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나, 한미주에게 이렇게 갑자기 관심이 쏟아질지 몰랐다.
관심이라고 생각하면 기분 나쁘지 않은데 사람들 눈길이 쏠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옷도 사 입고, 운동화 같지 않게 색깔이 고운 요즘 유행하는 그 운동화도 사서 신고, 휴대폰이라는 것도 가져보고, 집에다 컴퓨터도 하나 사다 놓고,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갈 수 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거의 포기했던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수학여행 얘기를 꺼냈을 때 할머니는 마치 내가 해외여행이라도 가겠다고 한 것처럼 정색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수학여행 같은 소리 하지도 마라. 지금 방세 밀린게 몇 달인지 니 알기나 하나? 열 몇 살씩 먹은기 철딱서니도 없어가지고, 이 늙은이 혼자 아둥바둥 고생한다 아이가. 무신 노미 팔자가 이라노.”
“못주면 못준다고만 하면 되지 뭘......”
기대도 별로 안했지만 물어보지도 못하나? 무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해서 말대꾸를 했다.
“저 가시나 지금 뭐라카노? 그만치 키았으면 이제 집안 힝핀이 우찌 돌아가닌지 좀 살피볼줄도 알고 그라야지, 뭐 맨날 해달라고만 하노.”
‘해달라고하면 해주기나 했나 뭐?’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켜야 했다. 내 꿈도 희망도 함께 어디로 삼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미주야~ 전화!”
또 전화가 왔나보다. 우리 집 전화도 아닌데 어떻게들 주인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내게 전화를 하는지 모르겠다. 며칠 전에는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해가더니 오늘은 어디서 온 전화일까.
반지하 방에서 밖으로 난 계단을 뛰어올라가 주인집 아주머니가 건네주는 전화를 받았다.“TBS방송 ‘사랑으로’ 프로그램 작가인데요, 한미주 학생인가요?”
또박또박한 여자 목소리는 전화기 밖으로 당장 튀어나와 굴러다닐 것 같았다.
“네......”
“우선 위로의 말씀을 드리겠고요, 그동안 미주학생이 할머니 모시고 어렵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얘기를 좀 더 자세히 들었으면 해요. 한번 방문해도 될까요?”
“......”
어렵지만 꿋꿋하게? 내가 ‘꿋꿋하게’ 사는 것을 자기들이 봤나?
“물론 TV로 방송이 될 거고요, 그러면 여러 곳에서 미주 학생을 위한 도움의 손길이 많이 전달될 거예요.”
방송 작가라는 이분은 내일 당장 여기로 오겠다고 하고 끊었다. 옆에서 전화 통화하는 것을 듣고 있던 주인집 아주머니가 거들었다.
“그래도 다행이지 뭐니. 안 그러면 네가 당장 어디서 그동안 밀린 방세며, 앞으로 먹고 살 거며, 해결을 하겠어. 할머니 돌아가신 건 안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러 곳에서 널 생각해주니 그나마 다행인거지.”
사실 주인아주머니 아니면 이렇게 내 얘기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백내장을 치료안하고 방치한 결과 할머니의 왼쪽 눈은 거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고, 역시 치료를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하던 당뇨 때문에 할머니 발가락은 온전한 게 없이 까맣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휴지를 모아 팔아야, 얼마 안 되는 생활보조금에 보태서 겨우 먹고 살 정도가 된다고 그러셨다. 며칠 전 할머니가 쓰러진 후 거동을 못하게 되었고 병원에 몇 번 들락거리고 나니 집안에 돈은 바닥이 났고 치료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걸러 라면으로 끼니를 대신하는데도 그랬다.
그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옆에 아무도 없이, 마지막 말 한마디 들어줄 사람 없이 돌아가셨다. 며칠 계속 일을 못하시는 할머니를 대신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리어카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폐휴지를 모으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보통 새벽에 다니셨으나 나는 아침잠이 많기도 하고 학교 갈 시간에 겨우 일어나기도 바쁘기 때문에 어둑어둑 해진 저녁때 집을 나섰다. 주인집 전기선을 끌어 쓰고 있는 우리 방 전기계량기 검침 때문에 반지하 우리 방에 들르셨던 위층 주인아주머니께서 할머니를 발견하셨을 때 이미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더란다.
한 달 전의 일이다. 내가 완전히 고아가 된지 그러니까 이제 한 달 되었다.
다음 날, 약속대로 방송국에서 사람들이 왔다. 한사람은 커다란 궤짝만한 카메라를 어깨에 들쳐 메고, 다른 한 사람은 역시 커다란 철가방 같은 것을 들고 카메라를 멘 아저씨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손에 녹음기와 공책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여자분. 질문은 이분이 다 하셨다.
“엄마 아빠 기억은 나요?”
“아뇨. 사진으로만 봤어요.”
“할머니께서 계속 키워주셨군요.”
“네.”
“어떻게 할머니 대신 폐휴지 모으는 일 할 생각을 했어요?”
‘며칠 빠지면 이 구역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지 모른다고 할머니가 그러셨어요. 나중에 할머니가 다시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려면 그동안 나라도 하고 있어야 했어요.’
“할머니 병원에 한번이라도 더 모시고 가려면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할머니가 지금까지 다 돌봐주셨는데, 당장 막막하지 않아요? 기분이 어떤가요?”
‘오랫동안 아프셨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니 여기저기서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이제 정말 혼자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미주 학생에게 할머니는 어떤 할머니셨나요? 두 식구뿐이니 더 애틋할 것 같은데요.”
‘매일 아프다, 돈 없다 소리만 했어요. 할머니가 고생하는 건 알지만 나도 하고 싶은 거 못하며 지냈어요. 빨리 커서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빨리 커서 할머니 병도 고쳐드리고 호강시켜드리고 싶었어요.”
라디오 인터뷰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질문이었고 내 대답도 거의 똑같았다.
마지막 질문만은 달랐다.
“미주는 꿈이 뭐예요?”
‘꿈이요? 당장 방세도 못 내고, 하루에 한 끼는 라면으로 때우고 있는데 꿈이요?’
“사회복지사요. 저나 돌아가신 할머니처럼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어요.”
방송은 일주일 후에 나온다고 했다.
라디오에 나왔을 때와 비교가 안되었다. 내 얘기가 TV에 나가자마자 바로 다음 날부터 쌀, 라면, 전기히터, 책, 옷, 그리고 내 앞으로 성금이 쌓여갔다. 할머니가 그렇게 힘들게 일할 때는 안 모이던 것들이, 할머니 돌아가시고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자꾸만 들어왔다. 이 돈으로 이제 방세 다 갚고도 핸드폰, 컴퓨터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이제 어쩌면 햇빛도 안 들어오는 이 반지하 방에서 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학교에서도 난 유명해졌다.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애들이 좀 짜증나기도 하지만 그런 것쯤은 참아줄 수 있다. 오히려 학교에서 갑자기 선행상을 주는 것이 더 얼떨떨했다. 어려운 형편에도 몸이 불편한 할머니를 도와 열심히 생활했다는 것이다. 내가 할머니를 도운 것이 있던가? 마지막 며칠 폐휴지를 모으고 다녔던 것은 솔직히 말하면 할머니를 위한다기 보다 할머니가 계속 그거라도 해서 돈을 벌게 하려고 그런 거 아니었나?
방송이 나가고서 얼마 안 되어서였다. 나에게 자기가 운영하는 원룸건물의 방 하나를 제공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방세 없이 살아도 좋다고 했다. 이제 정말 이 반지하방을 벗어나는 것이다. 드디어.
할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시긴 했지만 돌아가시고 난 며칠 동안은 오히려 주위에서 나에 대한 관심이 모여들어서인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잘 안 났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깨끗한 원룸으로 이사를 간다. 거의 한숨도 못자고 이삿날 아침을 맞았다. 짐이 많지 않다고 했더니 나에게 원룸을 제공해주기로 한 아저씨가 9인승차를 가지고 오셔서 짐을 옮겨 주시겠다고 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박스를 방문 밖으로 끌어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뒤통수에 누군가의 눈길이 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았다. 주인집에서 키우는 개가 위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개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 머릿속에 재생되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보통은 학교 다녀온 후 방에 들어갈 것도 없이 가방을 리어카에 싣고 바로 동네로 향하는데 그날은 그러기에 가방이 너무 무거웠다. 불우 학우 돕기인지 뭔지, 물론 나는 도와주는 쪽이 아니라 도움을 받는 쪽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학교에서 잔뜩 안겨주는 것을 받아 가방에 들어가는 대로 막 쑤셔 넣고 낑낑대고 메고 온 참이었다. 이왕 도울 거면 차라리 필요한 곳에 쓰게 돈으로 주던지, 뭔가 부피가 나가는 것으로 떠안겨야 주는 사람 입장에서 더 뿌듯하기라도 한가? 그날은 수학여행 신청 마감일이기도 했다. 우리 반에서는 나만 못가는 것을 종례 시간에 담임선생님은 아이들 다 있는데서 굳이 확인해야 했을까?
“착오가 있나 해서 그래.”
라고 하셨지만, 선생님이 바로 그 순간 착오를 저지르고 있는 줄 모르시나?
아이들 다 수학여행 가고 나면 나 혼자 할 일 없이 뭘 하며 나흘을 보낼지. 다녀오고 나면 아이들은 한동안 시간 날 때마다 여행 갔던 얘기만 할 텐데 그러면 나는 무슨 얘기인지 몰라 멍하니 듣고만 있어야겠지. 그럴 땐 어떤 표정을 하고 있어야 덜 초라해 보이지? 다른 무엇보다도 나도 이 반지하방 아닌 곳에서 하룻밤이라도 자보고 싶었다. 할머니한테 한번만 더 졸라볼까?
무거운 가방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컴컴한 방에 할머니가 누워있는 모습이 다른 날과 달랐다. 아니,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쓰러져있다고 해야 할 모습이었다. 깜짝 놀라 서있는데 할머니 입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아주 작은 소리로 뭔가 말하고 있는 것이 들렸다. 내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나보다.
“약......거기, 약......”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할머니는 분명히 비상약을 찾고 있었다. 언뜻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할머니를 보았을 때 할머니 눈동자는 이상하게 돌아가 있었고 손발은 뒤틀리고 있었다. 무섭고 떨렸다. 할머니가 비상시에 먹을 약이라며 둔 곳을 알고 있긴 하지만 나는 얼른 약 있는 곳으로 발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몸을 뒤틀고 눈이 돌아가고 있는 할머니가 무서웠다. 계속 그러고 서있다가는 할머니가 나 있는 쪽으로 기어 나와 내 발목을 붙잡고 끌고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러면 나도 할머니 옆에서 그렇게 몸을 뒤틀며 괴로워해야 할 것 같았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싫어! 그러고 싶지 않아 절대!’
다 싫었다. 내가 속한 그 컴컴한 방도 싫고, 거기서 손발을 뒤틀고 있는 할머니도 보기 싫었다. 거기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지금 위급한 상황에 있는 할머니를 본게 아니라 내가 처한 현실, 어둡고 칙칙하고 언제 벗어날지 모를 나의 현실을 확인한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그대로 두고 가방도 그냥 멘 채 방문을 닫고 나왔다.
급한 발걸음으로 얼른 계단을 올라 대문으로 향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가 그런 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올려다보니 주인집에서 키우고 있는 바로 그 개가 나를 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결국 그날 내가 나가고 없는 새에 돌아가셨다. 폐휴지를 모으러 동네를 한바퀴, 두 바퀴 돌고 집에 왔을 때 할머니는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를 붙잡고 학교에서 이제 돌아 오냐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다고 말할 때 나는 아까 집에 들렀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프시긴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혼자, 갑자기 돌아가실 수 있어 그래? 세상에......”
아주머니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어이없는 표정은 아마 내가 더했을 것이다. 아까 할머니는 마지막 기력을 다해 약을 찾고 있었고 나는 그런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외면했다. 나의 그 멍한 표정을 아주머니는 내가 심한 충격을 받아서 그런다고 해석하셨는지 나에게 잠시 진정하라고 하시고는 병원으로, 경찰서로, 여기 저기 나 대신 연락을 해주셨다.
구청에서 사람이 다녀가고, 생활보호대상자 혜택으로 어떻게 간신히 장례를 치렀다. 아주머니가 입소문을 내었는지 여기저기서 위로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흔적은 금방 지워지고 그 자리에 위로품 상자가 쌓여가고 있었다.
“미주 학생!”
귀에 익은 목소리가 부르는 소리에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에 왔던 방송국 사람들이 또 찾아온 것이다. 방송이 나간 후 반응이 좋아 후속편을 찍기 위해 새집으로 이사 가는 장면을 잠시 촬영하겠다는 것이다.
짐 실을 차가 오고 보잘 것 없는 물건들이 담긴 짐짝들이 정말 짐짝처럼 차에 실렸다. 방송국 카메라는 뭘 저렇게 찍어대는지.
짐을 싣고 차에 오르려는데 마이크를 들이대며 기분을 얘기해보란다.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요,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성공하겠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처럼 아프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사 간 방은 내겐 어떤 호화주택 못지않았다. 3층이라 올라 다니기 힘들지 모른다고 주인아저씨는 말했지만 방의 창문을 열자 저 앞 편의점까지 한눈에 다 보였다.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이런 세상이 있었네.”
들어온 위로물품과 성금 덕에 새 이불, 새 책상에, 옷장, TV, 컴퓨터까지 들여놓을 수 있었다. 꿈만 같았다.
다음 날, 신청기간이 지났지만 선생님께 사정해서 돈을 내고 수학여행 신청을 했다. 못갈 줄만 알았던 수학여행이다. 이제 부러운 게 없다. 내 방이 생겼고, 그 방은 내가 필요한 것으로 꽉 채워졌다. 다른 애들처럼 수학여행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다 해결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 때문이었는지, 배가 아파서였는지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었다. 새벽 3시도 채 안 된 시각이었다. 꿈에서 또 그 개를 보았다. 지난번보다 더 뚫어지게 나를 쏘아보는 개의 눈은 날카로운 창이 되어 내 몸 속까지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몸서리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네가 뭘 알아? 나도 지금 죽을힘을 다해서 살려고 하는거라구!’
내가 지른 소리에 놀라 깬 것 같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데 배가 쥐어짜는 것처럼 아파왔다. 더워서 자기 전에 평소에 안 먹던 아이스크림을 두 개나 먹은 게 문제를 일으킨 것 같다. 원래도 찬 것 먹으면 배탈이 잘 나서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듣곤 했는데.
‘할머니......’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할머니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여기 없다. 알면서 방을 한번 둘러보았다. 가지고 싶던 것으로 채워진 방,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은 방. 그런데 그 순간만은 그런 것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냥 텅 빈 방이었을 뿐이다. 이 방이 내게 찬 것 먹지 못하게 잔소리 하진 않을 것이다. 저 책상에게 내가 투정부리진 못 할 것이다. 배 아프다고 내가 아무리 데굴데굴 구른들 아무도 들어줄 사람 없다. 난, 혼자이다.
거의 기다시피 해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온 몸이 땀으로 함빡 젖었다. 아무래도 약을 먹고 자야할 것 같았다.
‘이삿짐 쌀 때 약을 어디에 넣었더라......’
서랍장의 서랍을 하나하나 빼가며 찾던 중 약보다 먼저 발견한 것은 손수건으로 둘둘 말아놓은 뭉치였다.
“이게 뭐지?”
풀어 보니 돈이었다. 만날 돈 없다고 하던 할머니가 이렇게 돈을 감춰두고 있었나? 세어보니 만 원짜리 여섯 장, 오천 원짜리 한 장, 천 원짜리가 여섯 장, 그리고 종이쪽지에 서툰 글씨로 ‘미주수항여행’ 이라고 쓰여 있었다. 할머니 글씨였다. 수학여행 같은 소리 하지도 말라며 돌아앉던 할머니.
갑자기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세어보니 어차피 수학여행 경비하기에 택도 없이 모자라는 액수의 돈이지만, 방세 독촉을 받으면서 혹시 액수만큼 못 모으면 내가 더 실망할까봐 내겐 말도 없이 이렇게 돈을 모으고 있었나보다.
눈물이 나기 시작하자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눈물 속에 울렁울렁 젖어보이는 방은 썰렁하기만 했다. 방이 아니라 벽이 없는 한데 앉아있는 것 같았다.
눈물을 닦고 풀었던 손수건 뭉치를 다시 처음처럼 싸놓았다.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