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어처리스트
제시 버튼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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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저녁이면 베란다 창문을 통해 건너편의 아파트를 바라본다. 반듯한 네모상자같은 집 안에는 서로 다른 가구와 사람들이 있다. 저들의 삶은 어떨까? 행복할까? 그리고 이 시대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이 시대에 행복하다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적당한 크기의 아파트에, 광고에서 나오는 가구와 가전제품을 갖추고, 가끔씩 패밀리레스토랑에서 가족끼리 식사하는 정도? 너무 소박할까? 시대마다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행복한 삶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행복의 틀에 자신을 넣으려 한다. 마치 미니어처집의 인형처럼 자기를 스스로 속박한다.

 


제시 버튼의 [미니어처리스트]의 배경은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다. 17세기는 이전까지 대서양을 중심으로 해상무역을 장악하던 스페인의 패권이 무너지고, 영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던 시기였다. 영국으로 대서양의 패권이 넘어가기 전에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를 통해 잠시나마 최고의 번영을 누린다.

 

이 소설은 암스테르담의 부유한 상인의 가문으로 시집 온 18세 소녀 '페트로넬라'의 이야기이다. 넬라라고 불리는 이 소녀의 집안의 네덜란드 시골에서는 꽤 이름있는 집안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은 후 집안은 점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넬라의 어머니는 당시 여성의 행복이 부유한 상인을 만나 결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넬라에게 주입한다.


"자고로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남자하고 결혼해야 해." 그녀의 엄마가 펜을 들며 말했다.

"하지만 전 내세울 게 없잖아요." 넬라가 대답했다.

엄마를 혀를 찼다. "네 자신을 봐. 여자들이 가진 게 뭐가 있니?"

그 말에 넬라는 얼어붙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가 자신으 폄하하자 낯선 불안감이 엄습했고, 아버지로 인한 슬픔은 어느덧 자신에 대한 슬픔으로 바뀌었다. (P32-3)


"누군가의 부인이 되지 않으면 삶이 고달파져." 그녀의 엄마가 언젠가 말했다. "왜요?" 넬라라 물었다. 아버지에 대한 끊임없는 짜증이 사후에 남긴 빛 때문에 분노를 변해가는 것을 목격한 그녀였기에, 오트만 부인이 왜 딸을 자신과 똑같은 위험에 빠뜨리지 못해 안달하는지 물은 것이었다. 넬라의 엄마는 미친 사람 보듯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이번에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왜냐하면 시뇨르 브란트는 도시의 양치기이고 네 아버지는 한 마리 양이었으니까." (P38)

넬라는 당시 네덜단드 동인도 회사의 간부이자, 부유한 상인인 요하네스 브란트라는 30대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녀가 시골집에서 암스테르담의 요하네스의 집으로 오던 날, 넬라의 기대와는 달리 넬라를 맞아준 것은 요하네스가 아닌 그의 여동생 마린이다. 어머니의기대처럼 부유한 상인에게 어울리는 현숙한 아내가 되고 싶었던 넬라의 기대는 처음부터 무너진다. 집안의 분위기 역시 어둡고, 무언가 비밀에 쌓여 있는 것 같다. 하녀답지 않게 당돌하며 참견을 좋아하는 코넬리아, 당시로서는 드물게 흑인 하인인 오토, 그리고 집안에서 모든 것을 명령하는 시누이 마린, 정작 남편이며 집주인인 요하네스는 보기가 힘들 정도이다. 오랜만에 돌아온 요하네스는 어린 신부보다 집안의 개들을 반겨준다. 넬라는 집안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던 중 요하네스는 넬라에게 결혼선물로 아름답게 장식된 미니어처 집을 선물해 준다. 당시 네델란드에서는 어린소녀들이 이런 미니어처 집을 가지고 노는 것이 유행이었다. 넬라는 자신을 어리게 취급하는 남편에게 실망하지만, 정교한 미니어처를 보고 호기심을 느낀다. 그리고 미니어처를 만드는 미니어처리스트를 찾아서 미니어처 집에 들어갈 장식품들 주문한다. 그때부터 이상한 일들이 발생한다. 미니어처리스트는 넬라가 주문하지도 않는 집안의 물건들이나 사람의 모양들을 보낸다. 그런데 그 모양이 너무나 정교하고, 마치 직접 보고 만든 것처럼 실제 집에 있는 물건이나 사람과 똑같다. 심지어 시누이 마린의 속옷모양까지 똑같이 만들어 보낼 정도이다. 넬라는 누군가 자신의 삶을 훔쳐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까지 든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미니어처리스트가 보내 온 미니어처들에게는 넬라가 미처 눈치채지 못한 특이한 모습들이 담겨져 있고, 그것들을 앞으로 일어날 불행한 사건들을 예언하고 있다. 과연 브란트 집안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이고, 미니어처리스트는 이것을 어떻게 그대로 알고 미니어처를 만든 것일까?

   

 


​이 소설의 작가 제시버튼은 영국에서 평범한 직장을 다니고, 저녁이면 배우로 무대에 섰다고 한다. 그녀는 네덜란드 여행 중 물관에서 고급스러운 미니어처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미니어처 속에 담긴 삶을 상상한다. 그렇게 [미니어처리스트]는 출간되었고, 영국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책이 되었다.

현대의 박물관에 유품으로 간직한 미니어처는 작가의 상상을 통해 패쇄적이고, 종교적 위선과 물질적 탐욕이 가득한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어느 상인의 집에 장식된다. 그리고 그 미니어처를 통해 작가는 당시 여성의 삶을 보여 준다.

 

이 소설은 마치 넬라의 성장소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성장소설과 다른 면이 있다면, 보통의 성장소설은 어린 소녀나 소년의 이야기이지만, 이 소설은 18세에 결혼한 넬라가 당시의 전형적인 네덜란드 상인 가정의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넬라는 미니어처를 부수고, 스스로 그 미니어처에서 나와서 자신의 삶을 개척한다. 남편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고, 자녀를 나아 대를 잇고 전형적인 당시 여성의 삶이 아닌, 남편 대신 상인의 삶을 살면서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려 한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과연 넬라가 소설 이후 어떤 삶을 살아갈까라는 생각이었다. 종교적 위선과 탐욕이 가득한 세상에서 과연 넬라가 상인으로서 한 가정을 이끌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은 이 시대의 많은 여성들에게도 드는 생각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이 세상에서 살아가기는 만만치 않은 시대이다. 그럼에도 세상이 만들어준 미니어처 속의 삶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넬라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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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온 아이
에오윈 아이비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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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온 아이]는 알래스카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의 첫 작품이다. 먼저 놀라운 점은 이 소설은 평생 소설을 써 온 능숙한 작가의 그것 이상으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표현력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잭 런던의 소설들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20세기 초엽의 알래스카를 생생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이 소설이 100년 전에 씌여지기라도 한 것처럼. 전체적인 스토리는 청소년에게 딱 맞을 듯싶지만 남녀노소 누구라도 푹 빠질만한 사랑스러운 소설임에 틀림없다.
 
보일락 말락 하게 현실과 동화 사이를 오가며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다음 내용이 어떻게 이어질지 가슴 졸이게 만드는 환상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고 있다
   
소설의 초반부는 적막함과 절망으로 시작한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고향을 등지고 개발되지 않는 야생의 알래스카에 정착한 잭과 메이블 부부는 50대가 넘어선 나이임에도 자식 하나 없이 외롭게 살고 있다. 사실은 10년 전에 메이블이 남자 아이를 사산한 이후로 아이가 없었다. 아이가 없다는 사실과 주변의 수군거림에 견딜 수 없어진 메이블이 남편 잭을 졸라 알래스카까지 왔지만 대자연은 자신의 품을 그리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삶은 고단했고 경작지를 개간하는 일은 더디기만 했다. 결국 잭은 광산에서 일하며 겨울을 날 계획을 세울 정도였지만 다행히도 인심 좋은 이웃 조지와 그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잭과 메이블 부부는 약간의 위안을 얻게 된다. 조지는 잭에게 알래스카의 겨울을 살아남으려면 무스 사냥에 성공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득한다. 훌륭한 사냥꾼인 조지의 막내아들 개렛은 이미 짝짓기 철이 지나서 무스 사냥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사냥에 서툰 잭은 겨울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도 무스 사냥에 성공하지 못한다.
 
첫눈이 내린 어느 날 저녁 잭과 메이블은 마당에 눈사람을 만든다. 잭이 얼굴을 깎아서 어린 소녀처럼 만들고 메이블은 장갑과 목도리로 눈사람을 장식한다. 그날 밤늦게 잭은 밖에 나갔다가 눈사람이 부서져 있고 목도리와 장갑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눈사람이 있던 곳에서부터 숲으로 이어지는 어린아이의 작은 발자국을 발견한다. 그 뒤고 잭과 메이블은 자신들 오두막집 주위를 맴도는 연한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소녀와 붉은 털 여우를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신비로운 소녀는 눈 덮인 숲 속에 발자국조차 거의 안 남길 정도로 가볍게 뛰어다니며 잭과 메이블에게 죽은 동물이나 야생 열매 같은 것을 선물로 가져다 주기도 한다. 메이블은 자신이 눈사람에게 입혀주었던 털 장갑과 목도리를 두른 그 소녀가 눈사람에서 생겨났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잭은 소녀의 도움으로 500kg은 될법한 엄청난 수컷 무스를 잡고 개렛과 함께 그 무스를 손질해 오두막집으로 가져와 겨우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 겨울 동안 눈 소녀 파이나는 잭과 메이블 부부의 오두막집을 왕래하지만 저녁이 되면 부부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꼭 깊은 숲 속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눈과 함께 소녀는 메이블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걱정하는 잭과 달리 메이블은 눈 소녀 파이나가 다음 겨울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봄이 되어 농사철이 되었지만 잭은 밭을 갈다가 크게 다쳐 꼼짝도 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상황에서 호탕하기 그지없는 조지의 아내 에스더와 그녀의 아들 개렛이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해주며 밭농사까지 책임져 준다.
첫눈이 내리는 날 눈 소녀 파이나는 다시 잭과 메이블 부부의 오두막집의 문을 두드린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어하는 잭과 달리 메이블은 첫눈이 올 때를 준비하며 파이나의 새 외투를 완성시켜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눈 소녀 파이나는 겨울 동안 오두막집을 찾아오다가 봄이 되면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잭과 메이블 부부는 어느 정도 그 상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6년이 흐른 어느 해 겨울 개렛은 파이나의 붉은 털 여우를 쏘아 죽인다. 그리고 오소리를 잡기 위해 점점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다가 올무에 잡힌 백조의 목숨을 빼앗는 파이나를 목격하고 무엇인지 모를 감정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점점 파이나에게 빠져드는 개렛은 그녀에게 강아지를 선물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둘은 매일같이 얼어붙은 강줄기를 따라 눈덮인 숲 속으로 들어가다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잭과 메이블은 아직 어린 나이지만 임신을 하게 된 파이나를 위해 결혼식을 준비하며 둘만의 오두막을 지어줄 계획을 세운다. 아름다운 결혼식이 끝난 후 파이나는 사내아이를 낳고 온 정성을 다해 아이를 돌본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파이나를 낳고 일찍 죽었듯이 파이나도 온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워져 사경을 헤매게 된다. 잭과 메이블 그리고 개렛은 파이나에게 겨울 외투와 신혼 이불을 둘러서 오두막 밖에 눕힌다. 영하 20도의 차가운 바깥공기와 겨울 하늘의 별을 보면서 파이나는 겨우 살아난 듯 보이지만 메이블이 잠깐 잠든 사이 파이나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개렛은 파이나를 찾아 겨울 산속을 헤매지만 메이블은 러시아 동화 속의 눈 소녀처럼 파이나가 눈으로 돌아갔다고 믿는다. 잭과 메이블은 슬픔 속에서도 사내 아기를 돌보며 파이나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삶을 이어간다
   
알래스카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신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동화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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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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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미국 드리마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뿌리]라는 드라마가 리메이크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직 새로 리메이크 된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오래 전에 처음 드라마로 완성된 작품을 본 기억이 난다. 아프리카에서 끌려 온 쿤타킨데와 그의 후손들이 겪는 고난을 그린 이 드라마는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이 원작이다. 알렉스 헤일리는 이 소설로 인해 퓰리처 상까지 수상했고, 그의 작품은 미국 흑인 사회에서 뿌리 찾기의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는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은 형식으로 자신의 조상인 쿤타킨타와 그의 후손들이 당한 고난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조상의 삶을 묘사하는 소설이 있다. 바로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이란 소설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 여성 작가이면서도, 드물게 SF 장르에 도전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이 [블러드 차일드]라는 단편집을 통해 이미 그녀의 독특하고도 예리한 SF세계를 접한 적이 있었다. [킨]이란 작품의 그녀의 장편소설이면서도 이전의 이전의 소설과는 다른 배경을 다루고 있다. 미래사회가 아닌, 과거 남부의 노예사회, 그것도 자신의 조상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간예행 방식으로 과거로 가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다나가 팔 한쪽을 잃은 채 병원에서 깨어나며 시작한다. 경찰관들은 그녀의 남편 캐빈을 유력한 용의자로 구금해놓고 있는 상태였다. 그 뒤로 이야기는 그녀가 어쩌다가 한 팔을 잃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와 캐빈은 둘 다 소설을 쓰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둘이 결혼해서 새 집으로 이사한 날 다나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지며 어지러움을 느낀 후 어딘지 모를 곳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이다. 그곳에는 빨간머리의 한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다나는 그 아이를 물에서 구해 인공호흡을 했고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엄마는 다나가 자기 아들에게 뭔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고 여기며 다나의 등을 마구 때린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빠는 총신이 무시무시하게 생긴 총으로 다나를 위협한다. 그 순간 다시 다나는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갑자기 사라졌다가 거실의 다른쪽에서 나타난 다나를 보면서도 다나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그녀의 남편 캐빈은 다나가 사라졌던 시간이 겨우 2초정도였다고 말해준다. 그날 저녁 다나는 또다시 어지러움을 느끼며 빨간머리 소년의 집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분풀이로 집에 불을 지른 후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겨우 불을 끄고 보니 소년은 몇 년 더 훌쩍 자라있었다. 그리고 그 손년을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다나를 더욱 충격에 빠뜨리게 된다. 다나는 1815년의 메릴랜드로 시간과 공간을 여행했으며 빨간머리 소년 루퍼스 와일린은 다나의 조상 중 한 명이었다. 다나가 알기로 루퍼스는 앨리스라는 흑인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고 다나는 그 아이의 후손 중 한 명인 셈이다.

 

과연 어떤 힘이 다나를 과거로 보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번의 시간여행을 통해 짐작하게 된 것은 루퍼스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빠질 때 다나가 시간을 거슬러 루퍼스를 구하도록 보내진다는 것과 다나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느껴질 때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다. 만약 루퍼스가 앨리스를 만나기 전에 죽는다면 다나 역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다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루퍼스를 위험에서 건져내고 엘리스와의 사이에서 헤이거라는 아이를 낳게 도와야 한다.

 

그러나 루퍼스가 살고 있는 시대는 백인 농장주가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던 끔찍한 시대다. 흑인여성인 다나는 루퍼스가 생명의 위기에 빠질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게 되고 그 때마다 노예들의 비참한 생활을 직접 체험할 뿐만 아니라 루퍼스의 아버지 와일린씨에게 채찍질을 당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루퍼스는 엘리스와 친구로 지내다 언젠가부터 그 이상을 원하게 되었지만 엘리스는 다른 흑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자유를 찾아 도망치다 붙잡힌다. 초죽음이 되어 돌아온 엘리스는 루퍼스와 다나가 정성껏 간호한 덕에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지만 한층 더 루퍼스를 증오하게 된다. 그러나 흑인 노예인 엘리스는 좋던 싫던 결국 루퍼스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나가 루퍼스의 생명을 여러 번 구해주었기에 루퍼스와 루퍼스의 아버지 와일린씨는 다나를 흑인 노예로 대하는 동시에 루퍼스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루퍼스는 다나를 여자로 바라보게 되고 농장의 흑인 노예들은 다나가 농장의 안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하게 된다. 사실 엘리스와 다나는 자매처럼 비슷해보였고 루퍼스는 이상하게도 다나를 자기 옆에서 떨어지지 못하도록 속박하기 시작한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다른 소설들에서는 은연 중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인 [블러드 차일드]라는 소설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외계인이 인간을 인간 소년을 자신의 생명을 잉태하는 숙주로 삼고 있는 끔찍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숙주가 되는 소년이 외계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중적이다. 그는 자신을 지배하고, 숙주로 삼으려하는 외계인 트가토이에게 어머니와 같은 따스함이나, 연인과 같은 마음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이런 이중적인 감정은 [킨]이란 소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나에게 자신의 조상인 루퍼스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그것이 옥타비아 버틀러가 직면한 불합리한 세계의 모순일 것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에게 이 소설은 단순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다루는 소설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녀가 살았던 세상은 여전히 흑백갈등이 존재하는 세상이었으며, 그녀는 그런 세상을 떠날수도 완전히 증오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녀는 자신만의 시간여행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런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 한다.  소설에서 다나는 흑인노예의 신분으로 과거 속에 살면서 자신의 조상인 루퍼스가 관대한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희망하며 그에게 책읽기를 가르쳤다. 그리고 와일린씨의 감시를 피해 흑인 아이들에게도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글을 읽고 쓸 안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세상에 만연한 폭력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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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플레
애슬리 페커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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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에게 최대의 미덕은 아내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다. 아내가 해 주는 요리를 불평하는 사람은 흔히 이야기하는 '간 큰 남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멸종해 가는 '간 큰 남자'의 마지막 종이다. 물론 매 번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요리가 입맛에 맞을 때는 너무 맛있게 먹는다. 그러나 한껏 기대하던 요리가 입맛에 맞지 않을 때는 신랄하게 비판을 한다. 그러면 하루 종일 집안의 냉기가 돈다. 나도 진화에서 살아남은 현대의 남성들처럼 아내의 요리를 맛보며 '당신이 해 준 음식이 최고!'라고 말하고 싶지만, 유전적으로 그런 변죽은 타고나지 못 했다. 

개인적인 생각을 변명처럼 이야기하자면 음식이란 건 항상 맛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도 있고, 맛없는 음식도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맛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음식이란 오히려 맛없을 때가 더 많지 않을까? 그리고 그 맛없는 요리도 요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생이란 어떨까? 인생도 항상 해피엔딩일까? 썸을 타던 남녀는 항상 달콤한 사랑에 빠지고, 갈등에 빠져 있던 가족은 항상 서로를 용서하고, 고생을 하던 삶은 나중에 항상 성공으로 결론이 날까? 아쉽지만 사랑에 실패도 하고, 가정이 깨어지기도 하고, 실패도 경험하고, 그렇게 맛없는 인생도 인생이 아닐까?


 


 

흔히 음식에 관련된 소설을 읽게 되면, 음식처럼 달콤하고 맛있는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썸을 타던 남녀가 달콤한 디저트로 사랑에 빠지고, 갈등을 겪던 가족들이 따스한 밥 한 끼로 하나가 되고, 실패를 경험하던 인생이 구수한 된장찌개를 먹고 새 힘을 내는 그런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 오르한 파묵 이후 최고의 기대작가로 주목을 받고 있는 애슬리 페커의 장편소설 [수플레] 역시 음식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다양한 음식들이 등장하고, 가장 어렵다는 수플레라는 디저트를 요리하는 과정을 매개로 뉴욕과 파리, 이스탄불에 사는 세 명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들의 삶은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다. 한 명의 삶은 지독히 불행하고, 한 명은 어정쩡한 해피엔딩이고, 마지막 한 명의 삶은 불행도 행복도 아닌,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으로 결론 난다.

먼저 지독한 불행을 맛보는 뉴욕의 '릴리아'라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60세가 넘은 필리핀계 이민 여성이다. 필리핀에서는 촉망받는 화가로서 젊은 시절에 미국에 이민을 와서 미국에 동화된 여성이다. 그녀는 '아니'라는 남성과 결혼을 하고, 베트남 고아인 '장'과 '덩'이란 아이를 입양했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에게 헌신하기 위해 시골로 이사를 하고 오로지 가정에 헌신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자 남편은 그녀와 최소한의 대화만을 하고, 아이들은 그녀를 외면한다. 심지어 아이들은 그녀가 자신들을 이용해 정부의 돈을 타내 부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에 아니까지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그녀는 아니의 치료비를 유지하기 위해 하숙생들을 들인다. 일본, 스위스, 스페인 등 다양한 곳에서 온 하숙생들을 위해 요리하며 그녀는 잠시 인생의 행복을 맛본다. 특히 수플레라는 요리를 연구하며 삶의 의욕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하숙생들은 모두 떠나고, 아이들과는 의절하고, 끊임없는 남편의 요구에 그녀는 지쳐간다. 그렇게 그녀의 인생은 쉽게 꺼져버리는 수플레 요리의 거품처럼 가라앉게 된다.

나름 해피앤딩 끝나는 두 번째 삶은 파리에 사는 '마크'이다. 그는 항상 자신에게 따스하고 맛있는 요리를 해 주는 '클라라'라는 아내와 살고 있다. 마크에게 있어 클라라는 그의 삶의 전부이다. 그런 클라라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 마크는 도저히 그 절망에서 해어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아내를 연상하는 주방의 모든 물품을 버리고 새로 시작한다. 서툴레 요리도구를 사고, 요리책을 사서 요리를 한다. 그 과정에서 수플레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회복을 경험한다.

가장 관심을 끄는 분야는 마크가 주방도구를 사러 백화점에 가서 '사비나'라는 여성 점원을 만나는 과정이다. 난생처음 주방 도구를 사러 온 마크는 도무지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른다. 특히 아내가 죽은 뒤 얼마 되지 않아 그의 모습에 고독과 절망이 배어있다. 그런 그에게 사비나가 다가와 친절히 주방도구를 설명한다.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사비나의 도움으로 주방도구를 장만하며, 둘은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 소설의 마지막에는 마크가 사비나를 자신이 처음 여는 파티에 초대하며서 끝난다.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될까?

마지막 삶은 이스탄불에 사는 '페르다'라는 여성의 삶이다. 페르다는 어머니는 거칠고 욕을 달고 산다. 페르다는 그런 어머니에게 떨어지기 위해 일찌감치 시난이라는 남성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녀의 행복은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커피와 함께 파리에서 사는 딸과 통화를 하고, 가끔씩 찾아오는 아들의 손자들과 행복하게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소박한 행복은 그녀의 어머니 '네시베 부인'이 넘어져 걸을 수 없게 되면서부터 깨어지게 된다. 어머니를 자시의 집에서 돌보게 된 페르다는 하루 종일 어머니의 시중을 든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불평을 해대고, 곳 치매가 와서 페르다에게 귀에 담지 못할 욕들을 해댄다. 결국 페르다의 모든 삶은 무너지게 된다. 페르다는 요리를 통해, 쉽게 거품이 꺼지는 수플레 요리를 하며 잠시나마 위안을 받는다. 소설의 끝에서는 잠시 제정신이 돌아온 어머니는 페르다에게 자신이 정신이 들지 않았을 때 했던 행동들을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페르다가 잠시 딸과 통화하러 간 사이에 스스로 삶을 끝낸다. 이건 행복일까? 불행일까? 아니면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삶일까? 


 



 

이 책에서 등장하는 '수플레'란 요리는 쉽게 거품이 꺼지는 최악의 난이도의 디저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그 수플레라는 요리에 도전하고, 그 거품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소설에는 끝내 그 요리에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 인생이 마치 이 수플레란 요리와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항상 성공할 수는 없는 요리, 쉽게 거품이 꺼져버리고, 그 거품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세심한 노력을 해야 하는, 그럼에도 그 요리를 하는 과정 속에서 위안과 행복을 누리는... 있는 그대로의 요리와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소설을 따라가며 삶의 씁쓸함과 달콤함을 동시에 맛보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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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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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랜만에 사촌 동생이 결혼식에 참여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친척들의 행사에는 거의 얼굴을 내밀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이번은 결혼식장이 집 바로 옆이어서 아무런 핑계도 대지 못하고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고,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에는 거의 10년 만에 만난 친척도 있었다. 결혼식을 하는 사촌 여동생 역시 10년 만에 만나 신부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니,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결혼식 후 모두들 다시 모여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10년간의 공백이 매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우리가 타인의 안다는 것은 이렇게 인생의 한순간의 만남을 통해, 비어져 있던 공간들을 채우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공간들이 채워짐으로 한 사람의 인생의 스토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내 인생도 타인에게는 몇 번의 중요한 만남과 그 만남으로 인해 나머지 공간이 채워지면서 한 사람으로서의 인생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되는 것처럼, 순간의 단면들이 연결된 하나의 형체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스톤 다이어리]라는 소설은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캐럴 실즈'는 잘 알려진 캐나다의 대표적인 여성작가이고, 이 소설은 1955년 퓰리처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수상했다. 다만 한 여성의 인생의 전반을 다룬다는 거대한 스토리에 조금은 부담감을 가지고 선뜻 읽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조금은 지루하다는 서평들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 했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자 지루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책의 독특한 구성 탓이었다.

이 책은 한 여성의 일생을 탄생부터 죽음까지 다루고 있지만, 인생의 중요한 몇 가지 순간들만을 단편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것이 연결되는 식이다. 한 챕터가 하나의 단편소설이 될 수 있을 만큼 완성된 이야기 형식을 가지며, 그것들이 연결된 '데이지 굿윌'이라는 한 여성의 삶을 완성한다. 그래서 각 챕터마다 탄생, 어린 시절, 결혼, 사랑, 어머니가 되다. 일, 슬픔, 평온, 노쇠, 죽음같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제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앞에서 개인적인 야기처럼 10년마다 중요한 친척을 만나,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를 듣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러기에 한 사람의 인생을 접하면서도 지루함보다는 호기심과 반가움으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첫 번째 '탄생'에서는 주인공 '데이지 굿윌'이라는 여성의 탄생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어머니 머시 스톤이 채석장에 일을 하러 나간 남편 카일러 굿윌을 기다리다가 갑작스러운 출산을 맞이해 죽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태어나서 이웃집 여성인 클래런틴의 손에 키워진다. 후에 그의 아들 바커와 두 번째 결혼을 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장은 다섯 번째 챕터인 '사랑'이다. 여기서는 데이지 굿윌이 신혼여행에서 남편이 사고사로 죽은 뒤 혼자 생활하다가 캐나다로 여행 가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녀는 여행 도중에 바커 플랫을 만나러 가는 중이다. 바커는 오래전 고인이 된 자신을 키워준 클래런틴 아주머니의 아들로서, 클래런틴과 함께 자신을 키우다시피한 20살 많은 노총각이다. 둘은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와 딸과 같은 관계로 인해 서로의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둘의 심리 묘사가 매우 세밀하면서도 재미있게 표현되고, 결국 이 만난으로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결국 데이지는 바커와의 결혼으로 세 자녀를 낳고, 많은 손자와 손녀를 낳은 후 평범하게 노년을 맡고, 병들고,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저자는 데이지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녀의 인생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어쩌면 불우하다고도 할 수 있는 한 여자의 일생을 저자는 위트스러운 표현으로 매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는 자신의 인생의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는 삶을 살았던 강인한 여자인 데이지 굿윌의 삶은 주위의 증언이나 편지 등으로, 마치 살아있는 인물처럼 다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년에 읽었던 남미의 대표적인 여성작가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란 소설이 많이 떠올랐다. 자신의 할머니를 모델로 해서 칠레의 굴곡진 역사와 한 여인의 삶을 전반적으로 다룬 소설이었다. 이런 가문 소설이나, 인생 소설을 접할 때면 인생을 넒은 시각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안달하고 있는 모든 문제도 인생의 거대한 물줄기처럼 순간의 단면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물줄기는 내 부모에서부터 흘러와서, 다시 자녀에게로 흘러갈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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