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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전화
일디코 폰 퀴르티 지음, 박의춘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보면 가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읽거나 언급하는 책에 관심이 가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이 책 읽어봐야지'하고 생각해놓고 서지정보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그 책을 꼭 읽게 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그렇게 미루고 까먹은 책들은 얼마나 많은지. 문득 그간 만들어놓은 리스트를 들춰보다가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 속에 나온 리스트를 다시 보게 됐고, 그 속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음 날 도서관에 갔다가 운명적(?)으로 이 책을 만나 왠지 모를 기대감을 안고 읽어갔다.
이 책을 읽기 전 알고 있던 정보라면 주인공이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의 이야기라는 것 정도. 사실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중. 연애를 할 때 내가 먼저 전화를 하면 왠지 쉬워보일까봐(?) 애써 전화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상대방이 전화를 걸어주기를 바라는 많은 여성들처럼 이 책의 주인공인 코라 휩시도 주말 저녁에 전화한다는 남자(다니엘 호프만)의 말만 생각하고 주말 저녁 내내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전화를 해볼까하고 몇 번이고 수화기를 들었다 놨다하며 6시간 47분을 보낸다. 그동안 코라 휩시의 머리 속에는 다니엘 호프만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비롯해 다양한 생각이 오고가는데... 과연 코라 휩시는 다니엘과의 통화에 성공할까?
예쁘고 귀엽다는 의미의 이름과는 달리 머리카락은 제멋대로라 수습이 안되고, 은근 통통한 몸매라 데이트 내내 배에 힘을 주고, 속옷으로 몸매를 보정해 애써 섹시하게 보이려고 하는 33세의 코라 휩시. 그녀는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전화를 기다려봤고, 또 자신의 몸매에 대해 불만을 가진 적이 있을테니까. (간혹 안 그런 축복받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독일판 <브리짓 존스의 일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브리짓 존스->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그보다 캐릭터는 살짝 죽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다. (영화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읽어가며 공감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한 번쯤 전화를 기다리며 초조함을 느꼈던 분들이나, <브리짓->류의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 그리고 지금 전화를 기다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벼운 느낌의 책이고 결국엔 뻔한 결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은 시간은 아깝지 않았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