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술 - 작가들의 이유 있는 음주
올리비아 랭 지음, 정미나 옮김 / 현암사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칼 구스타프 융의 그의 책에서 심적 인플레이션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우리의 심리도 에너지를 통해 움직이는데, 어느 순간 이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 상태를 심적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잘 방출하면 훌륭한 학자나 작가가 되지만, 방출하지 못하고 쌓아두면 니체나 고흐같이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융이 말하는 심적 에너지가 철학자나 작가를 만드는 예민한 감수성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심적 에너지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마 작가로서의 역량일 것이다. 문제는 이것은 마치 작가로서의 천형(天刑)과 같다는 것이다. 이런 남보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뛰어난 작가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로 인해 평생 고통 당하고 괴로워해야 할 테니까. 어쩌면 작가는 평생 자신 안의 자신과 처절히 싸우면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

 

영국 작가이자 평론가인 올리비아 랭의 [작가와 술]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저자가 뉴욕에서부터 시애틀까지 여행을 하면서 미국의 유명한 작가인 스콧 피츠제럴드, 테네시 윌리엄스, 헤밍웨이, 존 치버, 레이먼드 카버, 존 베리먼과 같은 작가들의 삶의 장소를 방문하는 과정이다. 이 작가들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의 위대한 작가이면서도, 평생 알코올중독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마치 작가와 술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제목은 작가와 술이지만, 원제는 [THE TRIP TO ECHO SPRING]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에코 스프링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 나오는 대사이다. 술주정뱅이 브릭이 아버지에게 훈계를 들은 후 그의 목발을 달라고 한다. 아버지가 묻는다. '어딜 가려고?' 그러자 브릭이 대답한다. '에코 스프링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려고요.' 여기서 에코 스프링은 브링의 술장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에코 스프링을 위대한 작가들이 몸부림치며 도피하려 했던 공간으로 본다. 그들은 무엇에 그렇게 괴롭힘을 당하고, 어디로 도피하려 했을까?

 

이 책의 초반에서 중반까지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가는 테네시 윌리엄스이다. 저자는 뉴욕에서 테네시 윌리엄스가 주로 활동했던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면서 그의 처절한 삶과 함께 그의 작품의 주옥같은 대사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술독에 빠져서 살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내면을 파헤친다. 테네시 윌리엄스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유럽 여행 중에서 강렬한 불안증을 경험했던 그는 일평생 이 불안증에 시달려야 했다. 극작가로서 성공한 후에도 주위의 기대감에 의한 압박에 시달렸고,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술을 택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술과 함께 호텔방에서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저자는 이렇게 자신의 현실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던 테네시 윌리엄스의 내면을 그의 작품 [유리 동물원]에서 마술을 보고 온 톰이 누나에게 흥분해서 이야기하는 대사를 통해 설명한다.

"하지만 제일 신기했던 마술은 관 마술이었어, 마술사가 관에 들어간 뒤에 우리가 못을 박았는데 못을 한 개도 제거하지 않고도 그 마술사가 관에서 나오지 뭐야. 나한테 쓸모 있을 만한 마술이야. 이 비좁은 공간에서 빠져나가게 해줄지도 모르니까." (P 73)

 

마이애미로 이동하면서는 존 치버와 헤밍웨이를 자주 언급한다. 저자는 존 치버에 대해서는 그가 두 개의 자아를 만들고, 끊임없이 중산층적인 미국인의 멋진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고 말한다. 그는 작가로서 명성이 없이 집안에만 있을 때도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양복을 입고 아파트를 나와서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 글을 섰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행동은 그의 어린 시절의 수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는 치버가 자신의 선배 작가인 피츠제럴드에게 공감을 느끼고, 그의 전기를 쓴 것도 이런 아픔을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남자는 자신의 태생에 대해 심한 수치심을 느꼈고, 치버의 경우엔 신체적으로 음낭이 움츠러드는 느낌마저 느꼈다. 피츠제럴드는 외가인 맥퀼란가를 1850년의 감자 기근을 겪은 가난한 아일랜드의 전형이라고 말했지만 맥퀼란 가는 신세계로 이주한 이후 열심히 일해서 중산층 상인으로 자리 잡으며 꽤 성공을 거두었다. 치버도 피츠제럴드도 모두 부모에게 귀여움을 받지 못하며 자랐다. 또 둘 다 운동을 잘 못했고 학교에서 최하위 빈곤층 학생에 드는 것을 의식하며 고통스러워했지만 이를 보상하기라도 하듯 반 아이들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이야기 짓기 재주가 탁월했다. (P 215)

마이애미의 키웨스트는 헤밍웨이가 10년 넘는 세월을 산 곳이다. 그곳에서 그는 [무기여 잘 있거라]와 같은 명작을 발표했다. 그 역시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고, 결국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다. 그는 아버지와의 갈등, 이혼과 결혼 등의 과정에서 심한 우울증을 시달렸고, 그 우울증을 이기기 위해 술을 빠져 살았었다.

저자의 종착역은 레이먼드 카버의 고향인 워싱턴 주의 시애틀이다. 저자는 그곳에서 처절했던 레이먼드 카버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그는 어린 시절 메리언과 결혼하고, 작가의 꿈을 꾸기 위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쓴다. 그럼에도 그는 그는 현실이 주는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술에 빠져 산다.

"메리언 혼자만 전력을 다해 일했던 것은 아니다. 카버도 독학을 하고 식비를 벌면서 그 남는 시간을 최대한 쥐어짜 글을 쓰느라 아등바등 살며, 그 시절에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생했다. 이런 궁핍한 환경이었다면 선뜻 이해가 간다. 술을 의지처나, 잠긴 문을 열어주는 열시처럼 여기며 시작했을 만도 하다가, 그의 아버지는 직장 생활을 지루함에서 탈피하고 생존의 압박을 가라앉히기 위해 술을 마셨다. 카버에게도 억눌러야 할 비통함이 있었다. 그는 시간을 헛되이 쓰고 있다는 생각에 자책하며 비통함을 느꼈다. 스물일곱 살이 되도록 여전히 잡역부로 일하며 머시 병원의 복도나 걸레질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괴로울 만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H 가의 파이어사이드 라운지에 들어가 한잔하며 괴로움을 달래면서, 야간 근무 일인 보일러 제조공 일에 지장이 되는 것까지 감수하며 짐 덩어리 같은 자식들을 부양하며 또 하루를 시작할 마음을 다졌을 만도 하다." (P 386)

예전에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을 읽으며 술에 빠져 스스로와 주변 사람을 파괴하는 인물들을 보고,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작가의 삶을 통해서 비로소 그의 작품들의 인물이 이해가 된다. 이런 것을 해석학이라고 하지 않을까? 텍스트 뒤에 있는 더 거대한 텍스트를 읽으며, 비로소 그 텍스트를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 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미국 작가들의 삶과 그의 작품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 주는 고마운 책이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테라스하우스 2017-03-03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고민하고 잇엇는데 사서 봐야겟네요ㅎㅎ

가을벚꽃 2017-03-04 17:0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저도 술과 작가에 대한 가벼운 책인 줄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단 미국 현대작가들의 인생과 작품에 대해서 깊이 있는 해설을 하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중간 중간 저자의 이야기도 가슴 뭉클하구요...미국 현대작가들에게 관심이 있다면 강력히 추천해 드리고 싶은 책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