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시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조호근 옮김 / 비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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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버지란 존재는 어떤 존재일까. 나이가 들수록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따스한 분은 아니셨다. 그래도 내게는 큰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분이셨다.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뒤엉켜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런 감정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진다. 어쩌면 세상을 인식해 가는 과정이, 사람과 관계 맺는 과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남편과 아내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더 나아가 세상에서 있는 자와 없는 자와의 관계, 백인과 흑인의 관계들이 하나의 단어나 감정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관계들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고 나면, 다른 모든 감정들은 사라지고 단순해진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이 단순해지면 자기중심적이 되고 타인에 대해 폭력적이 된다. 이것이 바로 현대 사회의 문제가 아닐까? 계급 갈등, 지역 갈등, 가족 간의 갈등이 이렇게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어려운 것은 이런 다양한 관계와 감정을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인간사의 감정을 아주 묘한 필치와 세련된 감각으로 표현해 내는 작가가 있다. SF 작가로는 드물게 흑인이며, 또한 여성인 옥타비아 버틀러라는 작가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비채의 모던 앤 클래식 시리즈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 세계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세계문학 전집을 읽고 있다. 그중 계속 소장하면서 읽고 있는 시리즈가 비채 출판사의 모던 앤 클래식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한국에는 잘 소개되지 않지만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실력을 인정받은 해외의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옥타비아 버틀러이다. 이미 단편집인 [블러드 차일드]와 장편소설인 [킨]이 출간되었고, 얼마 전 [와이들 시드]가 출간되었다. 항상 그렇듯 옥타비아 버틀러의 세계관은 환상적이면서도 묘하다. 어떻게 보면 뒤틀려 있는 듯한 괴상한 세계와 그 세계 속의 관계들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필립 K, 딕과 어느 부분에서는 닮아 있는 부분이 있다.

 

[와이들 시드]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중 유일하게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 속의 '도로'라는 존재는 타인의 육체를 바꾸어가며 4천 년간 생명을 이어가는 불사의 존재이다. 도로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자손들을 퍼뜨렸고, 이제 이 자손들을 미국과 유럽으로 이주시키면 새로운 종족을 만들고 있다. 그의 목적으로 오로지 자손들의 번식을 통해 강한 능력을 가진 자녀들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런 도로가 어떤 강한 힘에 이끌려 오지의 부족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300년 동안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야낭우라는 늙은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불사의 몸과 자신과 타인에 대한 치유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이나 동물로 육체를 바꾸는 능력을 가졌지만, 그 능력을 숨긴 채 자신의 부족 속에서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늙어 가는 육신은 타인을 속이는 방법이었고, 실제로 그녀는 20살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감추고 있었다. 도로는 이런 야낭우의 능력을 꿰뚫어 본다. 야낭우 역시 도로가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막강한 힘을 느낀다. 도로는 야낭우에게 자신을 따라오고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강요하고, 그녀는 도로의 거대한 힘의 존재를 느끼면서도 그에게 저항해 본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그쪽으로 빠지는군, 나는 여기에 만족하며 살고 있어, 도로. 명령하는 남편은 이미 열 명이나 겪어봤어. 당신을 열한 번째 남편으로 맞이할 이유가 있을까? 거절하면 나를 죽일 거라서? 당신 고향에서는 남자가 그런 식으로 아내를 맞이하나? 죽이겠따고 협박해서? 글쎄, 어쩌면 당신이 나를 죽일 수 없을지도 모르지. 어디 한번 확인해볼까?" (P 48)

 

그럼에도 야낭우는 도로가 사신의 자손들을 죽인다는 협박과 자신에게 죽지 않는 아들을 낳아준다는 유혹에 빠져 그를 따라나선다. 모든 사람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는 도로이지만 야낭우의 야생성을 다루기에는 버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그랬듯이 도로는 야낭우를 자신에게 복종시키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일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것이 도로에게는 오히려 두려움이 된다. 야낭우를 복종시키거나 죽여야 하는 존재로 대하는 것이.

 

"그녀는 돌아서서 도로보다 앞서 걷기 시작했다. 도로는 뒤따르며 최대한 빨리 아이를 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반항하지도 못할 테고, 독립심은 사라질 것이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의 명령을 따를 것이다. 죽이기에는 너무 귀중한 존재이지만 후손을 납치했다가는 분명히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보 하는 갓난아기와 함께 아메리카 대륙에 격리되어 있으면 결국 복종하는 법을 알게 될 것이다." (P 62)

 

도로와 야낭우는 함께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하고, 바다에 이르러 도로에게 속해있는 노예선을 타고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이주한다. 도로가 자신의 자손을 퍼뜨리는 한마을에 정착을 한다. 도로는 그곳에서 야낭우를 자신의 아들인 아이작과 결혼을 시킨다. 그러나 아이작은 도로의 아들로 신비한 능력은 있지만, 도로와 야낭우처럼 불사의 존재는 아니다. 결국 아이작은 죽고, 도로와 야낭우는 다시 만난다. 야낭우는 도로의 잔인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라져 가는 인간성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기에 도로 역시 야낭우가 절실하다. 둘에게는 세월의 시간만큼의 적대감이 있지만, 또한 둘은 서로의 존재를 용납하고 대등한 존재가 되기로 한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는 전혀 접해 보지 못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SF 소설이라고 정의하기도 힘들고, 판타지 소설이라고도 정의하기도 힘들다. 이 소설은 살육과 지배욕의 화신인 도로라는 존재와 생명과 치유의 존재인 야낭우라는 존재의 관계를 통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그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말하기 힘들다.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 백인과 흑인과의 관계,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 등 여러 가지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적대적인 관계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이다. 증오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옥타비아 버틀러의 또 다른 단편소설인 [블러드 차일드]라는 소설을 떠올렸다. 이 소설에서는 인간이 외계종에게 지배를 당한다. 외계종은 인간 아이를 양육하고 키우고 사랑을 베푼다. 그러나 결국에는 자신의 종족의 번식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그럼에도 그 외계종과 인간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도 아닌, 증오의 관계도 아닌 묘한 관계를 이룬다. 마치 도로와 야낭우처럼.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옥타비아 버틀러라는 작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미국사회에서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또한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녀가 속했던 세상은 그녀에게 어떤 세상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세상을 마치 암호문처럼 자신의 소설에 특별난 존재와 특이한 관계 속에서 펼쳐 놓치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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