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내가 이해 못하는 점은 어째서 대부분의 과학철학자들은 과학철학의 문제들이 논리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적 접근은) 답을 얻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아마도 실험적 접근이 더 나은 방법일 것이다."

- 서문 일부 발췌 -

 

(What I do not understand is why most philosophers of science believe the problems of the philosophy of science can be solved by logic.

This is not the best way to reach a solution. An empirical approach seems to be a better way.)

 

생물학은 과학이다. 이것은 이 책의 본문 첫 문장이기도 하다.

" Biology is a science." (page 1)

이 말은 곧 생물학은 이론적 추정이 아니라 실험과 그 결과에 바탕을 둔 학문이라는 뜻이다.

이론적 추정이 쓸데없다거나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직접 실험으로 입증할 수 없는 주제들이 있다. 고생물의 출현, 다윈의 이론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도 다윈의 머리 속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그 생애의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항해를 하며 자료를 수집하여 물증을 얻는데 보냈던가. 다윈의 진화론을 더도 덜도 아닌 네글자 사자성어 (자연선택, 아니면 적자생존)로만 말할 수 있으면 안다고 하기엔 다윈의 진화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실험과 관찰로 다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청자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예술품 중 하나인 고려 청자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우리 나라에 차(茶)가 들어온 것과 관련있다.

차가 들어왔다는 것은 단지 마실 것으로서의 차만 들어왔다는 것이 아니라 차 '문화'가 들어오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차를 만들고 마시는 도구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러한 수요에 따라 청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처음엔 중국에서 청자 만드는 기법을 따라했지만 점차 중국의 영향보다 고려의 독특한 기법이 쓰이면서 고려 청자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아래는 국립중앙박물관 3층 청자실 (303호) 에서 찍어온 고려 청자 몇점

 

 

 

 

 

 

 

 

 

 

 

 

 

 

 

 

 

 

 

2. 백자

 

조선을 대표하는 백자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온 제작기술 위에 중국 백자의 영향과 자극을 받아 15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우아함과 화려함으로 표현되는 청자와 달리 조선의 백자는 단아하고 깨끗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 색과 무늬 대신 풍만한 부피감과 깊이감은 무엇이든 품어줄 것 같은 매력을 지녔다. 화려하고 섬세한 청자를 볼때처럼 "아!" 하는 감탄사는 금방 나오지 않지만 두고 두고 보고 싶게 하는 매력은 백자가 더한 것 같다.

백자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역시 달항아리라고 부르는 '백자대호'인데 아래 사진은 지난 10월 영국박물관 한국관에서 만난 백자들이다.

 

 

 

 

 

 

 

 

 

 

잘 보면 가운데 배 부분에 가로줄이 보인다. 위 아래 두 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였기 때문이다.

 

달항아리를 더 유명하게 만든 화가는 김환기. '항아리와 시'라는 제목의 아래 그림은 1954년작으로 홍콩 경매에서 39억원에 낙찰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기억하기로 나 중학교때 (1979-1981) 미술책에도 나왔던 그림. 그땐 그림은 잘 몰랐고 저 글씨체에 더 눈이 갔었다.

 

 

 

 

 

사실 달항아리 나도 가지고 있는데 (↓),

 

 

 

 

 

높이가 한뼘도 안되는 초미니달항아리 되시겠다 (얼마 전 박물관 기념품 샵에서 구입).

너무 작아서 그런지 달항아리 특유의 풍성함이나 포용감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게 문제 ^^

 

3. 분청사기

 

 

그런데 청자보다, 백자보다, 현대적으로 더 각광받는 도자기가 있으니 바로 분청사기.

고려 말 청자에서 태어나 조선 초 궁에서 백자를 공식적으로 선택하기 전까지 200여년 동안 집중적으로 만들어져 강렬하게 살다간 것이 바로 분청사기이다.

그럼 분청사기는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가.

고려 말기로 가면 청자의 질이 확연이 떨어지게 되는데, 청자의 태토 (바탕 재료가 되는 흙) 에 불순물이 많이 섞여 색도 나빠지고 표면도 거칠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건이 안되니 원래의 청자 수준에 이르는 작품을 재현하기 힘들어지고 이 문제를 보완하고 결점을 가리기 위해서랄까 분장을 하기 위해 흰 흙 (백토) 을 칠하거나  담그거나 덧대는 등 변화를 주어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장회청사기, 줄여서 분청사기이다 (일제 시대 고유섭이 처음 이름 지어줌). 그래서 형태나 문양은 청자에 가깝고 색깔은 청색와 흰색이 섞인 듯한 회백색을 띄고 있다.

청자와 같지 않으니 더 이상 귀족들의 전유물이 아니었고 서민들의 사랑도 받게 된 분청사기는 실용적인 용도로도 만들어졌고 만드는 기법도 청자에 비해 과감하여 제작 방법도 덤벙기법, 귀얄기법, 도장기법등 섬세하기 보다 과감하고 실험적이고 대범하다. 현대적이라고 각광받는 이유이다. 자유로움, 창의성, 변화, 실용성, 수더분함.

 

아래는 국립중앙박물관 3층 분청사기실 (304호)에 소장되어 있는 분청사기 몇점을 찍어 온 것이다.

 

 

 

 

 좌우 대칭쯤은 신경 안씀.

 

 

 

 

흘러내린 유약도 과감하게 그대로 두었다.

 

 현재 서울 신사동 소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에서 <자연의 빛깔을 담은 분청-귀얄과 덤벙>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분청사기의 현대적 미감을 보여주는 전시가 될 것 같아 관심이 간다.

 

그러면서 문득 드는 물음 하나는,

"현대적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 호림박물관에 전시 중인 '분청 덤벙문 호'

 

 

 

 

 

 

 

덧붙여 런던에서 찍어온 사진 한장 ↓

 

 

 

영국 박물관 앞에서 본 앤틱샵.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곳인가? 달항아리가 전면에 전시되어 있었다.

(2018.10. 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니데이 2018-12-30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에서도 달항아리가 인기인 모양이네요.
며칠째 추운 날이 계속되고 있어요.
영국의 겨울도 이만큼 추울까요?
오늘은 달항아리나 분청사기 그런 것보다 날씨가 더 생각나요. 너무 추워서요.
연말의 남은 날들이 이제 아주 조금 남았네요.
따뜻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hnine 2018-12-31 07:45   좋아요 1 | URL
영국의 겨울은 기온은 한국보다 더 낮지 않지만 한국만큼 난방을 세게 안해서 더 춥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도 춥다고 해서 단단히 입고 나갔다 왔더니 저는 생각만큼 춥진 않더라고요.
추운 날은 달이 더 선명해보이기도 하죠. 다른 미술품들도 그렇겠지만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개인차도 있고 시대 상황을 반영하기도 하고, 풍족한 상황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 상황에서 더 마음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요.

서니데이 2018-12-31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새해인사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글들 감사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 2019년입니다.
가정과 하시는 일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한 연말, 그리고 좋은 새해 맞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nine 2019-01-01 07:47   좋아요 1 | URL
2019년 처음으로 알라딘 댓글에 대한 댓글 씁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리스트 만드는 일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장기, 단기, 평일, 주말, 바쁜 날뿐 아니라 한가한 날은 한가한 날대로 모처럼 생긴 여유를 어떻게 보내야 아깝지 않을까 더 고심하며 리스트를 만들었다.

제일 촘촘한 리스트를 만들게 된건 고3 수험생 시절이 아니라 아이엄마 타이틀을 달고 난 후였다. 아이 중심의 일정을 먼저 적어넣고서 그 사이사이에 요령있게 내 스케쥴을 끼워넣어야 하기 때문에 내 일은 한 단위가 아니라 늘 조각조각 나뉘어 들어가야했다. 아마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리스트 작성은 시간관리의 기본이고 핵심인 것은 사실이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이런 리스트 없이 살아보길 꿈꾸지 않는가?

눈뜨면, 아니 잠들기 전 다음날 할 일 리스트를 만들어놓고 그것에 따라 임무 수행하듯이 살아온 수십년.

작년 여름 이후 나는 직업이라고 해오던 일을 어찌어찌 해서 그만두게 되었고, 내 일정의 중심에 있던 아이도 고등학생이 된 후로 내 역할은 아이 일정을 쫓아 다니는 대신 아이가 스스로 자기 할일을 알아서 하게 '지켜봐주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굳이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해야할 일 리스트를 작성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일까. 울적했다. 아직도 가끔 울적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얼마나 복에 겨운 생각인지 깨닫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때를 그리고 바라며 일하고 있을텐데. 리스트가 굳이 필요없는 하루 말이다. 그런 시간이 주어졌는데 (자의든 타의든) 그걸 우울의 이유로 삼아 늪으로 끌고 들어갈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버킷리스트를 만들지 않는 이유는 만약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미래의 어느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희망사항으로 리스트에 올려놓고 나중에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라게 되는 것은 아닐지. 또는, 희망사항이 어느 순간 숙제의 일종, 해야만 할 일로 둔갑해버리는 것은 아닐지.

난 그냥 오늘 하루, 가능한 범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소.확.행.

그말이 참 좋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감은빛 2018-08-05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확행이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 큰아이가 알려줘서 알았어요. 근데 전 아무리해도 줄임말이나 신조어에 익숙해지지 않네요.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다니, 정말 부러워요! 저는 작은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쯤 일을 그만두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과연 그날이 올까? 싶어요. 앞으로 10년 후의 일을 생각하기엔 현실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요.

hnine 2018-08-05 23:00   좋아요 0 | URL
저도 줄임말, 신조어 잘 모르는데 소확행은 알아요. 제 맘에 드는 말이라서요 ^^
감은빛님, 10년이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더라고요. 다시 돌아가고 싶냐면 그렇지도 않아요. 좋은 기억들로만 남아있지도 않고 후회스런 일도 많고 부끄러운 일도 많고요. 다시 돌아갈수 있다고 해도 저라는 사람이 그대로인데 더 나은 결정과 결과를 보장할 수도 없을테고요.
위에 어떤 사람의 좌우명이 ˝너무 애쓰지 않는 만큼만 애쓰자˝라고 한것을 보고 저는 그말의 의미가 단번에 가슴에 팍 하고 와닿았어요. 고되고 힘든 현실이 너무 오래 가지 않았으면 해요.
 

 

 

 

 

 

 

 

 

 

 

뭐라고 해야할까 이 형태를

평평한 곳은 오직 바닥뿐

물이 흐르며 순간적으로 만들어놓은 흔적 같게

지금도 흐르고 있는 것 같게

무계획으로 보이게 하는

계획

 

 

 

공기 지나며 바람 만들라고

연꽃넝쿨 사이 채우지 않은 공간

가벼운듯 더 단단하리라

빈듯 더 채우리라

조용하지만

견고한

그 결의

 

 

 

 

 

 

 

 

 

 

- 2018년 6월 국립중앙박물관 3층 청자실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비극을 연출한다

저기 햄릿이 점잖을 빼며 걷고 있다, 저기엔 리어 왕이,

저기엔 오필리아가, 아니 저기엔 코딜리아가.

그러나, 비극이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지려면,

그래서 거대한 무대의 막이 내리기 위해서는,

그들의 연출이 의미 있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배우는 흐느껴 울며 대사를 망쳐서는 안 된다.

비극의 주인공임에도, 햄릿과 리어는 즐겁다.

두려움을 모두 즐거움으로 바꾸어 버리는 환희,

인간은 누구나 추구하고 찾아내고, 잃어버린다.

소등하라! 하늘은 불타며 머릿속으로 들어오고,

비극은 절정에 이른다, 햄릿이 어슬렁거리고,

리어가 분노를 터뜨리고, 온 세상의 비극이

한꺼번에 막을 내린다 해도, 비극은

단 한 치도, 단 한 온스도 커지지 않는다.

 

 

= 예이츠의 시 <청옥 부조 (Lapis Lazuli)> 중에서 =

 

 

 

 

 

 

 

 

 

 

 

 

 

 

 

 

 

 

 

 

 

 

 

 

 

 

 

이 책 <포스트모던 시대의 정신>에서 위의 예이츠 시에 대한 저자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슬픈 운명의 인간이 자신의 삶 속에서 헤어나기 어려운 어떤 비극과 맞닥뜨릴 때, 울어서 대사를 망쳐 버린다면 비극은 예술로 막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의 아픔은 어떤 즐거움 (gaiety)도 주지 못하고, 마냥 아픔만을 주고 끝나게 될 것이다.

존재 속에서의 슬픔은 언제나 그 슬픔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예기치 못한 큰 기쁨을 담고 있게 마련이다.

비극을 맞는 자가 울어서 자신의 대사를 망가뜨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 역을 끝까지 수행해 슬픔 속에 담긴 기쁨을 찾을 때, 비극은 하나의 예술이 되고, 그 예술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비극적 삶의 아름다움을 심미적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237, 238쪽)

 

 

'슬픔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예기치 못한 큰 기쁨을 ...'

 

 

이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어떤 책에도 눈길이 가지 않는다.

빨리 읽기 보다 제대로 읽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ama 2018-04-01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을 치는 표현입니다. 짧은 한 줄로도 큰 위로가 됩니다.

hnine 2018-04-01 14:13   좋아요 0 | URL
저 지금 nama님 서재에 다녀오는데...^^
저 문장에 nama님 처럼 공감해주시는 분을 찾고 싶었어요. 누구실까 궁금했고요 ^^