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 설국에서 만난 극한의 허무 클래식 클라우드 10
허연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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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주는 것에 있다. 소설은 짧은 시간 안에 우리를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간다. 전쟁 소설을 읽으며 참혹한 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 있기도 하고,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기도 한다. 마치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에서 옷장을 통해 나니아의 세계로 들어가듯 소설은 전혀 우리를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한다.

 

이런 많은 소설 중에서도 나를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아주 독특한 세계로 데려 간 소설이 있다. 바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이다. [설국]의 마력은 소설을 펼치는 순간부터 첫 문장을 통해 읽는 사람을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데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한 문장을 통해 이 책을 읽는 사람을 일본의 눈 내리는 한 시골마을로 데려간다. 비록 공간적인 배경은 있지만, 이곳은 단순한 공간의 장소가 아닌 인간 깊은 곳에 존재하는 허무의 공간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가와바타 야스나리' 편에서 저자인 허연 작가는 바로 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허무의 공간을 여행한다.

 

 

저자는 먼저 [설국]의 배경이 된 일본의 에치고유자와 마을을 여행한다. 눈 내리는 어느 날 그는 무작정 일본으로 향하고, 소설의 배경이 되는 기차를 탄다. 물론 작가가 탑승했던 기차나 그 선로가 아니었고, 이제는 폐쇄가 되어 그 터널을 더 이상 지날 수 없었다. 그러나 최대한 작가의 시각으로 기차를 타고 에치고유자와 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설국의 낯선 공간의 느낌을 받는다.

 

"기후대가 바뀌었다는 걸 느끼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에치고유자와 역은 놀랍도록 습했다. 맑은 날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할 정도로 사위는 흐렸고 공기는 눅눅했다. 낮인데도 해거름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P 45)

"에치고유자와의 음습함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만큼 지배적이면서도 숙명적이다. 특히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이 땅의 기후는 특별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P 45)

 

 

허무의 공간이 설국은 실제로 존재하는 하나의 도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그러기에 저자의 여행은 단순히 지명을 쫓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타계한 작가의 마음속의 근원에 존재하는 허무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다. 그가 에치고유자와 마을에 도착했을 순간부터 그는 설국에 도착했는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마음에 도착했는지 모를 이상한 기분에 휩쌓인다.

 

"설국에는 벗어나고 싶어도 결국 벗어나지 못하는, 돌아오지 않고는 못 배겨나는 묵직한 자기장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처음으로 에치고유자와에 도착한 날 역 풍경도 예사롭지 않았다. '쓸쓸하다'라는 표현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습도가 이제 막 설국에 입국한 나를 사로잡았다." (P 48)

 

 

 

이 책의 초반부가 소설 [설국]의 주인공 시마무라를 따라 에치고유자와 마을을 여행했다면, 후반부부터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한 인간의 인생의 궤적을 쫓아간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출생하고 자란 곳은 오사카 지역 인근 아바라키 시 부근이다. 그는 몰락해 가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이와 함께 이미 두 살과 세 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거의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다. 일곱 살 때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열 살 때는 누나마저 죽는다. 결국 그는 열다섯 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까지 그와 함께 산다. 그 시절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죽음과 어둠, 그리고 허무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도요카와 초등학교와 이바라키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할아버지와 보내는데, 그는 훗날 '할아버지는 아침에 일어나 방 안에 앉아 동쪽 하늘을 보는 것이 유일한 일과였다'라고 술회한다. 참 막막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집이라고 해봐야 하루 종일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와 집안일을 도와주는 일자무식의 식모뿐이었으니 그에게 인생을 가르쳐줄 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유소년기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P 135)

 

 

 

저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마음에 인생의 허무가 깊게 자리 잡은 시기를 청춘의 시기로 본다. 그는 도쿄제국 대학을 다니던 스무 살 무렵 열네 살의 카페 직원이었던 '하쓰요'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해 청혼을 했지만,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파혼을 당하고 하쓰요는 잠적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죽을 때까지 하쓰요가 사라진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깊은 허무 속을 헤맨다.

 

작가는 설국의 배경인 에치고유자와를 시작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고향인 이바라키, 그의 또 다른 대표 소설인 [이즈의 무희]의 배경이 된 이즈반도 등을 여행하며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허무의 세계를 여행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좋아해서 이 시리즈를 소개하는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이란 팝캐스트를 즐겨듣는다. 그 방송에서 저자인 허연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내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늪과 같은 존재였다! 이제 조금 알았다고 생각하면 다시금 알 수 없다는 작가였다. 그가 지긋지긋했다!"

 

저자에게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애증의 존재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단순히 작가의 생애나 작품의 장소를 여행하는 책이 아니라, 작가 마음속의 허무를 여행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인간 안에 있는 허무의 도시를 여행하는 기간 저자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그의 허무의 근원과 그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알아가면서 감탄을 했을까? 아니면 그의 깊은 허무 속에 같이 빠져서 허우적 거렸을까? 어떤 것이든 덕분에 나 같은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여행기에서도 읽을 수 없는 독특한 세계로의 여행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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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 천재 작곡가의 뮤직 로드, 잘츠부르크에서 빈까지 클래식 클라우드 7
김성현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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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유명한 가수와 어머니가 재산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자신이 가수 활동을 하면서 번 돈을 어머니가 관리했는데, 그 돈이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다. 언론을 통해 서로를 비난하며 극단적인 상황까지 간 적이 있었다. 한 아이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서 성장하기까지 부모의 역할을 절대적일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아이돌이 인기를 끄는 시대에는 부모님이 많은 것을 투자해서 아이의 재능을 키워낸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다. 아이가 성공을 했을 때는 그는 독립해 하고 싶어 하고, 반면 부모님은 그동안 투자를 한 것에 대해 아이가 보답해 주기를 원한다. 누가 맞는 걸까?

 

 

그런데 이런 갈등은 단순히 현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천재로 알고 있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도 이와 비슷한 갈등이 있었다. 클래식 클라우드 모차르트 편은 어린 시절 음악의 천재로 불렸던 모차르트의 짧은 35살의 인생 여정을 그리고 있다. 흔히 모차르트를 생각하면 모두들 천재를 떠올린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고, 5살 때 작곡을 했고, 6살 때 오스트리아 황족들 앞에서 연주회를 열었으니 당연히 그를 천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모차르트의 천재 이미지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 많은 대중들에게 각인되었다. 당대 최고의 음악가인 살리에르가 몸부림쳐서 작곡을 해도 그냥 장난삼아 작곡한 모차르트의 작곡을 따라갈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되면서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이미지는 대중에게 확고하게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천재 모차르트보다는 모차르트를 만든 아버지 레오폴트의 노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 모차르트가 성장하면서 레오폴트와의 겪었던 처참한 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레오폴트가 모차르트를 데리고 다녔던 긴 여정을 이야기하며 유럽 각국의 도시들을 소개한다.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이다. 레오폴트는 궁중 연주가였는데, 어린 모차르트와 '난네를'이라는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누나인 안나 마리아에게 피아노 연주를 가르쳤다. 처음에는 7살 난 난네를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3살인 모차르트가 옆에 와서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한다. 그리고 4살 때부터는 연주를 시작하고, 5살 때 작곡을 했다고 한다. 이런 장면을 발견했을 때의 부모의 감동은 어떠했을까? 이 책에도 당시 레오폴트의 편지를 통해 그가 느꼈던 경이감을 보여 주고 있다.

 

"신이 잘츠부르크에 태어나도록 허락하신 기적이네. 만약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내 의무라면, 바로 지금일 거야.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냉소적이고 부인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 기적은 너무나 분명하고 부인하기 힘든데도 사람들은 무시하려고 하지. 그들은 신에게 이 영광을 돌리려고 하지 않아." (P 48)

자신의 아들의 피아노 연주를 보고 '신이 내려 준 기적'이라고 말했던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특히 궁중 연주가로 일하고 있지만, 자신의 재능을 많이 인정받지 못한 중년의 아버지가 어린아이의 피아노 연주에서 천재성을 발견했을 때의 느낌이란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 아이를 통해 모든 것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을까? 그때부터 레오폴트의 인생은 오직 모차르트의 음악적 성공에만 있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모차르트와 누나 나네를을 데리고 유럽을 여행하면서 궁정과 극장에서 연주회를 연다. 자신의 직장을 휴직하고,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여행 비용을 마련해 자녀들을 데리고 연주회를 떠나는 부모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마 인생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투자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1차 그랜드 투어라고 불리는 유럽여행은 3년간 계속되었고, 그 후에는 모차르트만을 데리고 2차 그랜드 투어인 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 저자는 이 여행이 모차르트의 음악적 견문을 높여 주는 인생의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고 말하고, 이런 경험을 선사해 준 버지의 레오폴트의 추진력을 이야기한다.

"흔히 신동 탄생'은 아이의 재능에만 달린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모차르트 가족의 그랜드 투어는 두 가지 요소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일러준다. 아이의 재능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부모의 전문가적 식ㄴ과 아이가 충분히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추진력이다. 모차르트 가족의 그랜드 투어는 레오폴트의 예술적 감식안과 추진력, 모차르트의 음악적 재능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경우이다." (P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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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차르트가 성장한 후부터 아버지와의 갈등이 시작된다. 아버지는 모차르트가 파리에서 성공하도록 그를 떠밀고, 모차르트는 어머니와만 파리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작곡가로서도 뛰어난 명성을 얻게 되지만, 예상했던 만큼의 성공, 특히 아버지에게 보낼 넉넉한 돈을 벌 만큼의 성공은 이루지 못한다. 특히 아버지에 밀려 억지로 아들을 돌보기 위해 떠났던 어머니가 그곳에서 병들고 죽자, 모차르트는 더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로 인해 아버지와의 갈등이 심해진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인 콘스탄체를 만나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는 그 갈등이 극에 다다른다. 아들의 성공을 닦달하고, 그로 인해 아내까지 병들게 하고, 성인이 된 아들의 인생까지 온전히 통제하려 했던 레오폴트를 비난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또한 레오폴트의 입장에서도 바라본다.

"모차르트의 사랑과 결혼에는 언제나 훼방꾼이 있었다. 아버지 레오폴트다. 아들의 연애까지 사사건건 간섭하고 통제하려 했던 레오폴트의 모습은 오늘날 기준에서 보아도 분명 지나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고정 관면에 사로잡히면 전반적인 관점에서 한 사람을 평가하지 못하고, 평면적이고 부분적인 이해에 그치기 쉽다. 1777년 9월 아내와 아들 모차르트를 구직 여행길에 또나보낸 뒤 누구보다도 깊은 슬픔에 빠졌던 건 다름 아닌 레오폴트였다. 오늘날 말로는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된 것이다. 모차르트만 잘츠부르크 궁정에 넌더리를 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직장 생활이 힘들었던 건 레오폴트도 마찬가지였다. 1778년 2월 편지에서 '나는 대주교의 행동에 굽힐 수 있지만, 너의 행동에는 무너지고 마는구나. 대주교는 나를 아프게 만들지만, 너는 나를 죽게 할 수도 있단다'라고 괴로움을 토로했던 건 모차르트가 아니라 레오폴트였다." (P 172)

​                       

모차르트와 아버지 레오폴트와의 갈등은 결국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모차르트는 여러 부분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잘츠부르크에서 대주교와의 갈등으로 직장을 잃은 모차르트는 그 후 그는 빈과 프라하 등에서 거주하며 많은 곡과 오페라들을 작곡했지만, 계속해서 물질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한다. 그리고 35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둔다. 공교롭게도 그의 마지막 작품은 발제크 백작이 자신의 어린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요청한 미사곡인 [레퀴엠]이었다고 한다.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아버지 레오폴트는 축복이었을까?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죽는 순간까지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천재로만 알고 있던 모차르트의 인생과 예술에 있어서 아버지 레오폴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 그가 겪었던 아버지와의 갈등, 잘츠부르크 대주교로 대표되는 당시 지도층과의 갈등, 당시의 시대 문화의 갈등을 알게 되었다. 분명 모차르트가 천재로 불리게 된 것에는 아버지 레오폴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그의 인생의 불행했던 부분도 레오폴트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보통 아버지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사회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많은 부분을 감당해 주었기에, 한 음악가로서 자립하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마 모차르트가 더 긴 인생을 살았다면 이런 성장기를 잘 극복하고 더 완숙한 음악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인생과 그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당시의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재 모차르트가 아닌, 인간 모차르트를 더 잘 알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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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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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깊은 골짜기의 피오르와 밤을 밝히는 백야, 그리고 절규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는 뭉크의 작품이다. 아쉽게도 아직 노르웨이를 한 번도 여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르웨이를 간다면 이 세 가지는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방송을 즐겨 읽고 출간되는 순서대로 꾸준히 읽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으로 [뭉크]가 발간되었다. 부제는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이다. 노르웨이의 자연과 함께 뭉크의 인생이 드라마틱 하게 묘사되어 있다.

 

뭉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절규]라는 작품이다. 한때 미학에 관심이 있어서 예술사에 대한 책들을 읽었었다. 19세기는 초반에 사실주의가 유행한 후 이에 반대되는 인상주의가 나타나고,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는 뭉크로 대표되는 표현주의가 나타난다. 즐겨 읽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는 표현주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표현주의 미술에 대해서 사람들이 당황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자연의 형태가 왜곡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결과가 아름다움과는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만화가라면 사람의 추함을 보여주는 것도 당연시될 것이다. 그것이 그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지한 미술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사물의 외관을 변형시킬 때 그것을 추하게 만들기보다는 이상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혹독한 반발을 살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뭉크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을 것이다. 고뇌의 외침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인생의 즐거운 면만 보려는 것은 불성실한 태도라고, 표현주의자들은 인간의 고통, 가난, 폭력, 격정에 대해 아주 예민하게 느꼈기에 미술에서 조화나 아름다움만 고집하는 것은 정직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강했다."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예경, P 564

 

 

 

그러나 이 책에서는 표현주의나 뭉크의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인 해석보다는 뭉크라는 한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살아온 생애, 그리고 그의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 이 과정에서 그가 어떻게 자신의 불안한 내면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의 예술가의 생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젊은 시절의 스승인 '한스 예게르'이다. 사회주의자이자 기존 문화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던 그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이란 모임을 이끌었고, 뭉크 역시 이 그룹에 속해 있었다. 저자는 뭉크가 한스 예게르의 열렬한 추종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비판의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기존 미술에 대항하는 혁신적인 미술을 선보일 수 있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뭉크는 크리스티아나 보헤미나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가는 아니었다. 당시 그는 진보적인 정치사상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입장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예게르가 당시 사회 관습에 정면으로 반하는 파격적 사상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또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후 화단에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혁신적 예술을 선보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으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P 35)

 

 

 

 

 

뭉크의 여인들 역시 그의 작품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젊은 날의 뭉크는 밀리라는 유부녀와 사랑에 빠진다. 이것은 짧은 기간의 사랑이었지만, 그때의 인상과 감정, 그리고 배신감 등이 이후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뭉크는 밀리와의 짧고 강렬한 사랑 후 수년 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그녀를 그리워했지만, 밀리의 재혼 소식을 들은 이후에는 오히려 그려를 사랑했던 시간을 증오하게 된다. -중략- 뭉크는 밀리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믿었지만, 밀리가 다른 이와 결혼을 하는 것을 보며 자신이 그녀에게 그저 한때 외도의 상대에 불과했다는 생각에 실망했고 배신감에 견디기 힘들어했다. 이후 뭉크는 밀리가 보란 듯이 성공하고자 했고, 그래서 더 그림에 열중했다. 이후에 뭉크와 밀리의 재회는 두 번 다시없었다. 그러나 뭉크에게 밀리는 일생 동안 가장 사랑하고 갈망했던 여인이었다." (P 42)

 

 

 

 

뭉크의 작품에서 나오는 여성적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다그니 율'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신비로움과 팜파탈의 모티브를 가지고 있었는데, 뭉크는 그녀의 영향을 받아 [마돈나]와 같은 여러 작품을 그렸다.

 

뭉크와 약혼까지 한 '툴라 라르센'도 뭉크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집착으로 인해 뭉크와는 극단적인 결말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녀와의 사랑과 이별이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뭉크는 이런 인생에서의 아픔들이 있을 때 주로 노르웨이의 자연들을 접했는데, 저자는 노르웨이의 황량한 자연환경이 고독한 뭉크의 내면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뭉크의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절규에 나오는 배경인 노르웨이의 예케베르그 언덕이 바로 뭉크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뭉크의 노트에는 이런 뭉크의 글이 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해는 지고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의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는 우울감에 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조이는 통증을 느꼈다. 나는 멈춰 섰꼬, 죽을 것 같이 피곤해서 나무 울타리에 기대고 말핬다. 검푸른 피오르와 도시 위로 핏빛 화염이 놓여 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흥분에 떨면서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을 관통해서 들려오는 거대하고 끝없는 비명을 느꼈다." (P 57)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은 정신 활동은 심리적 에너지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경우 그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넘쳐 날 때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심적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한다. 이런 넘쳐나는 심리적 에너지를 예술이나 학문 등으로 표출해 내면 그는 위대한 예술가나 학자가 된다. 반면 그 넘쳐 나는 에너지를 방출하지 못하면 그는 미치게 된다고 말한다.

 

위대한 예술가란 뛰어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내면의 아픔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아픔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 낸 사람이 위대한 예술가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아픔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에게는 크나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가의 작품만 보고 그 작품의 위대성을 논하지만, 그 작품에는 예술가의 고통이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뭉크,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라는 책을 읽으며 그동안 작품으로만 접하던 뭉크라는 한 인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일생에서 겪었던 아픔까지도. 결국 [절규]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바로 이 아픔에서 표현된 것이다. 그렇다면 뭉크가 겪었던 그 아픔과 고통들은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뭉크는 외롭지만 80살까지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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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0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첫번째 사진, 정말 아름답네요. 이 시리즈 표지를 볼 때마다 생각했던 거긴 한데, DP된 걸 보니 정말 매력적이에요...

가을벚꽃 2019-07-04 10: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직 다 모으지는 못했어요 ㅎㅎ 두 권이 모자라네요. 내용들도 좋지만 표지와 디자인이 너무 이쁘게 만들어 주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