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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평점 :
내가 이제껏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해온 까닭은
인간의 행동을 비웃기 위해서도,
그것에 동정의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도,
그것을 미워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을 뿐.
스피노자 <정치학 논고>
우리는 다 같이 사이좋게 지냈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사이좋게라는 의미에는 어느 정도 옳고 그름이라는 도덕적인 마음이 스며들어 있다. 만약에 도덕적인 마음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구토감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도덕적인 마음이 있다고 해서 항상 우리가 구토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갈등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 최고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바른 마음』에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바른 마음(Righteous Mind)’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바른 마음이란 우리는 본성적으로 도덕적이지만 도덕적인 체하고 비판과 판단도 잘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일상을 보면 어떤가? 크고 작은 도덕적인 잘잘못을 따지며 충돌한다. 가령, 도덕적인 딜레마 중에서 ‘트롤리 문제(trolley problem)의 딜레마’가 있다. 이 딜레마에 따르면 트롤리 한 대가 선로를 빠른 속도로 내려갈 때 선로 위에는 다섯 명의 인부가 있다. 이 때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하나, 다섯 명의 인부를 살리기 위해 선로를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쪽 선로 위에는 한 사람이 서 있다. 둘, 어떤 한 사람을 선로 위로 넘어뜨리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다섯 명의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한 명이 희생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데 앞서 도덕적인 판단이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칸트의 의무론에 따르면 추론의 과정을 통해 도덕적인 판단하게 되고 직감이 추론을 정당화하는 사후 합리화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흄은 ‘이성을 열정의 노예’라고 말했다.
그런데 도덕적인 판단을 어떻게 하는지 유명한 뇌 연구 결과를 보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즉 도덕적인 판단에 있어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이 훨씬 더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 말대로 도덕은 너무나 감성적이다. 도덕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마치 코끼리(직관) 등에 올라탄 기수(추론) 같다고 할까?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를 강하게 직감하고 난 후 그 느낌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코끼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바른 마음을 증폭시키는 도덕 심리의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 직관이 먼저이고 전략적 추론은 그다음이다. 둘, 도덕성은 단순히 피해와 공평성 차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셋, 도덕은 사람을 뭉치게도 하고 눈멀게도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사고는 결코 과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유권자의 표를 잡으려는 정치인이다. 선거철마다 우리는 서민층들이 좌파(진보)가 아닌 우파(보수)를 지지하는 현상을 접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지 묘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몸소 느끼게 된다. 이유인즉 바른 마음은 여섯 가지 미각 수용체를 지닌 혀와 같다는 것이다. 도덕성 기반 이론의 내용에는 최소한 6가지가 있다. 배려/피해 기반, 자유/압제 기반, 공평성/부정 기반, 충성심/배신 기반, 권위/전복 기반, 고귀함/추함 기반이다. 진보주의자들이 배려/ 피해, 자유/압제, 공평성/부정 등 3가지 기반을 중시하는 반면에 보수주의자들은 나머지 6가지 기반을 모두 활용한다. 사실상 유권자들은 도덕적 이해에 따라 투표한다. 따라서 피해자들을 돌보는 차원에서 사회의 정의를 실현시키는 데만 매달려서는 유권자의 표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앞서 말했듯 편협한 도덕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도덕적 구토감을 일으킬 뿐이다.
우리는 때때로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에게는 양보하지 않는다. 한 개인의 이기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이기심을 초월하여 초사회적인 이익 즉, 나보다는 우리를 위해서 진정으로 노력을 다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조건에 따라 군집 생물이 되기도 한다고 하면서 ‘군집 스위치(hive switch)’라고 했다. 비유하자면 ‘인간은 90%는 침팬지이고 나머지 10%는 벌과 같다’는 것이다. 같은 관점으로 뒤르켐은 개인이 전체의 행동에 따르고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집단적 들썩임(collective effervescence)’이라고 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적응하면서 선택한 최선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집단성이라는 것 때문에 이념과 종교 갈등으로 온갖 추악한 짓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다.
『바른 마음』은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이해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좀 더 다른 시각으로 탐구하고 있다. 바로 호모 듀플렉스(Homo duplex: 이중적인 인간)이다. 호모 듀플렉스에 따르면 마음이란 개인적인 이기심과 사회적인 이타심이 교차한다. 자신만 옳고 상대방은 틀리는 것을 정당화하며 집단적으로 이쪽은 좋고 저쪽은 나쁘다는 식의 편 가르기를 한다. 하지만 저자의 새로운 주장을 보면 우리가 이편저편으로 나뉘는 까닭은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의 마음이 집단적으로 바름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좀 더 건설적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직감을 이해하고 나서 여섯 가지 도덕 기반의 적절한 전략이 필요하다. 바른 마음은 옳음 vs 그름이 아니라 옳음 vs 옮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이보다 좋은 느낌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