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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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와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내가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소설 속에서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의 단편 중에 [보트가 가는 곳]이란 작품이 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어느 날 지구에 탁구공 모양만 한 셀 수 없는 우주선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들이 땅에 지금 1미터 정도의 구멍을 수없이 만들어 낸다. 사람들은 그 구멍 속에 빠져서 죽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우주선들이 몰아붙이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우주선들이 사람들의 뒤와 양옆에 구멍을 뚫어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계속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남쪽 끝에 이르자 일부 사람들은 살기 위해 바다를 헤엄쳐 간다. 이런 혼란 중에 겨우 주인공만 살아남는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했을까? 그리고 그 상상을 어떻게 글로 표현하고, 소설로 남겼을까? 작가의 창작 세계가 궁금하던 참에 그의 창작의 비밀을 담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라는 책이 나왔다. 이 책에는 김중혁 작가 자신의 사소한 글쓰기 습관이나 환경, 그리고 그의 창작의 아이디어를 만드는 과정들이 언급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소설에 대한 애정과 집념, 그리고 소설을 쓰기 위해 끊임없는 갈등의 과정들을 접하게 되었다.

"여기가 어디지. 현실이다. 소설을 쓰고 있을 때, 현실이라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가상의 공간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어젯밤에 내가 만들어낸 소설 속 세계가 진짜 현실 같다. 늦은 밤까지 나는 소설 속 공간에서 실재하고 있었다. 주인공에게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했다. 주인공을 잘못된 길로 보낸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그 길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끝을 봐야 한다." (P 41)

"소설은 잡식성 괴물이다. 소설을 쓰고 있을 때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들리는 모든 소리, 느껴지는 모든 감각이 소설의 먹잇감이 된다. 모든 걸 집어삼킴 소설은 소화되지 않는 먹잇감을 다시 내뱉는다.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겼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소설을 쓰고 있을 때는 대단한 자료가 된다. 간절한 만큼 보이고, 잘 쓰고 싶은 만큼 많이 느낄 수 있다." (P 43)

그가 제시한 글쓰기의 팁도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이 첫 문장 쓰기이다. 작가가 첫 문장 쓰기에서 권하는 격언은 최선을 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최선의 문장을 완성할 수 없다. 최선의 문장을 쓰려고 하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그래서 첫 문장은 그냥 쓰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수정하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할 수 없으므로, 모든 글쓰기의 첫 문장은 대충 쓰는 게 좋다. 어차피 우리는 최선의 문장을 쓸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문장을 쓸 수 없다면 아무 문장이나 쓰면 된다. 그래도 좀 나은 문장이 있지 않겠냐고?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위악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골라봤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게 첫 문장이다."

개인적으로도 무슨 글을 쓸 때면 항상 첫 문장 때문에 고심한다. 그런데 이제 나도 한번 막 써보려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일단 쓰면 어떻게든 굴러간다.

또 기억에 남는 팀 중에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결국에 작가가 기억되는 것은 작가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스타일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남과 같아지려고 하지 말고, 자기만의 내면에서 나오는 스타일을 만들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작가의 스타일로 강조하는 것은 대화의 상상력이다. 소설의 인물을 그려보면서 그들이 실제로 대화할 것 같은 내용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자신의 소설이나 타인의 글을 인용하면서 설명하는 이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팁을 제공하면서도 결국은 글 쓰는 본인이 깨닫는 것을 써야 한다는 말을 한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충고를 한데 끌어모았을 때, 그 교집합이 최고의 비법일까. '열심히 쓴다', '꾸준히 쓴다' 정도만 교집합에 남아 있겠지. 충고 따위 무시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해설을 보지 않고 문제집을 풀 때처럼, 작가들의 충고는 모두 잊고 혼자서 밤을 꼬박 지새우며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작은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자기만의 공식이 하나씩 생겨나고, 작가들의 충고가 무슨 말인지 몸으로 알게 되는 때가 온다. 그 사소한 깨달음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P 132)

이 책을 읽으면서 막 소설이 쓰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소설 쓰기를 포기한 적이 오래되어서 다시 소설을 쓰지는 못 할 것 같다. 그러면 작가가 주는 이 풍성한 글쓰기 비법을 어디에다 써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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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8-03-20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글쓰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오히려 욕심을 버리고 막 쓸때 글이 잘 써지더군요ㅎㅎ

가을벚꽃 2018-03-21 20:21   좋아요 1 | URL
저도 최근에 글쓰기에 관한 책들을 읽은 후 오히려 글이 더 잘 안 써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ㅎㅎ 글을 쓰며 여러 가지 규칙이나 방법을 생각하다보니 ㅠㅠ 자신의 스타일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