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들른 오래된 시장 한켠에 위치한 국밥집은 여전히 문이 닫혀 있었다. 한달 전 들렀을 때도 닫힌 출입문에 붙은 A4 용지에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나 싶어 전화해보니 손자가 받았다. 얼마전 국밥집 옆 계단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중이시라는 말에 얼른 나으시라는 인사를 전한 기억이 났다. 옆집에 들어가 국밥을 시켜 놓고 주인장께 옆집 할머니 안부를 물으니 며칠 전 돌아가셨고 이미 장례도 마친 상태라고 했다.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국밥을 앞에 놓고 앉아 있으니 문득 가슴 한켠이 조금 아렸다. 국물이 넘어가도 아린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식사중 반주를 하지 않는데 오늘은 왠지 그래야만 했다. 한 잔을 비우고 다시 채운 잔은 향을 대신해 탁자 맞은 편에 올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좋은 곳 가시라고.


국밥집에 처음 들른 것은 반 년 정도 전이었다. 낡은 재래 시장을 지날 일이 있었는데 문득 고등학교때 이 곳 어디에서 순대와 떡볶이를 먹은 기억이 나서 무작정 건물로 들어선 길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아도 그 장소를 찾을 수는 없었고 마침 출출하던 차라 낡은 국밥집으로 들어섰다. 탁자와 벽지와 식기에서는 손때 묻은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고 시장 바깥쪽 유리문을 통과한 햇살이 세월 위에 반사되어 식당 전체가 푸근했다. 고기를 많이 넣어줄까? 라는 말과 함께 나온 국밥은 지금까지 먹어본 국밥중 고기가 가장 많아서 그릇 밖으로 자꾸 넘치려고 했다. 젊은 사람이 밥 한그릇으로 되겠냐며 자꾸 더 가져다 먹을 것을 권하셨다. 고기가 너무 많아 계산 별도로 하는 거 아니야? 라는 다소 치졸한 의심을 하였는데 젊은 사람 일하려면 많이 먹어야 해서 고기 많이 넣었다는 답변에 스스로 미안해졌다. 그 미안함에 이 곳 근처를 지날때마다 국밥을 먹었다. 밥 먹는 동안 할머니는 보통 옆 자리에 앉아 손자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식당 한 구석 칸막이로 별도 구분한 좁은 공간에서 아버지를 일찍 잃은 두 손자와 함께 살을 에는 듯한 추운 겨울을 살아왔노라고, 그래도 주눅들지 않게 키워보려고 열심히 살았노라고, 지금은 두 손자 모두 공무원이 되었고 첫째는 얼마전 손자 며느리도 데리고 왔노라고 말을 이어갔다. 기억력이 좋지 않으신지 매번 처음 본 손님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틀니를 끼지 않으셨는지 오므라진 입술 위에 쪼글쪼글 맺혀진 주름이 인절미 드시던 외할머니 입술 같기도 했고 이 하나 남지 않은 웃음 띈 붉은 잇몸이 아이의 해맑음을 떠올리게도 했다. 국밥을 앞에 두고 매번 할머니의 똑같은 삶의 말들을 들어야했는데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온 힘을 다해 말한다는 것,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 삶을 대여섯번 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뱉어내어지지 않는, 기억 속에서나 가끔 살아날 누군가의 삶이 되어 버렸다.


뜻하지 않게 소주 한 병을 다 마셔버리고 나온 어두운 복도, 햇살이 닫힌 출입문 너머 오래되어 윤기가 흐르는 탁자에서 빛나고 있었다. 몽환적인 햇살 사이로 피어오르던 먼지의 어른거림이 누군가의 영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련함이 낮술 때문인지, 어떤 기억 때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다시는 마주칠 수 없는 기분임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반주는 싫어하지만 나이 먹을수록 가끔은 홀로 낮술을 마실 일들이 종종 생기는 일을 막을 방법은 없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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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6-02-26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죽음 앞에서는 숙연해집니다.
잉크냄새님께서 마신 소주 한 병에 우리의 마음이 다 담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