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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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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다. 그때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벗어나기 위해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면 등산복과 배낭을 메고 주변의 산들을 올랐다. 어느 날인가 산을 올라가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냥 내려갈까 하다가 비가 금방 그칠 것 같아 계속 올라갔다. 산 중턱에서부터 굵은 비가 계속 내리기 시작했다. 무척 낭패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비를 맞으며 걷다 보니 마음의 모든 찌꺼기가 씻어져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새로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 없어서 계속해서 산을 올랐다. 요즘은 주로 가족과 함께 산을 오른다. 한 주에 한 번 정도 가까운 산을 아내와 4살짜리 아이와 함께 오르고 있다. 아내가 배낭을 메고 아이는 반절 정도는 내가 업고 올라가는 식이다. 정상에 올라가면 아이가 혼자 올라온 줄 알고 사람들이 대견해 한다.

 

미나토 가나에의 [여자들의 등산일기]를 읽으면서 예전에 비를 맞고 산을 걸으면서 느꼈던 그 느낌을 책으로 받는 기분이었다. 미나토 가나에는 [고백]이나 [리버스]와 같은 대표 작품을 통해 만났었다.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왜 그녀의 작품들이 발표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알만 했다. 인간의 어두운 본성과 일본 사회의 부조리를 아주 날카로운 필치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들의 등산일기]는 그동안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소설이다. 마나토 가나에의 소설들을 읽을 때면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소설을 마치 내가 소설의 인물들과 함께 일본의 여러 산들을 걷고 있는 여유로움과 함께 마음속에서 힐링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주로 일본의 백 대 명산을 배경으로 등산을 하는 여자들의 8개의 단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단편소설의 인물과 배경은 다르지만, 단편들을 작가만의 특유의 장치를 통해 연결점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연결점을 찾는 것도 소설의 재미이다.

 

첫 번째 소설 [묘코산]은 백화점에서 리쓰코라는 여성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직장 여성인 유미라는 여성과 묘코산을 등산을 하는 이야기이다. 리스코는 모든 일을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성격이라면, 유미라는 여성은 시간관념이나 책임감이 조금 부족한 여성이다. 특히 리쓰코는 우연히 유미가 직장 상사와 호텔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지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그녀에 대한 반감이 더욱 크다. 우연히 둘은 함께 묘코산을 등산하고, 운동화를 신고 계속 민폐를 끼치는 유미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페이스를 맞춰주지 않는다는 유미의 불만에 드디어 리쓰코는 폭발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 난 역지사지 정신이나 상대방의 페이스에 맞춘다는 감각이 부족할지도 몰라. 하지만 불륜 중인 사람에게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네." (P 40)

 

하지만 리스코 역시 결혼을 앞두고 남편 될 사람의 불안정한 미래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완벽하게 계획을 가져야만 일을 진행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전혀 다른 두 여성을 등산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정신적인 교감을 가지게 된다.

 

두 번째 소설 [하우치 산]은 앞서 두 여성의 등산 코스에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한 커플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하우치산은 묘코산 옆에 있어서 한 코스로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미쓰코는 거품 경제 시대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나이 든 여성이다. 조금 과하다 싶은 고급 브랜드의 옷과 액세서리를 하고 다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그녀에게 접근하기를 어려워한다. 그러던 중 결혼 상대를 만나는 단체 미팅에서 순박해 보이는 간자키라는 남성을 만나고 몇 번 만난 후 간자키의 권유로 등산을 한다. 간자키는 등산 동호회에서 활동할 만큼 산을 좋아하고, 처음 등산이라고 생각하는 미쓰코를 여러 가지로 신경 쓰면서 배려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겉모습을 통해 서로를 오해하고 있으나 조금씩 서로를 알아 가가는 과정을 리스코의 심리를 통해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

 

"혹시 간자기 씨도 그걸 노리고 나를 산으로 데려온 걸까? 거품 시절의 잔해를 몸에 두르고 있는 내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줘서 개심시키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개심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쿨한 미인이라서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 자체도 좀 어떤가 싶지만 간자기 씨는 거품 시절의 잔해를 두르고 있는 내가 좋은 것이다. (P 85)"

 

이 소설에서만 미나토 가나에 식의 멋진 반전이 나온다. 이 소설만의 여유로운 힐링 분위기와 미나토 가나에 식의 반전이 어울려진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나오는 단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배경은 모두 일본의 산을 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일곱 번째 소설인 [통가리로]만이 뉴질랜드의 트래킹 코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10여 년 전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던 연인과 함께 오던 코스는 이제는 혼자 등산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0년 전의 트래킹 과정과 지금의 과정이 반복되어 이야기되면서 산을 통해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사람은 크고 작든 짐을 지고 있다. 단, 그 짐은 옆에서 보면 내려놓을 것 같지만 그 사람에게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모색한다. 그것을 등에 지고 살아가는 방법을. 요시다와 나는 서로의 짐을 자신의 해석으로 밖에 인식할 수 없었다." (P 346)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을 많이 해 보게 된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예전에 등산했던 산들을 올라가다 보면 그때의 추억과 그간의 인생이 저절로 펼쳐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름 오랜 등산의 경험을 통해 등산이 주는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인생을 한 발자국 떨어져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속에 있으면 그것이 전부이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생의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것도, 산에 올라가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그냥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산은 조금 더 여유롭게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미나토 가나에의 [여자들의 등산일기] 역시 이런 산이 주는 시각과 여유를 느끼게 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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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수를 죽이고 - 환몽 컬렉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0
오쓰이치 외 지음, 김선영 옮김, 아다치 히로타카 / 비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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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영화나 만화를 보면서 주인공을 통해 나 자신의 투영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이 고달팠거나, 학창시절에 학교와 성적에 압박을 당하며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그런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게 하는 잠시의 이상적인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 내 또래의 친구들에게는 마징가 Z나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고는 했다. 여자친구들은 캔디나 들장미 소녀 하이디였던 것 같은데, 그 시절 여자친구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기에 잘 알지는 못한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는 홍콩 영화의 주인공들을 좋아했다. 성냥개비 하나를 물고, 절대로 총알이 떨어지지 않는 총을 들고 난사를 해다는 주윤발이나 유덕화와 같은 홍콩 르와르 영화의 주인공들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현실에 적응하면서부터 이런 인물들과 분리되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오쓰이치의 [메리 수를 죽이고]는 현실의 고달픔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음울하고, 때로는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그중 이 소설집의 대표 작품인 [메리 수를 죽이고]는 흔히 이야기하는 한 오덕 소녀의 성장기이다. 주인공은 뚱한 체구에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는 외톨이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잊기 위해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 빠져있다.

"나는 초라한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그런지 체형은 호빵 같았고, 소극적인 사고방식에 말재주도 없고, 굼뜨고, 뭘 해도 자신감이 없으며, 누가 말을 걸면 얼굴을 붉히고, 웃음소리는 흉하고, 촌스러운 안경을 쓰고 있어 이성은 물로 동성에게도 무시당했으며 반에서는 음침하고 기분 나쁜 여자로 인식되고 있었다. 살아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스스로 의아할 정도였다. 그런 나도 창작물의 세계에 푹 빠져 있을 때만큼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P 179-180)"

주인공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판타지 만화와 소설 동호에게 들어갔고, 그곳에서 가사라기 루카라를 필명으로 소설을 쓰기 한다. 비록 고등학교 친구들이 돌려보는 유치한 소설이었지만, 제법 글 실력을 인정받아 인기를 얻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녀의 소설마다 '메리 수'가 등장하는 것이었다.

메리 수란 유명한 영화나 게임의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와 2차 소설을 쓸 때 흔히 등장하는 전형적인 캐릭터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을 투영해 이상화시킨 인물로 대부분 미소년이나 미소녀로서 청소년의 나이에 함대를 지위하거나 무한한 능력으로 전쟁을 승리하는 등의 허무맹랑한 존재이다. 스타트랙이라는 영화의 2차 소설에서 메리 수라는 열다섯 살의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 후 이런 특성을 가진 주인공들을 메리 수라고 부른다. 루카는 자신의 소설에서 메리 수가 등장하지 않게 온갖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어떤 소설을 써도 메리 수가 등장한다. 그만큼 자신이 현실에서 억눌려 있고, 다른 자신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루카는 자신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운동을 하고, 사람과 대화를 하고, 여러 가지 취미를 익히며 자신 안에 메리 수에 대한 마음을 없애려 한다. 그렇게 점점 성장하다 보니 이제는 그녀의 소설에 더 이상 메리 수가 등장하지 않게 된다. 문제는 이제는 현실을 도피하지 않기 위해 소설을 쓰고자 하는 마음조차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킹카가 되어 대학생 생활을 하던 그녀는 우연히 예전의 자신의 소설의 메리 수를 만나게 된다. 작가의 대부분의 소설처럼 판타지적인 소설이지만,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소녀의 성장 과정을 매우 깊이 있게 보여 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집에는 중단편 정도의 분량인 [염소자리 친구]라는 소설도 실려 있다. 구약성경의 아사셀의 염소라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소설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기마다 한 마리의 염소를 택해 광야로 내 보낸다. 자신들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보내는 것이다. 이것을 아사셀의 염소라고 부른다. 이 소설도 판타지적 요소가 있지만, 단순히 판타지 속에서 학교 폭력의 처참함을 묘사하고 있어서 너무 인상 깊게 일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동 있게 읽은 소설은 처음에 실려 있는 [사랑스러운 원숭이의 일기]이다. 이 소설 역시 성장소설이다. 특이한 것은 저자의 다른 소설과는 달리 판타지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있었는데 내가 지나치고 읽었을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은 주인공은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로부터 잉크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잉크를 버리려던 주인공은 우연히 잉크를 다시 줍고, 잉크를 쓰기 위해 일기를 쓰고, 일기를 쓰면서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조급은 빠른 호흡을 통해 한 남자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그 짧은 이야기에 인생과 치유가 담긴 소설이다. 특히 주인공이 가정을 이루고 아내와 자녀가 자는 모습을 보며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툇마루에 어머니를 남겨두고 나나코와 가케루가 있는 다다미방으로 돌아갔다. 한 이불을 덮고 잠든 두 사람은 눈을 감은 얼굴이 서로 쏙 빼닮았다. 나는 두 사람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 쓰레 가방에서 일기장과 잉크병과 펜을 꺼내 그날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탁상 조명의 불빛 아래 글씨를 써 내려가는데 어느 틈에 나나코가 눈을 뜨고 내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와 만난 의미. 카케루가 태어난 의미. 어머니가 나를 낳은 의미. 아버지가 어머니와 만나 의미. 뭔가 왈칵 치밀어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가 지금, 이 장소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다만 기적 같았다. 지금, 내 곁에 나나코가 있고, 가케루가 존재해, 같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몹시 소중하게 느껴졌다. 가케루. 내가 태어난 의미 바로 그것. 내 미래의 결정체. 그리고 나는 또한 아버지를 생각했다. 예전에 품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증오, 작가를 뒤따르려 가족을 버리다니 어리석은 남자다. 하지만 그 감정도 이제는 풍화되어 버렸다. 시간이라는 바람에 깎여나가 뾰족했던 부분이 곡선을 띠었다. 지금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네"라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아버지가 되고, 내 펜으로 글을 쓰게 된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P 22-3)"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작가가 여러 가지 필명으로 섰던 다양한 스타일의 소설이 등장한다. 특히 마지막 [에바 마리 크로스]라는 소설은 인간 악기라는 소재를 등장시켜 마치 에드가 엘런 포우의 소설처럼 어둡고 기괴하다. 오래전 영화인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분위기도 풍긴다. 그럼에도 작가의 소설에 한결같이 등장하는 주제는 바로 '상처받은 인간'이다. 상처 받은 한 인간이 치유되는 과정을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그 인간이 작가의 메리 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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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9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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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거울을 보면 새치가 부쩍 많아진 모습을 보게 된다. 이렇게 나이를 먹어간다니 서글픈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음이 지나가고, 나이가 들어가고, 흰머리가 나고, 그렇게 노쇠해지며 몰락해가는 것이 인간의 육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 아이는 점점 자라고, 젊어지고, 그리고 내 자리를 대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현인(賢人)처럼 이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육체적으로 몰락해 가는 나 자신을 부정하며, 다시금 육체적 젊음을 돌이키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이다. 결국에 몰락할 것을 알면서도 몸부림을 치는 것, 그것이 인생이 아닐까.

가을날 디자이 오사무의 [사양]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감성적인 생각들을 해 보게 된다. 디자이 오사무는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을 통해 만났다. '자기 비하'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점점 그 늪 속에 잠식되어 가는 한 인간의 비참한 운명을 그린 작품이었다. 한 인간 내면의 어둡고 음침한 모습과 함께, 스스로를 파멸해 가는 과정들을 읽으며, 조금의 답답함과 무거움을 느꼈었다. 그러나 또 그만큼 인간 내면의 어두운 감정에 대해 공감하기도 했었다.

[사양]은 [인간실격]보다는 조금 덜 어두운 면이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소설의 제목처럼 몰락해 가는 일본의 귀족 가문과 그 가문의 여성을 주인공 설정하고 있어서, 어두운 부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양(斜陽)이란 지고 있는 해를 의미한다. 소설의 몰락해 가는 가즈코의 가문을 이야기한다. 소설의 배경은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의 패망 직후이다. 가즈코의 가문은 권위 있는 귀족 가문이었으나 패전과 아버지의 죽음으로 몰락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본이 패전하던 해에 집을 팔고 이즈이의 산장으로 집을 옮긴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고 죽어간다. 전쟁에서 돌아온 동생 역시 아편과 알코올 중독으로 집안의 재산을 축낼 뿐이다. 주변의 상황과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가즈코는 점점 압박을 당한다. 그 과정에서도 동생의 스승인 우에하라를 사랑하게 된다. -물론 소설을 읽다 보면 이것이 정말 사랑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반적인 사랑과는 다른 모습이다 - 우에하라는 한때 이름있는 소설가이지만, 지금은 아내와 자식이 있지만 술과 폐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우에하라를 연모하고 그의 아이를 낳는 것이 마치 마지막 희망처럼 생각한다.

"저는 불량한 사람이 좋아요. 더구나 딱지 붙은 불량이 좋아요. 그리고 저도 딱지 붙은 불량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는 단지 제가 살아갈 방도가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은 일본 제일의 딱지 붙은 불량이겠죠. 그리고 최근 다시 맣은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추접스럽다. 역겹다며 몹시 미워하고 공격한다는 이야기를 동생한테서 듣고, 더욱더 당신이 좋아졌습니다. 당신에겐 틀림없이 애인이 여럿 있을 테지만, 머지않아 저 한 사람만 좋아하게 될 거예요. 어째선지, 제겐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듭니다. (P 92)"

결국 가즈코의 어머니는 폐병으로 죽고, 동생도 자살하지만, 가즈코는 우에하라는 만나 아이를 임신하며 소설을 끝낸다. 저자는 가즈코의 주변의 모든 것이 몰락해 가고,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아이를 임신한 것 한 가지로 희망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며 소설을 끝낸다. 아마 그런 희망 밖에 찾을 수 없는 당시의 상황이 소설에 반영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몰락해가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런 이미지에 뱀의 이미지를 더해서 조금 더 섬뜩하고 잔인한 느낌까지 더 하게 된다. 이 뱀의 이미지는 소설의 복선적인 역할과 함께 가문의 몰락과 어머니의 죽음을 암시한다.

"저녁 해가 어머니의 얼굴을 비추어 어머니의 눈이 푸르스름하니 반짝였다. 얼핏 노여움을 띤 그 얼굴은, 대뜸 달려가 안기고 싶을 만치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는 아아, 어머니의 얼굴을 아까 본 그 슬픈 뱀과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또한 내 가슴속에 살무사처럼 흉측한 뱀이 굼실굼실 자리 잡고 있어, 깊은 슬픔으로 덧없이 아름다운 어미 뱀을 언젠가 물어 죽이고 마는 게 아닐까, 어쩐지 자꾸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p 19)"

아마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때 패망해 가던 일본인의 심정이 되지 않고서는 온전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본의 제국주의는 우리에게는 끔찍한 경험이었지만, 일본인에게는 나름 한여름 밤의 꿈처럼 화려한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몇 천 년간 섬나라에 갇혀서 대륙으로의 진출만을 꿈꾸었던 그들이, 태평양의 대부분과,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점령하는 것을 지나서 인도와 호주까지 영역을 넓혔을 때, 마치 세상이 자기 것인 양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거대한 거인이 서서히 몰락해가고, 미국의 압박에 의해 점점 심장이 조여 왔을 때 그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였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미국에 의해 패망하고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몰락하고 있는 사양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몰락 속에서도 작은 희망이라도 잡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설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디자이 오사무의 [사양]이라는 소설에 딱 맞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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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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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콜럼바인]과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고등학교 총기사건인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파악한 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 사건의 주범인 에릭이라는 인물은 168명의 사상자와 수많은 부상자를 낸 오클라호마시티 참사의 범인인 멕베이를 모델로 삼아 맥베이 보다 더 유명해져서 신문에 나고 싶다는 열망으로 사건을 준비했고, 이 과정에서 우울증으로 자살을 준비하던 딜런을 끌어들여 범죄를 모의했다. 원래는 식당에 폭탄을 터트려 천 명 가까운 희생자를 내려고 준비했으나, 폭탄이 불발하여 훨씬 적은 희생자를 내었다는 것이다. 아직 인격이 덜 형성된 고등학생이란 나이에 이들의 왜곡된 자의식이나 타인에 대한 피해 의식 등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사건이었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비록 픽션이지만, 다시금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소설에서도 마치 에릭과 딜런과 같은 슈야와 나오키라는 두 명의 청소년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만의 황당한 이유로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소설은 유코라는 중학교 1학년 여선생님의 1학기 종업식 인사로 시작된다. 학생들에게 덤덤하게 한 학기 동안 수고했다고 말하고, 자신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7년 동안의 교직을 관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언급하며 1달 전에 사고로 죽은 자신의 딸 이야기한다. 그리고 곧 충격적인 말이 나온다. 학교 수영장에서 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려진 딸이 실제로는 자신의 반 두 명에게 살해를 당했다는 것이다. 유코는 그들의 신변을 보호한다며 그들을 A와 B라고 부른다. 유코는 일본의 소년범의 형사처벌 면제와 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교사의 사명으로 인해 범인들을 형사고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쩌면 형사고발이 처벌은 없고, 범죄자만을 유명하게 만들어, 오히려 그들의 욕구만을 만족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신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자신만의 처벌을 남겨두고 떠났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 처벌이라는 것이 너무 끔찍한 형벌이다. 소설의 초반부는 이렇게 유코의 고백으로 일단락되는데, 읽는 내내 충격과 반전이 거듭되면서 거의 숨도 쉬지 못하고 읽게 된다. 독자를 자신의 소설로 빨아들이는 작가의 흡입력에 깜짝 놀랄 지경이다.

이 정도 되니 오히려 소설의 초반에 모든 긴장감을 쏟아부었으니 후반부에는 무슨 이야기가 진행될까 읽는 나 자신이 작가를 염려할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염려도 잠시, 작가는 다시금 충격과 반전을 쉴 틈 없이 이어간다. 소설은 유코 선생님의 독백, 유코 선생님의 독백 이후 반에서 벌어진 일을 반장이었던 미즈키가 유코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 내용,  B라는 이니셜로 불렸던 나오키와 나오키의 어머니의 독백,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A라는 이니셜로 불렸던 슈야라는 아이의 독백이 이어진다.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유코가 던져 놓은 폭탄이 어떻게 파괴력 있게 작동하는지와 함께 유코의 딸이 미나미를 살해한 슈아와 나오키의 범행 동기 등이 언급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청소년 문제와 학교 문제가 언급된다. 소년범의 문제, 가정파괴, 은둔형 외톨이, 학교에서의 폭력과 왕따 문제, 학교에서의 선생님의 권한 문제 등이 계속 언급된다. 그 과정에서 유코, 미즈키, 나오키, 슈아, 나오키의 어머니까지 어떻게 자기만의 시각으로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만의 시각으로 외부 세계를 인식이 가져온 끔찍한 결과도 언급된다.  

소설은 충분히 나오키와 슈아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한다. 부모님의 왜곡된 학업 의식이나 경쟁의식, 또는 소외감, 사랑과 관심을 받고 싶다는 자신만의 감정 등을 마치 범죄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듯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면서 이들에게 대한 동정 의식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아마 이것이 작가의 의도였을 것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건의 원인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런 원인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생긴 것인지를 계속 암시한다.

현대에는 청소년 범죄나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지면, 범죄자들이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방대한 분석을 한다. 범죄자의 불우한 가정환경, 힘들었던 청소년 시절, 사회의 모순 등을 보도하며 그들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작가는 유코 선생님의 입을 빌려 결국 사건의 원인은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이며, 그 범죄자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유코 선생님의 초월적인 심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미나토 가나에는 청소년과 학교가 중심이 되는 여러 개의 소설을 발표하고, 학교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 등을 언급한다. 작가의 치밀한 심리묘사와 충격적인 반전으로 인해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백]은 아직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새롭게 개정판이 출간되면서 드디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충격과 반전을 거듭해서 책을 읽을 덥은 후에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왜 이 책이 미나토 가나에의 대표작이라고 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가 있었다. 계속해서 이 작가의 작품을 관심을 가지고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직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이 소설을 먼저 읽기를 권한다. 충분히 독자를 사로잡을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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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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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일까? 서로 같은 집에 살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서로를 위해주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에 아무런 혈연이 없으면서도 어쩌다가 서로 모여서 살게 된 가족이 이야기가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좀도둑 가족 (국내 개봉 : 어느 가족)]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원작이 소설로 출간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의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소설로 출판하고 있다. 비록 영화로는 보지 못했지만 소설로 먼저 만나봤다.

빈집만이 넘치는 일본 도시의 재개발 지구에 한 가족이 살고 있다. 이들이 여기 살고 있는 것은 원래 집 주인인 하쓰에 할머니 외에는 비밀이다. 하쓰에와 하쓰에의 배다른 두 딸 노부요와 아키, 그리고 노부요의 남편 오사무, 그리고 오사무의 아들 쇼타, 그리고 매 맞아 울고 있어 그냥 데리고 온 유리라는 여자아이까지...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지만, 혈연으로 얽혀있는 가정은 아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각자의 삶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하쓰에는 젊은 시절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 그녀는 남편이 남겨두고 간 허름한 집에서 자신을 버린 남편의 사진과 향을 피우는 불당을 차려 놓고 산다. 근근이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노인연금으로 살아가면서 파친코는 꼭 들리지 않고 간다. 노부요는 남편으로 폭력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술집에서 일을 하다가 오사무라는 남자를 만나 동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우연히 하쓰에의 집에 살며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쇼키는 오사무가 데려왔다. 일을 하기 싫어하는 무능력한 오사무는 쇼키를 데리고 근처 슈퍼마켓을 돌며 생필품을 훔치고 있다. 노부요 역시 세탁소에 일하며 손님들이 옷에 넣어둔 물건들을 슬쩍하며 살고 있다. 노부요와 자매는 아니지만, 하쓰에를 어머니라고 함께 부르는 아키는 퇴폐업소에서 일하며 아무런 미래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온몸이 멍 자국이고 화상 자국인 '린'이라는 여자아이가 있다.

처음에 이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이곳에 모여 산다. 그러나 조금씩 서로를 향한 정(情)이 생기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돌보기 시작한다.

"노부요는 현관에서 가져온 철제 석유통 속에 불붙인 신문지를 넣었다. 그리고 린이 처음 이 집에 온 날 입고 있던 옷을 던져 넣었다. 노부오는 린을 위에서 안듯 무릎으로 감싼 책 재를 바라보았다. 윗옷 소매에 붙은 흰 리본이 순식간에 휩싸이더니 까맣게 변색되었다. 노부요는 린을 뒤에서 안듯 무릎으로 감싼 채 재를 바라보았다. -때리는 건 말이지...... 린이 나빠서가 아니야......- 노부요는 천천히 말해 주었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노부요는 삼십 년 전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어투가 어딘가 자신의 엄마를 닮아 있었다. -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을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노부요는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르는 걸 느꼈다. 옷을 태우는 불 때문인지 눈물이 따뜻했다. 린은 뒤돌아 노부요의 얼굴을 보며 작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 아이가 무척 귀엽다든지 안쓰럽다든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이 아이를 안고 안기는 것만으로, 자신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더는 이 아이를 내버려 두지 않아. 노부요는 맹세했다. (P 135-136)"

이들은 세상의 시각에서 보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아닐 수도 있고,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부도덕한 일을 하는 불량 집단일 수가 있다. 실제로 소설 말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피가 아닌 정으로 맺어진 이들은 서로가 예전의 가정에서 느끼지 못했던 따스한 사랑을 이 좀도둑 가족에서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사실 부부 사이도 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서로 함께 살고 서로의 연약함을 품어주면서 피로 맺어진 관계보다 더 끈끈한 관계가 되는 것 아닐까?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가슴 뭉클한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고 나니 영화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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