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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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남쪽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어린 시절 살던 시골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무엇에 이끌렸는지 이미 떠난 지 30 년이 되어서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그 마을을 찾아갔다. 뉴스에서만 보았는데, 실제로 시골마을에 들어서니 빈집이 많았다. 마치 사람들이 떠난 폐허를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 한 명 마주치지 않고 마을을 걸어서 마을 끝에 있는 뒷산과 맞닿아 있는 우리 집이 있던 자리에 이르렀다. 사람 키가 넘는 잡초들 사이에 무너진 집터만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나서 영상통화를 했다. 영상으로 잡초가 우거진 우리가 살던 집과 주변을 보여 드렸다. 이것저것 묻던 어머니가 갑자기 말이 없으셨다. 우시는 것 같았다.

 

빚으로 쫓겨나듯이 그곳을 떠날 때까지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을 나가시면 밤늦도록 언덕 위의 집에서 아랫마을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외롭고 쓸쓸했을 법도 한데, 그때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무언가 기다림으로 인해 희망 비슷한 것들이 있었나 보다. 어린 시절 그곳을 떠난 후 여러 번의 이사를 다녔지만, 이상하게 어린 시절 가족과 관련된 꿈을 꿀 때면 꼭 그 집이 배경으로 나온다. 그렇게 행복했던 시기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그 초라한 집에서 안정감을 누리고 꿈을 꾸었나 보다. 그리고 그 꿈들이 나를 이끌고 여기까지 걸어오게 했는지도 모른다. 굽이굽이 인생의 골목에서 때로는 주저앉고 싶을 때, 그때에 가졌던 감정들이 나를 다음 골목까지 걸어갈 힘을 주지는 않았을까.

 

한지혜 작가의 산문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으며 다시금 어린 시절 그 집을 생각했다. 저자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내가 살아온 인생과 묘하게 중첩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항상 일을 나가시던 부모님. 빚쟁이에 쫓겨 숨으시던 어머니. 집으로 올라가던 어둡고 누추했던 길. 쥐가 나오는 어두운 다락방이 있는 집. 그리고 그 다락방 속에서 동화와 세계문학전집들을 읽는 경험까지. 내 인생의 여러 부분과 닮아 있었다. 그 후에 이어지는 세상의 차가움과 맞닥뜨렸던 20대 시절. 퇴사와 함께 삭막한 세상 속에 던져졌던 30대 시절. 그리고 힘겨운 결혼 생활까지. 모든 부분에서 닮아 있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 차갑고 삭막한 세상을 마주하며 걸어간다. 외면하고 도망가고 싶었던 그 시절을 자신의 인생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저자의 인생관은 어렸을 때 그 어둡던 다락방에서 책을 읽던 시기에 이미 자리 잡게 되었던 것 같다. 저자가 어린 시절 마지막으로 읽은 동화는 이중홍 작가의 [못나도 울 엄마]라는 동화이다. [못나도 울 엄마]는 밖에서 주워왔다는 놀림을 당하는 어린아이의 엄마가 실제로 늙고 미치고 가난한 노파일 수도 있다는 내용의 동화이다. 이 동화를 통해 저자는 동화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들어선다.

 

"아마도 착하고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그 동화는 그러나 내가 이제까지 읽은 적 없던 잔혹동화였다. '주워 온 아이'라는 말은 내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흔한 놀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놀림에 속상해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놀림이 진실이기를, 내게 다른 부모가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부모는 지긋지긋한 가난 대신 넓은 집과 예쁜 옷을 주는 부모일 거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언제고 부자 엄마나 부자 아빠가 찾아오면 크게 좋아하는 내색 없이 적당히 아쉽고 슬픈 척 지금의 가난한 부모와 헤어지리라 다짐했다. 내가 믿고 따르던 동화의 세계도 늘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 내게 [못나도 울 엄마]는 현실이 더 잔혹할 수 있다는 것, 내 바람과 정반대로 흘러갈 수도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 그 삶을 끝끝내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P 30)

 

저자는 그렇게 차갑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길들을 걸어간다. 그냥 어쩔 수 없이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 차가운 인생길에서도 하늘에서 내리는 따스한 눈을 느끼며 걸어간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참 괜찮은 눈이 온다]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살아왔던 인생길들을 '골목'으로 표현하며 그 골목에서 마주했던 풍경들과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대학 졸업 후 힘들게 했던 취직과 막막했던 퇴사의 과정. 결혼 후 자녀를 키우면서 놓지 않았던 글쓰기에 대한 간절함. 그리고 지금의 시대를 자신과 같이 힘겹게 걸어가고 사람들을 안타까움으로 바라보는 이야기 등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걸었던 골목들은 [못나도 울 엄마]의 동화 속에 나오는 냉혹한 현실의 세계였다. 작가의 말대로 잔혹한 세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는 그 골목들의 바닥을 움켜쥐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간다.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삶 같지만, 실은 한자리에 꽂혀 한자리에서 늙어가는 식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수명 다한 식물을 뽑아내다 보면 흙 위에서 어떤 꽃을 피웠고 어떻게 시들었든 한결같이 넓고 깊은 흙을 움켜쥐고 있다. 바닥을 치고 딛는 힘이 강할수록 꽃도 열매도 실하다. 사는 게 어려울 때, 마음이 정체될 때, 옴짝달싹할 수 없게 이것이 내 삶의 바닥이다 싶을 때, 섣불리 솟구치지 않고 그 바닥까지도 기어이 내 것으로 움켜쥐는 힘, 낮고 낮은 삶 사는 우리에게 부디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P 182)

 

독서의 경험 중에서 특히 에세이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저자의 살아온 인생과 그 인생을 살아온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특히 치열한 인생을 살아온 작가일수록 그가 쓴 에세이에는 인생의 묵직함이 담겨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때로는 소소한 이야기 속에, 때로는 삶의 깨달음 속에, 인생의 차가운 골목을 걸어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특유의 글의 향기가 난다. 그것이 이 책에서는 작가가 골목에서 맞는 눈의 이미지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계속해서 떠오르는 동화가 있었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동화이다. 이 동화 속에서는 하나님이 천사에게 차가운 겨울날 쌍둥이 소녀의 어머니를 데려 오라고 명령한다. 하나님이 명령이 너무나도 잔혹하다고 생각해서 천사는 거부를 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천사를 세상에 던져 둔다.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를 깨달을 때까지 하늘로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 오랜 기간 천사는 세상 살이를 하면서 인생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때 고아가 된 쌍둥이를 돌보고 있는 한 부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두들 어려운 시기라고 말한다. 길가 상가에는 퇴직 후 마지막 재산을 털어 넣었던 자영업자들이 자신의 가계에 폐업이라는 푯말이 붙이고 있다. 어려서부터 냉혹한 경쟁 속에 내 몰려 치열하게 공부를 마친 사람들은 막상 아무 곳에도 취직하고 길거리로 나오고 있다. 경쟁 속에서 밀리고 짓밟힌 사람들이 차가운 거리에서 눈을 맞고 있다. 이들이 살아가는 골목에서 다음 골목까지 넘어갈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톨스토이의 말처럼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말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냉혹하지 않을까. 그 차가운 현실 속에서 한 순간 느끼는 따스한 눈. 그것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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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 - 현실 자매 리얼 여행기
한다솜 지음 / 비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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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과감히 여행을 떠나는 날들이 많았다. 무언가 삶에서 답답함을 느끼면 만사 제쳐두고 배낭을 들고 산을 오르거나 바닷가에 여행을 갔다.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몸도 마음도 무거워진다. 여행을 한 번 떠나려고 하면 생각할 것들이 많아진다. 지금 남아서 해야 할 것들, 필요한 경비들, 낯선 곳에서 고생할 일들이 떠올라서 쉽게 결정을 못 내린다. 주변에서 휴직을 하면서까지 과감히 몇 달씩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존경심까지 든다. 그런 존경심을 가지게 하는 자매들을 만났다. [스물다섯, 서른, 세계여행]에서 스스로를 한자매라고 부르는 스물다섯과 서른의 자매이다.

 

이 책은 언니인 한다솜이 동생인 한새미나와 함께 215일간 24개국 54개 도시를 여행한 기록을 담은 책이다. 먼저 떠나는 과정부터가 관심을 끈다. 평범한 직장이었던 저자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버킷리스트 1번인 해외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스마트폰 메모장을 정리하다가 그동안 적어놓은 '버킷리스트'를 보게 되었다. 리스트에는 언제 이룰지 모르는 꿈들이 가득했다. 세계여행 가기, 마라톤 하프코스 완주하기, 스킨스쿠버 자격증 따기, 해외로 카페 투어 떠나기... 목록을 쭉 읽다가 이유 모를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서른 살, 나는 무엇을 이루었을까? 나는 지금에 만족하고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 자신에게 물었지만, 무엇 하나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나만의 삶이 아닌 그저 남들과 같은 인생을 사는 것 같아 회의감도 생겼다. 그래서 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의 삶을 한번 살아보자고 생각했다.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카페 투어도 하고 마라톤도 완주해보자고. 메모장 한구석에 잠들어 있는 나의 버킷리스트를 깨워 세상으로 꺼내보자고 말이다." (P 19)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의 상황에 너무 큰 공감이 되었다. 언제까지 미루기만 한다면 그 꿈은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감히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런 결단에 동조하는 마음이 확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녔던 여행경비를 산출한 것이다. 숙박비나 체류비가 아니라 24개국 54개 도시의 교통경비만 무려 천이백만 원이 넘었다. 그러니 다른 경비들까지 합치면 얼마일까? 자신의 직장, 자신의 시간, 그리고 자신이 가진 재정까지 모두 부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해 간다는 것이 너무 멋지면서도 도전적으로 느껴졌다. 다행히 동생이 함께 가기로 결정하면서 두 자매의 세계여행은 시작한다.

 

첫 번째 여행지는 러시아이다. 러시아에서 유심칩을 구하지 못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한 경험, 그래서 숙소를 찾아 헤맨 경험, 그 유명한 러시아 횡단 열차를 탄 경험 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동유럽과 터키 영국 등 유럽을 여행한 경험들이 나온다. 터키에서는 비행기 표를 잘못 예약해서 10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강행군하는 이야기도 있다. 때로는 실수와 고생, 그리고 그것들을 한 번에 잊게 하는 황홀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나온다.

 

개인적으로 유럽의 여행지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이다. 언제가 방송을 통해 본 이후 나 역시 이곳에 매료되어 있었다. 멋진 산과 호수, 그리고 동화와 같은 성들. 나 역시 꼭 한 번 여행해 보고 싶은 곳이다.

 

저자의 취미답게 여행지마다 멋진 카페들을 꼭 들른다. 빠듯한 여행경비에 마음이 조급할 텐데 멋진 카페에서 감미로운 음료수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찾아가는 저자의 낭만이 너무나 부럽다. 영국에서는 유명한 '초코 커피'집을 방문한다.

 

"5분 정도 기다리자, 작고 귀여운 하얀 컵 가득 초콜릿이 가득한 '초코 커피'가 나왔다. 얼른 수저로 커피를 조금 떠서 맛보았다. 다크초콜릿의 씁쓸함으로 시작하여 화이트 초콜릿의 달콤함으로 끝나는,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나는 커피를 음미하며 창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어떻게 하면 나의 세계여행이 더 풍성해질까 생각해 보았다. 그때 떠오른 생각은 멋진 사진 찍기, 나의 버킷리스트 실천하기,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과 교류하기 같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행복해하고 좋아하는 시간을 많이 갖기'가 나의 여정을 가장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다. 새로운 도시에 갈 때마다 꼭 카페에 가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P 125)

 

두 자매의 여행은 미국과 남미,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거쳐 대만과 홍콩을 거쳐 귀국을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코타키나발루 도시이다. 세계에서 가장 석양이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가고 싶어 했지만 아직 못 간 곳이다. 저자의 글과 사진으로나 그곳의 감동을 함께 느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세계 3대 석양으로 유명하다는 탄중아루 해변이다. 빨리 걸어온 덕분에 다행히 일몰 전에 도착했다. 동생과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바닷물에 발을 담가본다. 발바닥 부드러운 모래가 느껴지고, 시원한 바닷물이 발등에 찰랑인다. 모래밭에 자기 이름을 쓰고 사진을 찍는 동생이 보인다. 그 유치한 장난을 이곳에서 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바닷가에 가면 항상 했던 것 같다. 드디어 큰 구름 사이로 석양이 비치기 시작한다. 태양이 수평선과 가까워질수록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이런 풍경에서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아름다운 관경이 펼쳐졌다." (P 371)

 

이 책은 215일간의 긴 여정을 한 권의 책에 담았기에 여행지 한 권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나 느낌 등은 별로 없다. 한 곳 지나가면서 저자가 느꼈던 순간의 느낌이나 감동 등을 이야기한다. 어떤 한 나라나 지역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세계여행이라는 큰 흐름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저자를 따라서 나 역시 세계여행을 떠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짜로 그렇게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을 보면서 저자의 결단이 부러웠고, 저자가 여행하는 아름다운 경치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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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사람의 속마음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2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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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을 좋아해서 자주 읽다 보니 자주 오사카나 간사이 지방에 관한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간사이 지방이나 오사카라는 지명이 많이 언급된다. 오래전에 읽은 [예스터데이]라는 소설의 주인공 역시 간사이 지방 출신인데, 도쿄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도쿄 출신이면서도 간사이 사투리를 아주 멋들어지게 구사하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는 간사이 사투리로 '예스터 데이'라는 노래를 개작해서 부르기도 한다. 왜 간사이 사투리를 사용하냐는 질문에 한신타이거스의 팬이어서 함께 응원하고 싶어서 사투리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소설을 읽으며 간사이 사투리가 어떤 느낌일까? 또 간사이 사람들에게 한신타이거스는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런 느낌을 조금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책을 만났다. 한국에 비교적 유명한 만화가 겸 에세이스트인 마스다 미리의 [오사카 사람의 속마음]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부모님과 함께 오사카 출신인 작가가 직접 이야기하는 오사카 사람들의 특징과 오사카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일본 문화를 잘 모르기에 오사카 사람들의 특징은 잘 모르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오사카 사람들은 매우 붙임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든다. 어디 가서든지 쉽게 이야기하고 친해지는 분위기이다. 만화와 함께 진행되는 에세이에서 오사카 출신의 어머니와 함께 옷 가게를 가서 점원과 쉽게 친해져서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가게에서도 주인과 쉽게 친해져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더 재미있는 것은 작가는 일찍이 도쿄로 올라와서 표준말을 사용하는데, 물건을 깎을 때며 저절로 간사이 사투리를 사용하게 된다고 말한다.

 

점원이 샐러드를 담은 용기를 보여 주면서 확인한다.

"고객님,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데, 같은 값이라면 더욱 그렇잖아, 이 대목에서 내 뇌세포가 오사카 사투리를 긴급 소환했다.

"쬐금 더, 앞쪽의 큼직한 놈들도 넣어주면 안 될까요?"

점원이 흠칫 내 어굴을 쳐다 보았다.

내친 김에 연달아 공략하는 나

"어째 자투리가 많아 보이는데, 200그램이나 사니까 뭐냐, 좀 먹음직스러운 쪽도 넣어주셔야죠."

스스로도 우어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말, 오사카에 살던 시절엔 해본 적 없으니까.

- P 33

 

이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마트나 시장에서 흔히 보는 장면들이 연상되었다. 사투리를 써가며 물건을 깎아달라고 하면 점원도 웃으면서 그냥 수긍해 주는 경우가 있다. 사투리라는 것이 인간의 계산적인 논리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무언가 강력한 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사카 하면 역시 한신 타이거즈인가 보다. 이 책에서 한신 타이거즈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특히 한신타이거즈가 우승을 하면 오사카 사람들은 에비스바시라는 다리 위에서 도톤보리 강에 옷을 벗고 뛰어내린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어마어마한 인파였다. 다리 무너지겠네, 할 정도로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도톤보리 강에 뛰어들 집단과 나를 포함해 그걸 굳이 보러 온 집단. 에비스바시는 그야말로 할 일 없는 인간들의 축제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다이빙하러 온 집단도 다시 두 그룹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뛰어들 작정으로 온 그룹, 분위기에 취해 우쭐해서는 얼떨결에 뛰어들게 된 그룹. - 중략- 기본적으로 처음부터 뛰어들 작정으로 온 사람은 티셔츠에 바지, 비치 샌들 같은 가벼운 복장이다. 하지만 현장 분위기에 휩쓸린 즉흥파는 퇴근길에 동료들과 구경 삼아 들른 정도니까 양복 차림이다. 양복이가 난간에 올라서면 구경꾼들이 당연히 대대적인 환영이다. '바-보, 바-보, 바-보'하는 열화와 같은 합창이 터지고, 양복입은 남자는 모두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일념으로 귀중품을 동료에게 맡기고 다리 밑으로 사라진다. 대체 젖은 양복으로 집에 어떻게 돌아갈 셈이었을까? 그 순간에는 뒷일 따위 안중에도 없었으리라" (P 39-40)

 

나 역시 2002년 월드컵을 경험했기에 이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이 책은 여러 가지 오사카 사람들의 성향과 사투리 등을 이야기한다. 글과 그림으로 오사카 사람들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한국에서는 특정 지역 사람들을 비난하는 말투나 유머들이 많다. 그 지역 사람들은 항상 ~~해!라고 비난하는 것은 그나마 신사적이고, 악질적인 단어들을 붙이며 특정 지역을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어떤 가수가 어느 지역에 가서 그 지역 사람들은 뿔이 난 줄 알고 있었다는 말로 인해 시끄럽다. 그만큼 한국 특정 지역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가 심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본에는 이런 것들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도쿄 사람들이 오사카 사람들을 대할 때 비교적 친근감 있게 대하는 내용들이 나온다. 자신과 다른 상황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대하는 내용들이 많이 언급된다. 일본보다 훨씬 작은 한국에서도 서로에 대한 호감으로 대하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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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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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읽은 시기는 군대에 입대하기 바로 전이다. 학교를 휴학하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다가 문득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게 되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상실의 시대의 감성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군대에서 [태엽감는 새]를 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총 4권으로 출간된 이 책은 휴가 때마다 한 권씩 사서 읽으며 하루키의 세계관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결국 4권은 제대 후에 읽었다. 이렇게 하루키와 청춘의 시기를 보내서인지 하루키에 대해 애정이 남다르다. 계속해서 출간되는 대로 하루키의 책을 읽고 있지만, 예전의 하루키의 감성을 느낄 수 없어서 조금 안타까운 면이 있다. 내가 변한 걸까? 아니면 하루키가 변한 걸까? 하루키의 에세이 [장수 고양이의 비밀]이 새로 출간된다고 해서, 예전의 에세이집을 다시 읽었다.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이다. 이곳에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하루키가 예전 모습 그대로 있었다.

 

여러 편의 에세이 중에 가장 하루키 다운 에세이가 있다면 [청춘이가 불리는 '심적 상황의 끝에 대해서'라는 글이다. 하루키의 소설의 주된 테마는 상실의 시대로 표현되는 사라지는 세계이다.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항상 이중적인 세계가 등장한다. 자신이 존재했던 세계와 새로운 세계이다. 하루키의 소설에서는 항상 전자에 대한 그리움이 있지만, 그 세계가 사라져 감을 또한 한편으로는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이 에세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현재 배도 나오지 않았고, 몸무게도 대학 시절과 거의 다르지 않고, 다행히 아직은 머리숱도 많다. 내세울 것은 건강 하나, 병 한 번 앓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세월이란 것은 자기 몫을 걸어간다. 당연하다. 세월이란 그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세월이 세월의 기능을 하지 않으면 우주의 질서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니 나이 드는 게 딱히 서럽지는 않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서럽다고 여기지 않는다. 뭐 이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P 21)

 

그리고 하루키의 소설 [애프터 다크]를 떠올릴 만큼 감수성이 풍부한 글 솜씨로 자신이 청춘이 사라졌던 아자부의 한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 레스토랑에서 하루키는 우연히 옛 여자친구를 닮았던 한 여인과를 만났고, 대화 중에 "내가 옛날에 알았던 한 여자와 참 많이 닮았군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라는 말을 한다. 그러자 여자는 자신을 유혹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루키는 갑자기 서글퍼진다.

 

"그녀의 말에 화가 났다거나 불쾌한 감정을 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포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기분도 이해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아마 몇 번이나 그와 비슷한 말을 들어왔을 것이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이니 갖가지 성가신 일과 혐오스러운 일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는 쉬 불쾌한 경우에 처하는 법이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아자부의 세련된 레스토랑의 한 테이블에서, 내 안의 무언가가 사라지고 훼손되고 말았다. 그것은 틀림없었다. 내가 줄곧 신뢰하며 살아왔던 어떤 유의 무방비함이 - 유보 조건 없는, 있는 그대로의 무방비함 같은 것이 그녀의 말 한마디에 어이없이 사라지고 상실되고 말았다." (P 25)

 

하루키의 상실의 모티브가 여기서 나왔을까? 아니면 이 사건도 하루키가 겪었던 수많은 상실 중의 한 단면이었을까?

 

 

 

에세이의 제목이기도 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에는 하루키만은 독특한 백일몽이 나온다. 너무 솔직하면서도 공감이 갈 것 같으면서도 가지 않는 하루키만의 꿈 이야기이다.

 

"제 꿈은 쌍둥이 여자친구를 갖는 것입니다. 쌍둥이 자매 둘 다 제 여자친구인 것 - 이것이 십 년 동안 품어온 제 꿈입니다" (P 61)

 

저금 황당하게 시작한 이 에세이에는 하루키의 소박한? 꿈 이야기가 들어있다.

 

"나는 파티라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초대받아도 가지 않는 게 보통인데, 만약 쌍둥이 자매를 에스코트할 수 있다면 생활 패턴을 적극적으로 바꿀 의향이 있다. 딱히 미인이 아니라도 좋다. 미인이 아니라도 별 상관없다. 아주 평범한 여자 쌍둥이로 족합니다. 꼬드기고 싶다거나, 같이 자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나는 그저 쌍둥이 자매와 파티에 가고 싶을 뿐이다. 왠지 아주 특별한 경험하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들 뿐이다." (P 62)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의 소설 [태엽감는 새]를 연상시키는 에세이도 있다.

 

"그래봐야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다. 시계의 태엽을 감는 것은 이를 닦거나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거나 아침에 신문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활에 단단히 뿌리내린 일상적 행위였으며, 우리는 태엽을 감는 행위를 통해 시계와 정을 나누었다. 그런 시대에 시계는, 좀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 가족의 일원이었다. 아버지는 낡은 스위스제 손목시계의 태엽을 감고, 어머니는 나비 모양 금속 막대기로 벽 시계의 태엽을 감고, 아이는 자명종의 태엽을 감았다. 그것은 일일이 기억하고 생각할 정도도 아닌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였으며, 불현듯 시계와 눈이 마주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태엽을 감았다. 좀 이상한 예기지만, 옛날에는 종종 시계와 마주쳤다. 요즘에는 그런 일마저 없어져 버렸다. 물론 우리는 매일 시계를 보고 있지만 '눈이 마주치는' 느낌은 이제 없다. 사이는 좋아도 정열이 식어버린 연인들처럼." (P 121)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에 출간되었지만, 대부분 1980년대에 하루키가 쓴 글들을 모아 놓은 에세이이다. 그 시기에 하루키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실의 시대]로 번역된 [노르웨이의 숲]이라든지, [양을 둘러싼 모험]과 같은 초기 작품들을 출간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에세이에는 하루키의 초창기 가성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다. 나같이 하루키의 초기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리워하는 하루키의 초기 감성을 만나기에 좋은 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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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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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길거리나 마트, 공공장소에서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독특해서, 어떤 사람은 너무 기분이 나쁘게 행동해서 기억에 남게 된다. 이런 일들을 글이나 그림으로 기록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과 똑같은 생각을 한 작가가 있다. 일본 작가 가마타미와이다. 저자는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자신의 재미있는 경험을 만화 형식으로 재미있게 그렸다. 사실 만화라고는 하지만, 개인적인 글이나 메모들도 많아 마치 한 사람의 일기장을 엿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우선 이 책에는 흔히 가게나 길가에서 만나는 독특한 사람들과 일화가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작가가 여성이어서 그런지 유독 옷 가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아주 우아한 여성 옷 가게 주인이, 갑자기 자기 화장 지우면 남자같이 생겼다고 조금은 말하는 부분은 조금 징그럽기도 하다.

 

 

 또 갑자기 우리 딸과 몸매가 비슷하다면 옷 좀 대신 입어 봐달라는 부분에서는 남성이 나도 비슷한 경험이 많아서 공감이 많이 간다. 젊었을 때는 유독 백화점이나 옷 가게에 가면 어머니 또래 되시는 분들이 우리 아들과 체형이 비슷하다며 한 번 입어 봐달라고 부탁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최근에는 내가 옷을 입고 있으면 점원에게 저분이 우리 남편과 체형이 비슷하다면 입고 있는 옷 좀 보여달라는 분도 계시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내가 대한민국 표준체형이라는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독특한 행동과 말을 하는 분들과의 만남에 대한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빵 가게 진열장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아저씨가 어느 순간 '결심했어!'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빵 터지기도 했다. 왜냐하면 비록 할아버지는 아닌데, 내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최근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기에 음식의 유혹과 치열한 싸움 중이다. 가장 힘든 부분은 헬스장 밑 건물에 중국집이 있다는 것이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허기진 배로 나오면 바로 엄습하는 치명적인 중국집 음식 냄새. 거기에다가 중국집 앞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자장면을 맛있게 흡입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보인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 역시 혼자 말고 '결심했어!'라고 외치며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데 이렇게 유쾌한 만남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어디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저자가 여성이다 보니 흔히 이야기하는 변태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돈을 제시하면서 스타킹을 벗어 달라는 사람, 가게에서 은근히 성희롱을 하는 사람, 특히 일본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제는 사회 분위기가 개방적이어서 그런지, 같은 여성에게 성적으로 접근해 오는 황당한 경험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가 여행이나 방송으로만 접하는 일본의 문화나 골목길의 가게, 또는 여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사진과 글까지 첨부해 가며 저자의 여행과 느낌을 이야기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이렇게 그림과 사진으로 후기를 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부담 없이 타인의 재미있는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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