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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9년 12월
평점 :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우리에게 두 개의 눈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얼굴에 있는 육체의 눈입니다. 다른 하나는 가슴에 들어 있는 마음의 눈입니다. 많은 알라디너들이 신경숙의『외딴방』을 ‘내 인생의 책’이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여러 번 곱씹은 후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문장을 마주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물컹거렸습니다.
1990년 이후 각종 문학상을 차지했던 신경숙이『외딴방』에서 글쓰기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가 소설가여서 당연한 문제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면 글쓰기에 대한 추억이 사뭇 달라졌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그녀에게 글쓰기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까닭으로 기억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전 소설인『외딴방』에서 글쓰기를 은밀하게 좋아했던 초년고생을 떠올렸습니다. 그녀가 말하는 초년은 서른 살을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좀 더 세세하게 보자면 열여섯에서 열아홉 그리고 먼 훗날 서른 살이었습니다. 열여섯에서 열아홉 나이에 얽힌 갖가지 아픔이 서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뭔가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래도록 막연했던 두려움을 지나쳐오면서 그녀는 고적한 목소리로 생의 버팀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아 이것 없이는 외로웠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말했던 ‘이것’은 무엇이었는지 그 속내가 궁금했습니다. 그녀의 삶 한 자락을 펼쳐보면 그녀의 삶이 시작된 1979년 열여섯 이후 열아홉에 이르는 사년의 과거와 1995년 서른둘의 현재가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열여섯이었던 그녀는 외사촌과 함께 고향을 떠나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서울 구로 3공단으로 들어갔습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상경한 그녀들은 을씨년스러운 공단의 굴뚝이 보이는 삼층 벽돌집에서 방 하나에 세를 놓아 큰 오빠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삼층 벽돌집에는 서른일곱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서른일곱 개의 방…… 하지만 도시에서는 굳이 서른일곱개의 외딴방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곳에서 그녀가 바라본 세상은 모순이었으며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하는 열등감이 어느 순간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낮에 일했던 동남전기회사의 열악한 작업 현장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단지 가난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철야작업에 지쳐도 생리휴가여도 무급으로 계산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다도 읽는 내내 안쓰러웠던 것은 밤에 산업체 특별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말이 좋아 주경야독(晝耕夜讀)이지 현실은 야멸찼습니다. 그녀와 함께 다녔던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던 외사촌, 전화교환원이 되고 싶다던 희재 언니의 꿈은 공순이라는 날선 비수에 그만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사랑의 물거품도 다반사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시절이 그립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열여섯의 나이에 가족들의 짐을 덜기 위해 교복대신 푸른 작업복을 입었지만 그녀에게는 작가에 대한 열망으로 버텨냈습니다. 공장에서 숨 가쁘게 일하면서도 그녀는 뜻도 모른 체 좋아하는 시(詩)를 노트에 옮겨 적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이라는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문학만이 위안이었습니다. 문학이 곧 자신이었으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던 슬픔과 낭만이 가장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더구나 공장에서 학교로 가기 위해 교복으로 갈아입었던 그 때의 오후 다섯 시를 기적의 시간이라고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외딴방’이라는 단어를 놓고 이런저런 고민을 해봤습니다. 말 그대로 외딴방은 삶의 한쪽으로 쫓겨난 방이라는 탓에 마음이 산란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외딴방은 하나의 통과의례를 상징했습니다. 흔한 말로 진주조개가 진주를 만들듯 사랑의 아픔없이는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층민의 굴레라는 부끄러움을 잔뜩 묻히며 마음이 아팠다는 어설픈 감정이었다면 오히려 상처가 더욱 깊었을 것입니다. 삶을 방으로 비유해보면 ‘자기만의 방’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외딴방은 방과 방 사이의 중간단계에 놓여 있습니다. 즉 타인의 방과 자기만의 방의 사이입니다.
겹겹이 쌓인 고민 하나를 더 생각하면 나의 외딴방은 어떠했는지 자문해봤습니다. 나에게 행복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과거를 더듬어봤습니다. 일찍이 괴테는 “살아있는 한 방황한다.”고 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더라도 아쉬움이 맴도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지금의 하고 있는 일이 꼭 하고 싶어서 것이라고 한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외딴방의 기적은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신경숙은 외딴방에서 가질 수 없는 것을 치열하게 가지려고 했습니다. 온 몸의 뼈가 뚝뚝 끊어질 정도였지만 그럴수록 그녀의 위대한 일은 탄탄해졌습니다. 뭔가를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외딴방에서 느슨함도 못자라 오만하여 불행과 행복이 안개에 쌓여 흐릿했습니다. 그녀와 나는 치열함과 게으름이었으며 이것이 오늘의 그녀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기억하게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삶을 오로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깨달음의 순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녀는 외딴방에서 글쓰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또 글쓰기 때문에 삶을 더욱 사랑했습니다. 또 글쓰기 때문에 고독한 절망을 견뎌냈습니다. 그녀 말대로 글쓰기는 ‘이것으로만이, 나, 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소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튼튼히 뒷받침해주었습니다. 그녀는 글쓰기 덕분에 행복했습니다. 그녀는 글쓰기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나의 글쓰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봤습니다. 신경숙이 말하는 글쓰기를 더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책 관련 잡지를 보다가 ‘신경숙의 서재 탐방’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잡지(출판저널)에서 “쓰기 먼저 하려고 애쓰지는 않았으면 해요. 우선은 읽고, 느끼고, 경험하는 게 우선이거든요. 자기가 놓여 있는 그 순간을 최대한 보고 느끼고 경험해야 해요. 그래야 글도 치열해지니까.”라고 의미심장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소설가의 삶은 굴곡이 많습니다. 그녀처럼 치열하게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게 그녀처럼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녀의 꿈이 스며든 외딴방은 누구에게나 있었을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의 첫 출발지이라는 것, 삶의 밑그림을 시작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그곳에서 밀물과 썰물 같은 고통을 어떻게 견뎌내야 우리의 꿈이 꿈다워질까요? 그녀는 [외딴방]에서 손(手)에 달렸다고 다소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즉 ‘네가 만났던 사람들의 슬픔과 기쁨들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퍼뜨리렴. 그 사람들의 진실이 너를 변화시킬 거야.’라고 손(手)으로 다가서게 했습니다. 글쓰기에는 아무 걱정도 없어 보였던 손이 그녀로 인해 희망을 넘나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먼 훗날, 외딴방에서 살았던 것처럼, 잠 못 이루며 책장을 넘기거나 볼펜을 움켜지며 써내려가며 행복했던 것처럼, 그녀 말대로 문학이 그냥 좋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싶게 했습니다. 그녀의 외딴방은 단순히 과거의 어느 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이 팍팍할 때 조금이라도 외딴 거릴 수 있는 자유, 홀로서기의 자유를 닮아보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