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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랜드
신정순 지음 / 비채 / 2017년 7월
평점 :
한때 미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땅이었다. 어떻게든 미국만 가면 삶이 순식간에 바뀐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고생하더라도 학위만 따오면 각 분야에서 모셔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꿈으로만 생각하던 미국의 삶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무조건 학위를 위해 유학을 가거나,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시민권자가 되기 위해서 몸부림치다가 수렁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드림랜드]라는 책은 오랜 미국 이민생활을 한 작가가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연관하여 쓴 이민자의 아픈 삶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총 5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모두 미국 생활의 애완을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다.
첫 번째 [드림랜드]라는 소설은 학위를 얻기 위해 미국에 유학 온 부부의 삶을 다루고 있다. 남편은 한국에서 수재로 인정을 받았지만, 막상 미국에서는 일을 풀리지 않아 학위를 따지를 못하고 막노동을 전전한다. 어느 순간 남편은 폭력적으로 변하고, 딸아이를 폭행한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대신해 감옥생활을 한다. 그 후 그녀는 드림랜드라는 흑인 거주 지역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며 자신이 드림랜드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는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또래들 사이에 드림랜드라고 불리던 자그마한 놀이공원이 있었다. 아이들은 주말이면 아빠 엄마 손을 잡고 그곳에 모여들곤 했다. 나는 혼자 느리게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케이블카와 사선을 그리며 빠르게 달리는 롤러코스터가 대조를 이루는 모습을 담 너머로 지켜보곤 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꿈나라처럼 보였다. 쉴 새 없이 바쁘고 가난했던 엄마는 나를 딱 두 번 그곳에 데리고 간 적이 있다. 한 번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일찍 돌아왔고 다른 한 번은 고사 중이라 문을 열지 않아 돌아와야 했다. 내가 대학 시절 혼자 그곳을 찾아갔을 때 이미 그곳은 폐쇄되었고, 놀이기구들은 녹슨 고철더미로 변해 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스쳤다. 나는 남들이 흔히 꿈꾸는 드림랜드에 들어갈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 아닐까, 드림랜드는 오직 선택받은 사람들만 입장이 허락되는 그런 곳이 아닐까." (P 13)
두 번째 소설 폭우는 한 이미자 여성이 유학 온 남성을 만나 헌신적으로 뒷바라지를 했지만, 버림을 받고 멕시코 남성과 사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산체스라는 멕시코 남성의 어머니 역시 한국 여성이었다. 소설은 먼 타국 땅에서의 불행이 덮친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다. 특히 산체스가 사고로 입원한 병원에서의 주변 환경의 묘사는 여성의 상황을 너무나 잘 묘사한다.
"문득 대기실 구석에서 히터가 쉬익쉬익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형체를 드러내지 않고ㅗ 몰래 숨어 남을 엿보는 짐승의 숨소리 같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로 공기청정기와 필라멘트로 빛을 흘러 보내는 전등, 평소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조용한 것들이 우우우, 즈즈즈,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그동안 얼마나 우리 삶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는지 알려주기 위해 소동을 벌이는 것처럼" (P 62)
세 번째 [선택]이란 소설은 가장 가슴 아프게 읽은 소설이다. 읽고 나서도 그 먹먹함이 떠나지 않았다.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한 한 여성이 미국 이민자와 결혼해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한 여성이 미국으로 떠난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었던 과정을 너무나도 담담한 필치로 가슴 아프게 그려내고 있다.
네 번째 [살아나는 박제]는 무척 종교적인 소설이었다. 저자는 이 소설을 제일 먼저 쓴 소설이라고 하는데, 마치 모든 소설에서 불행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 종교적인 해석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섯 번째 [나호바의 노래]는 한국 이민자의 쓸쓸한 삶을 미국 인디어의 삶과 겹쳐셔 그리고 있는 소설이었다.
다섯 개 소설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민자의 삶과 그 삶을 따라다니는 불행일 것이다. 첫 번째 소설 [드림랜드]에서 주인공이 감옥에서 같은 한국인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한때 한국에서 잘 나가는 모델이었지만, 미국인 남편과 결혼해서 이민 온 후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죽이고 감옥에 왔었다. 그녀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 와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이 사람이 특별히 나빠서가 아니라 불행에 발목을 잡혔을 뿐이다. 뭐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왜, 발목을 잡는 덫이란 게 있잖아요.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해지지 않는 그런 운명 같은 거요. 여기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운명의 덫에 걸려 여기 온 것 같아요. 안 그래요?" (P 40)
저자는 화려해 보이는 소수의 이민자들 삶 속에 가려져 있는 덫에 발목이 잡힌 대다수의 이민자의 애완을 그리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전부 불행이나 어둠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끝에는 불행 속에서도 마지막 희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그들의 몸부림이 느껴진다. 비록 소설이지만 읽는 내내 이들의 삶을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