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먼 인 윈도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평점 :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본 것이 항상 실재 상황이고, 내가 기억하는 것이 항상 진실이라고 언제나 확신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놓이고 이로 인해 몸이 아프거나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압박을 받을 때는 정신이 혼미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보고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땐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잘못 봤나 보다!' '그땐 내가 너무 스트레스가 많아서 왜곡되게 생각했나 보다!'라고 넘길 때가 많다. 심지어 주변 사람까지 그렇게 말할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내가 본 것을 끝까지 믿어야 할까.
[우먼 인 윈도] 속의 여주인공은 흔히 말하는 '광장공포증'을 겪고 있는 '애나'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한때 잘나가는 소아 정신과 의사였지만, 지금은 어떤 사건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문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오직 혼자 집 안에 갇혀서 창문으로만 세상을 내다본다. 남편과 딸아이와도 별거 중이어서 오직 전화로만 대화한다. (사실은 전화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 부분은 나중에 밝혀진다) 하루 종일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고, 오직 니콘 카메라의 망원 렌즈를 통해서 이웃집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유일한 바깥세상과의 통로이다. 때로는 인터넷의 SNS를 통해 이웃들을 들여다본다.(이것 역시 가상 공간이라는 의미나 빼면 창문으로 바깥세상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하루 종일 혼자서 스릴러 고전영화를 보고 의사가 준 여러 가지 약물을 절대로 함께 먹지 말라는 술과 함께 여러 신경안정제들을 먹으며 하루를 보낸다. 극도로 폐쇄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친구가 생긴다. 이웃집에 이사 온 알리스타 러셀과 제인 러셀의 가정을 반듯한 소년인 이선이라는 아이이다. 그녀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그녀의 집에 이사 선물을 전해 주러 왔다가 그녀와 대화를 한다. 이선은 대화 중에 친구들과 떨어져 먼 곳으로 혼자 왔다며 갑자기 외로움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그런 이선에게 잃어버렸던 정신과 의사로 직업의식과 함께 모성애를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 따스하게 대한다. 얼마 후 이선의 어머니인 제인 러셀도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병이 발병한 후 처음으로 타인과 오랜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한다. 그런데 얼마 후 우연히 러셀의 집의 창문을 보다가 제인이 칼에 찔리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녀는 급하게 911에 신고를 하고 제인을 살리기 위해 집 밖으로 뛰어나가지만 광장 공포증으로 인해 순간 정신을 잃게 된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의사와 형사, 그리고 이웃집의 러셀과 아들 이선까지 아무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분명히 칼에 찔린 것을 보았던 제인 러셀이라는 사람은 전혀 다른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녀가 알던 제인 러셀이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인 것으로 판명된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헛것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광장공포증으로 신경 안정제와 여러 가지 약물을 와인과 함께 먹으며 하루 종일 고전 스릴러를 보는 여자가 본 것을 누가 믿겠는가?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이제 그녀도 자신이 본 것을 의심하게 된다.
"락트인 증후군 원인으로는 뇌졸중, 뇌간 상, 다발성경화증, 독극물 등이 있다. 신경학적 증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과적인 증상이다. 하지만 나는 완전히, 말 그대로 감금되어 있다. 문은 잠겼고, 창문은 닫혀 있다. 빛이 무서워서 웅크리고 있는 동안, 공원 건너편에서는 한 여자가 칼에 찔렸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암도 그 사실을 모른다. 나를 제외하고는. 가족과 별거 중인 데다, 술에 절어 세입자와 섹스를 해대는 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아웃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상해 보이겠지. 형사들은 농담하는 줄 안다. 의사는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물리치료사는 나를 그저 가여운 사람으로 여긴다. 갇혀 있는 여자, 영웅도 탐정도 아니다. 나는 갇혀 있다. 세상 밖에." P 338
이 책은 뉴욕타임스에서 40주 동안 베스트셀러로 1위를 한 작품이다. 게리 올드먼과 같은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어서 곧 개봉할 예정이기도 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이유를 알 것 같다. 소설은 현대인의 심리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잔혹한 환경에 의해 상처받고 세상과 사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며 스스로를 가두어 두고 있는 현대인의 심리를 너무 잘 표현하고 있다.
"병원에서는 내가 쇼크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쇼크는 두려움이 되었다. 두려움은 변형되어 공포가 괴었다. 그리고 필딩 박사가 등장할 때쯤, 나는 극심한 광장공포증을 앓고 있었다. 박사는 그렇게 간단하고 효율적인 단어로 내 상태를 표시했다. 나는 이 집이 제공하는 익숙한 경계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는 저 거대한 하늘 아래에서, 외계의 야만의 땅에서 이틀 밤을 보냈기 때문이다." P 456
소설을 읽는 동안 스스로를 가두고, 술과 약물, 그리고 과거의 상처에 의해 스스로 무너져가고 있는 한 여성의 심리를 내밀하게 접하게 된다. 그리고 내 안에도 이렇게 무너져가고 있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마저 잃어버리면 스스로 무너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유명한 철학적인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말한 데카르트 역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실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쩌면 악마가 모든 것을 환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비록 내가 환상을 보고 있더라도, 그것을 보고 생각하는 나란 존재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고,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 자신이 존재하며, 그 존재만큼은 진실이라고 확신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진실이라면 자신이 보고 있는 것도 진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소설을 읽으며 결국 나마저 나를 믿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 봤다.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라고, 그럼에도 내가 나만은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마저 나 자신을 믿지 못힌디면 결국 마지막 기둥마저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아의 붕괴일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끝까지 자신이 본 것을 믿었다. 남들이 계속해서 자신이 본 것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스스로에게도 확신이 없는 순간에도, 그녀는 자기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무너져 가는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다. 그런데 정말 그녀가 본 것이 진실이었을까. 궁금한 사람은 소설을 읽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