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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패망사 - 태평양전쟁 1936~1945 걸작 논픽션 17
존 톨랜드 지음, 박병화.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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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가 자기보다 훨씬 키가 크고 덩치도 있는 상대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무작정 주먹을 날린다. 그 대가로 망신창이가 되도록 두드려 맞지만,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그는 계속해서 상대를 향해 달려든다. 상대는 차츰 그 상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눈빛에서 공포까지 느낀다. 그럼에도 상대는 그를 꺽어 놓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을 향해 무모하게 돌진했던 일본과 그 일본을 응징해야 했던 미국의 상황이 아닐까?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으로 돌진했을 때 과연 일본은 스스로도 미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일본제국 패망사]라는 책은 열자마자 그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일본의 광기를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번역되기 전부터 [THE RISING SUN]이란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태평양 전쟁에 관심이 있어서 오래전부터 이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이번에 번역이 되어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분량과 막대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구입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끓어오르는 기점이 되는 1936년부터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까지의 기록을 다루고 있다. 페이지만 무려 1400페이지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첫 장을 열자마자 그 안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일본은 잔혹한 군국주의의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책장을 열고 처음 접하는 사진들은 태평양 전쟁의 잔혹한 사진들과 일본의 광기 어린 군국주의의 사진들이다. 그리고 바로 일본의 군국주의가 폭주하는 1936년의 상황으로 전개된다.

 

일본의 태평양전쟁의 과정은 다큐멘터리나 책을 통해 여러 번 접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태평양 전쟁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물론 저자인 '존 톨런드'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무모한 팽창주의를 지적하면서도 시종 일본에 우호적인 필치로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는 일본이 왜 그렇게 무모한 전쟁으로 폭주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매우 세밀하고 깊이 있게 접근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서양인은 도조 장군과 일본 지도자들이 히틀러나 그의 군대보다 더 나을 것이 없으며 마땅히 무슨 벌이든 받고 불행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뒤 일본은 정신적, 경제적으로 완전히 망가진 재난에서 벗어나 세계 국가들 사이에서 다시 존중받는 지위를 회복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전쟁 중에 번번이 야만족처럼 행동한 나라와 그 국민을 우리가 어떻게 존중하고 칭찬하게 되었단 말인가? 대체로 일본인의 시각으로 본 이 책은 그런 의문과 함께 아시아의 지형을 바꿔놓은 전쟁을 둘러싼 물음들에 대한 필자의 답변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나라가 무엇 때문에 진주만을 공격했고 열 배는 더 강한 적과 죽기 살리고 싸우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행동을 했단 말인가?" (P 37)

 

이 책의 1936년의 황도파로 불리는 육군의 젊은 장교들의 반란 사건(2.26사건, 또는 쇼와 유신이라고 부르기도 함)으로 시작한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점령하고 만주국을 세운 후, 나름 아시아의 강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유럽 열강들처럼 국제공항으로 인한 서민층들의 가난과 자원의 빈곤으로 인해 허덕이고 있었다. 이와 함께 소련과 중국 공산당의 남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육군 장교들을 중심으로 부폐한 관리를을 암살하고, 군인 중심의 군국주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은 며칠 만에 무산되었지만, 이 사건 이후 일본의 핵심 권력은 대부분 육군 장교들에게 주어지고, 일본 안에는 군국주의적 야망이 자라나게 된다. 그리고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알려진 베이징 근교의 일본군과 중국군의 충돌로 인해 중일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일본이 중일전쟁을 진행하는 과정을 보면 겉으로는 아시아를 서구의 열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아시아 전체가 다 잘 살게 한다는 대동아 정책을 주장하며,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이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난징학살같이 30만 명을 학살하고 강간하는 무자비한 폭력성이 존재한다. 아마 이것이 일본을 본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건일 것이다. 일본의 지도부는 중일전쟁의 과정에서 적당한 선에서 중국정부와 전쟁에서 타협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쟁의 맛을 본 일선 군인들은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질 정도로 폭주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안정을 위협하는 두 가지 맹독 - 게코쿠조와 기회주의-이 다시 나타났다. 중국에서 또 한 번의 큰 승리 소식이 전해지자 육군대신 스기야마가 협상의 문턱을 높여버렸다. 그런 다음 중국 북부 주둔군 사령관이 예기치 않게 고노에와 참모본부의 특별 명령을 거스르고 베이징에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는 일이 벌어졌다. - 중략- 장제스가 진정으로 협상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고노에는 평화를 위한 지름길을 택하고 '일본의 이상을 공유하는' 중국인들과 거래하기로 결심했다. 1938년 1월 16일 그는 '제국 정부는 중국 국민당 정부와의 협상을 중단할 것이며 협력을 원하는 새로운 중국 정권의 출범과 성장에 의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P 120)

 

그러나 폭주를 막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중일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일본은 중국에서의 철수를 결심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고, 히틀러에 의해 영국과 프랑스가 무력화된다. 그러자 일본은 중국에서 철수하기는커녕 중국을 넘어 동남아 지역까지 욕심을 낸다. 저자는 이것을 일본의 기회주의라고 부르고, 이 작전을 '버스를 놓치지 마' 정책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의 전쟁이 1940년까지 질질 끌자, 일본 참모본부는 그해 안에 완전히 승리하지 못하면, 병력을 차츰 철수시키고 중국 북부에 공산주의를 막을 방어부대만 남겨놓기로 비밀리 결정했다. - 중략 - 히틀러의 손쉬운 승리에 도취된 일본군 지도부는 생각을 바꿔 '버스를 놓치지 말자!'라는 구호를 채택했다. 프랑스가 패배하고 영국이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상황에서 석유 및 기타 절박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진격할 때가 다가왔다. - 중략-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갔다. 한때, 중국에서 물러나는 것을 감수했던 일본군은 유럽에서 히틀러가 얻은 갑작스러운 행운에 유혹을 받고 동남아시아의 자원으로 눈길을 돌렸다." (P 132)

 

물론 이렇게 파국으로 폭주하는 일본에 대한 견제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집단 광기 앞에서 이성적인 목소리는 쉽게 묻혀 버렸다.

 

"버스를 놓치지 마! 정책을 입안한 군국주의자들은 전쟁을 원하지도 않았고 예견하지도 못했다. 프랑스가 패배하고 영국이 자체의 생존을 위해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서 일본에게 인도차이나는 고무와 주석, 텅스텐, 석탄, 쌀 등의 자원이 넘치는 '길바닥에 놓인 채 누군가가 주워가기만을 기다리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 중략- 이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마쓰오카의 반발이 있었다. 또 대본영에서 생각이 더 깊은 사람들은 앵글로색슨 국가와 알력을 빚을 것을 예건 하기도 했다. 이 일로 육군 참모총장인 간인노미야 고토히토 친황은 눈물을 흘리며 사직했다." (P 136)

 

이런 과정은 진주만 공습까지 그대로 반복되며 이어진다. 군국주의 집단들이 ABCD국가(미국, 영국, 중국, 네덜란드)와 전쟁을 통해 태평양으로의 영토를 확대하려고 하고, 미래를 보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은 이에 제동을 걸려한다. 그러나 한 번 폭주한 군국주의자들은 결국 6척의 항공모함에 300대가 넘는 전투기를 싣고 진주만을 폭격한다. 이 과정에서 도조 총리대신이나 야마모토 함장 같은 군구주의자들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폭주하게 되고, 결국 일본을 나락에 떨어뜨리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일본의 군국주의의 폭주를 근원을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하극상이라고 부르는 게코쿠조이다. 젊은 육군장교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서 (할복의 형태로 자주 나타남) 폭주하고, 지도부나 정치인들은 마지못해 동조하는 과정이다. 흔히 말하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폭주하는 기관차에 올라타는 형식이다. 아마 지금의 일본인의 정서의 대부분에도 이런 분위기가 팽배할 것이다. 아베 총리가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동조하며 따라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기회주의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일본의 탐욕이다. 겉으로는 양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기회만 되면 승냥이처럼 먹이를 향해 달려든다. 심지어는 그 먹이가 당장은 맛이어 보이지만, 독이 될 것이 분명해도 무조건 달려든다. 당장의 탐욕을 막을 집단적 이성이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만주사변, 중일전쟁, 동남아 침략, 진주만 공습 등으로 일본 군국주의가 폭주한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겉으로는 매우 공손하게 보이지만, 조금의 허점만 보이면 승냥이처럼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태평양 전쟁의 원인과 과정을 깊이있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매우 중요한 책이지만, 동시에 일본이라는 나라 속에 감추어진 본성을 이해하게 하는데 매우 귀중한 책이다. 전체적인 책의 분위기에서 저자는 미국적인 시각에서 일본에 대해 친근감을 가지고  쓰고 있다. 아마 일본의 진짜 적은 미국이 아니고 소련이었고, 미국이 조금만 더 양보했으면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대신 일본이 소련을 견제했을 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저자의 시각은 현대 미국이 일본에 가지고 있는 시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만 대상이 소련에서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그럼에도 저자는 나름 일본의 행동 근본에 있는 그들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많은 자료와 그들의 문화를 통해 왜 그들이 그렇게 무모한 결정을 내렸는지를 깊이 있게 접근을 한다. 이것이 현대 일본을 이해하는데 너무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일 갈등이 극에 다다르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가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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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사략 - 하 십팔사략 2
증선지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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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에 연예인들로 인한 사건들이 많다. 마약과 성 추문, 잘못된 발언과 행동 등으로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한순간 사라지는 연예인들이 많다. 그 자리까기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그러나 한순간의 성공에 취해서 모든 것을 물거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단순 연예인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한 번 성공을 하면 자신의 어려웠던 과거를 잊는다. 그래서 교만해지고,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디선가 큰일이 터지고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된다. 이것은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증선자에 의해 중국에서 전설로 알려진 삼황오제 때부터 송나라의 멸망까지 중국 역사를 집대성한 [십팔사력]을 읽다 보면 역사에서도 매번 이런 일이 반복된다. 왕조의 타락과 간신들의 득세로 중국 대륙이 혼란에 빠진다. 그러면 각 지역의 군웅이 할거하고, 이민족들이 침략해 오는 난세가 된다. 그 과정에서 한 영웅이 나오고 힘겨운 과정을 통해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대륙을 통일한다. 그러나 황제 자리에 오른 보인이나 후대에 이르러 왕조는 향락에 빠지고, 간신들에게 휘둘리기 된다. 그렇게 왕조의 타락이 이어지고 다시금 난세가 반복된다. 이것이 십팔사략을 통해 몇 천 년을 이어오는 중국 역사의 흐름이다. 특히 십팔사략의 하권의 마지막은 송나라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이 책의 저자인 증선지가 직접 경험한 시대여서인지 몰락하는 모습이 더욱 비참하다.

 

[십팔사략]의 하권은 위진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수나라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위진 남북조시대는 진나라의 혼란을 틈타 5개의 북방민족이 침략해서 북쪽에 16국의 나라를 세우고, 진나라는 남하에서 동진을 세운 시대를 가리킨다. 위진 남북조 시대의 북쪽의 혼란은 북위에 의해 어느 정도 정리된다. 북위는 선비족의 한갈래인 탈발 선비족이 세운 나라이다. 역자는 탁발 선비족인 선비족의 갈래에서 나왔다기 보다, 따로 성장하다가 후에 선비족과 합쳐진 것으로 본다. 그 탁발 선비족이 중국의 혼란 시기에 남하하여 북위를 세웠다. 여러 이민족들이 그렇듯 북위도 후에 한족 동화 정책을 쓰고, 그로 인해 원래 북위 출신인 귀족들이 반발을 하여 난을 일으킨다. 이런 혼란 속에서 북위가 동위(후에 북제)와 북위(후에 북주)로 갈라지고 북주에서 왕권을 차지한 사람이 바로 후에 수문제로 불리는 양견이다. 그리고 양견의 아들이 바로 10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략한 것으로 알려진 수양제이다. 양견은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수나라를 세운다.

 

어렵게 나라를 세우고 대륙을 통일했지만 수양제와 수문제의 통치는 위 진 남북조시대의 혼란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대규모 군역을 일으키고, 수많은 인원을 동원해 전쟁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전왕조의 핏줄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것처럼 자신도 죽고 자신이 핏줄들도 죽는다.

 

"당시 양견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자 이내 사람을 보내 9세의 어린 외손자 우문연을 목 졸라 죽이게 했다. 그리고는 짐짓 조정에서 그를 위해 초상을 알기고 집행하는 거애를 행했다. 수문제 양견은 5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이들 모두 제 명에 살지 못했다. -중략- 장자 양용은 훗날 폐위돼 사사됐다. 차자인 수양제 양광도 신하에 의해 목이 달아났다. 3남인 진왕 양준은 요절했다. 4남 월왕 양수는 폐위돼 금고에 처해졌다가 수양제 양광이 시해를 당하는 이른바 강도지변이 일어났을 대 죽임을 당했다. 5남 한 왕 양량은 모반을 꾀하다가 주살됐다. -중략- 수양제 양광의 세 아들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한 명은 요절하고, 나머지 두 아들은 강도지변 때 주살되었다." (P 24)

 

당나라 역시 수나라의 왕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수나라 말엽이 되자 다시 혼란이 이어지고, 각처에서 군웅이 활거한다. 이런 혼란 상황을 정리한 사람이 당고조이 이연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당고조 이연을 움직인 사람은 후에 당태종이 되는 이세민이다. 마치 조선 개국의 이성계와 이방원의 관계와 비슷하기도 하다. 오랜 시기 동안 수많은 전쟁을 통해 겨우 당나라를 안정 시키지만 당태종 역시 어리석은 야망을 버리지 못하고 고구려와 기나긴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아들 당 고종 이치에 이르러서는 유명한 측천무후가 등장한다. 원래의 이치의 첩이었던 무측천은 후에 실권을 잡고 왕족을 진멸한다. 또다시 혼란의 시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 후 당나라의 역사도 혼란과 수습의 반복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안사의 난이나 황소의 난을 통해 혼란이 극에 이르고 결국에는 나라가 멸망한다. 황소의 난에 대한 기록은 마치 좀비 영화나 종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끔찍한 기록들이 이어진다.

 

"이 소식을 들은 황소가 대로한 나머지 곧바로 진주에 대한 총공격을 내렸다. 그는 진주성 북쪽에 영채를 차린 뒤 행궁과 관사를 짓는 등 장기전에 대비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식량을 구할 길 없자 백성이 눈에 띄는 대로 잡아와 산 채로 큰 맷돌에 갈고 절구에 빻은 후 뼈가 붙어 있는 고깃덩이를 그대로 불에 구워 먹었다. 하루에 수천 명이 불에 구워졌다. 그곳이 용마채로 불린 이유다. 사람을 절구에 빻고 맷돌로 갈아먹은 성채라는 뜻이다." (P 191)

 

앞서 수나라와 당나라가 왕조의 타락으로 멸망을 했다면, 송나라는 외부의 칩입에 의해 멸망한 경우이다. 송나라는 계속해서 거락족이 세운 요나라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시달렸고, 이방민족으로 멸시하는 그들에게 금은과 비단 등을 주면서 겨우 연명했다. 결국은 금나라에게 북쪽 지역을 내주고 남쪽으로 내려가 남송을 세운다. 이것을 정강지변이라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실상 북송의 마지막 황제 격인 송취종이 얼마나 무기력했는지를 묘사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임진왜란 때 선조의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도교에 심취한 송휘종은 육갑병법으로 소문난 사기꾼 도사 관경의 말만 믿고 도성의 방위를 맡겼다. 관경은 생년월일이 간지에 맞는 7.777명의 군사를 뽑아 육갑신병으로 칭한 뒤 길일을 택해 전투를 치러야 한다며 금나라 군사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렸다. 이내 금나라 군사가 도착하자 육갑신병들과 함께 성문을 활짝 열고 맞서 싸우는 황당한 모습을 보였다. 송나라 군사가 참패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송휘종 조길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장남인 송흠종 조항에게 보위를 양보한 뒤 재빨리 남쪽으로 달아났다." (P 446-7)

 

하권의 마지막은 송나라가 원나라에게 멸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저자인 증선자가 송나라 사람이어서인지 송나라의 마지막은 애절하다 못해 절박하다.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송나라의 마지막 황제 송제병과 함께 몰살한 송나라의 관원들과 군인들의 최후가 처절하게 그려진다.

 

"육수부는 송제 병이 탄 배인 제주를 탈주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제주는 규모가 크고 여러 배들이 주위에 매여 있는 환결로 인해 도무지 빠져나올 길이 없었다. 이에 먼저 자신의 처자를 몰아 바다에 뛰어들게 한 뒤 자신도 어린 송제 병을 업고 바다에 빠졌다. 송제 병이 붕어하자 후궁과 제신 가운데 함께 따라 죽은 종사자가 매우 많았다. 7일이 지난 뒤 바다 위에 떠오른 시신이 모두 10여만 명에 달했다." (P 615)

 

십팔사략 상하권을 읽으며 중국의 방대한 역사에 압도가 되었다. 그러나 계속 읽어가면서 느낀 결론은 방대한 역사 속에서 이민족의 침입으로 세워진 나라도 많고, 나라가 세워지고 망하기를 반복하며 극한 혼란 상황도 반복되었다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황제나 지도자들이 조금만 지혜로웠다면 막을 수 있는 혼란도 많았다. 역사를 통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다면, 인생에서도 역사의 혼란 같은 상황을 조금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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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사략 - 상 십팔사략 1
증선지 지음, 신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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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자연 풍경을 보며 그 거대함에 압도되어 잠시 넋을 잊을 때가 있다. 중국 역사가 그렇다. 방대한 영토와 그 영토 속에서 세워졌다 사라지는 수많은 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보면 그 거대함에 압도되어 할 말을 잊을 때가 있다. 이런 중국 역사는 여러 권의 책들로 출간되어 부분적으로나마 우리가 접하게 된다. 삼국지나 초한지, 또는 열국지 같은 인기 있는 시대의 작품들이 많이 번역되어 읽힌다. 그러나 정작 중국 역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책은 드물다. [십팔사략]은 바로 방대한 중국 역사를 한 권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십팔사략]은 송나라 말엽과 원나라 초에 살았던 증선지(曾先之)가 원나라 관리가 되기를 거부하고 칩거하면서 지은 역사서이다. 중국에서 전설로 알려져 있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시대부터 시작해서 자신이 살았던 송나라와 원나라 초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사마광의 [자치통감]과 함께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많이 읽혔던 책이다. 아쉽게도 [자치통감]이 잘 알려진 반면 [십팔사략]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인간사랑에서 원문을 번역하고 그곳에 해석까지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1,2권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합치면 1400페이지 정도가 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그러나 단순히 페이지를 넘어서 그 속에 방대한 중국 역사가 담겨 있다.

 

[십팔사략] 1권은 삼황오제로부터 시작해서 은, 주나라,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의 통일과 혼란시기를 거쳐 서한과 동한, 삼국시대와 위 진 남북조시대를 다루고 있다. 2권에 비해서 더 혼란했던 중국의 역사를 다루며 보설(補說)이라는 형식을 통해 십팔사략에 대한 저자의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고 있다.

 

먼저 제일 먼저 주목되는 것은 삼황오제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삼황오제는 원래 중국의 민간설화로 이어지다가 사마천의 [사기] 때부터 역사로 편입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최근에 중국 신화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는데, 삼황오제와 관련된 전설들이 많이 있다. 반고와 여와에 의한 창조설화와 관련되어 복희씨의 언급이 많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해 해설을 통해 중국 역사에서 삼황오제가 역사로 편입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놓는다.

 

"원래 황제가 역사의 무대 중앙에 등장한 것은 전국시대 이후다. 황제 신화 및 숭배가 전국시대 중기와 후기로 갈수록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그 내용도 훨씬 풍부해지고 다양해졌다. 전국시대 후반기에 들어와 천하통일에 대한 염원이 높아지면서 황제에게 패한 뒤 전신(戰神)으로 숭앙된 치우는 살벌한 전쟁을 상징한데 반해 황제는 통일을 상징하는 신으로 받아들여진 결과이다." (P 58)

 

원나라의 침략으로 인해 한족의 역사가 끊어질 위기에 있다고 생각한 증선지와 같은 사람에들에게 삼황오제의 신화가 역사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 김부식의 삼국사기의 허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한다.

 

"신화학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신화와 전설은 나름대로 선사시대 조상들의 사고와 생활양식을 구전으로 기록한 것이다. 그는 [삼국사기]를 편수하면서 사마천의 [사기]를 전범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단군신화와 발해사 등응을 삭제한 김부식의 소행은 사마천이 삼황오제와 같은 신화를 왜 역사 속으로 끌어들였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한 결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김부식이 신채호로부터 통렬한 비판을 당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P 63)

 

두 번째로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중국을 통일한 진(秦)나라이다.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했던 이유는 잘 알려진 것처럼 법가 사상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진나라가 처음 법가 사상을 받아들인 것을 진효공이라는 사람이 위나라 출신 공손앙을 받아들이면서부터라고 한다. 공손왕은 진효공에게 나라를 통치하는 도가의 무위지치(無爲之治)와 유가의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데 진효공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법가의 법치(法治)와 병각의 역치(力治)를 이야기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진효공이 반응을 보였다. 십팔사략에서는 공손왕이 진효공에게 말한 법치주의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백성을 10가구 내지 5가구 단위로 묶은 십오의 제도로 묶고, 사로 감시하며 책임을 지는 연좌제를 실시한다. 간사한 자를 고발하지 않은 자는 허리를 끊는 요참에 처한다. 고발한 자에게는 적을 벤 것과 동일한 상을 내리고, 은닉한 자는 적에게 항복한 것과 같은 벌을 내린다. 싸움에 공을 세운 군공자는 각각 그 공에 따라 작위를 받고, 사사로이 다투는 사투자는 각각 그 경중에 따라 형벌에 처한다. 남녀노소가 힘을 다하는 육력으로 본업인 농사와 길쌈인 경직에 열심히 일하며 곡식이나 포백 즉 속백을 많이 생산하는 자는 그 자식의 부역을 면제해 주는 복신을 허용한다. 상공업 등의 말업에 종사하며 고리 등의 말리에 취하는 자와 태만하여 가난한 자는 처자까지 모두 잡아들여 관노로 삼는 수노의 조치를 위할 것이다." (P 190)

 

이렇게 진나라가 엄격하다 못해 잔인한 공포정치를 펼치자 진나라가 부강해졌다. 그리고 진시황에 의해 진나로 천하통일이 될 때까지 이 엄격한 공포정치가 이어진다. 이런 통치는 중국 역사의 곳곳에 드러나고, 한국에서도 역적으로 몰리면 삼족을 멸하거나 사지를 절단하는 극형들이 이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우리에게는 [중국 미학 입문]이라는 책으로 알려지 이택후(리쩌허후)는 중국의 사회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중국의 사상들이 사회주의라는 얼굴을 쓰고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주의 안에는 중국식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십팔사략을 통해 법치주의가 진나라 시대 이후부터 여러 시대에 걸쳐 얼굴을 바꾸면서 드러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진나라 이후의 혼란을 통일하고 유가정책을 편 한나라 시대에도 여전히 잔인한 공포정치가 보이는 곳이 많다. 현대에도 중국에서 체육관에서 흉악범들을 공개처형 시키는 등의 공포정치를 펴는 것은 아마 이런 영향이 있다고 생각된다. 법에 의한 강력한 공포정치는 단기간에 쉽게 효과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반드시 그 피해가 있다. 법치를 세운 공손왕도 자신이 만든 법치로 인해 죽었으며, 진시왕과 그 자손 역시 그 쓰디쓴 열매를 먹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관심을 가진 부분은 서한과 동한으로 나누어지는 시기이다. 우리가 흔히 한나라로 알고 있는 유방이 세운 한나라는 정확히는 서한과 동한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 왕망이 세운 15년간 존속했던 신나라가 있다. 보통 중국 역사에서 신나라는 역적 왕망이 한 왕조를 찬탈해서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십팔사략에서는 왕망을 그렇게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후에 그의 무리한 개혁이 신나라의 멸망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부분이 그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의 전부일뿐이다.

 

또 역자 해설에서 역시 왕망에 대한 평가가 매우 긍정적이다. 그는 서한의 멸망은 왕망에 의해서가 아니라, 서한의 혼란 상황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동양의 로마제국이라 불리는 한나라는 전한과 후한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전한과 후한의 사이에 존속기간 15년의 신나라가 있다. 신나라는 국가 취급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왕망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부정적인 탓이다. 신나라의 역사는 중국 정사에 포함돼 있지 않다. 반고의 [한서] 왕망전에서 왕망을 역적으로 분류해 놓았다. 반고가 그를 '왕망' 내지 '망'으로 일관되게 부르고 있는 게 그렇다. 최근의 논저들도 그를 두고 기만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찬탈한 간신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사서에도 왕망이 관직에 들어선 후 신나라 황제가 되기까지 31년의 긴 세월 동안 누군가 왕망을 반대했다는 기록이 전혀 나오고 있지 않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나라의 패망은 건국 이후의 문제점들로 인한 것임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설령 왕망이 아닐지라도 민란이 일어나 왕조가 뒤집힐 상황이었다. 탈법과 부정비리가 판을 치던 상황에서 그는 뇌물을 탐하지 않았고, 자신의 재산을 매번 부하들과 빈민에게 나눠주었고, 녹봉과 하사받은 상 등도 구제활동에 쏟아부었다. 개인생활 또한 청렴결백했다. 그는 결코 앞에서 푸성귀를 먹으면서 뒤에서 고기를 먹는 이중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P 437)

 

그러나 가장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한 부분은 왕망과 신나라의 멸망에 대한 저자의 평가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십팔사략 원문 자체보다 역자의 해석에서 날카로운 부분들이 더 눈에 띄는데, 특히 왕망의 부분이 그렇다. 왕망이 개혁에 실패하고 신나라가 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는데, 마치 칼에 배이듯이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리고 이런 지적은 왕망의 시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해당된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가 황제가 되려는 생각만 갖고 있었다면 성공을 거뒀을 공산이 크다. 지식인과 서민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그의 즉위를 반겼다. 그러나 황제의 차원을 넘어 '성군'이 되고자 한 게 문제였다.

당시 근데 퇴직 관원에게 평생 연금을 지급하고, 학자들에게 주택을 공급하고, 관리 선발의 폭을 넓히고, 관리와 백성의 개별적인 병역 물자를 지급해주고, 대량의 공공시설을 세웠다. 이는 그의 개혁에 대한 과도한 기대감을 갖게 했고, 더불어 더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열렬한 지지자들은 곧바로 적대세력으로 돌변한 이유다.

당시 재화는 한정돼 있었다. 그가 추진한 일련의 사업은 막대한 자금이 뒷받침돼야 했다. 재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한 이는 재정파탄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급진적인 방법을 택했다. 가장 완벽한 개혁을 위해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받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갈등의 핵심인 토지와 노비 문제에 대해서 그는 시건국 원년인 서기 9년에 이같이 선포했다.

'이제부터 천하의 밭을 개명해 왕전이라 하고 노비는 사속이라고 하고, 모든 매매는 일괄적으로 금한다.'

[맹자]가 역설한 정전제를 겨냥한 조치였다. 성스로운 정전제에 대해 비방하는 사람은 모두 변경으로 압송한다는 규정까지 만들어졌다. 그러나 대지주 호족의 반발이 거셌다. 이 정책은 실행가능성이 없는 데다 실제적인 강제조치도 뒷받침되지 않았다. 얼마 후 없던 일이 되자 기대가 컸던 농민들도 커다란 불만을 갖게 되었다. 토지제도의 실패는 곧 왕조의 패망을 의미했다." (P 440)

 

[십팔사략]의 1권은 특히 중국의 혼란 시기를 많이 다루고 있기에, 많은 왕조가 세워지고 몰락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왜 이 왕조가 몰락하고 새로운 왕조가 세워졌는지에 대해 나름 역사적인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해석보다 더 날카로운 것은 역자의 보설이다. 그는 매 단락의 후반부에 방대한 양의 보설을 통해 십팔사략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해설하고 있다. 어떤 때는 단순한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어떤 때는 저자의 날카로운 시선을 통해 그 사건이 가지는 이면의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그래서 단순히 중국 과거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이 시대의 우리에게까지 적용할 수 있는 교훈들을 주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십팔사략을 비롯해 많은 중국 고전들을 번역하던 저자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사를 통해 날카로운 통찰을 가진 지식인이 한 명 더 사라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다. 점점 역사적인 통찰이 흐려지고, 시대에 흐름에 생각 없이 몸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시대이다. 그러기에 우리 시대에 다시금 역사와 고전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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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박에 조선사 - 역사 무식자도 쉽게 맥을 잡는 단박에 한국사
심용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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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역사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특히 조선사의 단면들을 매우 좋아한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장면, 요동정벌을 꿈꾸었던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허무하게 죽는 장면,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권을 빼앗는 장면, 연산군이나 광해군과 같은 왕들의 축출되는 장면, 그리고 얼마 전 영화로도 만들어진 영조에 의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장면 등, 조선사는 매 순간마다 드라마틱 한 장면들이 숨어져 있다.

 

 

[단박에 조선사]는 이런 조선의 초기와 중기까지의 역사를 그림과 함께 재미있게 정리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심용환 작가의 단박에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교과에서 배운 획일적인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시간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배운 암기식 역사는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 구조를 통해 역사를 평가했었다. 그러나 심용환 작가는 다양한 시각과 입장에서 역사의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한국사를 배울 때 우리는 어떤 왕은 좋은 왕, 어떤 왕은 나쁜 왕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분류로 역사를 배웠었다. 예를 들어 연산군이나 광해군, 선조 등은 나쁜 왕이고, 세종대왕이나 영조나 정조 등은 좋은 왕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단순히 왕들과 그들의 업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상황과 다양한 시각에서 왕들의 정치와 업적을 평가한다. 또한 단순히 한반도에 갇혀 있는 역사가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세계 역사와의 관계에서 한국의 역사를 다시 조명하고 있다.

 

 

[단박의 조선사]는 고려 말기 공민왕의 시대부터 시작된다. 나름 결단성을 가지고 원의 세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새롭게 하려 했던 공민왕의 개혁이 무너지고, 정도전이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조선 초기에는 정도전의 유학 이념과 조준의 과전법을 통해 체계적인 국가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비록 정도전이 이방원에 의해 죽고 주변 인물들이 실권을 잃었지만, 태조 이방원은 정도전의 개혁을 그대로 이어가며 조선의 기틀을 만들어 간다. 저자 역시 조선이라는 나라가 정도전이 만들었던 시스템대로 발전되었다고 강조한다.

 

 

"정도전은 태조에 의해 제거된 후 조선 말인 고종 때가 되어서야 간신히 복권돼요. 그것도 경북궁을 건설했다는 공로로 복권됐으니 치졸한 느낌마저 있죠. 하지만 조선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방향 자체가 정도전 그리고 그와 같은 꿈을 꾸었던 사람들의 기대대로 나아갔다는 걸 생각하면 누가 감히 '정도전과 그들'에 대해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P 50)

 

 

그러나 세종으로 이어지면 찬란하게 빛났던 조선의 영광은 단종과 세조 때부터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한다. 비록 세조가 왕권을 잡은 후 여러 가지 치적이 있었지만, 세조가 김종서 등을 죽이고 정권을 차지한 계유정난 이후 조선의 기틀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저자 역시 계유정난이 조선의 발전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쳤음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계유정난으로 인한 후유증이에요. 정통성이 없는 자가 강제로 국왕이 되었고, 그를 도운 한명회가 단수에 공신이 되어 중앙 정계를 장악하는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권력자게에 줄 서고 눈치 잘 보면 출세할 수 있다는 신념이 광범위하게 퍼질 수밖에 없었겠죠. 나아가 세조의 통치 방식에서 나타난 공신 우대 정책이나 사람을 관직에 쉽게 쉽게 임명하고 자르고 하는 좋지 못한 정치 문화가 등장하고 맙니다. 계유정난은 역성혁명이나 왕자의 난과는 분명히 다른 성격을 띱니다. 왕자의 난 역시 권력 쟁탈전이라는 특징을 공유하기는 하지만 애초 건국이 되고 나면 공신 간의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있기 마련이고, 이를 통해 세력 관계가 정리되면서 나라가 안정되는 경향을 보이거든요. 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됐건 왕자의 난은 건국 후 갈등의 전형이에요. 더구나 최종적인 승리자인 태종이 공신과 외척 문제를 철저하게 정리했고, 세종의 치세가 30여 년이나 이어졌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정치 질서가 확립된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계유정난의 여파는 이런 안정적 발전에 심각한 내적 위기를 만든 셈이에요." (P 100-1)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계유정난과 세조의 통치에 대한 저자의 평가이다. 단순히 세조 시대의 평가가 아닌 굴곡된 현대사의 모습까지 투영되어 있는 듯한 저자의 평가에 많은 공감을 느끼며 읽었다.

 

 

"누군가의 욕망이 음모와 불법을 등에 업고 관철되고 나면, 이에 동참했던 사람들이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죠. 목숨을 걸고 공을 세웠으니까요. 마냥 보상만 해줄 수 없으니 견제를 해야겠고, 그러다 보면 전체적인 상황은 더욱 기괴해지고 맙니다. 사회적 공공성의 상실이 어떤 파급효과를 미치는 세조의 일생을 통해 증명해 보인답니다." (P 103)

 

 

그 후의 역사는 계속되는 당쟁과 외척들의 권력싸움이었고,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광해군을 보는 시각이다. 일방적으로 폭군으로 해석되는 연산군과 달리, 광해군의 다양한 측면으로 해석되는 왕이고, 최근에는 긍정적인 면으로 많이 해석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 부분이 친일 학자들의 영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광해군이 비록 외치는 어느 정도 잘 했지만, 내치에 있어서는 거의 자기 파괴적이 수준이었다고 말한다. 이이첨과 같은 사람들에게 휘둘리며 적대세력들을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했고, 그 결과 정작 인조반정이 일어났을 때는 궁궐을 지킬 인물조차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치 지형도는 해가 갈수록 나빠지는데 광해군의 태도는 해가 갈수록 우유부단해집니다. 이조판서를 5년간 임명하지 못한 적도 있고 병조판서 역시 비슷한 수준이었답니다. 조정에서 격렬한 쟁론이 벌어지면 그에 부흥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광해군은 점점 느슨해지기만 합니다. 이른바 공포정치를 주도한 이이첨의 정치공작이 광해군으로서는 차라리 편할 수 있는 사정이었죠. 정치에 일일이 간여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이 돌아간다고 느꼈을 테니까요." (P 324)

 

 

이렇게 조선의 역사는 점점 기괴해져 가다가 영조와 정조 때 잠시 회복이 된다. 이 책은 영조와 정조를 마지막 부분으로 다루고 있지만, 저자의 정조에 대한 해석 역시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했다. 정조의 개혁을 부분적인 개혁이나 현실에 타협한 개혁으로 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정종이 인사에 있어서 외척이나 국왕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을 등용했고, 당쟁 역시 그의 시대에 더 심해졌다고 본다. 그럼에도 잘못된 해석이 정종을 영웅시 하고 있다고 본다.

 

 

"정조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는 '업적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 후기 어떤 국왕보다도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업적을 일구어냈으니까요. 여기에 더하여 정조를 위대한 개혁가로 바라보고자 하는 역사학자들의 욕망이 투영돼 '그이 집권이 지속되었다면', '세도정치가 없었다면'식의 가정을 하면서 정조가 근대화의 기초를 놓았다는 과장된 주장마저 나오게 된 거죠. (P460)"

 

 

저자의 책을 읽으며 그동안 단순한 시각으로만 바라보았던 조선의 역사와 왕들의 평가가 조금 더 입체적이고 다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기존의 단박에 시리즈가 특정한 시기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서 깊이 있게 역사를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었다면, 이번 시리즈는 조선시대 전반을 다루고 있어서 깊이에 있어서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 역시 두 세 권으로 나누어져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조선사의 부분들을 해석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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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2 : 정종·태종 - 피와 눈물로 세운 나라의 기틀 조선왕조실록 2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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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역사드라마는 전쟁 장면들과 같은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 주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런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고뇌하는 한 인간을 묘사하는 전혀 다른 다른 매력도 있다. 이런 역사적 인물의 인간적 고뇌를 잘 그린 드라마로 기억나는 것이 오랜 전 JTB에서 방영한 [인수대비]라는 작품이었다. 수양대군의 며느리이자, 남편을 잃고 아들 성종을 왕위로 올리지만 손자인 연산 대군에게 핍박을 받는 비운의 인물인 인수대비를 그린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화려한 전쟁신 등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왕권이라는 권력 앞에서 각 인물들의 고뇌가 너무 잘 드러난 작품이었다. 더 오래전 작품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용이 눈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를 대적하고, 이복형제를 죽이고, 신하들과 친척들마저 죽여야 했던 조선의 3대 왕 태종의 고뇌를 잘 드러낸 작품이었다.

이덕일 작가의 [조선왕조실록 2권]을 읽게 되었다. 1권 태종 편에 이어 2권의 주인공은 정종과 태종이었다. 이 책에서 역사적 사건보다 더 관심 있게 읽었던 것은 정종과 태종이 가졌던 인간적인 고뇌이다. 먼저 정종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허수아비 왕이었다. 태종 이방원이 이복형제인 방석을 죽이고, 왕권을 탈취한 후 명분을 위해 바로 왕이 되지 않고 자신의 형 방과를 왕위에 올린다. 그렇게 왕이 된 정종은 비록 왕이었지만, 2년의 왕 세월에 눈치만 보게 된다. 우선은 아버지 이성계와 동생 방원 사이에서 눈치를 본다. 또 방원과 함께 난을 일으킨 공신들의 눈치도 보게 된다. 나중에는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방간과 방원 사이에서도 눈치를 보아야 했다. 실권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눈치만 보다가 왕의 세월을 보낸 임금이었다.

그렇다고 정종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백성을 돌보고 나름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들을 했었다. 그런데 그는 왕의 일에 열심을 낼 수가 없었다. 그가 열심히 왕의 직무를 다하면 그것은 동생과 공신들에게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으려는 태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또다시 피를 부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종은 자신의 자식들을 다 머리 깎아 절로 보내고, 자신 역시 하루 종일 격구를 하며 세월을 보낸다. 자신이 아무런 욕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 과연 정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왕이지만 왕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고, 동생과 신하들의 눈치만을 보아야 했기에 그 자리가 너무나 괴롭고 힘든 자리가 아니었을까? 그렇고 정종의 성격이 결코 유약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 아버지 이성계를 쫓아서 전쟁터를 누빈 무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그것이 아마 그와 그의 가족들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태종의 부분에서는 더욱더 태종이 고뇌가 느껴진다. 배다른 동생들과 개국공신인 정도전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지만,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계속해서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죽여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태종을 난폭한 왕으로 보지만, 책을 읽는 내내 어쩌면 그도 역사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던 한 명의 불행한 인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만약 태종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방석이나 정도전이 과연 그를 살려 두었을까? 그들이 살려 주고 싶어도, 밑의 신하들이 방원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살기 위해서 왕이 되어야 했고, 살기 위해서 형제를 죽여야 하지 않았을까? 일단 그렇게 왕이라는 호랑이 위에 앉게 되자 저절로 앞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함께 군사를 일으킨 동료들을 견제해야 했고, 그들을 유배 보내거나 죽여야 했다. 심지어 1차 왕자의 난 때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매제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그들을 살려 두었다가는 반쪽짜리 밖의 왕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후세에도 왕권이 위협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행간을 읽어보면 살육 앞에서 매번 고뇌하는 태종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태조 이성계의 고뇌와 아픔도 느껴진다. 확고한 비전으로 고려 왕조와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왕이 되었지만, 결국은 함께 했던 동료들이 죽임을 당하고, 아들들마저 죽임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평생 자녀들끼리의 살육이 그치지를 않는다. 아들 이방원을 왕으로 인정할 수도, 안 할 수도 없었던 아버지의 고뇌는 어떠했을까?

너무 뻔한 이야기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권력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결국 권력을 쥔 사람은 개인이나 가족이나 모두 불행을 겪었다. 과거뿐 아니라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일생을 받쳐 그 권력을 탐한다. 자신만은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이루어야 할 대의가 있었을까? 정종과 태종 편을 읽으며 권력을 가진 조선의 왕실이 만난 풍파를 보는 것만 같았다. 문제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 겪을 풍파에 비하면 어쩌면 1,2차 왕자의 난은 작은 풍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 있을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과 신하들을 학살하는 계유정난이나 연산군의 무오사화 등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이 이후의 책들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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