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 / 교유서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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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때문이었을까? 먹는 것을 볼 때마다 당장에라도 먹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알려진 맛집을 굳이 찾아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꿀맛’도 부족해 ‘핵꿀맛’이라고 하지 않은가? 우리는 배고픔을 참을 만한 용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만큼 먹는 것은 삶의 시작이기 때문다. 어디 그뿐인가. 음식을 먹었던 그 시간만큼 삶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먹방의 시대에서는 삶을 사랑하는 마음이 좀처럼 생겨나지 않는다. 꿀맛나는 음식을 먹었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 그렇다. 어떤 특별한 의미도 없이 먹는 게 비슷비슷하다. 먹방은 살아갈 방법이 아니다. 단지, 그냥 먹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황석영이 담아 낸 음식이야기『황석영의 밥도둑』은 요새 유행하는 먹방이 아니었다. 먹방의 관심사는 앞서 말했듯 꿀맛에 있다. 꿀맛이 아니면 ‘노맛’. 지금의 입맛으로 따지면 이 책은 분명 노맛에 가깝다. 하지만 노맛은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영영 식지 않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돌이켜보면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음식을 만든 사람들은 요리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음식의 낭만성을 찾고자하는 것은 궁핍한 삶에 대한 판타지에 불과한지 모른다. 그러니 궁핍하고 절박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음식은 ‘밥맛’을 소박하게 채워주었을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특별한 밥맛을 가지고 있다. 특별함은 곧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움이 생각날 때마다 맨 먼저 우리 곁을 떠난 사람에 대한 추억이 앞선다. 혹 떠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떠나갈 사람에 대한 추억이다. 바로 추억의 존재는 어머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잊을 수 없어 그때를 생각하며 음식을 만들어보아도 그 밥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눈물을 감출 수 없어 결국에는 ‘눈물맛’을 먹고야 만다. 그렇게 눈물맛을 먹고 나서도 또 무슨 그리움을 만들어줄 것처럼 멈추지 않는 눈물맛을 만들고 만다.

 

 

한편, 눈물맛은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게 해준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보면, 외로울 때, 힘들 때, 아플 때, 슬플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정든 가족들과 함께 나누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음식들은 저자가 견뎌온 아픈 시간을 위로해주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삶의 한 소절씩 간절한 입맛을 내는 음식을 더욱 감사해한다. 비록 지금은 먹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음식이 삶의 조건이라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다시 말하면,

 

 

먹지 않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이 책이 밥도둑이야기라고 해서 단순히 먹거리에 대한 여행에서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좀 더 애틋한 음식에 대한 연민이라고 할까. 저자의 굴곡진 인생에 비한다면 나의 생활은 얼마가 될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그런 만큼 저자의 음식에 대한 감정은 특별하다. 더구나 이런 음식에 대한 감정들이 장소 그리고 사람으로 이어지는 정서적인 유대감을 생각하면 내가 모르는 아득한 또 따른 세계가 펼쳐진다. 마치 홍어, 돼지 삼겹살, 김치 세 가지를 합쳐 별미가 되는 ‘홍탁삼합(洪濁三合)’처럼 음식, 장소, 사람의 절묘한 조합이 곧 ‘음식삼합(飮食三合)’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황석영의 산문은 딱히 목적을 정하지 않고 발길이 이끌리는 대로 걷다가 문득 발견하게 되는 음식의 흔적들이다. 평범함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그것들을 향해 발휘하는 감정선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골똘히 짚어보게 한다. 작가는 음식으로 세상과 교감하고 이해하면서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라고 말한다. 그래서 작가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은, 자꾸만 새로워지는 느낌은 음식과 사람의 공통점은 ‘밥도둑’이라는 것이다. 음식과 사람이 밥도둑이 아니라고 한다면 더는 사랑할 수 없지 않을까?

 

 

인상파 거장 폴 세잔은 “자연은 표면보다 내부에 있다”라고 말했다. 일례로 대상의 정확한 묘사를 위해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렸다고 한다. 우리 문학의 거장 황석영도 음식이 썩을 때까지 글을 썼을 것이다. 그런 만큼 음식을 먹는 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로 생생하여 먹방으로 굳어버린 꿀맛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음식의 가치를 ‘밥도둑’즉, 밥을 함께 나눠 먹는 것에서 찾는다. 이유인즉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은 삶을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음식적이면서도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밥도둑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인지 모른다. 더할 수 없이 다정하고 상냥한 밥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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