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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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이 스스로를 숨긴다. 주변 사람들은 이 여성이 납치되었거나 살해되었다고 생각한다. 신문 기자들과 방송국의 취재진들이 들이닥치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스스로 사라진 여성이 어렸을 때부터 인기를 얻던 SNS 스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남편을 의심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다가 인기가 사그라지자, 여자 혼자 꾸민 자작극이었다. 영화화되어서 더 유명해진 길리안 플린의 [나를 찾아줘]라는 소설의 내용이다.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현대인들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자신을 찾아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내 실제 모습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는 사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실제 자기 자신은 찢기고 망가지고 있다. 우리가 진짜 찾아 나서야 할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그렇게 망가지고 찢긴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패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어떤 이유인지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히 부서진 내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소설은 한 남자가 자신을 떠난 아내를 찾기 위해 미국으로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아내가 묵었던 호텔에서 아내의 짧은 편지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나는 지금 뉴욕에 있어요. 더 이상 나를 찾지 마요. 만나봐야 그다지 좋은 일이 있을 성싶지 않으니까." (P 11)

 

어떤 문장이나 글 속에는 실제 글보다 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짧은 한 문장에 그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는 경우도 있다. 바로 이 짧은 편지가 그렇다. 어찌 보면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짧은 글이지만, 이 글에는 두 부부가 살아왔던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이 짧은 문장을 읽다 보면 마치 한 아이가 장미를 껴안고 그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는 듯한 섬뜩한 이미지가 느껴진다. 소설 속의 주인공과 유디트라고 이름하는 아내와의 사랑이 그랬다. 둘은 서로 사랑했다. 물론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나 둘은 사랑하면서 할수록 더욱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의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를 멀리하지 못한다. 한순간도 상대가 옆에 없으면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다. 그러나 가까이 있으면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망가뜨리고, 스스로 망가져갔다. 그리고 아내 쪽에서 먼저 결단을 내린다. 남편을 떠나기로, 그런데 정말 아내는 남편을 떠났을까.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이 아내인 '유디트를' 찾아 미국을 횡단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남자는 아내가 묶었던 미국의 호텔들과 시골들을 돌아다니며 유디티를 쫓는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매우 낯설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집 나간 아내를 찾는 과정을 보며 절실하다 못해 처절하다. 자신의 폭력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간 아내에게 한 번만 용서를 빌 기회를 얻기 위해 절실히 아내를 찾기도 하고, 자신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간 아내에게 복수하겠다는 처절한 심정으로 아내를 쫓기도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서는 그 어떤 절실함과 처절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못 찾으면 말고.' '이것 말고 딱히 뭐 할 일도 없으니까!' 이런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그는 아내가 묵었던 호텔을 전전하지만, 그것은 잠시뿐이고 혼자 뉴욕의 거리를 걷기도 하고, 카페를 돌아다니기도 하며 주변의 환경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마치 모든 것을 관조한 사람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자기 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히는 사람 같기도 하다.

 

"나는 맥주 한 잔 가져와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커튼이 드리워진 좁은 문틈으로 거리를 바라보았다. 시야가 좁은 만큼 바깥 광경은 외려 더욱더 명료하게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느려 보이는 것이 마치 연기라도 하는 듯 보였다. 그들은 문 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앞에서 이리저리 산책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가슴이 지금처럼 그렇게 예뻐 보이고 또 그렇게 유혹적으로 보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나는 즐거웠다." (P 43)

 

소설은 아내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동안 외면하고 마주하기 싫어했던 자신의 모습을 아내를 찾는 과정을 통해서 마주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에게 도움을 주는 것들이 있다. 먼저는 클레어라는 여성이다. 그녀는 주인공이 몇 년 전 우연히 미국에서 만났던 여성이다. 지금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혼자 산다. 그는 클레어와 그녀의 아이와 동행하며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에게 유디트와의 가학적이었던 사랑을 말로 표현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로 표현하면서 그는 자신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내가 그녀를 때려죽일까 봐 두려웠어. 그 두려움은 현재 진형이었지. 한 번은 길거리에서 서로 목을 조른 적이 있어. 집에 돌아와서 반사적으로 손을 씻었지.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씻었지. -중략-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난 뒤에도 뛰쳐나가봤자 기껏 발코니였고, 그나마도 잠시뿐 곧 다시 방으로 들어가곤 했으니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어, 한 번은 컴컴한 데서 그녀를 때렸는데, 그때 곧바로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보며 끌어안은 채 아직 살아 있는지 물어보기도 했지." (P 130)

 

두 번째는 고트프리트 켈러의 [녹색의 하인리히]라는 책이다. 그는 아내를 찾으러 다니며 계속 이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는다. 이 책은 독일 고전소설로서 풍경화가 지망생인 하인리히라는 한 청년이 자연 속에서 자신을 치유해 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하인리히가 자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해 나간다면, 주인공은 뉴욕의 도시의 길거리와 미국의 농가의 풍경에서 자신을 발견해 나간다. 그리고 결국에는 유디트를 만나게 된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유디트 앞에 더 이상 거짓된 모습이 아닌, 자신의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설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은 짧은 분량의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도 매우 간단하다. 주인공이 미국에서 아내를 찾는 과정이 전부이다. 그 과정에서 복잡한 일을 일어나거나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짧은 소설을 읽는데 거의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소설을 읽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주인공이 자신을 발견해가는 과정이 마치 숨기고 외면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을 들춰내는 과정과 같아서 읽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 속에서 또 나의 모습을 보았다. 때로는 외면하고 덮고 싶은 소설이었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어가면서 조금씩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알 수 없는 희망 같은 것을 느꼈다. 아마 소설 속의 주인공이 [녹색의 하인리히]를 읽으며 느끼는 감정이 이와 같았을 것이다. 이 책의 작가인 페터 한트케도 소설 속의 주인공이 느꼈던 그 감정을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느끼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얼마 전부터 인스타그램이라는 것을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하기에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결국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처음 인스타를 하는 순간 현실과는 너무 다른 세계에 당혹감을 느꼈다. 그 속에서는 모두가 화려했다. 화려한 옷을 입고, 멋진 장소를 여행하고, 보기에도 먹음직한 음식들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들 자신들을 꾸미고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그들의 실제 모습이었을까. 전부는 아니어도 그들 중에 많은 사람은 실제로는 상처 입고 찢기고 고통 당하고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화려한 모습만 인스타를 통해 보여주고 있지 않을까. 점점 시대의 문화가 자신을 감추고 포장하는 쪽으로 흐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어쩌면 우리도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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