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워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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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바로 '시간'이 아닐까? 요즘 거울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 나이 또래에 비해서는 흰머리가 나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지난해부터 머리 옆에 하나 둘씩 새치가 생기더니 이제는 어느덧 곳곳에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든다는 중압감이 밀려온다. 이렇게 이룬 것 없이 시간이 흐른다는 생각이 나를 무기력하게 누른다. 내 몸에서 젊음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주는 우울감과 함께. 그럼에도 시간이 주는 그 무기력감이나 우울감과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며 모든 인간의 운명일 것이다. 그리고 그 무기력감과 우울감에 육체와 정신이 잠식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 또한 인간이 운명일 것이다.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은 싸워야 할 것이다. 삶의 의지가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그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디 아워스]는 바로 시간이 주는 무기력감과 싸우는 세 여인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세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한다. 마이클 커닝햄은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또 원작이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은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은 각각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를 살았던 세 명의 여인의 하루의 삶을 묘사한다. 그런데 그 하루의 삶의 외적으로 일어나는 일에 비중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세 명의 여인의 의식의 흐름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읽는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들이 싸우는 치열한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책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각각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에 살았던 세 명의 여인의 하루의 삶을 교차적으로 반복해서 나열한다. 1923년의 런던 교외의 버지니아 울프의 하루와 194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살았던 로라 브라운 부인의 하루의 삶과 1990년대 뉴욕에서 살고 있는 댈레웨이 부인으로 불리는 클러리서라는 여인의 하루의 삶을 나열한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시대와 장소도 다르고, 전혀 공통점도 없어 보인다. 물론 세 명 모두 댈레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의 주인공과 연관성이 있기는 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레웨이 부인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었고, 로라 브라운은 댈레웨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었고, 클리리서는 자신의 남자 친구인 리처드에게 댈레웨이 부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그러나 소설을 읽다 보면 세 명의 여인을 관통하는 뚜렷한 주제가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이 주는 무기력함이다. 이들 세 명의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면 성공과 행복을 모두 가진 것 같지만, 모두 시간이 주는 무기력함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중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을 쓰면서 계속해서 찾아오는 두통과 무기력과 싸우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항상 병이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며 작업한다. 먼저 두통이 찾아오는데, 어느 모로 보나 일반적인 고통이 아니다. 두통은 그녀에게 스며든다. 단순히 괴롭히는 게 아니라 숙주에 있는 바이러스처럼 그녀 안에 존재한다. 고통의 요소들은 그녀의 눈에 광휘의 파편을 끈질기게 던지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이를 보지 못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한다. 고통은 버지니아라는 존재를 점점 더 고통 자체로 바꿔 버리면서 그녀를 집어삼킨다. 그 진행과정이 너무 강렬하고 그 변덕스러움은 너무 선명해서, 그녀는 고통 자체가 하나의 생명을 가진 어떤 물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래너드와 함게 광장을 이잘 때면 그녀는 조약돌 위로 반짝이는 그 은빛 덩어리를,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찌르며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리면서도 완전한 하나의 덩어리로 남는 고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P 111-2)

로라 브라운 부인은 남편의 생일날 자신을 잠식하는 무기력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뭘 더 바라는가? 자신의 선물이 거절당하고 자신의 케이크가 비웃음 받기를 원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녀는 사랑받기를 원한다. 아이에게 조용히 글을 읽어주는 좋은 엄마가 되기를 바라고, 완벽한 식탁을 준비하는 아내가 되고 싶다. 이상한 여자는 절대로 되고 싶지 않다. 변덕과 분노가 가득하고, 외로움을 타고 뾰로통하며, 참아줄 수는 있지만 사랑스럽지 않은, 여민의 정을 불러일으키는 여자이고 싶지 않다. 버지니아 울프는 코트 주머니에 돌덩이를 집어넣고 강으로 걸어 들어가 물에 빠져 죽었다. 로라는 절대로 자신이 우울해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침대를 정돈하고 진공청소기를 돌릴 것이며 저녁에 생일상도 차릴 것이다. 그 외에는 다른 어떤 일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P 153-4)

마지막으로 댈리웨어 부인으로 불리는 클리리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는 세 명의 여인 중에서 클리러서의 의식이 가장 분명하고 세밀하게 드러나고 있다. 뉴욕의 거리를 걷고, 남자 친구인 리처드의 파티를 준비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그녀의 세밀하면서도 내밀한 의식이 계속해서 드러난다. 마치 봄날에 녹아가고 있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듯한 긴장감이 계속해서 드러난다. 특히 그녀가 싸우는 시간의 무기력은 연인인 리처드와의 관계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에이즈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소설가인 리처드를 무기력에서 건져 내려 애를 쓰는 그녀 역시 계속되는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그러나 이 세 명의 여인들의 싸움의 결과는 어차피 결정이 되어 있는 싸움이었다. 소설의 초반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이미 이들 세 명의 여인의 싸움이 패배할 것임을 확정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는 클리러서의 애인 리처드가 자살하면서 한 말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내가 이 일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어. 당신도 알잖아. 파티와 시상식, 그리고 그게 끝나면 이런저런 시간, 그ㄹ게 끝나면 또 이런저런 시간."

"파티에 안 가도 돼. 시상식에도. 당신은 안 해도 된다고."

"그래도 그 시간들을 남아 있어. 그렇지 않아? 하나의 시간, 그리고 나면 또 그런 시간, 그 시간들을 당신이 다 견뎌낸다고 해도 또 그런 시간이 있어. 세상에, 또 그런 시간이라니. 지긋지긋해."

"당신은 지금도 좋은 날을 보내고 있어. 당신도 알잖아."

"별로.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다니, 당신은 참 착해. 그런데 요새 가끔씩 거대한 꽃의 꽃잎들이 나를 옥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괴상한 비유인가? 아무튼 그래. 식물의 숙명 같은 거랄까. 파리지옥을 생각해봐. 숲을 숨 막히게 만드는 칡을 생각해보라고. 축축한 녹색이 어디로 번성해 가는 과정이지. 어딘지는 당신도 알잖아. 녹색의 침묵,. 웃기지 않아? 지금 이 순에도 '죽음'이라는 단어가 말하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P 292-3)

버지니아 울프도 리처드도 죽어가면서 '실패했다!'라고 말을 한다. 그들이 말하는 실패란 인생의 실패가 아닐 것이다. 그들처럼 치열하게 삶을 산 사람도 없으니까. 그들이 말하는 실패는 바로 시간이 주는 무기력함과 싸움에서의 실패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싸움에서의 실패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시간의 문제이지, 결국에는 정해져 있는 숙명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소설 전반에 흐르는 실패와 연결된 죽음의 이미지, 그리고 그 죽음과 맛 서려는 인물들의 의식의 흐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간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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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
힐러리 맨틀 지음, 박산호 옮김 / 민음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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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고시원에 화재가 나서 7명의 생명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이후 주거 사각지대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실상이 드러나고 있다. 누우면 겨우 발을 뻗을 수 있는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비닐하우스에서 일가족이 생활하는 사람들, 지하 만화방과 같은 곳에서 하룻밤 잠을 자는 사람들... 이런 보도를 볼 때마다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내 감정의 밑바닥에서는 알 수 없는 두 가지 감정이 일어난다. 하나는 낯선 감정이다. 아무리 뉴스 영상을 통해 그들이 사는 공간을 보여줘도 그곳은 내가 사는 곳이 아니기에 낯선 공간처럼 보인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또 하나는 두려움이다. 저런 공간에 내가 떨어진다면 어떨까? 그 공간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마치 그 공간이 나를 빨아들이는 듯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개인에게 있어서 타인의 공간은 낯설고 두려움의 대상이다. 소설을 통해 타인의 삶을 접했을 때 느끼는 낯설고 공포적인 감정을 그대로 그리고 있는 작가가 있다. 한 번 수상하기도 힘들다는 맨부커상을 유일하게 두 번이나 수상한 '힐러리 맨틀'이란 작가이다. 힐러리 맨틀의 소설은 주로 다른 종족이나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접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관습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이 과정에서 인종혐오나 사회적 차별들을 교훈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이 자신과 다른 타인과 접하는 과정을 마치 SF 영화의 주인공이 낯선 우주 생명체와 접하는 과정처럼 낯설면서도 공포스럽게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한 낯선 감정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이 책에는 작가의 열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첫 소설인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에서는 사우디에 근무한 남편을 따라 생활하는 한 여성의 시각에서 자신의 집을 방문한 한 파키스탄인을 묘사하고 있다. 더위와 권위적인 종교적 관습에 갇혀 주로 방안에서만 생활하던 주인공은 우연히 자신의 집을 방문한 한 파키스탄인 남성 '이자즈'를 만나게 된다. 이후에도 이자즈는 계속 주인공의 집을 방문하다. 그녀는 이자즈를 만나면서 그에게 호감을 가지지만, 한편으로는 또 알 수 없는 혐오감을 느낀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남편과 함께 마지못해 파키스탄인의 초대를 받아 그의 집을 방문했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항구 근처에 자리한 이자즈 가족의 아파트는 음식 냄새와 가구들로 꽉 차 있었다. 손이 닿는 곳마다 사진이 놓여 있었고, 카펫 위에 또 카펫이 깔려 있었다. 더운 밤이었고, 에어컨이 힘겹게 돌아가는 내내 잔기침을 해 가면서 물과 함께 곰팡이 홀씨와 병균을 뱉어 냈다. 식탁에 깐 리넨 테이블보는 축 늘어져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술 장식이 많았다. 나는 그 장식들을 계속 만지작거렸는데 마치 테디 베어의 귀처럼 나일론 털 같은 촉감이 있었다. 나는 바짝 긴장했지만 그 술 장식을 만지면서 마음이 좀 편해졌다. 식탁에는 둔해 보이는 노파가 앉아 긴 턱을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쩝쩝거리고 있었다. (P 36)"

작가의 이런 주제의식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두 번째 작품인 콤마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 친구와 대저택에 들어가 휠체어를 탄 장애를 가진 아이를 관찰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그들은 휠체어에 탄 아이를 문장의 콤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콤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아이의 모습을 처음 가까이서 봤을 때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는 봤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뭔가 보긴 봤지만 아직 뭔가가 되지 못한 상태였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우리가 본 건 얼굴이 아니라 어떻게든 얼굴이 되려고 하는 형상, 아마도 신이 우리를 만들려고 했을 때 막연히 상상하던 그런 형태 같았다. 우리가 본 공 같은 그것은 이목구비가 없었고, 어떤 의미도 없었고, 그냥 얼굴뼈 위로 살이 주르르 흘러내린 것 같았다. (P 69)"

이 소설집의 제목이자, 마지막 소설은 [마거릿 대처 암살 사건]이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마을에 대처 수상이 눈 수술을 받기 위해 방문한다. 주인공이 집에서는 대처 수상이 수술을 받는 병원이 잘 보인다. 기자들과 관광객들이 마을에 진을 치고 있는데 누군가가 주인공의 집에 들어온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이들이 보일러 수리공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는 사진기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들은 대처 수상을 암살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소설에서는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지만 아마 아일랜드 사람인 거 같다. 주인공은 이들에게 두려움과 함께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들을 탈출구인 벽에 있는 문으로 인도하면서 그 문을 이렇게 묘사한다.

"벽에 있는 문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것은 병약한 아이의 위로이자 죄수의 마지막 희망이다. 헐떡거리는 단말마의 괴로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떨어지는 깃털처럼 한숨을 쉬며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한 쉬운 출구다. 나무나 철을 지배하는 어떤 법칙도 따르지 않는 문이다. 어떤 자물쇠 수리공도 이 문과 맞서 이길 수 없고 어떤 집행관도 차고 들어올 수 없는 문이며, 믿음을 지닌 자의 눈에만 보이기 때문에 순찰하는 경찰관들도 그냥 지나치는 문이다. 일단 그 문을 통과하면 당신은 공기와 불꽃과 불길로 돌아온다.(P 278)"

비록 소설들을 다 읽고 저자의 주제의식을 통해 작품들을 다시 곱씹으면서 리뷰를 쓰고 있지만, 막상 처음 이 소설들을 한 편 한 편 접할 때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이질적이고 공포스러운 묘사에, 무언가도 확실히 드러나기 전에 갑자기 소설을 끝내버리는 저자의 방식이 읽는 내내 혼란스럽고 불편하게도 했다. 그런데 그런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이상하게 소설을 읽고 나서도 깊은 여운을 느끼게 한다. 처음 접한 작가의 작품이어서 아직 힐러리 맨틀이라는 작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해 깊이 있는 평가를 내릴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읽어보고 싶은 매력적인 작가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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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맨 앤드 블랙
다이앤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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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가도 죽음은 낯설다. 호상이라고 불리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죽음부터, 내 또래의 낯선 사고사까지, 하다못해 나와 일면도 없는 유명 대배우의 죽음까지... 죽음은 항상 우리에게 낯설다. 특히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죽음을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더욱 낯설다. 그러나 너무 뻔한 말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에 점점 죽어간다. 인생은 죽음과 함께 한다. 생각하기 싫은 진리이고 평상시 잊어버리고 살기 쉬운 사실이지만, 이것을 기억하고 살면 우리 인생이 좀 더 지혜롭고 가치 있어지지 않을까?

벨멘 앤드 블랙]은 이런 죽음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저자인 다이앤 세터필드는 [열세 번째 이야기]로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작가이다. [열세 번째 이야기] 저자의 첫 작품으로 영국의 부유한 앤젤필드 가문에 숨겨져 있는 3대에 걸친 광기 어린 사랑을 그리고 있다. 사랑을 잃어버린 버린 사람과 가문, 그리고 건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벨맨 앤드 블랙] 역시 전작과 주제는 비슷하다. 그러나 전작보다 조금 더 분위기가 어둡고, 시대적인 묘사가 뛰어나고, 죽음에 대한 메시지가 더 강렬하다.

소설은 비록 윌리엄 벨맨이란 주인공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지만, 이 부분은 에필로그 성격이 강하고 소설의 본격적인 시작은 윌리엄이 10세 때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사촌인 찰스, 빵집 아들인 프레드, 그리고 대장장이 집 아들인 루크와 함께 들판을 뛰놀다가 떼까마뀌 를 발견한다. (소설에서 '떼까마귀'로 번역되어 있어, 읽는 내내 여러 마리의 까마귀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일반 까마귀보다 좀 더 큰 까마귀의 한 종류이다) 윌리엄은 멋진 새총과 뛰어난 실력으로 떼까마귀를 맞추어 죽게 한다. 그때부터 윌리엄의 인생은 변하기 시작한다.

이후 소설은 윌리엄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죽음의 이미지가 지배한다. 그러나 전반부에 있어서는 그 어두운 이미지가 간간이 등장하고, 주로 윌리엄의 성공적인 인생을 이야기한다. 찰스의 아버지이자 윌리엄의 큰아버지인 폴은 윌리엄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자신의 방직공장에서 일하게 한다. 윌리엄은 성실함과 뛰어난 재능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방직공장에서 점점 승승장구한다. 그러는 사이에 할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죽고, 큰 아비지 폴도 죽는다. 죽음으로 인해 힘들어했지만, 그는 사랑스러운 여자인 로즈를 만나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점점 성공한다. 큰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방직공장을 물려받아 점점 더 크게 성장시킨다. 행복이 절정인 순간에도 어두운 그림자는 그를 쫓아다닌다. 어린 시절 함께 까마귀를 죽였던 친구들도 차례대로 죽는다. 그리고 1부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마을에 열병이 돌아 자녀들이 죽고, 아내마저 죽는다. 이제 윌리엄은 인생이 자신을 가지고 놓다고 생각하며 절망에 빠진다.

"술에 취한 어느 순간, 윌리엄은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세계, 이 우주, 그리고 만약 존재한다면 신까지도, 인류와는 대립관계에 놓여 있었다. 새롭게 드러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행복은 잔인한 장난이었다. 자신이 운이 좋다고 믿게 만들어놓으면 나락으로 끌어내리기가 한결 쉬울 테니까. 그는 자신의 본질적인 미천함을, 운명을 통제하려 했던 허영심을 깨달았다. 방직공장 주인 윌리엄 벨맨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긴 세월, 그는 자신의 힘을 믿었고,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 그를 짓밟을 수 있는 거대한 경쟁자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다. 그의 노력과 재능으로 일구어낸, 견고하다 믿었던 성공과 행복은 민들레 홀씨만큼이나 연약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정체불명의 경쟁자가 숨을 한 번 훅 내쉬자 홀씨는 사라져버렸다. 지금껏 왜 그걸 몰랐던가? 모든 걸 알았던 그였는데? 무엇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무지 속에 살게 했던가? (P 182)"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죽으려 하나, 마지막 순간에 블랙을 만난다. 그리고 그와 계약을 한다. 2부부터는 소설이 한층 더 어두워진다. 아내와 자녀들을 잃은 벨맨은 오로지 사업에만 매달린다. 그 사업이란 블랙과 계약한 '벨맨 앤드 블랙'이란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당시로는 획기적으로 장례용품과 장례식을 기획하는 회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사업은 점점 번창하고 막대한 돈을 벌어드린다. 그러나 정작 윌리엄 자신은 점점 고독해지고, 외로워진다. 그리고 결국에 블랙이 찾아와 자신의 지분을 요구한다.

소설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여러 부분에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에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정확한 의미를 해석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소설 마지막 부분에 저자의 주제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결국 인생의 죽음과 동행하는 거이라고, 그리고 죽음 앞에 남는 것은 인생의 추억뿐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살아 있는 삶을 즐겨야 한다고... 벨맨의 죽음과 함께 열병으로 겨우 살아난 딸 도라가 다시금 육체적으로 소생하는 장면을 통해 저자는 이 부분을 보여준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저자인 다이앤 세터필드의 시대적인 분위기가 무척 뛰어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내내가 19세기 영국의 방직공장의 시골마을의 모습, 영국의 상가의 모습들이 그대로 그려졌다. 또한 윌리엄을 둘러싼 개인의 감정 묘사 부분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인생에서 한 인간이 느끼는 다채로운 감정의 묘사가 소설에서 등장한다. 무엇보다도 살과 죽음에 대한 저자의 깊이 있는 생각이 소설에 배여 있다. 저자의 다음 소설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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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 인생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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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릴 적에는 위인전들을 좋아했다. 그중에서 가장 좋아한 인물은 나폴레옹이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를 외치며, 이각 모자를 쓰고 알프스 산을 넘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동경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나폴레옹의 말년을 읽을 때면 어린 나이에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한때 러시아까지 진격해서 세계를 점령할 것 같았지만, 노년에는 모든 것을 빼앗기고 외딴 섬에 갇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나폴레옹을 죽인 것은 적군도 아니고, 러시아의 추위도 아니었다. 노년의 황량함과 쓸쓸함이 나폴레옹의 생명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갔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말년의 나폴레옹 이미지가 계속해서 떠오른다. 늙어간다는 것은 젊을 날의 열정과 의지들이 점점 자신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닐까? 남는 것은 나이 든 육체와 주변의 쓸쓸함과 황량함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가끔 요양병원에서 아무런 소망이 없이 주저앉아 있는 노인분들을 보거나,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병상에 누워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내 안에서 젊었을 때 뜨거웠던 열정과 의지들이 빠져나가려 할 때마다 몸부림치며 이것들을 붙잡게 된다. 
   
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가 쓴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를 읽을 때면, 육체의 나이 듦에 저항하여 끝까지 자신만의 열정과 의지로 살아가는 노인들을 만나게 된다. 메르타 할머니와 그의 친구들인 천재, 갈퀴, 스티나, 안나 그레타가 그들이다.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는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로 시작해서 [메르타 할머니, 라스베이거스를 가다]에 이어 3편인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인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1편에서 메르타와 노인들은 요양원의 무료하고 소망 없는 삶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다른 삶을 살고자 한다. 그 다른 삶이라는 것이 바로 감옥이다. 메르타가 생각하기에 요양원의 삶이 감옥의 삶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감옥에 가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처음에는 고급 호텔에 투숙하면 스파의 캐비닛의 귀금속을 터는 정도가 고작이었는데, 점점 스케일이 커지더니 결국에는 박물관의 그림을 턴다. 그것도 르누아르와 모네의 작품을... 2편에서 노인들은 라스베이거스로 여행을 떠나면서 우여곡절의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3편에서 노인들은 스케일이 커졌다.

3편에서는 시작부터 노인들의 은행털이가 시작된다. 소설의 초반에 노인들은 대형 쓰레기차를 몰로 은행을 턴다. 폭탄으로 금고의 문을 폭파시키고, 쓰레기 흡입기로 돈과 보석들을 흡입한다. 물론 모든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흡입기의 버튼을 잘못 조작해 흡입했던 돈을 다시 토해내기도 하고, 경찰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지독한 청어 냄새의 쓰레기를 사방에 뿌려대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대형 쓰레기차를 잘못 주차시켜, 이웃집 수영장으로 처박아 버린다. 수습하는 스케일도 남다르다. 수영장에 빠진 증거품인 쓰레기차를 처리하기 위해 수영장을 콘크리트로 매립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노인들의 강도행각은 의도하지 않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게 된다.

콘크리트로 메꾼 이웃집 수영장을 해결하기 위해, 이웃집 주인에 대해 조사하던 그들은 깜짝 놀랄 사실을 알아낸다. 이웃집 주인이 희대의 사기꾼이자 어마한 조세포탈꾼임을 안 것이다. 그에 비하면 지금까지 노인들의 강도행각은 오히려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꿈인 노인마을인 빈티지 마을을 세우기 위해 이웃집 주인의 요트를 훔치기로 결정한다.

3편에서는 커진 스케일과 함께 노인들의 목적의식과 사회비판적인 생각도 분명해진다. 그 전에 메르타와 노인들은 단순히 양로원의 무료한 삶이 싫어서, 또는 일탈을 꿈꾸면서 강도행각을 저질렀었다. 그러나 3편에서 이들이 은행을 털고, 요트를 훔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다. 그들은 빼앗은 돈으로 병원과 복지시설 등에 돈을 나누어 주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훔친 돈을 손세탁하기 위해 카리브 제도의 은행으로 보내는 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궁극의 목적이 있다. 그것은 노인들만을 위한 노인 마을을 세우는 것이다. 노인들이 여유롭고 우아한 여생을 보낼 수 있는 노인마을, 일명 빈티지 마을을 세우는 것이 메르타 할머니의 꿈이다. 또한 전편에서보다 더 강한 사회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곳곳에서 관료들의 탁상행정으로 통한 엉터리 복지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다.

"메르타는 할 수 없이 옆에 있는 빈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눈물이 나려고 했다. 사회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지도자들이 현실과 만나지 않고 사무실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다. 은행을 털어서 부정한 돈을 빼내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은, 이런 부조리로 인해 생긴 틈을 메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잘못되어 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기반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모든 것 속에 개인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관공서들이 돈벌이 사업을 하고, 시장과 도지사들은 이익만 남기려고 한다. 그들이 내린 결정이 돌물들이 아닌 바로 인간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잊고 있는 것일까? (P 317)"

그래서인지 3편은 전편에 비해서 분위기가 조금 무겁다. 항상 긍정적이고 유모가 넘치는 메르타 할머니도 3편에서는 조금 지쳐 보인다. 강도 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그 강도 생활을 통해 얻은 돈을 가지고 세상의 방식과 타협하지 않고 돈을 나누어 주려고 하다 보니 힘든 문제가 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메르타와 노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싸워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현실에 순응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젊었을 때는 작은 불합리에도 분노하고 대항하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는 말로 세상과 싸우기를 포기한다. 그러면서 꿈을 잃어간다. 세상이 정해 준 대로 열심히 직장을 다니고, 통장에 돈을 불리고, 아파트를 사고, 노후를 준비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모두들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늙었어도 세상의 불합리에 분노하고, 세상을 바꾸려는 꿈을 가지고, 자신 안의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몸부림을 가지고 싸우는 사람은 늙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반면 아무리 젊었어도, 세상에 순응하며, 꿈과 열정을 잃어가는 사람은 그 안에서 이미 늙음에 지배 당하는 사람일 것이다. 메르타 할머니처럼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꿈을 가지고 세상에 도전한다면 노후도 멋진 삶의 일부분이지 않을까? 내가 재미있는 소설을 너무 무거운 시각에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메르타 할머니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메르타 할머니의 우아한 강도인생]에서 점점 사회적인 책임감이 강해지는 메르타 할머니를 만나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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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영화는 극장에서 상영이 끝나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게 만든다. 이미 상영은 다 끝나고 불이 켜져 사람들이 일어서 나가는데도, 혼자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있다. 영화가 주는 강렬한 감동이, 때로는 처연한 슬픔이 나를 그 자리에 잡아 둘 때가 있다. 소설 중에도 그런 소설이 있다. 소설의 끝장을 덮었음에도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서 그 소설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가 있다. 소설을 읽은 후에도 며칠 동안 소설의 이미지가 문뜩 문뜩 머리에 떠오를 때가 있다. 소설이 주는 감동의 이미지나 슬픔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소설이 끝났음에도 그 이미지가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경우이다.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이라는 소설이 그랬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도, 아직도 이 소설 케이시와 수전의 사랑이 나를 붙잡고 있다. 과연 이런 처절한 사랑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은 서로를 그렇게 아프게 했음에도 이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서로에게 아프게 할만큼 서로를 사랑했을까? 그리고 그런 대가를 치를 만큼 그들의 사랑은 가치가 있었을까?
 
[연애의 기억]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의 1부에서는 철없는 - 물론 소설의 주인공은 그 당시 절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 19살의 케이시와 48살의 유부녀 수전의 만남과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방학을 맞아 런던 외곽의 조용한 마을에 돌아온 케이시는 엄마의 권유에 테니스 클럽에 가입한다. 당시 테니스 클럽은 영국의 보수적인 중산층 이상이 사람들의 사교 장소였고, 케이시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례를 생각해서 가입을 하게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케이시는 그곳에서 수전을 만난다. 처음에는 그냥 테니스 동료로 만나다가 서로 친근하게 되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처음에는 각자의 삶의 영역을 유지하며 사랑을 하지만, 결국 사랑의 도피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이제는 나이가 든 케이시가 마치 젊은 날의 추억을 회상하듯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읽었을 때는 젊은 날에 관습과 뛰어넘어 뜨거운 사랑을 한 노인이 젊은 날의 사랑을 감성에 젖어서 회고하는 정도로만 느껴진다.
 
그런데 2부가 되면 이야기의 분위기가 전혀 다른 분위기로 전개된다. 런던의 허름한 건물을 사서 도피한 두 사람은 처음에는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그곳에서 수전 서서히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 1부에서는 케이시와 수전이 단순히 서로에 대한 열정으로 사랑을 하고 도피를 한 것처럼 보였지만, 2부에서는 그 속 사정을 이야기한다. 케이시의 남편은 지독한 술꾼으로 술만 먹으며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으며, 그로 인해 케이시를 만나기 오래 전부터 둘은 각 방을 쓰고 있었다. 계속되는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수전을 보호하기 위해 케이시는 수전과 도피를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수전은 점점 망가져간다. 계속해서 우울증에 시달리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 술을 마시고, 그리고 결국은 스스로를 무너뜨려 간다. 케이시는 10년 가까이 그 과정을 지켜본다. 케이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고, 어느 시점이 되어 감당할 수 없는 지점이 되어 간다.
 
소설의 마지막인 3부에서는 나이 든 케이시가 자신과 수전과의 만남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독백처럼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너무나 강렬했기에 그는 더 이상 수전과 같은 사랑을 하지 못하고, 그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한다. 그러나 그 기억은 아름다운 기억인 동시에, 어둡고 황량했던 어두운 기억이었다. 그는 평생 자신의 사랑의 실체가 무엇이었는지, 자신이 기억 중 무엇이 맞는 지를 고민한다. 아니, 자신이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고민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익숙한 기억의 문제. 그는 기억이 믿을 만하지 못하고 치우쳐 있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어느 쪽으로 치우쳤을까? 낙관 쪽으로? 그게 처음에는 말이 되었다. 사람들은 과정를 기분 좋게 기억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해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어떤 승리라고 볼 필요는 없지만 - 그 자신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 재미있고, 즐길 만하고, 좋은 목적을 추구했다고 자신에게 말할 필요는 있었다. 좋은 목적을 추구했다? 그 말은 약간 인생을 과장하는 것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낙관적인 기억은 인생을 떠나는 것을 쉽게 해줄지도 모르고, 소멸의 고통을 완화해 줄지도 몰랐다. 하지만 똑같이 그 반대도 주장할 수 있었다. 기억이 비관 쪽으로 치우쳐 있다면, 돌아보았을 때 모든 게 실제로 그랬던 것보다 검고 황량해 보이고, 이렇게 되면 삶을 떠나는 게 더 쉬워질 수도 있다. (P 292)"
 
케이시에게 수전과의 사랑은 아름답고 즐거운 기억일까? 아니면 검고 황량한 이는 기억이었을까? 어쩌면 그 둘 다가 아니었을까? 아름다웠지만, 검고 황량함을 내포한 처연하고 슬픈 사랑이 아니었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된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이라는 노랫말이 떠올랐다주로 아름다운 기타와 하모니카를 반주로 김광석의 담담하면서도 처량한 목소리가 들린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 이제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를

 

어쩌면 소설 속 케이시의 심정이 이렇지 않았을까? 너무나 강렬했고, 외면할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다시는 그런 사랑을 하지 않기를, 만약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면 수전이라는 여성을 만나지 않기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소설은 케이시의 시각에서만 이야기가 되기에, 수전이 왜 그렇게 망가졌는지 자세히는 알 수가 없다. 그러기에 소설을 읽는 내내 수전의 아픔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면서도, 왜 그렇게 자신을 망가뜨리고, 옆에 있는 케이시까지 망가뜨려야만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그러나 소설 중간 중간에 이미 수전의 어두움이 암시되어 있다. 수전은 케이시를 만나는 순간부터 농담처럼 이렇게 말을 한다. "아직은 나를 포기하지 말아줘!" 그리고 또 비슷한 농담도 한다. "나는 지금 이렇게 사라지고 있어!" 이미 수전은 암환자가 자신 안에 있는 암세포가 자신을 잠식해 가는 것을 느끼듯이,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이 자신을 잠식해 가고 있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케이시와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소설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수전 역시 스스로 무너지는 자신을 느끼고, 그런 자신 옆에서 함께 무너지는 케이시를 보며 가슴 아파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처음 시작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을 한다.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아니면 덜 하고 덜 괴로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 (P 13)”
 
이 고민은 작가만의 고민이 아니라, 케이시와 수전의 고민이었을 것이다. 둘은 사랑하면서 매순간 이렇게 고민했을 것이다.
 
가을 날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또 지나간 사랑이나 변해가는 사랑으로 가슴 아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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