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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 - 현실 자매 리얼 여행기
한다솜 지음 / 비채 / 2019년 7월
평점 :
예전에는 과감히 여행을 떠나는 날들이 많았다. 무언가 삶에서 답답함을 느끼면 만사 제쳐두고 배낭을 들고 산을 오르거나 바닷가에 여행을 갔다.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몸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여행을 한 번 떠나려고 하면 생각할 것들이 많아진다. 지금 남아서 해야 할 것들, 필요한 경비들, 낯선 곳에서 고생할 일들이 떠올라서 쉽게 결정을 못 내린다. 주변에서 휴직을 하면서까지 과감히 몇 달씩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존경심까지 든다. 그런 존경심을 가지게 하는 자매들을 만났다. [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에서 스스로를 한자매라고 부르는 스물다섯과 서른의 자매이다.
이 책은 언니인 한다솜이 동생인 한새미나와 함께 215일간 24개국 54개 도시를 여행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먼저 떠나는 과정부터가 관심을 끈다. 평범한 직장이었던 저자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버킷리스트 1번인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 메모장을 정리하다가 그동안 적어놓은 '버킷리스트'를 보게 되었다. 리스트에는 언제 이룰지 모르는 꿈들이 가득했다. 세계여행 가기,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하기, 스킨스쿠버 자격증 따기, 해외로 카페 투어 떠나기... 목록을 쭉 읽다가 이유 모를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서른 살, 나는 무엇을 이루었을까? 나는 지금에 만족하고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 자신에게 물었지만, 무엇 하나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만의 삶이 아닌 그저 남들과 같은 인생을 사는 것 같아 회의감도 생겼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의 삶을 한번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카페 투어도 하고 마라톤도 완주해보자고. 메모장 한구석에 잠들어 있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깨워 세상으로 꺼내보자고 말이다." (P 19)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의 상황에 너무 큰 공감이 되었다. 언제까지 미루기만 한다면 그 꿈은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감히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런 결단에 동조하는 마음이 확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녔던 여행경비를 산출한 것이다. 숙박비나 체류비가 아니라 24개국 54개 도시의 교통경비만 무려 천이백만 원이 넘었다. 그러니 다른 경비들까지 합치면 얼마일까? 자신의 직장, 자신의 시간,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정까지 모두 부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해 간다는 것이 너무 멋지면서도 도전적으로 느껴졌다. 다행히 동생이 함께 가기로 결정하면서 두 자매의 세계여행은 시작한다.
첫 번째 여행지는 러시아이다. 러시아에서 유심칩을 구하지 못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한 경험, 그래서 숙소를 찾아 헤맨 경험, 그 유명한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탄 경험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동유럽과 터키 영국 등 유럽을 여행한 경험들이 나온다. 터키에서는 비행기 표를 잘못 예약해서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강행군하는 이야기도 있다. 때로는 실수와 고생, 그리고 그것들을 한 번에 잊게 하는 황홀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개인적으로 유럽의 여행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이다. 언제가 방송을 통해 본 이후 나 역시 이곳에 매료되어 있었다. 멋진 산과 호수, 그리고 동화와 같은 성들. 나 역시 꼭 한 번 여행해 보고 싶은 곳이다.
저자의 취미답게 여행지마다 멋진 카페들을 꼭 들른다. 빠듯한 여행경비에 마음이 조급할 텐데 멋진 카페에서 감미로운 음료수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찾아가는 저자의 낭만이 너무나 부럽다. 영국에서는 유명한 '초코 커피'집을 방문한다.
"5분 정도 기다리자, 작고 귀여운 하얀 컵 가득 초콜릿이 가득한 '초코 커피'가 나왔다. 얼른 수저로 커피를 조금 떠서 맛보았다. 다크초콜릿의 씁쓸함으로 시작하여 화이트 초콜릿의 달콤함으로 끝나는,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나는 커피를 음미하며 창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어떻게 하면 나의 세계여행이 더 풍성해질까 생각해 보았다. 그때 떠오른 생각은 멋진 사진 찍기, 나의 버킷리스트 실천하기,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과 교류하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가 나의 여정을 가장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꼭 카페에 가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P 125)
두 자매의 여행은 미국과 남미,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대만과 홍콩을 거쳐 귀국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코타키나발루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석양이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가고 싶어 했지만 아직 못 간 곳이다. 저자의 글과 사진으로나 그곳의 감동을 함께 느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세계 3대 석양으로 유명하다는 탄중아루 해변이다. 빨리 걸어온 덕분에 다행히 일몰 전에 도착했다. 동생과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닷물에 발을 담가본다. 발바닥 부드러운 모래가 느껴지고, 시원한 바닷물이 발등에 찰랑인다. 모래밭에 자기 이름을 쓰고 사진을 찍는 동생이 보인다. 그 유치한 장난을 이곳에서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바닷가에 가면 항상 했던 것 같다. 드디어 큰 구름 사이로 석양이 비치기 시작한다. 태양이 수평선과 가까워질수록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이런 풍경에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관경이 펼쳐졌다." (P 371)
이 책은 215일간의 긴 여정을 한 권의 책에 담았기에 여행지 한 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느낌 등은 별로 없다. 한 곳 지나가면서 저자가 느꼈던 순간의 느낌이나 감동 등을 이야기한다. 어떤 한 나라나 지역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세계여행이라는 큰 흐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저자를 따라서 나 역시 세계여행을 떠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짜로 그렇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을 보면서 저자의 결단이 부러웠고, 저자가 여행하는 아름다운 경치들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