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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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흥미를 느끼게 했다. 과연 눈뜬 자들의 도시는 무엇일까? 에 대한 궁금증이 이 책을 거침없이 읽게 만들었다. 더구나 주제 사라마구의 블랙 유머가 말하고자 하는 권력의 황량함은 나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시켰다.

이 책은 선거 당일에 일어나는 한 가지 사건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그 사건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황당하다. 바로 비가 세차게 내린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문제는 투표하는 날 반갑지 않은 비가 오는 것이었다.

이것이 작가의 강렬한 유턴 표시이다. 만약 비가 오지 않았다면... 하지만 결과는 똑같다. 83%라는 백색 투표이다. 이로 인해 권력자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주동자인 여자 한 명을 추적하는 음모가 한바탕 벌어진다.

재밌는 것은 작가가 사람을 분류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에 있어 권력자들은 지나치게 영리한 자들이어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면서 권력의 부패를 드러내고 만다. 이제 그들이 눈먼 자들이 된다.

작가는 정부 요인들이 백색 도시를 탈출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정작 이 문제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우습게도 도망가고 만다. 동시에 그들이 노리는 것은 무정부 상태로 보복하는 전략이다.

이쯤에서 우리에게도 작가의 소설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앞선 상황이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온통 선거이야기다. 서로들 이 나라의 진정한 일꾼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선거 결과가 참담하게 83%의 백색 투표일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정치에 대한 증오에 가깝다. 예전에『눈먼 자들의 도시』가 백색 실명이었다면 4년이 흐른 지금은『눈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백색 투표로 권력을 조롱한다.

이처럼 작가는 권력의 을씨년스러움을 투표라는 권리로 맞서면서 우리들 삶의 안쪽으로 강력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처음에는 시큰둥했지만 권력의 부패함을 파고드는 예리한 관찰력은 말 그대로 종이로 폭격하는 듯 했다.

세상의 눈먼 자들이여, 이제 눈을 떠라! 이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작가는 권력의 불편함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싸워나가고 한편으로는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를 백색 투표, 즉 백색 혁명을 서슴없이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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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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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집에 불이 난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119를 부를 것이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소방차와 절도 있는 소방관이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는 소방호스를 들이대며 불길을 잡을 것이다.

그런데 아주 사소해 보이는 당신의 집안 일이든지 어떤 심부름을 맡기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처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부탁해야 하는데 오늘날 같이 도시화된 사회에서 누구를 맘 놓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니 차라리 불이라도 나는 게 오히려 속이 편하다.

이러한 불편한 대중 심리를 재밌게 그린 이 책『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의 미우라 시온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그에게 솔깃했던 것은 135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다. 대중 문학의 신인상으로 불리는 나오키상이라는 이 문학상에 대해 알 게 된 것은 만 불과 2년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오키상에 흠뻑 빠져든 것은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며 리듬감 있는 감동도 짜릿할 만큼 놀랍다는 것이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단타 위주의 지루한 경기가 아니라 홈런 한 방으로 삶의 배고픔을 잊게 해준다고 할까?

이 책에는 두 명의 남자가 나온다. 바로 다다와 쿄텐이다. 그들은 이 책의 제목에 나와 있듯 마호로 역에서 다다 심부름집을 운영한다. 심부름집이라고 해서 우리가 아는 불온한 곳은 아니다. 그들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허드렛일부터 심각한 문제에 까지 거침없이 달려든다.

가령, 집안 청소하기, 병문안 대신 하기, 애완견 돌보기 등등 일상의 자잘한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충돌한다. 다다가 신중하면서도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반면에 쿄텐은 마음 내키는 대로 일을 해버린다.

하지만 그들의 삶이 그렇듯 그들이나 그들에게 심부름을 부탁하는 사람들은 인생에서 상처받았거나 실패했다. 그런 그들이 서로 기대어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이 한편으로는 애틋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결국 이것은 이 책에 나와 있듯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기회가 있어.’라는 말을 잊지 않게 해준다.

이 두 남자에게도 기회가 온다. 그런데 당혹스러운 것은 두 남자의 기회가 전혀 생각지도 않게 서로가 만나면서 인생의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즉 인생의 다다에게 교텐이 교텐에게 다다가 서로의 기회가 되는 대상이 된다.

그들이 고교 동창을 졸업한 이후 30대 중반에 다시 만났을 때 달라진 것은 다다가 햄릿형 인간이었다면 교텐은 돈키호테형 인간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티격태격하는 엇바자의 인생 스토리를 통해 우리의 아픔을 되돌아보면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즉, 상처는 흉터를 남기지만 흉터가 남았다고 해서 그 기능을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행복은 재생된다고.” 말한다. 행복은 모양을 바꾸어 가며 다양한 모습으로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살그머니 찾아온다고, 말한다. 심부름집을 하면서 비록 낡은 고물차를 몰고 다니는 두 남자의 인생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까닭이다.

우리가 지난 날의 상처로 인하여 고심하게 있을 때 고물차를 몰고 다니며 심부름을 해주는두 남자의 행복 메세지는 낡은 고물차라고 함부로 멸시하지 마라. 당신은 고물차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라며 우리 앞을 생생하게 달려간다. 이로 인해 인생은 바쁘게 되고 그만큼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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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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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의 15년 만에 나온 대작『부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다. 단지 15년이라는 노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름 아닌 그가 미래학의 거장이기 때문이었다. 이미『미래 쇼크』,『제 3의 물결』,『권력이동』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데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 저자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그만큼 저자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미래의 실체를 파악하고 준비하게 하는 그의 지식 공급량은 삶의 활력소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면 부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저자는 부의 혁명을 촉발시키는 3가지 핵심적인 원동력으로 시간, 공간, 지식을 말한다. 먼저 시간에 있어 동시화에 따른 효과에 있어 속도의 충돌이 발생한다고 했다. 즉 경제 발전의 속도를 높이는데 주요 제도들이 뒤쳐진 결과 적합성이 문제시되고 있다고 한다. 가령 기업이 시속 100마일을 시민단체(NGO)가 90마일을 달리고 있을 때 정작 정부는 25마일을 학교는 10마일을 정치권은 3마일을 달리고 있음을 비교하고 있다.

두 번째로 공간에 있어 부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다시 아시아로 이동한다고 한다. 특히 아시아 중에서도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고부가가치 경제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화를 지향하는 아시아에게 부의 이동이 일어나는 것은 세계화내지 재세계화에 따르는 필연적이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저자가 말했듯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가에 있다. 한 마리 토끼가 앞서 말했듯이 산업화라는 ‘보이는 경제’를 말하며 나머지 한 마리 토끼는 제 3 직업으로 불리는 프로슈머(생산적 소비자)가 만들어 내는 ‘보이지 않는 경제’를 얼마나 수용하느냐에 따라 선진국으로 변화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지식에 있어 압솔리지(obsoledge)라 부르고 있다. 이는 무용(無用)지식이라고 하는데 지식은 어느 시점이 되면 더 이상 지식이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이다. 가령 자동차의 등급을 매길 때 마력(馬力)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유추라는 생각의 도구가 점차 사용하기가 어렵게 되고 있다. 이는 변화의 가속도에 따라 그만큼 무용지식의 축척 속도도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의 미래에 있어 중요한 것은 우리의 두되 안팎의 지식 공급량이 아니라 무용지식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보의 홍수에는 분명 케네요인의 함수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속도에 있어 어제의 진실은 오늘날 진실이 될 수 없음을 충고하고 있다.

이처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부의 미래』를 통해 미래를 진단하는 통찰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것은 곧 부의 패러다임의 변화인데 제1의 물결이 농업혁명을 제2의 물결이 산업혁명을 제3의 물결인 정보혁명이 이제 제4의 물결인 지식혁명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저자는 지식혁명이 불러올 부의 미래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패러다임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인 만큼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데 앨빈 토플러는『제 3의 물결』에서 ‘작은 당구공’으로 말한 바 있다. 즉 하나의 원자가 다른 작은 당구공에 부딪힐 때 최초의 운동은 다음 운동의 원인이며 새로운 운동은 최초의 운동의 결과가 된다고 했다. 앞서 말했듯 앨빈 토플러에게 있어 작은 당구공은 다름 아닌 부(wealth)였다.

어느 누구는 미래를 유토피아라고 했지만 앨빈 토플러는 프랙토피아(practopia)라고 했다. 유토피아가 비현실적인 완전한 세계인 반면에 프랙토피아는 적극적이고 동시에 도달 가능한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프랙토피아는 보이는 경제와 보이지 않는 경제가 균형 있게 상호 작용하는데 이는 곧 ‘보이는 부’와 ‘보이지 않는 부’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제시하는 부의 상호 역동성에 주목해야 한다. 그 하나는 변화의 속도에 따라 시속 100마일을 달려야 한다. 나머지 하나는 무용지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프랙토피아에 도달하는 강력한 메시지이다.

이 책이 미래를 전망하면서 인생을 전환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필독서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여러모로 유익하다. 더구나 복잡한 사회 현상에 대한 각종 데이터를 지식이라는 패턴으로 바꾸며 전달하는 저자 특유의 감각적이면서도 쉬운 글쓰기는 두툼한 이 책을 시속 100마일로 읽을 수 있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아무런 전략 없이 읽는 속도의 민첩성에만 치중한다면 우리는 저자의 충고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전략의 고민은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물결에 대한 준비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은 앨빈 토플러가 아니라 바로 당신(you)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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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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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몇 번을 숨고르기 했는지 모른다. 한 장 한 장 그냥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잠시 멈추며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럴 때마다 많은 아쉬움이 맴돌았다. 좀 더 누군가를 사랑하고 좀 더 긍정적으로 살아야 했음을 이제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바로『샘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은 덕분이었다. 이 책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인생수업이다. 그런데 그들은 평범하지 않다. 남들과 다른 어려운 상황은 말 그대로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결코 편안한 삶은 아니다. 할아버지는 30대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남은 생을 휠체어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그에게 사랑스런 손자, 샘이 태어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태어난 샘은 슬프게도 자폐아라는 진단이 내려진다.

할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더구나 남과 다르다는 사실이 얼마나 불편한지 뼈아프게 경험한 할아버지가 자폐아인 샘을 바라보면 숨이 탁탁 막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샘을 위해 기꺼이 편지를 쓴다. 4년 동안 32장을 쓴 이 편지에는 그가 살면서 느꼈던 많은 교훈들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철학들을 샘이 배울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가령,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라고 한다. 그건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혹은 우리는 살면서 벽에 부딪치는 일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럴 때 어떻게든 평화를 찾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벽에 부딪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벽으로 돌진하고 말 것이다, 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삶의 교훈은 잔잔해서 좋다. 삶이 흘러가는 데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샘에게 자폐증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때로는 실패할 것이고 때로는 부끄러울 것이다. 그러면 솔직하게 비상등을 켜라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책을 읽으니 초등학교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A라는 남자아이였는데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게 있었다. 그가 엄마 없는 아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이것을 핑계 삼아 그를 ‘고아’라고 놀려댔다. 그러면 그 아이는 아주 신경질적으로 반항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림당한 A와 놀려 댄 아이들 모두 이 책에 나오는 샘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모두가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오는 마음의 피해자들이 아닐까? 이 세상에는 샘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 또한 샘을 곁에서 돌봐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 책을 선물해주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을 포기하기 않으며 살아가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샘에게 보내는 사랑이 담긴 편지는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삶의 희망이다. 이런 희망이 곧 삶의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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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1-06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나오는 마음의 피해자들..
그런 '샘'을 돌봐주는 사람. 스스로에게나 남에게나 그래야겠지요.
오우아님, 어려워요^^

오우아 2007-11-0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늘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그래도 배려하는 것이 삶이라고 보는데....

2007-11-07 2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우아 2007-11-08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으면 합니다. 부탁하신 것을 기꺼이 허락하겠습니다. 그런데 부탁이 있는데... 제가 보고 싶은 책을 신청해도 괜찮은 지요?

비로그인 2007-11-12 00:2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보고 싶은 책이 있으시면 jmh1500@hanmail.net로 보내주세요^^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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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대 영국 사람들에게 영국 헌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라고 묻는 다면 몽테스키외를 말할 것이다. 프랑스인 이었지만 그의『법의 정신』은 영국 헌법을 연구하면서 쓴 대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그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박노자라고 할 수 있다. 춘향전의 나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고 귀화한 그였지만 바로 춘향전이 만들어낸 전통의 허구성을 거침없이 파헤쳐 왔다.

이번에 나온『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도 미해결의 문제에 대해 당혹스러운 질문을 한다. 이 책에서 그는 ‘근대 망령으로부터 탈출’을 말한다. 가령, 해방 뒤 경무부장으로서 친일 경찰 출신의 부하를 옹호했던 조병옥은 “일제시대 먹고 살기 위해 친일을 한 프로잡(pro-job)은 처벌하기 곤란하다. 다만 그 이상의 친일을 한 프로잽(pro-Japanese)이 문제다.”라고 했다.

또 톨스토이에 대한 커다란 문제점은 ‘개인 수양의 이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병역거부야 말로 모든 지배의 폭력적인 성격을 노골화하는 피지배자의 첩경.”이라는 말은 부각되지 않은 체 오로지 교양인이라는 이미지로 우상화되었다.

이러한 두 가지 양상은 역사적인 당위성을 포기하게 하고 대신에 먹고 사는 것과 모범적인이어야 하는 문제를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근대의 망령들이 야누스처럼 때로는 메두사처럼 우리의 불행한 역사를 간섭하고 파괴하고 있다.

일찍이 에릭 홉스봄외 공동으로 집필한『만들어진 전통』에 보면 스코틀랜드의 전통의상인 퀼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스코틀랜드인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 이 의상은 실상 1707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통합되면서 스코틀랜드인들에게 입힌 작업복이었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전통이 역사와 단절된 것이 가장 큰 병폐이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전통을 지배를 경험했던 우리들에게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박노자는 만들어진 전통에 대해 반란하고자 한다. 그것도 아주 멋진 반란이다. 이는 민족갈등의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발전적인 화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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