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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 ㅣ 클래식 클라우드 8
유성혜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평점 :
노르웨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깊은 골짜기의 피오르와 밤을 밝히는 백야, 그리고 절규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는 뭉크의 작품이다. 아쉽게도 아직 노르웨이를 한 번도 여행하지 못했다. 그래서 노르웨이를 간다면 이 세 가지는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항상 방송을 즐겨 읽고 출간되는 순서대로 꾸준히 읽는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으로 [뭉크]가 발간되었다. 부제는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의 화가]이다. 노르웨이의 자연과 함께 뭉크의 인생이 드라마틱 하게 묘사되어 있다.
뭉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절규]라는 작품이다. 한때 미학에 관심이 있어서 예술사에 대한 책들을 읽었었다. 19세기는 초반에 사실주의가 유행한 후 이에 반대되는 인상주의가 나타나고,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는 뭉크로 대표되는 표현주의가 나타난다. 즐겨 읽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서는 표현주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표현주의 미술에 대해서 사람들이 당황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자연의 형태가 왜곡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결과가 아름다움과는 멀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만화가라면 사람의 추함을 보여주는 것도 당연시될 것이다. 그것이 그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지한 미술가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사물의 외관을 변형시킬 때 그것을 추하게 만들기보다는 이상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혹독한 반발을 살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뭉크는 다음과 같이 반박했을 것이다. 고뇌의 외침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인생의 즐거운 면만 보려는 것은 불성실한 태도라고, 표현주의자들은 인간의 고통, 가난, 폭력, 격정에 대해 아주 예민하게 느꼈기에 미술에서 조화나 아름다움만 고집하는 것은 정직하기를 거부하는 태도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강했다." [서양미술사] 곰브리치, 예경, P 564
그러나 이 책에서는 표현주의나 뭉크의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인 해석보다는 뭉크라는 한 인간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살아온 생애, 그리고 그의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 이 과정에서 그가 어떻게 자신의 불안한 내면을 그림으로 표현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의 예술가의 생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젊은 시절의 스승인 '한스 예게르'이다. 사회주의자이자 기존 문화에 대한 강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던 그는 크리스티아니아 보헤미안이란 모임을 이끌었고, 뭉크 역시 이 그룹에 속해 있었다. 저자는 뭉크가 한스 예게르의 열렬한 추종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비판의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기존 미술에 대항하는 혁신적인 미술을 선보일 수 있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뭉크는 크리스티아나 보헤미나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가는 아니었다. 당시 그는 진보적인 정치사상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입장에서는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예게르가 당시 사회 관습에 정면으로 반하는 파격적 사상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또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무리가 형성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후 화단에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혁신적 예술을 선보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으리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P 35)
뭉크의 여인들 역시 그의 작품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젊은 날의 뭉크는 밀리라는 유부녀와 사랑에 빠진다. 이것은 짧은 기간의 사랑이었지만, 그때의 인상과 감정, 그리고 배신감 등이 이후 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뭉크는 밀리와의 짧고 강렬한 사랑 후 수년 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그녀를 그리워했지만, 밀리의 재혼 소식을 들은 이후에는 오히려 그려를 사랑했던 시간을 증오하게 된다. -중략- 뭉크는 밀리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믿었지만, 밀리가 다른 이와 결혼을 하는 것을 보며 자신이 그녀에게 그저 한때 외도의 상대에 불과했다는 생각에 실망했고 배신감에 견디기 힘들어했다. 이후 뭉크는 밀리가 보란 듯이 성공하고자 했고, 그래서 더 그림에 열중했다. 이후에 뭉크와 밀리의 재회는 두 번 다시없었다. 그러나 뭉크에게 밀리는 일생 동안 가장 사랑하고 갈망했던 여인이었다." (P 42)
뭉크의 작품에서 나오는 여성적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다그니 율'이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여성의 신비로움과 팜파탈의 모티브를 가지고 있었는데, 뭉크는 그녀의 영향을 받아 [마돈나]와 같은 여러 작품을 그렸다.
뭉크와 약혼까지 한 '툴라 라르센'도 뭉크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그녀의 집착으로 인해 뭉크와는 극단적인 결말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녀와의 사랑과 이별이 그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뭉크는 이런 인생에서의 아픔들이 있을 때 주로 노르웨이의 자연들을 접했는데, 저자는 노르웨이의 황량한 자연환경이 고독한 뭉크의 내면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뭉크의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절규에 나오는 배경인 노르웨이의 예케베르그 언덕이 바로 뭉크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뭉크의 노트에는 이런 뭉크의 글이 있다.
"친구 두 명과 함께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해는 지고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핏빛의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나는 우울감에 숨을 내쉬었다. 가슴을 조이는 통증을 느꼈다. 나는 멈춰 섰꼬, 죽을 것 같이 피곤해서 나무 울타리에 기대고 말핬다. 검푸른 피오르와 도시 위로 핏빛 화염이 놓여 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가고 있었고, 나는 흥분에 떨면서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을 관통해서 들려오는 거대하고 끝없는 비명을 느꼈다." (P 57)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은 정신 활동은 심리적 에너지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경우 그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넘쳐 날 때가 있다고 한다. 그것을 심적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한다. 이런 넘쳐나는 심리적 에너지를 예술이나 학문 등으로 표출해 내면 그는 위대한 예술가나 학자가 된다. 반면 그 넘쳐 나는 에너지를 방출하지 못하면 그는 미치게 된다고 말한다.
위대한 예술가란 뛰어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내면의 아픔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아픔을 그림이나 글로 표현해 낸 사람이 위대한 예술가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아픔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에게는 크나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예술가의 작품만 보고 그 작품의 위대성을 논하지만, 그 작품에는 예술가의 고통이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뭉크, 노르웨이에서 만난 절규라는 책을 읽으며 그동안 작품으로만 접하던 뭉크라는 한 인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일생에서 겪었던 아픔까지도. 결국 [절규]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바로 이 아픔에서 표현된 것이다. 그렇다면 뭉크가 겪었던 그 아픔과 고통들은 축복이었을까, 저주였을까. 뭉크는 외롭지만 80살까지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