 공장들을 짓고 일자리를 창출하지만, 점점 기업의 영역을 확장하고 결국은 도시마저 인수하게 된다. 그리고 국가가 아닌 국가, 유엔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를 통제하는 독립 국가가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국가를 '타운'이라고 부른다. 타운은 철저히 비밀에 감춰진 7명의 총리들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그 총리의 결정사항은 총리 대변인을 통해 타운 주민들에게 발표된다. 타운의 점점 경제적으로 번성하지만, 타운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자유를 빼앗아가고 자신들의 일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사라지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업에서 일을 하거나 전문직을 가진 사람에게 시민권을 주어 L로 구분하고, 시민권은 없이지만 2년짜리 체류권을 주어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들을 L2라고 부른다. 그리고 L에도, L2에도 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사하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은 철저히 사회의 낮은 계층으로 살아가게 된다.

 

"주민 자격은 갖추지 못했지만 범죄 이력이 없고 간단한 자격 심사와 건강 검사를 통과하면 L2 체류권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은 체류권과 같은 이름인 L2로 불리며 2년 동안 타운에서 살 수 있다. 그것뿐이다. 일단 2년은 쫓겨날 걱정 없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지만 L2를 원하는 일자리는 대부분 건설 현장, 물류 창고, 청소업체 같은 힘들고 보수가 적은 곳들이다. 2년의 체류 기한이 끝난 후에도 계속 타운에 남고 싶다면 다시 심사를 받아 체류권을 연장해야 한다. L2 대부분은 주민 가격이 되지 않으나 고향을 떠날 수 없어 2년마다 모역적인 자격 심사와 건강 검사를 받고 L2 체류권을 연장해 가며 타운에 남은 원주민과 그런 L2들이 양육의 의지 없이 낳은 아이들이다. 진경은 L2도 못 되었다. '사하'라고 불리었다. L도 L2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마땅한 이름도 없는 이들, 사하맨션 주민이라서 '사하'인 줄 알았는데 사하맨션에 살지 않아도 '사하'라고 했다. 너희는 딱 거기까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P 15)

 

[사하맨션]은 이렇게 디스토피아적 공간인 타운을 배경으로 사하맨션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진행이 된다. 이들 대부분은 L이나 L2의 삶에서 밀려난 인생이거나, 타운 밖에서 여라 가지 이유로 밀려든 인생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진경과 도경도 마찬가지이다. 진경은 원래 타운 밖에 있는 국가로 불리는 타운 밖의 공간에서 살았었다. 허드렛일을 하는 진경의 아버지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간호하며 이사업체에서 짐을 포장하고 나르는 일을 한다. 진경의 어머니는 어느 날 이사 집 일을 하다가 높은 계단에서 떨어져 죽는다. 모두들 사고사라고 하지만, 도경은 어른이 되어 이사업체 사장을 찾아간다. 도경은 그 사장을 칼로 일곱 번 찌르고 진경과 함께 도시로 밀항을 한다. 그리고 사하맨션에 숨어든다.

 

'우미'라는 여성도 나온다. 그녀의 엄마는 비교적 평범한 여자였는데, 30년 전 타운이 막 생길 무렵 우연히 대규모 시위의 주동자가 되었다. 그녀의 동생이 타던 배가 어느 날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항의하기 위해 종이배를 접었다. 그녀의 영향으로 시위가 발생하고 타운은 그녀를 시위 주동자로 몰아서 사형시킨다. 그 후 그녀의 남편은 한 쪽 눈이 다친 아이를 데리고 사하맨션에 숨어든다. 그녀가 우미다. 후에 우미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연구소의 실험체가 된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사연으로 도시의 평범한 삶에서 밀려나서 인생의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사하맨션에 들어와서 살아간다. 그들은 무허가 건물의 방에 들어가서 살고, 나름 공동체를 만들고, 서로를 위해 가며 살아간다. 그들의 중심에서 맨션을 관리하는 영감이 있다. 그 역시 어느 순간에 사하 맨션으로 흘러 들어온 사람이다.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진경과 도경 남매와 다른 사람들을 대하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그들을 보살핀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이야기는 이 소설의 처음에 등장하는 '수'라는 여인이다. 그녀는 소아과 의사로 사하맨션을 비롯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돌본다. 그러다가 도경을 만나고 그녀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녀는 도경과 함께 사하맨션에서 자리를 잡고 함께 살아간다. 도경의 도와 그의 그림 그리는 재능을 알리고, 사하맨션의 사람들을 도와 그들의 삶을 바꿀 꿈을 꾼다. 그러나 그 꿈은 곧 절망으로 바뀐다. 무허가 진료를 하고 사하맨션에서 거주했기에 곧 의사면허가 박탈되고, 모든 책임을 당한다. 결국 그녀는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타운이라는 도시, 그리고 사하맨션이라는 공간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의 삶과 너무 닮아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흔히 내 주변의 사람들의 인생의 이야기와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너무나 흔하고 너무나 당연시 여겨서 알지 못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런 무시무시한 타운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계급들로 나누어지고, 그 계급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사는 삶. 그러다가 발을 한 번 잘못 디디면 수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L2가 되고, 사하가 되어 사하맨션으로 떨어지는 삶. 잠시의 동정심이나 이타심으로 나보다 못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나까지 그 아귀 지옥으로 끌려 들어가는 삶.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와 통제로 철길을 따라 달리는 기차처럼 한 곳으로만 달려가야 하는 삶. 소설에 묘사되고 있는 이런 삶들은 어쩌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실제의 삶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런 삶을 만드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의 말미에서 진경은 사하맨션을 부수고, 동생과 우미를 잡아가는 타운의 정책에 분노한다. 그래서 몰래 총리실에 잠입해 7명의 총리를 죽이기 위해 찾아간다. 온갖 소란을 일으키며 총리실까지 진입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총리 대변인은 진경을 살려 보내며 돌아가라고 말한다. 다들 그렇게 분노하다가 결국은 제 자리로 돌아가서 자기 몫을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진경은 끝까지 절규하며 말한다.

 

"당신이 틀렸어.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우미와 도경이와 끝까지 같이 살 거고." (P 368)

 

이 소설의 저자인 조남규 작가는 몇 해 전 [82년 생 김지영]이라는 소설로 큰 이슈를 일으켰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고 리뷰를 남겼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페미니즘 소설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녀가 편을 나눈다. 여자들이 그동안 차별을 받고 살아왔고 지금도 차별을 받고 살아있다고 말한다. 남자들은 그것이 남자들의 잘못이 아니고, 오히려 지금은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내 리뷰에 의도하지도 않는 말싸움들이 달리기를 반복했다. 결국 리뷰를 내리기도 했다. 소설이 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해도, 읽는 사람들 (사실은 읽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은 자신의 시각으로 소설을 해석한다.

 

개인적으로는 [82년생 김지영]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특정한 성별이 아닌, 사회가 만든 가부장적인 문화에 소외도고 짓밟힌 인간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렇게 남의 인생을 쉽게 짓밟을 수 없다고 강변하는 작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사하맨션]도 마찬가지이다. 이 소설은 정치적인 소설이거나 이념을 가진 소설이 아니다. 사회가 만든 시스템으로 인해 소외되고 사회의 막다른 골목길인 사하 맨션에 몰린 인생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세상이 다 그런 것이라고 말해도 누군가는 그 시스템을 깨뜨리기 위해 도전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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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설의 시대 1 백탑파 시리즈 5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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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대한 소설을 읽으면 글에서 작가의 생(生)이 녹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암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토지]라는 대작을 섰다는 박경리 작가나 사형 직전까지 같던 죽음의 공포와 가난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던 도스토옙스키, 온갖 전쟁터와 오지를 다니며 자신의 경험을 녹여 글을 쓴 헤밍웨이같이 위대한 작가들의 소설을 읽으면 그들의 생의 일부분을 녹여서 부어 만든 작품을 보는 듯한 경이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김탁환 작가의 소설에서는 이런 소설에 대한 열정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의 단편소설 중에서 '치숙'으로 불리는 인물이 나오는 소설이 있다. 치숙은 평생 크게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생을 부어서 치열한 글을 쓰고 생을 마치는 인물이었다. 오래전에 읽었어도 치열하게 자신의 생과 싸우며 글을 쓰는 치숙의 이미지가 오래 남아 있었다. 그런 치숙과 비견되는 인물을 다시 만났다. [대소설의 시대]라는 소설 속의 '장두'라는 여인이다.

 

[대소설의 시대]는 김탁환 작가가 계속해서 쓰고 있는 18세기를 배경으로 한 백탑파 소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이다. 백탑파란 조선 시대 실학자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실제로 이 시리즈에서는 실존했던 실학자들이 등장하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특히 화광이라는 호로 불리는 꽃을 그리는 화풍으로는 당대 최고라고 불리는 '김진'이라는 인물과 표창 던지는 솜씨가 당대 최고인 의금부 도사인 이명방이라는 두 명의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다.

 

[대소설 시대]에서 김진과 이명방은 사라진 소설가인 '임두'를 찾아 나선다. 소설의 배경은 18세기 정조시대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대소설이 유행했다. 대소설이라고 하면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장편소설을 떠올린다. 그런데 그 시대에는 보통 200-300권의 분량의 소설들이 유행을 했다. 백성들로부터 궁궐의 여인들까지 소설을 읽고, 또 스스로 소설을 쓰던 시대였다. 그중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소설은 [산해인연록]이란 소설이었고, 이 소설을 쓰는 작가는 임두라는 인물로 설암당이라는 대저택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23년간 소설을 이어가고 있다. 이명방은 김진의 부탁으로 임두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임두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며 노인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몇 가지 더 알게 된다.

 

그녀가 쓰고 있는 [산해인연록]은 사실 자신의 남편 사도세자를 잃고 비탄에 빠진 혜경궁 홍씨가 그 비탄의 세월을 견디기 위해 그녀에게 짓도록 한 것이며, 지금은 정조의 빈이자 세자의 어머니인 의빈이 [산해인연록]의 열렬한 독자이나 후원자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200권을 앞두고 이제 소설을 마무리해야 할 단계에서 그녀가 매병으로 불리는 치매에 걸렸다는 것이다. 맑은 정신으로도 200권을 이어지는 동안 펼쳐 놓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기억하며 소설을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녀가 그녀는 오락가락하는 정신으로 자신과 싸우며 소설을 마무리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매병(?病, 치매). 정녕 이야기의 신이 몹쓸 병에 걸렸단 말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정도로 힘들 것이다. 수십만 개의 단어로 수천 개의 사건을 만들며 유유히 23년을 흘러온 소설가가 '휴탑'에 적은 구상도 잊고 또 그 '휴탑'을 둔 곳까지 잊은 것이다. 기억의 제왕에서 망각의 노비로 전락한 꼴이었다. [산해인연록]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바람이 없다면, 진작 불행한 최후를 택했을지도 몰랐다." (P 142)

 

그런데 그런 임두가 어느 날 사라진다. [산해인연록]과 함께 모진 세월을 견뎌 온 혜경궁 홍씨와 의빈은 김진과 이명방에게 어떻게든 그녀를 찾으라는 엄명을 내린다. 처음에는 단지 소설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어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그녀의 과거와 [산해인연록]에 얽혀있던 비밀이 풀린다.

 

이 과정에서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는 것은 임두로 불리는 한 여인의 소설에 대한 열정이다. 일찍이 결혼을 했지만, 25에 남편을 잃고, 겨우 키운 유복자마저 며느리와 함께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다. 그녀는 오로지 소설을 쓰며 그녀의 일생을 보낸다. 그리고 노년에는 오직 [산해인연록]을 쓰며 자신의 일생의 모든 것을 소설에 바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감탄을 하는 부분은 이야기가 진행되어 가면서 당대의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대소설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김진과 이명방의 대화 속에서 매 장마다 당대에 인기를 얻었던 대소설들이 등장하고, 그 대소설들을 통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간다. 그 당시 보통 2-300권의 분량을 가지는 이렇게 많은 대소설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대소설들을 읽고 그것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하게 된다. 정말 작가가 이 시대의 또 다른 임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장편소설이 유행이었다. 특히 역사소설이 유행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부모님의 서재에서 월탄 박종화나 나림 이병주 등의 역사소설을 읽으며 자랐다. 조금 커서는 김주영의 [객주]나 박경리의 [토지] 등을 읽었다. 대학시절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을 읽었었다. 그런데 [태백산맥] 정도가 끝이었던 것 같다. 점점 장편소설이 인기를 잃어가더니 이제는 3권 이상의 장편 소설의 거의 찾아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모두들 짧고 단편적인 소설들만 즐겨 읽는 시대가 되었다. 그만큼 한 편의 소설에 인생을 불어 넣는 작가들도 사라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시대이건 치열하게 소설을 써 온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소설이 위대한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인생이 녹아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역사 추리 소설의 형식을 가졌지만, 조선 시대의 문화와 소설에 대해서 매우 친밀하게 접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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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홍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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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는 아니지만 가끔은 맛을 음미해가면서 먹을 만큼 가치가 있는 음식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 음식은 바로 한 입에 털어 넣지 않고, 한 입 한 입 먹으며 맛을 음미한다. 소설도 그런 소설이 있다. 한 번에 읽기 아까운 소설, 그래서 조금씩 읽으며 맛을 음미하는 소설이 있다. 내게는 매년 출간되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그렇다. 예전에는 많은 단편소설을 읽었지만, 최근에는 몇 권의 수상 작품집을 읽는 것이 전부이다. 그중 매해 빠지지 않고 구입해서 읽는 책이 바로 [이상문학상 작품집]이다. 아직 올해 수상작은 구입하지 못했고, 먼저 작년에 읽은 단편소설들을 리뷰로 정리해 보았다. 개인적으로 매년 수상한 소설들에 호불호가 갈릴 때가 있다. 어떤 해에는 수상한 작품들이 너무 좋아서 한 편 한 편 음미해서 읽을 때가 있고, 어떤 해에는 내게는 별 감흥이 없는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데 작년 이상문학상 대상과 우수상 작품집들은 한결같이 읽으면서 무척 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읽고 나서도 그 여운이 계속해서 남아 있는 소설들이 많았다.

 

 

우선 대상 수상작은 손홍규 작가의 [꿈을 꾸었따고 말했다]이다. 손홍규 작가는 소설보다는 산문으로 익숙하다. 그의 산문집인 [다정한 편견]과 [마음이 다쳐서 돌아가는 저녁]이라는 책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었다. 실력 있는 단편소설 작가들의 특징은 인간의 내면의 감정의 변화를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있다. 그런데 손홍규 작가는 단순히 인간의 감정뿐만 아니라, 그 감정의 형성을 둘러싸고 있는 인생이라는 부분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다. 한 사람이 느끼는 내면의 깊은 감정과 그 감정을 형성하게 한 그 주변의 인생을이라는 것을 너무나 세밀하게 묘사한다. 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해 세밀한 묘사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세밀하다가는 말로만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시각으로 인생을 묘사한다. 그런 인생에 대해 묘사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 이번 수상작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어느 도시의 골목집의 선술집에 장례식의 상주인 듯한 젊은 청년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술집에는 인생의 거친 풍파를 다 겪은 듯한 사람들이 모여있다. 거친 그들이지만 이 젊은이에게만은 따스한 연민을 보낸다. 소설은 한동안 이 젊은이에게 초점을 맞추다가, 그 젊은이가 술집을 나간 후 그 술집에 있었던 한 중년 남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인생의 모진 풍파를 거친 그는 이제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 아내는 그를 외면하고 아들은 그를 떠났다. 중년 남자의 모진 삶에 초점을 맞추던 소설은 다시 남자의 아내에게 초점을 맞춘다. 그녀의 삶 역시 남편 못지않게 거칠다. 그렇게 소설은 초점을 이동해 가며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렇게 잃어버린 인생을 개인의 실수로 보기보다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에 끌려다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으로 묘사한다.

 

 

"청년은 감정 표현이 서툴렀고 지금도 여전히 서투른 그와 비슷해 보였다. 그는 물 컵을 만지작거렸다. 이 물 컵조차도 순수한 강철은 아니었다. 니켈과 크롬이 포함된 합금이었다. 그의 감정도 언제나 합금이었다. 순수한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는 살아야 했고 어떤 감정이 엄습하면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전혀 다른 감정을 쥐어짜낸 뒤 엄습하는 감정을 방어했다. 그런 과정에서 감정들은 뒤엉켜 하나가 되어 동시에 전혀 다른 무엇이 되었고 이렇게 합금처럼 태어난 감정들을 뭐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으나 아마도 그것을 가리키는 가장 적절한 말은 괴물일 거시며 이런 방식으로 그는 서서히 괴물이 되어갔다. 그에게도 꿈이 있었다. 그리고 남들처럼 꿈을 꾸지 않으려고 애쓰는 순간이 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을 지나니 어느 순간 꿈을 포기하기 위해 애쓰게 되어버렸다." (P 69)

 

 

이상문학상 작품집에는 항상 수상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대표 작품들이 함께 실린다. 대부분 자전적 소설이 많은데, 이번 소설은 자전적 소설이라기보다는 작가가 그리려는 인생을 가장 잘 묘사한 소설이다. [정읍에서 울다]라는 소설은 나이 들어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는 한 노인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그럭저럭 시골에서 노년을 보내며 억척스러웠지만 지금은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고 있다. 그렇다고 그 돌봄이 애잔하거나 절절한 것은 아니다. 그는 젊었을 때 이루지 못한 사랑을 그리워하고, 억척스러운 아내와 살아온 삶을 대면하게 바라본다. 그럼에도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애잔하다. 인생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추억은 순자라는 한 여자와의 추억이 아니었다. 그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이 혹은 그가 잃어버린 열망과 꿈이 담긴 과거 전체였으며 그가 결코 되돌아갈 수 없고 재현할 수 없는 인생의 어느 시기였다. 그가 아름다웠던 시절, 그가 선량했던 시절, 타락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 그래서 순자와 헤어질 때면 자신의 과거가 등을 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이 결별이 타인에 의해 강제로 이루어진 듯한 억울함을 느꼈다.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 정말 영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내에 대한 원망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가 아내와 결혼하여 일가의 가장으로 삶을 꾸리게 된 순간부터 그가 꿈꾸었던 모든 것들과 이별해야 했고 그토록 비장하게 그가 바라던 세계에서 떨어져 왔음에도 결국 초라한 늙은이밖에 되지 못했다는 서러움만은 확실히 그의 감정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P 123)

 

 

우수상 작품 구병모 작가의 소설인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란 소설도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소설은 뜻하지 않게 남편의 시골학교 발령으로 시골로 내려 간 한 여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언뜻 시골이라면 따스한 인심이 생각나지만, 그런 따스하다는 말로 포장된 채 자신을 감시하고 타인의 생각으로 자신을 재단하려는 시선들에 대해 예리하게 표현하고 있다.

 

 

"산후조리원이 뭐 하는 곳인지는 알지만 그걸 선금 걸고 예약까지 한다는데에 노인들은 혀를 내둘렀다. 개중에는 가뜩이나 계집들이 애를 안 낳아 나라가 망한다는데 실상은 조리원에 줄까지 서야 들어갈 수 있다니 당최 누구 말이 맞느냐고 되묻는 이도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옛날에는 여자들이 일하다 밭고랑에 주저앉아 낫으로 탯줄을 끊었다니, 집에서 돌보는 게 당연한 것을 무슨 애 낳는 데 호텔씩이나 잡아 들어가느냐 든지, 한 사나흘 자리보전하며 미역국 먹고 나면 으레 다시 밭일하러 애를 업고 나오는 법이라는 19세기 레퍼토리가 한 치도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돌림노래처럼 흘러나왔으며, 남편이 피땀 흘려 벌어다 준 돈을 장사치들 아가리에 쏟아부어 되겠느냐는 대목에서 정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먼저 가방을 챙기거나 겉옷을 꿰는 등 부산을 떨면서 이제 정말 시간이 없으니 나가 보아야겠는데요, 했다. 그러면 방문객들은 암만 봐도 집에서 살림 돌보는 게 전부인 여자가 어째서 시계를 수시로 들여다보며 종종거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앉은 자리를 털었다." (P 176-7)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우수상 수상작품은 방현희 작가의 [내 마지막 공랭식 포르쉐]였다. 마치 손홍규 작가의 젊은 버전을 보는 듯한 시각으로 인생을 어두운 면을 바라보고 있다. 사용하는 언어와 묘사는 조금 더 세련되어 있지만, 인생을 보는 작가의 시선은 더 날카롭다. 성공한 친구의 뒤치다꺼리를 하던 주인공이 친구의 죽음과 함께 그가 몰던 클래식은 포르쉐를 얻는다. 그리고 그 포르쉐에 빠져 그것을 수리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회피한다. 이 과정에서 포르쉐를 수리하는 과정을 그의 인생과 오버랩시키는 작가의 묘사력이 뛰어나다.

 

 

"친구 녀석은 비바람이 몰아치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고속도로만이 들려줄 수 있는 소리를 들으며 달렸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도로에서 미끄러질 때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미친 녀석을 받아주는 공간은 작은 차체 하나 만큼 일 뿐인 게다. 그 차체 하나로 뚫고 가는 외길 만 큼이었을 테다. 친구는 그 작은 차체로 뚫고 가는 길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들으려 했던 것뿐인지도 모른다. 미친다는 건 그런 거니까. 고장 나는 곳이 또 고장이 나면 그 차는 버려야 하는 것이지. 그러나 녀석은 고장 난 곳이 매번 다시 고장 난다는 것을 모르는 척했지. 미친다는 건 그렇게 남김없이 탕진하는 것이니까. 그는 토크 렌치의 눈금을 정밀하게 맞춰 브레이크 호스를 조였다. 그 역시 두 사람의 뒤를 따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만둘 수는 없다. 누추한 공업사를 벗어나는 길은 소리를 타고 이동하는 길뿐이니까" (P 224-5)

 

 

단편소설은 장편소설에는 느낄 수 없는 단편소설만의 맛이 있다. 조금 더 작은 공간에 많은 것을 세밀하게 밀어 넣은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다. 특히 이상문학상 작품집은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미니어처들만 모아 놓은 느낌이다. 2019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기대가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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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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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역사소설이나 역사 드라마를 매우 좋아했다. 특히 기존의 구질서를 뒤집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내용의 작품들은 젊은 시절까지 나를 무척 매료시켰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것이 구한말 무너져 가는 조선을 대신해 새로운 왕조를 새우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고(故) 이병주 작가의 [바람과 구름과 비]나 동학혁명을 배경으로 백정들의 혁명을 다루고 있는 정동주 작가의 [백정] 등이 기억이 남는다. 최근에는 [정몽주]와 [육룡이 나르샤]와 같은 드라마가 기억에 남는다. 정치권과 지도자들의 타락으로 썩고 썩어서 도저히 다시 세울 수 없는 고려를 대신에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를 세우는 과정이 너무도도 흥미진진했다. 이런 소설이나 드라마를 접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있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정이 생겨난다. 현실의 부조리와 답답함에 분노하고, 새로운 것을 세우고자 하는 열망들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이런 열정들을 잊고 살았다. 그냥 현실에 안주하며, 현실에 맞추어가기도 급급해서 이런 열정이나 뜨거움을 잊고 살았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러 번의 정권교체를 접하면서, 결국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실망감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은 이런 잊었던 나의 열정을 자극하는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하면서는 그냥 현실 도피적인 이상적인 국가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이상 국가만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그동안의 한국 역사와 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책은 한반도 남쪽 한일 공동 개별 구역의 수역에 새워진 미래의 아로니아 공화국이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한다. 아로니아 공화국이 2대 대통령 김강현은 자신의 임기를 마치면서 자신이 지나온 과거를 회상한다. 김강현은 점방이라고 불리는 작지 많은 않은 건축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은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만화방에서 부서진 텔레비전을 구입해 주기 위해 친구들의 삥을 뜯다가 아버지에게 죽도로 막기도 했었다. 그렇게 사람이 되라고 붙들려 들어가 합기도장에서 그는 수영 누나라고 부르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중학생인 그에게 고등학생인 수영 누나는 이상형이었고, 그는 수영 누나의 마음에 들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된다. 뛰어난 암기력을 가졌던 그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만점을 맞고, 대학 입학시험도 몇 문제 틀려서 서울 법대를 간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기 싫어서 사법고시를 보고 검사가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학국 교육의 현실을 접하게 된다.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냐? 무슨 문제가 어떻게 나오는지 구경이나 하려고 1차 사법시험에 응시한 나는 개관식 320문항 중에서 321문항을 맞혀버렸다. 확실히 외우는 데 타고난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어렵다는 사법시험도 이리 꼬고 저리 비틀고 훌러덩 뒤집어 문제를 낸다고 한들 결국 무작정 외우는 놈들을 위한 그저 그렇고 그런 시험에 불과했다 - 중략 - 재수가 좋은 건지 실력이 뛰어난 건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지만 3차 면접시험을 통과한 나는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한국의 모든 교육과 시험은 인성과 감성, 창의력과 표현력, 독창성과 정의로운 인간성 따위는 애초에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달달 잘 외우는 놈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존속되는 요상하고 망측하기 짝이 없는 제도였다. 나는 한국 교육과 시험의 특출한 수혜자였다. (P 80)"

김강현은 그토록 원하던 수영 누나와 결혼을 하지만, 검사라는 제도 속에 빠져 들어가면서 점점 현실적이 되어 간다. 그리고 고위층만이 아는 토지 개발 계획을 미리 알아서 아버지에게 새로 들어서는 신도시에 땅을 사자고 말한다. 당시 IMF로 인해 재벌들이 부동산을 쓸어 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듣고만 있던 아버지가 또다시 아들을 두들겨 팬다. 훗날 그는 그렇게 자신을 패 준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세상 속에 휩쓸려 살지 않기로 결심하고, 검사의 조직문화에 반기를 든다. 간첩 조작 사건의 재심에서 진실의 편에 서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그는 검사 조직에서 나온다. 그는 쓰레기 속에서는 모두가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비참한 현실을 깨닫는다.

"설마 검찰청 안에 있는 모든 검사들이 쓰레기였겠는가? 국민에게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하고 국민을 두려워하는 검사는 1명도 없었는가? 있었다. 분명히 있었고 그들이 있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쓰레기장에 숨어 있는 한 그들 또한 쓰레기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의 속성, 쓰레기는 주변의 깨끗하고 쓸모 있는 존재들조차 모조리 쓰레기 취급받게 만든다. 주변의 완벽한 쓰레기장화. (P 137)"

그렇게 현실에 실망하고 있던 그에게 손성철관 백민정이라는 사람이 접근을 해 온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재미있고 신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었다. 그리고 국민을 위하지 않는 국가, 서로를 경쟁하게 해서 자기들만의 왕국을 만드는 국가에 대해 결별을 선언하고, 한일 공동 해엽 부근 암초 위에 콘크리트 기둥을 세워 여의도 몇십 배 크기의 국가를 만들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강현은 그 계획에 동참하면서 아로니아 공화국이라는 이상 국가가 세워지기 시작한다.

소설의 내용은 어찌 보면 황당할 수 있으나, 우리 모두들이 고민하고 있는 내용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과연 한국 정치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 왔는가? 이대로 가면 한국 정치에 희망은 있는가? 그냥 퇴근길에 소주 한 잔 하며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욕하고, 인터넷에 '헬조선'이란 단어만 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이 있는가? 국가가 과연 존속의 가치가 있는가? 이런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하고 있는 책이다. 소설은 소설로 읽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통해 현실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다. 물론 소설적인 재미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김광현의 파란만장?한 어린 시절 이야기나 수영과의 사랑이야기는 읽는 재미를 더 한다. 비록 역성혁명을 꿈꾸는 역사소설이나 정치소설은 아니지만, 현실정치와 한국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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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 고대 가요.향가.고려 가요 편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
하태준 지음 / 다산에듀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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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여,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님은 그만 강을 건너고 말았네.
강에 빠져 돌아가시니.
이제 그님을 어이하오"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었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라는 곡의 가사이다. 기록으로 전해지는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시가 문학이기도 하다. 배운지 오래 되지만, 아직도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의 애절한 감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외에도 황조가나 정읍사, 제망매가, 가시리, 서경별곡 등의 가사들은 그 시를 접했을 당시의 감정과 함께 싯구들이 그대로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이후 이 시를 접한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 때 역시 이 시들을 깊이 있게 접하기 보다는 입시 위주로 시험에 나올 부분들을 암기하기에 바빴던 기억이 난다.

[이토록 친절한 문학 교과서 작품 읽기]는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문학작품을 친절하면서도 깊이 있게 해석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고대가요, 향가, 고려가요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교과서에 실린 고전 시들의 배경과 의미를 친철하게 해석해 주고 있다.

먼저 [고대가요 편]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공무도하가와 함께 황조가, 구지가, 정읍사 등에 대한 해설이 등장한다. 공무도하가는 백수광부로 알려진 흰머리의 남자가 강물에 빠져 죽자, 이를 애닯게 여기던 아내가 함께 따가 강물로 들어간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 보던 곽리자고라는 사람이 자신이 본 것을 아내인 여옥에게 전해주자 여옥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이 시를 지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공부도하가와 함께 정읍사가 기억에 남는다. 장사나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망부석이 되었다는 아내의 노래는 공무도하가나 황조가 만큼이나 애잔하다.

[향가 편]에서는 서동요, 모죽지랑가, 도솔가, 제망캐가, 찬기파랑가, 안민가, 처용가 등을 해설해 주고 있다. 향가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초까지 주로 지어졌는데, 고대가요에 비해 더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백제의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서동이 지었다는 서동요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선화공부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서방을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

지금 같으면 인터넷 성희롱으로 고소를 당했겠지만, 당시 이름없는 평민이었던 서동이 흠모하는 선화공주와 결혼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방법 밖에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도 끝이 좋았으니 모두들 행복했을까?

[고려가요 편]에는 가시리, 청산별곡, 서경별곡, 정과정, 동동 등을 해설하고 있다. 고려가요는 단순했던 고대가요나 향가에 비해 더 문학적으로 성숙한 작품들이 많다. 특히 싯구들이 아름다워서 현대 문학이나 가요 등에도 많이 인용되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의 해석을 보니 이렇게 아름다운 시가 고려말의 무신정권과 거란과 몽고의 침략과 같은 혼란 상황 속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지어진 시가 많았음을 느낀다.

이 중 '가시리'나 '청산별곡'등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시들이다. 그 중 가시리는 김소월의 시나 가요를 통해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시이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는 버리고 가시리고 나는 위 증즐가 태평성대
날러는 엇디살라 하고 버리고 가시리잇고 나는 위 증즐가 태평성대
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올세라 나는 위 증즐가 태평성대
설온님 보내옵노니 나는 가시는듯 도셔 오셔서 나는 위 증즐가 태평성대"

애절한 사랑 노래같지만, 이 시는 고려말 혼란한 시기에 지어진 시라고 한다. 묘청의 난에 참가해 출세를 하려는 남편을 붙잡지 못하는 아내의 절박한 마음이 담긴 시이다. 결국 묘청의 난은 실패하고, 남편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청산별곡 역시 현대에 많이 알려진 시이다.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 하는 삶을 그리는 이 시는 사실은 고려말의 혼란 상황에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간절함이 담긴 시라고 한다. 당시 무신정변과 거란이나 몽골의 침입같은 혼란 상황 속에서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들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400여편의 수준 높은 그림과 함께 고전 시들을 해설하고 있다. 이미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에는 과거의 추억을,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교과서의 작품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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