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숲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권수연 옮김 / 포레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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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프랑스 소설을 읽을 때면 어두운 내면의 심리와 잔혹한 묘사로 인해 깜짝 놀라게 된다.

고전으로 인정되는 '사드'의 소설을 비롯하여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카린 지에벨'의 소설까지......

인간 내면의 광기를 극한까지 쫓아가는 그들의 묘사에 섬뜩함을 느낄 때가 있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악의 숲]이라는 소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소설은 인간 본성 안에 있는 '원시의 광기'를 쫓아가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원시의 광기'를 쫓아가면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 안에 있는 끔찍한 '광기'들을 대면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판사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35세의 여성 판사 '잔 코로바'이다.

그녀는 겉으로는 뛰어난 여성판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지만, 어린시절의 트라우마와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잔은 이런 불안한 심리를 달래기 위해 남성이나 쇼핑, 약에 의존한다.

그리고 남성들은 잔의 외모에 끌리다가도 이런 그녀의 집착에 넌덜머리를 내며 도망간다.

그녀가 최근에 집착하고 있는 남성 '토마'도 마찬가지였다.

잔은 연락이 끊기 토마의 소식을 알기 위해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처럼 위장해서 불법으로 토마가 다니는 정신과 의사의 면담실을 도청한다.

토마의 사정을 알려고 했던 시도했던 도청에서 잔은 우연히 정신과 의사 '페로'와 '요아킴'이라는 자폐증 환자의 면담을 듣게 된다.

아버지와 함께 면담을 하러 온 요아킴은 살인을 예고하고, 그 예고한 장소에서 실제 살인이 일어난다.

범인은 여성의 시체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원시적인 제의의식에 따라 시체를 토막내고 먹기까지 한다.

벽에는 피와 배설물로 뜻을 알 수 없는 원시문자까지 남겨 둔다.

잔은 이 사건이 일련의 여성 연쇄살인범과 동일범이라고 추정하고, 그 범인을 요아킴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페로와 함께 요아킴은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연쇄살인범을 쫓던 동료 판사 푸랑수아 텐은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설상가상으로 잔은 무리한 수사로 인해 수사에서 모든 권한을 잃게 된다.

결국 잔은 혼자의 힘으로 페로와 요아킴을 쫓아 남미의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곳에서 잔은 원시의 광기의 실체를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은 인간의 내면의 어두운 심리와 광기를 쫓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광기는 친부를 살해하고 그 시신을 먹는 원시의 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저자는 이런 원시 의식의 근거로 프로이드의 [토템과 타부]라는 책을 제시한다.

인류 최초의 원시부족에서 아버지의 권력과 여자들을 빼앗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고 아버지의 시신을 먹은 부족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후 그들은 스스로의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고 아버지의 시신을 숭배하고,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게 되었다.

프로이드는 이 때 아버지의 살해와 그 시신을 먹고, 아버지의 여자들을 차지하려던 그 본성은 유전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그 원시의 광기를 소설의 연쇄살인범의 범행 동기로 제시한다.

 

또 하나 이 소설은 원시부족의 존재를 제시한다.

지금까지의 진화론은 인류가 600~800만년 전 원숭이에서 갈려져 나왔다고 본다.

그 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하빌리스, 호모에렉투스로 이어지고, 호모에렉투스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으로 나누어진다.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크로마뇽인인 인류의 직계조상이 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학설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크로마뇽인으로 이어지는 현 인류 이전에 멸종되지 않은 구 인류가 존재하고 있다는 가설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아직도 원시의 광기가 남아 있다는 끔찍한 가설을 내비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드나 미셀푸코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문학과 철학이 왜 이처럼 인간 내면의 광기를 탐구하는지 조금은 감이 잡히는 것 같기도 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인들은 신이나 종교적 관습을 거부하고 인간을 육체적이고 유전적인 존재로만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육체와 내면의 존재하는 광기의 근원을 탐구하게 된다.

실제로 세련되게 포장된 현대문화에서 여전히 인간의 광기가 존재한다.

수백명을 학살하는 히틀러의 광기,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독재 국가해서의 고문고 살인, 잔혹한 범죄현장 등에서.......

이 소설 역시 중간 부분 부터는 원시의 광기보다는 남미의 정치상황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의 광기가 어떻게 잔혹하게 표출되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

 

 

소설은 잔혹한 묘사와 인간의 어두운 심리가 많이 묘사되어 있어서 읽는 내내 편하지는 않았다.

특히 요아킴의 살인 사건 장면의 묘사에서는 계속 읽기가 힘들 정도였다.

다행히 소설 중반 이후부터는 살인사건에 대한 묘사보다는 남미의 정치적 상황이 많이 나오며, 인간의 악의 본성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들춰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인간의 본성의 내면의 끔찍함이 존재하는 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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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줏간 소년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패트릭 맥케이브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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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시골집 뒤편에는 못 쓰는 가구나 농기구들을 쌓아두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햇볕이 잘 들지 않아 항상 어둡고 음침했다.

한 번은 우연히 그 곳에 있던 물건을 들 춘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물건이 있던 바닥에서는 내가 상상도 못했던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손가락 마디처럼 굵은 지렁이, 붉은 색깔을 띄는 지네, 온갖 종류의 벌래들이 눅눅한 땅바닥 속에서 꿈뜰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른 들추었던 물건을 제자리에 내려놓고 그곳에서 뛰쳐 나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 곳에 가지도 않았고, 다시는 그 곳의 물건을 들어 올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은 우리의 마음 상태도 시골집 뒤편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마음 안에도 어둡고 음침한 장소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온갖 벌래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들춰내기를 싫어한다.

혹시라도 들춰내었다 하더라도 어린 시절의 나처럼 다시 그곳을 덮어 두기를 원한다.

보기 싫어했던 그것들이 그 곳에 없다는 듯이......

 

[푸줏간 소년]을 읽으면서 내내 어린시절 시골집 뒤편의 물건 바닥을 들춰보는 느낌이었다.

얼른 덮고 싶고, 그것이 거이에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싶었다.

작가가 주인공 소년의 의식과 심리의 어두운 부분을 묘사하는 것이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끔찍해서였다.

아니, 어쩌면 소년의 의식과 심리의 묘사 속에서 내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나의 의식과 심리가 들어나서 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아일랜드의 '브랜디'라는 소년의 의식과 생각을 따라간다.

브랜디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서서히 미처가는 어머니가 있는 가정에서 자란다.

그런 브랜디의 유일한 위안은 자신의 유일한 친구 조와 보내는 시간이다.

그러나 그나마 도시에서 필립이 전학 온 후 부터 쉽지 않다.

풍족하고 깔끔한 집에 사는 필립과 필립의 어머니 누전트 부인은 브랜디와 그의 가족을 '돼지'로 취급하며 경멸한다.

결국 브랜디의 어머니는 자살을 하고, 아버지는 브랜디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말한다.

브랜디의 의식은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결국 아무도 없는 누전트 집에 가서 행패를 부리다가 경찰에게 끌려 간다.

그 후 브랜디는 사제들이 운영하는 직업학교에서 성적학대를 당한다.

그는 그 곳에서 '프랜시 브래디가 더 이상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졸업장을 받는다'는 마음으로 버틴다.

그러나 브래디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를 피한다.

심지어는 유일한 친구인 조마저도 브래디를 피하고, 필립과만 친구로 지낸다.

결국 브래디는 이 모든 것이 누전트 부인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누전트 부인에 대한 피해의식이 커져만 간다.

그리고 결국 누전트 부인을 살해한다.

 

 

처음 이 소설을 접할 때에는 이 소설이 성장소설이라 해서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되었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은 어린 주인공의 순수한 마음이 세상과 부딪히면서 그가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런 내용을 기대하고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치 어둡고 음침한 소년의 마음을 들춰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어둡고 음침한 소년의 마음에서 내 마음의 한 부분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고 괴로웠다.

 

브래디의 주변 사람들은 누전트 부인을 비롯해 브래디를 경멸한다.

심지어 누전트 부인의 그의 더러운 외모를 보고 돼지로 비유한다.

소설에서 브래디는 스스로를 돼지로 부른다.

스스로를 자학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시도들은 매 번 거절감과 좌절감만 심어준다.

 

사실 브래디가 누전트 부인의 집에서 행패를 부리고 그의 아들 필립을 시기하는 것은 그의 집안과 필립이 부럽기 때문이다.

자신 역시 그들의 무리에 섞이고 싶기 때문이다.

브래디의 의식 속에서 필립과 누전트부인은 그런 브래디의 마음을 조롱한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필립 누전트의 목소기가 들렸다. 하지만 조금 달랐다. 온통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필립이 말했다. 그 녀석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아시죠 어머니? 그 녀석은 우리의 식구가 되고 싶어 해요. 그 녀석은 자기 이름이 프래시스 누전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 녀석이 원한 건 처음부터 그거였어요. 다 아시죠 그렇죠 어머니? (P98)

 

마침내 그런 생각이 들자 누전트 부인이 말했다. 그 애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세요? 나더러 자기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했어요. 돼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 애가 당신한테 그런 짓을 했다고요 브래디 부인. 그 애가 우리 집에 온 이유가 그거였어요! 그 여자의 가슴 때문에 또 숨이 막혔다. 미지근한 게 내 목구멍 속에 있었다. 내가 먼저 그를 친 것 같다 그가 쓰러지더니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날 해치지 말라 프랜시 난 널 사랑해! (P150)

 

브랜디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누전트 부인과 필립에게 계속해서 해를 가한다.

그것은 사실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하는 브랜디의 또 다른 의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다가갈 때마다 브랜디는 거절을 당하고 그의 자존감을 계속해서 찢겨진다.

결국 브랜디는 스스로를 돼지라고 여기고, 누전트 부인을 돼지처럼 살해한다.

 

 

앞에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흔한 성장소설이나 스토리 위주의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한 소년의 의식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에 재미나 흥미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 의식이 흐름을  아주 섬세하고 예리한 필치로 그리고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스트옙스키 이후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그린 최고의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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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맨 그레이맨 시리즈
마크 그리니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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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본 한국영화 중에서 [달콤한 인생]이란 영화가 있다.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이다.

이 곳에서 주인공은 폭력조직의 고급 술집을 운영한다.

깔끔한 일처리와 화려한 싸움 실력으로 보스의 인정을 받는다.

그러다가 보스에게 배신을 당하고 죽음의 위기에 몰린다.

주인공은 그 위기에서 살아나고, 모든 사람들을 죽인 후 칼에 찔려 망신창이가 된 몸으로 보스 앞에 나타나서 묻는다.

"내게 왜 그랬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영화의 장면들이 많이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처음 접했지만 미국에서 스릴러 작가로 떠오르는 마크그리니의 [그레이맨]이라는 책이다.

주인공 젠트리는 그레이맨이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킬러이다.

한 때 CIA에 있었지만 그 곳에서 축출을 당한 후 인터폴에 수배되어 쫓기는 몸이다.

그는 영국의 피츠로이 에서 일한다.

피츠로이는 전직 영국 특수부대 출신으로 지금은 청부살인을 담당하는 에이전시를 운영하고 있다.

그레이맨은 피츠로이의 가장 뛰어난 부하이다.


소설은 아프카니스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레이맨은 나이지리아의 산업자원부 장관을 암살한 후 쫓기고 있다.

그러다가 추락된 미군 병사를 보고 정의감에 도와주느라 탈출시간을 노친다.


그 시간, 영국에서 피츠로이는 롤랑 그룹의 로이드라는 사람에게 협박을 당한다.

롤랑그룹은 나이지리아의 독재자 아부바커 대통령과 모종의 계약을 맺으려 하는데, 산업자원부 장관인 그의 동생이 암살당하자 그 킬러를 잡아오지 않으면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겠다고 버티는 것이다.

롤랑그룹은 이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했고, 이 계약이 성사되면 사용한 돈의 몇 배가 되는 이익을 얻게 된다.

처음에는 요하고도 잔혹한 로이드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레이맨을 내놓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로이드가 그의 아들과 며느리, 두 손녀의 목숨을 협박하자 어쩔 수 없이 그레이맨을 암살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아프카니스탄에서 구출되어 오는 그레이맨은 갑자기 구조대에 의해 이유도 모르는 총알 세례를 받게 된다.


물론 그레이맨은 뛰어난 실력으로 그 위기에서 탈출하고, 피츠로이를 협박해서 그레이의 동선을 파악한 로이드는 전세계 킬러팀을 불러 그레이를 살해하려 한다.

그레이맨은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로이드와 피츠로이가 있는 프랑스의 노르망디의 별장까지 도착한다.


이 책은 요즘의 스릴러와는 조금 다른 경향을 가진다.

요즘의 스릴러들은 대부분 액션장면보다는 계속되는 반전을 통해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하는 구조이다.

물론 이 책도 반전이라고 불리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요즘의 스릴러에 비하면 미미한 편이다.

대신 이 책은 그레이맨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상대를 두렵게 하는 전설의 킬러를 등장시키고, 일 당 백의 화려한 액션을 통해 굵직한 스토리를 이어간다.

마치 오래 전의 톰크래시나 로버트 럼들럼의 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이 작품은 다양한 현대 무기 등이 등장하며 작가의 전투상황이나 현장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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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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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가시노 게이고의 [공허한 십자가]가 나왔을 때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관심을 가졌었다.

나 역시 이 작품이 나오자마자 인터넷에서 이 작품의 서평을 찾아 볼 정도로 관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서평에서 이 작품이 일본의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을 다루고 있다는 내용들이 많았다.

법률적인 논쟁이나 사회적 논쟁에 한 발 자국 떨어지고 싶어하는 내 자신의 성향상 이 책을 읽기가 꺼려졌다.

그런 이유로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 작품을 읽었다.

너무나 심각하거나 딱딱한 소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설은 법률적인 논쟁에 치우친 작품이라기 보다는 작가 특유의 추리소설 필치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소설이다.

물론 사형제도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추리소설이란 큰 틀 안에 있는 소제일뿐 이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은 아니다.

전체적인 스토리 역시 하가시노 게이고의 어떤 작품보다도 치밀하고 완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처음엔 사오리라는 한 여자 아이의 이야기를 등장시킨다.

그녀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외롭고 쓸쓸한 학교 생활을 해 나간다.

그런 그녀에게 그녀가 짝사랑해 왔던 상급생 후미야가 접근해 온다.

후미야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읽을 때 무언가 불길함을 느끼며 후미야의 접근에 어떤 의도가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원래 짝사랑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나 작가는 그 후의 이야기를 단절시킨다.

둘의 사랑이 어찌 되었다거나 후미야가 나쁜 놈이었다거나 그런 내용도 없다.

그러나 후에 이 둘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사건을 푸는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


이야기는 갑자기 세월이 지나 반려동물의 장례를 치루는 회사를 운영하는 나카하라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그는 11년 전 이혼 한 아내가 살해 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나카하라와 그녀의 아내 사요코는 11년 전 딸 아이가 강도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 되었다.

둘은 범인이 사형판결을 받게 하게 위해 전심으로 노력을 했다.

그 결과 범인은 사형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회복되지 못하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다.

11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아내의 살해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리고 한 노인이 자신이 살해범이라며 자수를 한다.

단지 돈이 필요해서 우연히 범행 대상을 물색하다가 사요코를 발견하고 죽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은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나카하라가 아내의 사건을 파해지면서 다시금 소설 앞에 등장햇던 사오리와 후미야가 등장한다.

나카하라는 아내의 장례식장에 찾아 온 사오리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또한 아내를 죽인 노인의 사위가 이제는 유명한 소아과 의사가 된 후미야라는 남성이었다.

결국 나카하라는 사오리와 후미야가 연관이 있는 인물이고 이들의 과거가 아내의 죽음에 결정적인 역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나카하라는 전 아내 사요코의 행적을 추적하면서 그녀가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사형제도폐지운동을 반대하는 것에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사형 당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글을 출판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가령 사형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유족의 승리는 아니다. 유족은 그것을 통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다만 필요한 순서, 당연한 절차가 끝났을 뿐이다. 사형 집행이 이루어져도 마찬가지 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일도 없다. 그렇다면 사형이 아니라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만약 범인이 살아 있으며 '왜 범인이 살아 있는가? 왜 범인에게 살아 있을 권리를 주는가?'라는 의문이 유족의 마음을 끊입없이 갉아 벅는다. 사형을 폐지하고 종신형을 도입하라는 의견도 있지만, 유족의 감정을 떨끈만큼도 이해하지 못한 말이다. 종신형에서 범인은 살아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매일 밥을 먹고, 누군가와 이야기 하고, 어쩌면 취미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상하는 것은 유족에게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번씩 끝질기게 말하지만, 사형 판결을 받는다고 유족의 마음이 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유족에게 범인이 죽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P189-90)

나카하라 역시 아내의 글에 동감하여 이 책을 출판하려 한다.

그러나 아내의 죽음을 파해지면서 그 신념이 흔들리는 사건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 만든 사형이나 형벌로는 사람을 진정으로 갱생시킬 수도 없고, 속죄시킬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사형은 속죄가 아닌 '공허한 십자가'일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신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요코는 딸의 죽음으로 사람을 죽인자는 반드시 사형당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고, 그 신념을 향해 달려갔다.

나카하라 역시 그 신념을 쫓아가며 사건을 파해치지만 결국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요즘들어 드는 생각은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들이 점점 단단해져서 나중에는 그것이 돌처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돌처럼 된 생각과 신념은 왠만한 것으로 무너뜨릴 수 없고,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시도에 대해 강한 반격을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생각과 신념들은 대부분 과거의 상처들로 인해 생긴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면서 한 번쯤은 과연 내 생각과 신념들이 맞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것이 또 다른 상처들을 만들지 않는 방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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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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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서울권으로 이사를 와서 자주 못 가지만 예전에는 대둔산이라는 곳을 자주 등산했었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는 이 산은 절경이 아름다우면서도 산세가 험하기로 이름난 산이다.

케이블을 타고 올라가서도 한참을 험한 산을 오르다가 보면 정상 부근에 가까워서 작은 동학운동 기념비가 있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학운동의 마지막 사람들이 여기서 일본군과 대치하다가 모두 장렬히 전사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문구를 보며 가끔은 이런 생각을 했었다.

무엇이 이 사람들은 이 험한 산 꼭대기까지 오르게 했는가?

그리고 그들은 왜 이 산에서 죽어야만 했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가졌던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은 느낌이다.


이 소설은 구한말 동학운동을 배경으로 전봉준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치 야구경기의 패색이 짙은 9회말 경기를 보는 것처럼, 이미 스코어가 너무 벌어져 돌아킬 수 없는 축구의 후반전을 보는 것처럼 답답하고 먹먹했다.

나는 동학운동이 단순히 탐관오리의 학정에 반발해 일어난 농민운동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당시의 조선의 현실이 너무나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이미 외쇄의 세력에 점령 당해있고, 민씨 일가들은 권력을 통해 백성들을 탈취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봉준과 동학 접주들은 나라와 백성을 구하고자 일어난다.


이 책은 다른 동학운동과 관련된 책과는 달리 대원군과 개화파들을 등장시킨다.

물론 설정이겠지만 이 책에서는 전봉준이 동학운동을 일으키기 전 대원군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남쪽에서 난을 일으키면 어떠겠냐며 대원군의 의중을 묻는다.

대원군은 이제 믿을 것은 백성밖에 없다고 말한다.

물론 대원군이 동학운동을 지지한 것으로 나오지는 않는다.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동학운동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다시 찾기 위해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동학운동이라는 거대한 흐름뿐만 아니라 인간 전봉준의 끝임없는 고뇌를 읽어야 했다.

이 책에서 그는 과감한 혁명가이기 보다는 고뇌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등장한다.

난을 일으키기 전에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는다.

정말 이 길 밖에 없는가?

이 길이 맞는 길인가?

우금재에서 전투가 패퇴한 후 죽어가는 한 백성과의 대화는 정말 압권이었다.


전봉준이 군말 없이 군사를 따라나섰다. 방금 지나쳐 온 길가 짚더미 위에 부상당한 군사가 반듯이 누워 있었다. 누군가 잘 뭉쳐 받쳐준 짚단을 벤 채 몸에도 짚단을 덮은 사내가 숨을 몰아쉬었다. 전봉준이 다가가 피로 범벅된 사내의 손을 잡았다. 얼굴이 희고 고왔다.

"왜 혼자 누워 있소?"

"동무들에게 두고 가라 하였습니다. 난 틀렸습니다."

"그런 소리 할 거 없소. 우리랑 갑시다."

"장군!"

사내가 피로 미끄덩거리는 손에 힘을 주었다. 통증 때문인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이 길이 가장 옳았다고 확신하십니가?"

세상을 빨아들이려는 갈망이 눈에서 번뜩였다. 전봉준이 또박또박 말하였다.

"그대가 목숨 걸고 나선 길이오. 의심하지 마오"

사내가 밭은 기침을 하더니 안심하는 소리로 일렀다.

"백성들은 장하였소. 그들을 배신하지 마시오. 변절하지 말시오"

"그 말을 따르겠소"

- 본문 중에서 (P308)


구한말 처럼 나라가 시끄럽다.

보수와 진보가 극단에서 싸우고 있다.

서로 나라를 위한다고 한다.

역사 교과서를 국가가 나서서 바로 잡겠다고 한다.

나라는 오랫 동안 둘로 갈라져서 북쪽에서는 심심하면 미사일을 쏘아댄다.

중국은 미국과 맞서는 군사 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고,

일본은 자위대 헌법을 바꾸어 자위대 해외 파병을 가능케 했다.

남한의 허락없이는 한반도에 군사를 보내지 않겠다더니 이제는 북쪽은 허락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정부에서는 우리의 허락없이는 자위대가 못 들어오니 안심하라고 말한다.

모든 것이 구한말과 비슷하게 돌아간다.

청나라 군사도 허락을 받고 들어왔고, 일본군도 허락을 받고 들어와 백성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허락을 받고 우리나라를 합병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자신의 앞 일이나 걱정하라고 한다.

그렇다! 내 앞 걱정하기도 벅찬 시대이다.

그런데 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두려운 것일까?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 소설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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