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봄날과 잘 어울리는 푸릇푸릇한 표지에 끌려서 읽게 된 책. 가토 유키코라는 다소 낯선 일본 작가의 책이라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표지처럼 풋풋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읽기 전에는 '꿀벌'이라는 단어때문에 순간 움찔하기도 했는데(어릴 때 벌에 쏘여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럴듯) 책을 읽으며 꿀벌이,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한없이 사랑스러워졌다.

  도쿄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던 리에는 어느 날 동거하던 연인 류가 훌쩍 떠나자 감기를 핑계로 회사를 며칠 쉰다. 좀체 다시 출근하고픈 마음이 나지 않았던 리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한다. 아빠의 자살 이후 줄곧 삐걱거리는 관계를 유지한 엄마와 떨어져 살고 싶었기에 이왕이면 입주해서 일할 수 있는 회사를 찾다가 눈에 띈 '꿀벌의 집'에 찾아가 작은 마을에 간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데서 살까라고 생각했지만 리에는 도쿄의 시끌벅적함 속에서도 외로움을느꼈던 이전과는 달리 면접 뒤 다시 도쿄에 올라와서도 계속 꿀벌의 집에서 느꼈던 분위기를 곱씹는 자신을 발견한다. 다행히 면접 합격 소식이 오고 리에는 꿀벌의 집에서 초보 양봉가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꿀벌의 집 사장이자 씩씩한 양봉가인 기세 씨를 비롯해 폭주족 출신의 무뚝뚝한 겐타, 세상을 무서워하는 아케미 등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양봉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몰랐던 리에는 양봉에 대해 하나씩 배워가는 한편 그 과정에서 자신을 누르고 있었던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해가기 시작한다. 

  '꿀벌의 집'이라는 공간은 어떻게 보면 꿀벌들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꿀벌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이라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여왕벌은 알을 낳는 임무가 있고, 일벌은 꿀을 모아오는 임무가 있듯이 꿀벌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각자 구역을 나눠 벌들을 관리하는 꿀벌의 집 사람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은 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저 협동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꿀벌이 겨울을 나기 위해 더이상 필요가 없어진 수컷을 밀어내는 모습이나 말벌, 곰 등 다른 생물들과 살아가는 것처럼 우리 인간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살아가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고만고만한 삶을 살아왔던 리에는 꿀벌의 집에서의 생활을 통해 자신만의 족적을 남기며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저 남이 떠미는대로 삶을 살았던 리에가 꿀벌의 집에서 조금씩 성장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과연 나는 얼마나 내 의지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조용한 시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도시의 시끄러운 소리보다는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에 익숙한 사람들이 등장인물이라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꿀벌의 집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들이 지루할 새 없이 이어졌다.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라 그런지 후반부에 가면 약간은 흐지부지 얼렁뚱땅 마무리를 짓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쉬웠지만,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어서 한 편의 따뜻한 성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연을 통한 인간의 치유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니만큼 따뜻한 오후에 공원에 앉아 이 책을 읽는 것도 꽤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도, 내용도 '아. 정말 봄이구나'라는 생각을 절로 들게 했던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